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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도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어주는 게 예의다. 비욘세의 <Crazy in Love>를 깔아놓고 <택시 더 맥시멈>은 이것이 미국영화임을 외치면서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택시 더 맥시멈>은 화제의 프랑스 액션영화였던 <택시> 시리즈를 폭스사가 리메이크한 영화.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원작의 남자들은 <택시 더 맥시멈>에서 여자주인공으로 성전환했고, 원작보다 더욱 익살맞아졌다.
‘조금 삭았던’ <택시>의 주인공 다니엘 역은 이제 볼륨 넘치는 몸매의 벨(퀸 라피타)에게 넘어간다. 벨은 카레이서를 꿈꾸는 스피드광. ‘머큐리 퀵서비스’의 1등 사원이었던 그녀는 새끈한 택시 한대를 뽑아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어쩌다 사고뭉치 형사 와쉬번(지미 펄론)을 만나 은행 강도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크린을 수놓는 오토바이의 질주와 택시의 짜릿한 속도감은 <택시> 시리즈의 그것을 그대로 빼닮았다. 불법개조해 성
<택시> 시리즈의 짜깁기 축약본, <택시 더 맥시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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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행어사>는 시대물이 아닌 하드보일드한 형사물이다. 주인공 문수가 주어진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방식의 이야기구조는 감독 시무라 조지의 전작 <마스터 키튼>을 답습한다. 배경을 인물과 분리하고 캐릭터의 세부에 정성을 기울이는 극화 방향도 이러한 내러티브의 구조와 연결된다. 스토리의 배경인 춘향전, 박문수, 유의태 등의 역사적 장치들은 이야기 진행을 위한 의사(擬似)- 역사적 장치로 축소된다. 주인공 문수가 “기적 따위는 세상에 없다”고 되뇌이는 모습은 <무사 쥬베이>에서 그저 주어진 미션에 충실히 임해가던 ‘쿨가이’ 닌자 기바카미 쥬베이와 닮았다. 두 인물에게 존재론적, 사회적, 역사적 정체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자신과 적으로 남겨진 세상뿐이다. 시공간적 배경은 축소되는 차원을 넘어 소거되고 역사성은 탈각된다.
문수는 망해버린 쥬신국의 홀로 남은 암행어사다. 사막을 건너던 그는 암행어사가 되기 위한 과거에
한·일 합작 극장애니메이션 1호 하드보일드 형사물, <신암행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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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무엇일까? 인간은 왜 고통받아야 하는 것일까? 구원의 길은 없는가? 어떻게든 이 부류의 고뇌가 찾아오면(발단) 대개는 서사의 산을 오른다(전개). 그리고 그곳에서 갖은 통과의례와 시험을 거치고(위기) 마침내 깨달음이라는 안개 뒤 산정에 올라 대답을 쟁취한다(절정). 그리고 정확히 있었던 그 지점으로 하산하는 것이다(결말). 외관상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죽고 다시 태어난 상태. 이를 일컫는 수많은 이름, 성장, 구원, 해탈, 게슈탈트 변환, 패러다임 시프트 등등. 따지고 보면 영화를 포함해 모든 이야기는 이 소멸과 생성에 관한 종교적 에픽이다. 다만 장르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겪어내야 할 이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모두 일정한 도식에 밀어넣고 구조화한다는 점이 있을 뿐이다. 내러티브 자체의 종교성은 어쩌면 모든 시간예술의 숙명인지 모른다.
그러나 깨달음 그 자체에 대한, 구원 그 자체에 대한, 믿음 그 자체가 고뇌가 되는 영화는 이 일정한 도식을 사용할 수 없다.
