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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흔한 이야기다. 자신의 대표작이자 연출작 전부인 두편의 단편(<장마> <어떤 여행의 기록>)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젊은 감독이 충무로에서 장편 데뷔를 준비했고, 2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뒤, 캐스팅까지 완료된 프로젝트가 제작불가 판정을 받는다. 안타깝지만 현실에 비일비재한 일화일 뿐이고, 그 주인공인 조범구 감독도 이를 알고 있다. 이 서글픈 일화가 전환되는 계기를 굳이 말하자면, 아마도 그 시점을 전후하여 조범구 감독이 겪은 갖가지 내우외환 속에서 맞닥뜨린 “정신적 공황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는 “안 하면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첫 장편을 무작정 시작했고 <양아치어조>는 그로부터 1년 반 뒤 완성됐다. 거미줄처럼 얽힌 채무관계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저당잡힌 인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양아치어조>의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보험료 1억5천만원을, 친구들의 빚을 ‘얼떨결에’ 갚아주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8] 대안3-새로운 세대를 말하다 : 조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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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자체를 많이 줄 수 있는 매체다
윤영호(34) 감독의 <바이칼>은 도시에 관한 묵시록적 예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 호수에 관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떠올린 것이다. 그의 말대로 “시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자극받은 구상은 “사막이 항상 끝이고, 거기에 다시 땅이 만들어지고, 강이 들어서고, 숲이 형성된다는 자연의 순환 고리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땅으로서 생명을 다한 것이 도시라고 할 때, 그것을 사막과 연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영화의 두 공간이 결정되었다. 서울 한복판의 정경과 단편을 찍으며 눈여겨봐뒀던 화성쪽 간척지에서 촬영한 사막장면이 교차한다. 주인공 라반과 석치는 황량한 사막을 헤매고 다닌다. 그들은 이 사막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길은 없다. 도시가 무너지고 사막이 들어섰는지, 도시를 사막처럼 느끼는 이들의 감정적인 공간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바이칼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7] 대안2-상상과 표현의 신천지 : 윤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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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코더인데, 하고 얕보면 큰코 다쳐”
단 두편의 독립영화로 독특한 상상력의 신인으로 각인된 신재인 감독은 첫 장편 <신성일의 행방불명>을 디지털로 찍어야 했다. 밥먹듯이 “16mm카메라 앞에서 촬영감독과 싸우는 꿈을 꾼다”는 필름룩의 광신도인 그는 디지털을 ‘차악’이라 칭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때 메가박스 3관 상영에서는 “전체적으로 어둡긴 했지만 암부 디테일이 모두 표현된” 디지털 영사에 감복하기도 했다. 이어진 CJ아시아인디영화제 때 CGV용산 상영에서는 그 만족감이 철저히 배신이 되어 돌아왔지만.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먹는다’는 욕망과 신의 대결을 사유한다. 모든 것을 아는 하느님 앞에서 먹는 일은 죄이자 벌이다. 한시바삐 아무것도 먹지 않는 어른이 되기를 꿈꾸는 신성일은 식사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연인 이영애와 하느님의 품인 고아원을 탈출하려는 친구 김갑수 때문에 괴로워한다.
어떤 영화일지 쉽게 상상하기 힘든 만큼 촬영도 쉽지 않았다.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6] 대안2-상상과 표현의 신천지 : 신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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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여관방에서 35mm 카메라 움직일 수 있어?
<프락치>는 무려 7년 만에 완성된 영화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1996년 말, 황철민 감독은 귀국 준비를 할 무렵 만났던 학원프락치를 소재로 시나리오를 썼다. “프락치로 지목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던 와중에 독일로 도망온” 그는 황 감독에게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안겼는데, 그 안에는 운동권 학생들의 결혼식 장면을 비롯해서 안기부 기관원과 함께 여관방에 숨어 지내던 시절이 담겨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그런 생활에 대한 한탄이 덧붙여져 있었다. 이는 후덥지근한 여름, 정체가 드러난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이 세상의 눈을 피해 여관방에서 함께 장기 투숙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한 <프락치>의 모티브가 됐다.
