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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잃은 시네마테크의 한시적인 보금자리가 마련되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오는 4월 초부터 종로구 낙원상가 4층에 자리한 허리우드극장에서 시네마테크를 새롭게 개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2년간 서울아트시네마는 허리우드극장의 1개관(300석 규모)을 임차해서 운영하게 된다. “바쁜 개관 일정으로 인해 상영공간의 전반적인 리모델링은 불가능한 형편”이라는 서울아트시네마쪽은 일부 설비들을 손보고, 나머지 기기들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받아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최종적인 이전을 결정하기까지는 지난한 협의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철도청은 영진위에 구서울역사로의 이전을 먼저 제안했고, 시네마테크를 위한 상설 상영관을 단기 임차하거나 새롭게 신축(또는 장기임차)하는 방법을 놓고 고민하던 영진위와 서울아트시네마는 3개의 상영공간을 만들어 입주하고 싶다는 희망을 철도청에 전달했다. 오랜 기간 내부안을 확정짓지 못하던 철도청은 최근 구역사 공간의 일부를 자신
서울아트시네마 낙원상가에 새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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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니콜스의 <클로저>에서 거의 고정 배경음악처럼 사용되는 노래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중창곡들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니콜스의 이 선택이 거의 교과서적으로 느껴지는데, 자신과 상대방의 불륜이나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고통받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주인공들과 <클로저>의 주인공들 사이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니콜스의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패트릭 마버의 동명 희곡과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우아한 가사(그게 꼭 좋은 가사라는 의미는 아니지만)와 품위있는 음악으로 가득 찬 고전이다. 반대로 마버의 희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와 관련된 온갖 상스러운 말들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야비한 이야기이다.
<코지 판 투테> = <클로저> = 노골적 연애담
그러나 이런 차이점은 허울에
비극과 로맨스로 위장한 코미디, <클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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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영화를 보면서 글로벌한 상념에 젖었다. <그때 그 사람들>의 ‘지워진’ 장례식 다큐멘터리 장면이었다. 착한 백성들이 통곡하고 있었다. <씨네21> 편집장이었던 조선희 선배는 이 장면을 보면서 “평양 거리를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10·26사건은 “우리 시대의 사건”임에도.
조 선배가 평양 거리를 떠올렸다면, 나는 아프리카, 동남아의 오늘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일들이!’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제3세계 인민들을 위해 잠시 값싼 동정의 시간을 가졌다. 극중에서 ‘할아버지’가 떠벌리는 대로, 아직도 민주주의 하는 나라, 지구상에 많지는 않다.
그는 좋은 독재자였나?
다큐멘터리가 끝나가는데 문득 영문 모를 슬픔이 밀려들었다. 슬픔의 정체가 모호했다. 영문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슬픔? 나,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김재규를 위한 동정인지, 백성들이 짠해서인지, 임상수
10·26 부조리극 <그때 그 사람들>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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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 제작될 전망이다.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가 이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 중이라고 <스크린 인터내셔널>이 보도했다. 드 로렌티스는 “우리는 1년 정도 후에 촬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한 이탈리아 일간지에 공언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주연배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니콜 키드먼의 스케줄이 이미 다른 영화들로 꽉 차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키드먼은 2005년과 2006년에 네 작품을 하기로 되어 있다. <물랑 루즈>감독 바즈 루어만이 연출할 <알렉산더 대왕>은 원래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와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영화다. 애초 스케줄대로라면 지난 2004년 4월에 모로코에서 크랭크인했어야 했다. 그러나 드 로렌티스는 “올리버 스톤처럼 존경받는 감독과 경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확실히 실패했고 뼈대가 없는 각본
바즈 루어만의 <알렉산더 대왕> 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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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달리던 인기 영화배우겸 탤런트 이은주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씨는 오늘 오후 1시 10분경 성남 분당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친채로 오빠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당시 커터칼이 있었고 손목에 자해 흔적도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맥 절단에 의한 자살시도가 여의치 않자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살 동기는 극심한 우울증?