종교적 깨달음에 대한 영화적 명상, <삼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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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은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첫 번째 국내 개봉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1996년 작품 <이마베프>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영화는 한국의 극장에 걸리지 못한 채 비디오로만 출시되었고 비디오 마니아들의 입을 통해서만 떠돌았었다. 말하자면, <클린>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자로서 많은 글을 썼고, 잉마르 베리만에 관한 책을 펴냈고, 홍콩 무협영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고, 허우샤오시엔을 존경한 나머지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허우샤오시엔의 초상>(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허우샤오시엔을 따르는지 절로 알게 된다)을 만들어낸 시네필 출신의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심상을 비평적인 측면이 아닌 창작의 측면에서 공식적으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영화인 셈이다.
<이마베프>는 비평가로서의 그의 화려한 이력과 공력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만끽시킬 만한 영화였다. 일견에서 제기되는 영화와 뱀파이어의 존재론적
인물과 음악을 따라가는 갱생의 드라마, <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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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는 두 남자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늘어진 뱃살 아래 팬티 한장만 입고 철거민들을 두드겨패는 깡패와 아이를 점지받으러 온 여인을 낡은 아파트 복도 벽에 세워놓고 손수 씨를 뿌려주는 박수무당. 그리고 사정에 이른 무당의 신음소리와 함께 타이틀이 떠오른다. 귀여워. 누구도 이 남자들을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이 타이틀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한 여자만은 진심인 듯, 깨물어주고 싶다는 목소리로 “귀여워”라고 말한다. 그 여자 순이 덕분에, 깡패와 박수무당과 다른 두 남자는 정말 귀여운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한때 아이 점지에 용하다고 소문났던 무당 장수로(장선우)는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배다른 두 아들과 살고 있다. 큰아들 후까시(김석훈)는 <본 투 킬>에서 정우성이 탔던 오토바이 V맥스를 타고 세상이 한점으로 모일 때까지 달려보는 게 소원인 퀵서비스맨이다. 후까시보다 조금 늦게 아버지를 찾아온 탓에 둘째가 된 개코(선우)는 건달기가 농후한 견인차 운전기사
콩가루 집안 배다른 네 부자 이야기,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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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0일, 일본에서 개봉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하울이 움직이는 성>이 20일, 21일 이틀간 약 110만 5000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며 일본영화 사상 이틀간 관객동원 수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흥행 수입은 약 15억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일본 영화사상 최다 개봉관(448개관)으로도 이미 신기록의 첫 스타트를 끊기도 했다. 2001년 개봉되어 일본영화사의 모든 기록을 뒤엎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틀간 관객 80만 4천명, 수익 약 11억엔을 기록한 바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급을 맡은 토호는 관객 4000만명, 흥행 수입 500억엔(약 5200억원)이 최종목표라고 밝혔다. 참고로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기록한 총 관객 수는 2340만명, 흥행 수입은 304억엔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3년만에 선보이는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영국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틀간 관객동원 수, 일본 기록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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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감독의 복귀작 가 국내영화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를 가졌다. 일본의 메이저 도에이 영화사는 이 영화의 전체 투자 중 50%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9일 도쿄 긴자에 위치한 도에이의 마루노우치극장에서 개최된 시사회에는 주연배우인 김정훈, 이재은, 정채경 등이 참석했다. 사회자인 이시모토 레이코는 “재일동포였던 아버지가 떠올랐고 매우 감명적”이라고 영화의 결말에 대한 힌트를 던지기도 했다. 이 감독은 “남북이 하나가 되자는 테마의 영화를 한국, 일본, 조총련계가 함께 모여 감상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덧붙여 “DMZ는 전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데 안 일어나고 평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평화롭지 않은 독특한 공간”이라고 관객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야쿠자 영화의 악역을 자주 맡았던 배우 마쓰다카 히로시와 기타노 다케시의 <그 남자 흉포하다>에 출연했던 재일동포 배우 백룡
‘비무장지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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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가족들이 통일자작극을 벌인다’는 내용의 영화 <간큰 가족>(제작 두사부필름)이 성지루, 신이, 김수미의 합류로 캐스팅이 완료됐다. 나머지 식구들을 먼저 기다리고 있던 배우는 신구, 감우성, 김수로.