하지만 프로젝트 진행은 더뎠다. 1997년, <낙타> <선택> 등과 함께 제1회 PPP에 선정됐지만, <프락치>에 필름을 내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프락치>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5] 대안1-중견 작가의 돌파구 : 황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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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기회”
황규덕 감독의 13년 만의 복귀작 <철수♡영희>는 처음에는 감독 30인의 릴레이로 시작해서 외로운 마라톤으로 마무리된 작품이다. 2003년 10월, 30명의 영화감독들이 뉴시네마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6개월에 10편의 디지털 장편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의 선봉으로 낙점된 것이 <철수♡영희>. 그러나 주최쪽으로부터 촬영 하루 전까지도 약속된 제작비 2억원은 조달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제작비는 소식이 없고 황 감독은 주최쪽에 계약파기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사흘 뒤 황 감독은 <철수♡영희>를 자체 제작하기로 결심하고 2003년 11월30일, 촬영에 돌입했다. 애초 사용하려던 HD영화제작용 파나소닉 HDC-27F(일명 베리캠)카메라는 예산문제로 파나소닉 DVX-100으로 바꿔야 했다. 자가용을 처분하는 악전고투 끝에 <철수♡영희>는 완성됐다. 제목 그대로 작품은 대전 대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4] 대안1-중견 작가의 돌파구 : 황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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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과의 경계를 서서히 지워간다
지난해 부산에서 소개된 디지털 장편은 <그 집 앞>과 <자본당 선언>이었다. <그 집 앞>은 일기 혹은 사적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극영화이며, <자본당 선언>은 키치적 유희정신과 발랄한 실험성이 결합된 극영화다. 두 작품에는 디지털이 지닌 개인적이며 자유분방한 속성이 깊이 투영돼 있다. 그러나 올해 소개된 세 디지털 장편은 필름과 구분되는 기술적 속성보다 필름과 공유한 기록매체의 속성에 충실하다. 그것은 올해 상영작에 포함되지 않은 디지털 장편들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거리로 나간 혹은 거리로 돌아온 것은 디지털카메라만은 아니다. 뉴커런츠 부문에서 상영된 다른 두편 <여자, 정혜>와 <귀여워> 역시 오늘 이곳의 삶을 담는다. 이 영화들은 필름으로 촬영된 충무로영화지만, 이들은 세 디지털 장편의 영화적 태도와 더 가깝다. 디지털 장편의 장르적 시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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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곳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다시 물어보자. 디지털영화란 무엇인가. 넓은 의미의 디지털영화는 촬영, 제작, 배급의 어떤 단계에서든 디지털의 기술적 속성이 개입한 영화다. 그 모든 과정에 디지털이 개입하는 전면적 디지털시대의 영화의 운명에 대해선 매체 민주화의 완성에서부터 영화의 종말에까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건 이 지면에서의 관심사는 아니다. 디지털영화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영화에 한정할 때, 그것은 디지털과 관계된 어떤 것이 아닌 영화 자체로 먼저 말해져야 한다.
디지털에 관한 많은 말이 있었지만, 여전히 분명한 건 그것이 필름에 비할 수 없이 싸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너무 단순한 것이어서, 디지털의 방대한 파급효과와 기술주의적 담론에 가려져 종종 간과된다. 유난히 돈이 많이 드는, 그래서 그로 인한 갖가지 구속을 내면화해야 하는 영화라는 분야에서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중대하다. 최근의 디지털 장편이 보여주는 미학적 약진은 디지털의 기술적 속성과 직결된 것이라기보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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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편, 거리를 지켜라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프로그래머가 본 디지털영화의 새로운 도전
“그들은 거리로 나가 촬영기를 민첩하게 이용했다… 그들은 극영화를 르포르타주에 접근시켰으며 따라서 살아 있는 역사에 다가갔다.”(파스칼 보니체)
위 인용문의 ‘그들’은 1960년대의 프랑스 누벨바그를 지칭한다. 여기서 ‘그들’을 오늘의 디지털 세대로 바꿔도 이 문장은 유효할까? 디지털 세대가 과연 살아 있는 역사에 다가갔는지, 혹은 그들이 새로운 영화 형식을 발명했는지를 단언할 수 없다면, 결론은 유보적이거나 아직은 부정적이겠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그 치환은 그럴듯해 보인다.
한 가지는 영화 사조의 변화 혹은 신조류의 생성이 촬영 기자재와 인과관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거리를 질주하는 쥘과 짐의 생동하는 육체성을 필름에 새겨넣었던 것도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의한 카메라의 경량화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오늘의 예비감독들에겐 트뤼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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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자로 손꼽히는 제리 브룩하이머와 그 군단이 오는 12월 13일 전격 내한한다.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사진)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국내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국내 영화 팬들과 조우할 예정이다.
이번 방한에는 한국인 여성과의 결혼으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주연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를 비롯해, 감독 존 터틀타웁과 다이앤 크루거, 저스틴 바사 등 출연진들이 대거 동반한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80년대부터 에디 머피와 탐 크루즈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키워냈으며, 90년대에 와서는 <콘 에어> <아마겟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진주만> <캐리비안의 해적> 등 굵직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탄생시켜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큰 축으로 자리잡았다.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의 대표 주자인 니콜라스 케이지 또한 그를 통해 액션 블록버스터의 스타로 성장할 수 있
제리 브룩하이머, <내셔널 트레져>의 출연진과 함께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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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매와 리메이크는 오리지널 레코딩을 전제로 한다. 이 ‘지당한 말씀’을 새삼 되새기는 까닭은 김민기라는 존재 때문이다. ‘한국의 밥 딜런’이란 안이한 비유, 한국 모던 포크의 선구자란 평가, 한국 대중음악의 예술성과 현실적 조응을 한 단계 높였다는 찬사는 군내 나도록 얘기되었으니 생략하자. 여기서 질문. 그의 오리지널 음반은 얼마나 팔렸을까. 데뷔 LP(1971)는 초판 500장이 채 팔리기 전에 판매금지되었고, 1980년대 민중가요의 시금석이 된 <공장의 불빛>(1978)은 카세트테이프 초도물량 2천개가 끝이었다. 파시즘적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1987년까지 그의 음악은 ‘불법’의 영역에 속했고 비공식 경로로만 소통될 수 있었다.