이은주씨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분당 서울대 병원측 관계자는 “이은주의 사인은 우울증이며 손목 칼자국 외에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고 오후 5시경 검안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 추정은 최초 사건 현장에서 가족들의 증언으로 신빙성을 얻었다. 가족들은 이씨가 “<주홍글씨> 촬영이후 노출연기를 한 것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하며 우울해하곤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작년 <주홍글씨> 언론시사회장에서 “트렁크씬을 촬영하면서 이렇게 힘들어도 되나, 꼭 죽고 싶었다”고 촬영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끝내 삼킨 것은
[종합5보] 이은주 자살원인은 극심한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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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 찍는 것을 심하게, 좋아하는 편이다. 틈만 나면 사진을 찍던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만히 뭔가를 보고 있으면 사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속아서 만 원인가를 주고 산 아주 질 나쁜 카메라부터, 어린이 잡지 중간쯤에 끼워있던 점선을 따라 자르고 접으면 사진기가 되는 마분지 카메라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핀 홀 카메라였던 것 같다), 집집마다 있던 기본형 자동 카메라는 기본이거니와 오래된 수동 카메라에, 폴라로이드, 로모, 디지털 카메라에 스티커 사진기까지. 인생에서 사진기와 함께 하지 않았던 순간을 기억하기 힘들다. 특히 요즘같이 ‘17분 칼라’ 같은 가게가 나오기 전에는 필름을 맡기고 기다려야 했던 하루, 이틀이 내 인생에서 제일 박진감 넘치고, 긴 시간처럼 기억될 정도다.
특히 뉴욕에서 살기 시작 한 이후로는 혹 카메라를 잊고 외출할라치면 불안함에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날이면
[백은하의 애버뉴C] 12th street / 테디 베어, 죽은 염소, 쿠바 그리고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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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연 하늘만큼이나 우울한 소식이었다. 오늘 오후 이은주의 자살소식이 주요 포털사이트에 긴급 게재되자 네티즌들은 “오보가 아니냐”며 반신반의했다. 지난번 빌 게이츠의 사망설도 해프닝 끝에 오보로 판명되었기에 믿을수 없다는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팬들은 무엇보다도, 그가 그렇게, 서둘러 생을 마감해야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사망소식이 알려진 오후 2시~4시 사이에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음, 네이버, 야후, 엠파스 등 포털 사이트는 접속자 폭주로 한때 정상적인 뉴스 열람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다음의 이은주 카페에는 가입자 수가 순식간에 만명이 넘었고, 인터넷은 그녀의 추모글로 넘실대고 있다. 씨네21이 긴급으로 마련한 이은주 추모게시판에도 팬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팬들은 “칼로 깍은 듯 콧날에서 입가로 이어졌던 옆모습, 흔들리던 눈망울, 독특한 보이스,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공을 시작한 보석같던 그녀, 명복을 빕니다.”(ehk21님), “<번지점프를 하다>에
[4보] 영화배우 이은주 자살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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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천재 소년
하워드 휴스는 엄청난 부자였으며 할리우드 톱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던 미남에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비행기를 허공에 띄우려 했던 몽상가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상할 정도로 하워드 휴스와 닮았다. 10대 때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슈퍼모델과 같이 사는 미남에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영화에 출연했던 슈퍼스타와 하워드 휴스는 사춘기 소년처럼 불안정한 존재다. <에비에이터>는 그런 불안한 미숙함을 이용하는 영화다. 마틴 스코시즈는 디카프리오의 왜소한 가슴과 아이처럼 여린 뺨에 조명을 드리우며 소년의 모습을 강조한다. 8년 전 디카프리오가 하워드 휴스의 전기에 사로잡혔을 때, 그는 한번도 나락으로 빠져본 적 없는 영재배우이자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는 조숙한 아이였다. 시간이 흐르고 <타이타닉>의 거품이 가라앉자 디카프리오는 소년의 얼굴에 갇혀 지지부진한 세월을 보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세상의 모든 꿈들을 실현
소년의 영혼을 가진 두 남자 이야기 [3]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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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배우 이은주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라마 <카이스트>로 다가온 그녀는 영화 <오! 수정>과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우리에게 영화배우로서 각인되었습니다. 이은주는 <연애소설>과 <태극기 휘날리며>의 인상적인 연기와 유작이 된 <주홍글씨>를 마지막으로 짧은 삶을 접었습니다.
정상의 자리를 향하여 조금씩 발걸음을 떼고 있던 촉망받던 배우가 떠나간 것을 보며 씨네21에서는 그녀를 기억하는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덧글을 통해 추모의 글을 남겨주세요.