성지루는 <간큰 가족>에서 사채업자 박상무역으로 분해 극 초반 감우성(명석역)과 팽팽한 대결구도를 이룬다. 신이는 이 영화에서 데뷔이래 처음으로 한 남자(김수로)를 짝사랑하는 순정파 여인 춘자역에 도전한다. 신이는 <색즉시공>, <낭만자객>에 이어 <간큰 가족>까지 캐스팅 되어 두사부필름 작품의 단골이 됐다. 1997년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인 <간큰 가족>은 다음달 10일에 촬영을 시작해 내년 5월 개봉할 예정이다.
성지루, 신이, 김수미 합류로 <간큰 가족> 캐스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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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로비에 들어오는 까만 양복의 ‘금뺏지’와 그를 향해 터지는 백여개의 플래시. 이제는 보기만 해도 넌덜머리가 나는 정치인 비리 뉴스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외쳐지는 “컷!”. 보도진의 숲을 헤치고 근엄한 얼굴로 검사에게 걸어가던 거물 국회의원(박근형)이 강우석 감독의 컷 사인 앞에서 슬쩍 웃으며 다시 포토라인으로 돌아간다. 열혈 검사가 부패로 얼룩진 정치권 실세와 맞장 뜨는 영화 〈공공의 적 2〉(시네마서비스 제작)의 촬영을 위해 검찰은 필름 카메라에 굳게 닫혀 있던 검찰청 로비를 처음으로 활짝 열었다.
1편 ‘형사’에서 역할 변신, 비리 정치권 맞서는 인물로
21일 서울중앙지검의 촬영 현장에서, 눈을 내리깔고 벼르고 별러 온 ‘먹이’를 맞이하는 강철중 검사(설경구)는 눈 아래 붉은 멍이 들어 있다. 정치권과 유착돼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냉혈 사업가이자 고교 동창생인 한상우(정준호)와 검사 신분증 내던진 채 주먹다짐을 한 직후다. 얼굴의 멍은 〈공공의 적〉
검찰청 촬영장서 만난 <공공의 적2>의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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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하나와 앨리스〉의 줄거리를 읽은 다음에 도대체 이 자가 어쩌려고 이런 이야기를 갖고 영화 한 편을 만들려고 작정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도대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고생 하나와 앨리스(본래 이름은 아리스가와)는 오랜 친구다. 선배 남학생 미야모토 마사시를 좋아하던 하나는 마사시가 셔터 문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자, 깨어난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선배, 저에게 사랑을 고백한 거 기억 안 나세요? 선배는 원래 ‘앨리스’가와를 사랑하다가 저를 사랑하게 되었잖아요?” 그 말을 믿은 마사시는 앨리스를 찾아갔다가 의문에 잠긴다. “왜 나는 저렇게 사랑스러운 ‘앨리스’가와와 헤어진 것일까?” 이와이 순지의 〈하나와 앨리스〉는 거짓말의 진심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이 거짓말로 이루어진 세계, 하지만 그 속에서 그걸 지키기 위해 하나와 앨리스는 안간힘을 쓰지만 거짓말은 진실을 찾아간다.
이와이 순지의 영화는 패턴의 반복이다. 처음에는
[비평 릴레이] <하나와 앨리스>, 정성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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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수목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서 오영심(엄정화)은 잘난 시집 식구들의 구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면 그는 〈빙글빙글〉을 부르며 자신을 추스른다. 한국방송 월화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은채(임수정)는 어떤 일에도 쉽게 놀라지 않는 무심한 표정에 때로 소주병에 빨대를 꽂고 마시는 엉뚱함을 보인다. 지난 18일 끝난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미영(오연수)은 이혼의 아픔을 이겨내고 사업과 사랑에 모두 당당히 성공한다.