수십년의 세월을 뚫고 김민기의 음반들이 ‘세트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먼저 김민기 전집격인 . LP 형태의 케이스 안에는 1971년 역사적인 데뷔 음반부터, 1980년대 작품인 <엄마, 우리 엄마>와 <아빠 얼굴 예쁘네요
김민기 < Past Life of Kim Min Gi >와 <공장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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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11월3일은 만화의 날이다. 청소년보호법이 만들어지며 서점에서 만화가 치워지고, 만화잡지가 폐간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만화인들은 1996년 11월3일 ‘만화심의 철폐를 위한 범만화인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날을 ‘만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2001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올해에도 제4회 만화의 날을 맞아 여러 행사가 열린다. 오후 1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창작물과 저작자의 권리’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또한 10월29일부터 11월3일까지 명동입구에서 만화의 거리 선포식, 캐리커처, 코스프레쇼 등이 펼쳐진다. 만화계의 여러 단체가 주도하는 공식행사와 함께 별도의 만화 관련 행사도 주목을 끈다.11월3일 만화의 날부터 시작해 11월9일까지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는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와 청강만화역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청강만화페스타 2004가 펼쳐진다. 청강만화페스타 2004는 카툰 전문 전시회인 ‘
한국 만화의 미래를 본다, 11월3일 만화의 날, 청강만화페스타 2004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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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집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다. 벽과 지붕이 있어도 문이 없다면 집이 될 수 없다. 안과 밖을 서로 통하게 하는 문이 없다면 집은 무덤과 같은 것이 될 것이고, 안과 밖을 차단하는 문이 없다면 집은 길거리나 다름없는 통로가 될 것이다. 문은 우리에게 세상과 만나는 길을 열어주고 또 세상과 차단된 우리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준다.열리고 닫히는 문에 의해서 공간을 안과 밖으로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삶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은 주어진 하나의 공간을 문이라는 도구에 의해 둘로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 문을 닫음으로써 바깥 세상과 구별되는 온전한 나의 영역이 생긴다. 나의 존재는 저 바깥의 나 아닌 것의 존재에 의해서 성립된다.노숙자의 고통은 필요할 때 닫을 수 있는 이러한 문을 가질 수 없는 데 있고, 감옥에 갇힌 사람의 고통은 필요할 때 열 수 있는 이러한 문을 가질 수 없는 데 있다. 한쪽은 광장의 고통이고 다른 한쪽은 폐쇄의 고통이라 할 수 있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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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0일 새벽 2시 용산의 한 극장, 일군의 인파가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 “잘 지냈어?”, “너는?” 하는 소리를 조용조용 나누며 사람들이 상영관 안으로 입장한다. 이곳은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기술시사가 열리는 곳이다. 기술시사란 영화의 99% 완성 단계에서 스탭들을 상대로 하는 상영으로, 기술적 하자가 없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내가 이 자리에 동참한 것은 남들보다 먼저 영화를 보고 기사를 쓰려는 ‘기자정신’ 때문이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아는 얘기지만, 나는 그 영화의 스탭으로 참여했다. 이름하여 제작부 막내. 촬영 전에는 로케이션할 장소를 헌팅, 섭외하고 촬영시에는 스탭들을 먹이고, 재우고, 달래는 일이 내 임무였다. 지난 1월 <씨네21>을 나와 “인생을 개조하겠다”는 큰소리를 치며 영화현장으로 들어갈 때는 나름의 꿈이 있었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크랭크업을 끝내 보지 못하고 촬영 후반에 그만두고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게 됐다(그것
아아, 나의 스탭시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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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따르면 세계사란 ‘절대이성’이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모든 문화를 포섭하여 이성의 발전과정 안에 끌어들이는 것이, 단적으로 말해 유럽화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비록 볼썽사납게 벗고 있거나 야만스런 가면을 걸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처음부터 이성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그 절대적 이성이 바로 헤겔 같은 유럽인이 알고 있는 이성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이성이고, 따라서 유럽인의 이성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미개하고 야만적인 곳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곳이 바로 이성의 범위 안에, 그 이성의 주인인 유럽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은 유럽이 세계의 일부인 게 아니라 세계가 바로 유럽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비슷하게도 최근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서울이 한국의 일부인 게 아니라 한국이 바로 서울의 일부란 것을 보여주었다. 서울이 단지 수많은 지역 중의 하나를 표시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한국의 확고부동한 중심을 표시하는 일반명사임을 통해서
미래의 힘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