배우 이은주에 관하여
- [백은하의 애버뉴C] 늦겨울 그 중국집의 이은주를 떠올리다
- [종합5보] 이은주 자살원인은 극심한 우울증
- [4보] 네티즌 오보 아니냐, 인터넷 추모 물결 넘쳐나
- [3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은주, 어떤 삶을 살았나
- [2보] <주홍글씨> 촬영후 불면증 얻어
- [1보] 영화배우 겸 탤런
[긴급특집] 안타까운 이별, 이은주를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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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편에서 걸어온 피터팬
마크 포스터는 <피터팬>의 작가 J. M. 배리가 다섯 번째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스가의 네 형제를 사랑했던 배리는 그들로부터 성장을 거부한 소년 피터팬을 떠올렸지만, 데이비스 형제 중 하나인 피터가 말하듯, 그 자신이 열두살 즈음에 머무른 피터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네명의 소년 곁에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어른이 되지 못한 다섯 번째 아이 제임스 매튜 배리. 포스터는 배리의 서글픈 모험담인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위해 조니 뎁 말고 어떤 배우도 떠올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성숙한 육체 안에서 맑은 영혼을 찾아야 했던 그는 “조니 뎁의 내부에는 누구도 손대지 못한 어린아이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었다. 아이처럼 천진하면서도 세상의 무정한 이치를 알고 있는 듯한 조니 뎁은 포스터가 믿은 것처럼 희곡 대신 연기를 선택한 J. M. 배리의 분신일지도 모르겠다. 머뭇거리면서 아내에게 산책을 청하다가 거절당하는, 매사에 서툰 배리,
소년의 영혼을 가진 두 남자 이야기 [2] -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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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12년,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걸어온 길
93년작 <길버트 그레이프>는 길 위에서 끝이 난다. 서로를 감싸주고 상처입히며 살아가던 길버트(조니 뎁)와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우린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말하며 길을 떠난다. 길은 계속해서 뻗어 있는 것이다.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무한하게 뻗어 있는 길 위에 서서 이정표를 찾는 배우들이었다. 사람들은 두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의 앞날에 새로운 세대의 할리우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조니 뎁은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20여편의 작품들에 출연했고, 디카프리오는 1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길을 걸어갈수록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조니 뎁은 그림자처럼 은둔하며 비범한 재능들과 손을 잡았다. 그는 팀 버튼의 페르소나가 되었고, 라세 할스트롬과 테리 길리엄의 세계에 속한 알 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 디카프리오는 달랐다. 어린
소년의 영혼을 가진 두 남자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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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에서 생긴 일>로 유명한 미국 여배우 샌드라 디(62)가 2월19일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신장질환 합병증이다. 어릴 때부터 모델로 활동하다가 15세에 영화계 데뷔한 샌드라 디는 1950년대와 60년대까지 젊은 층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금발의 깜찍한 외모로, 귀여우면서도 조숙한 소녀 역할을 주로 맡아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8살이었던 1960년에는 당시 인기가수였던 바비 다린과 결혼해 이듬해 아들을 낳았고 1967년에는 이혼을 했다. 1991년 <피플>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어린 시절 계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고 어머니에게 떠밀려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어머니가 죽은 1988년 이후에는 약물과 알코올에 빠져 지내는 등 순탄치 않은 말년을 보냈다.
대표작으로는 <기제트>(Gidget)와 <피서지에서 생긴 일>, <슬픔은 그대 가슴에> 등이 있다. 모두 59년작.
5,60년대 은막 스타 샌드라 디(62)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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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런 자살로 25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이은주는 1980년 11월 16일(음)에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군산에서 자란 군산 토박이였다. 군산초등학교와 군산여자중학교, 영광고등학교를 거쳤고 지난 18일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공식적인 방송 데뷔작은 SBS 드라마 <백야 3.98>. 이은주는 이 드라마에서 심은하의 아역인 아나스타샤로 출연했었다.
KBS 청소년 드라마 <START>에 반장 정남역으로, SBS 납량특집 미니시리즈 <어느날 갑자기>에 성주역으로도 출연했지만 그가 널리 얼굴을 알린 것은 SBS 일요 드라마 <카이스트>에 구지원역으로 고정출연한 이후였다. 98년 방송데뷔 직전인 97년에 선경 스마트 학생선발대회에 은상으로 입상하면서 이후 존슨즈 클리엔클리어, 인따르시아, 최근 엔프라니까지 광고모델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방송, 광고 경력보다는 영화쪽이
[3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은주, 어떤 삶을 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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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웃음을 잊지말라!
한국계 프로듀서 지나 권의 두 영화:
<우리가 아는 나, 당신, 그리고 모두>와 <모텔>
올해 선댄스에서 가장 눈길을 끈 인물 중 하나는 한국계 프로듀서 지나 권일 것이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신인 프로듀서를 대상으로 한 마크 실버만 펠로십을 단독으로 수상하기도 했던 지나 권은 이번 영화제에 자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두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에 초청된 <우리가 아는 나, 당신, 그리고 모두와 아메리칸 스펙트럼 부문에서 상영된 <모텔>이 그것.
재능있는 감독의 차기작 시나리오에 대해 지원하는 선댄스/NHK상의 2003년 수상작이자 한국계 마이클 강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모텔>은 <필름 스레트>에 의해 “<모텔>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기대해도 좋다”고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리가 아는 나, 당신, 그리고 모두>는 감독인 미란다 줄라이의
2005 선댄스영화제 결산 [4] - 프로듀서 지나 권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