대장금 이후 ‘활짝’
요즘 한국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들은 외로워도 슬퍼도 결코 울지 않는다. 그들이 드라마 속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식은 한결같이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다. 그들은 웃으면서 푸른 들을 달려가는 우리 시대의 ‘캔디’들이다.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캔디로 틀지어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가장 선호되는 드라마 주연 캐릭터는 청순가련형이었다. 〈허준〉의 예진아씨(황수정)와 〈가을동화〉의
지금 안방극장은...‘캔디’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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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미스 다이어리> 예지원
“자기 생각보다는 주위 압박 때문에 망가지는 역이죠. 할머니한테 꿀밤 맞기도 하고 ….” 예지원(28)이 22일 첫 방송을 내보낸 한국방송 2텔레비전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월~금 밤 9시25분)로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2002년 에스비에스 시트콤 〈여고시절〉 이후 2년 만이다. 그는 주로 라디오에서 활동하는 무명 성우 미자 역을 맡아 김지영·오윤아와 함께 30살을 막 넘긴 ‘올드미스’ 3인방의 좌충우돌 동행기를 이끌어나간다.
“경계가 약간 모호해요. 숙맥이고 하는 일마다 어설프고. 그러다 때로는 과감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극중 미자는 친구들의 결혼 ‘추월’에 속을 끓이다가도 자신만의 ‘필’을 외치며 판·검사와의 미팅을 당당히 딱지놓기도 한다. “직업적으로도, 남자 사귀는 것도 다 성공적이진 못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캐릭터예요.”
김석윤 피디는 “사랑과 낭만을 꿈꾸는 현실적인 노처녀 얘기와 함께 ‘황혼
예지원, 김태희 안방극장 활약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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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회를 맞는 ‘여성관객영화상(像)’ 설문 결과에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실미도>가 문제적 작품으로 각각 3관왕과 2관왕에 올랐다. 사단법인 여성문화예술기획은 매년 가을 불특정 다수의 여성관객을 대상으로 ‘최고,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설문조사와 시상식을 가졌는데, 올해는 “영화 속 여성주의와 여성상에 대해 고민하는가”라는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된 50명의 여성관객 심사위원단이 문제적 캐릭터와 장면, 스토리와 대사는 물론 희망적인 캐릭터와 대사 등의 세부 항목에 의견을 냈다. 이중에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꼭두각시 여성상, 순결이데올로기 강화상, 최악의 대사상에, <실미도>는 이분화된 여성상, 성폭력 정당화상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캐릭터 부문 ‘이분화된 여성상’의 어머니와 강간당하는 여성(<실미도>, 45.2%)은 “가족 내 여성과 그 밖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분법적 시선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꼭
여성관객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이의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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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웃! 조용히 해주세요!” “에브리보디 스탠바이! 콰이어트 플리즈!”
11월8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의 한 대형 찜질방에 차려진 홍콩영화 <서울공략> 촬영장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요란하기로 소문난 중국어에 한국어, 영어가 마구 뒤섞인데다 100명쯤 되는 스탭들이 뒤엉킨 현장이라니. 그래서였나. 이날 촬영 분량 중 홍콩과 한국 기자들에게 공개한 장면은 딱 하나, 극중에서 CIA 요원 오웬 역으로 나오는 임현제가 양조위의 추격을 피해 노천 사우나에서 탈출하는 장면이었다. 배우가 직접 나무 창을 몸으로 부수고 뛰어나오는 액션장면이라 긴장감이 감돌 법도 한데, 여긴 전혀 그런 구석이 없다. 임현제가 매트리스 위로 몸을 날리는 스턴트 연습을 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나무에 색깔을 입히고 있다. 조명 세팅도 우리 현장에서 보듯 꼼꼼하게 하지 않고, 리허설도 대강 하는 듯 보인다. 이것이 촬영을 빨리 진행시키기로 유명한 홍콩영화의 실체인가,
<서울공략> 경기도 포천 촬영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