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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됐던 1979년 10월 26일의 10.26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제작돼 일부 정치인과 관련인물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은 심수봉의 곡명으로도 친숙한 ‘그때 그사람’을 연상시키는 <그때 그사람들>. 그동안 한번도 언론에 공식적으로 노출된 적이 없는 <그때 그사람들>은 지난 9월 10일 촬영을 시작해 최근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강제규&명필름은 보도자료를 통한 입장표명에서 “대통령 시해사건을 다뤘다는 이유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해석을 유발하여 영화에 대해 그릇된 평가가 내려질 것을 우려해 그동안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고 밝힌 후 “이 영화는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그 주변인물들에 초점을 맞춘 블랙코미디풍 작품”이라고 애써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제작사의 의도와 상관없이, ‘박정희 시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직접적인 소재로 다루기 때문에 이런저런 뒷말은
10.26사태 정면으로 다룬 <그때 그사람들> 촬영 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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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영화 최고의 수확은 포도주의 명산지인 캘리포니아에서 거둘 확률이 높아졌다. 샌타바버라로 와인 시음 여행을 떠난 두 중년 사내의 이야기인 <사이드웨이스>(Sideways)를 두고 뉴욕과 LA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의 비평가들이 거의 일치된 환호를 보냈다.
<사이드웨이스>는 뉴욕비평가협회가 선정하는 작품상 등 4개 부문, LA비평가협회 선정 5개 부문을 휩쓰는 등 주요 비평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축배를 높이 들었다. <어바웃 슈미트>를 만든 인디 작가 알렉산더 페인의 <사이드웨이스>는 실패한 작가이자 남편이며 고등학교 영어선생인 마일즈(폴 지아매티)가 단짝인 전직배우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과 캘리포니아의 와인 농장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길 위에서 자신의 실패를 되돌아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되짚어본다는 점에서 조금 젊어진 <어바웃 슈미트>식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을 앞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잭은
두 남자의 와인 시음 여행기 <사이드웨이스>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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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매우 사적이고 주관적인 2004 베스트10 / 정성일
<철서구> 왕빙
나의 올해의 영화. 이제 폐광이 된 마을에서도 살아가야 한다. 단 한대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왕빙은 그들의 삶의 리듬 안으로 들어간다. 9시간에 걸친 (상영)시간의 ‘심금을 울리는’ 영화적 체험.
<열대병> 아핏차풍 위라세타쿤
영화를 반으로 접은 다음 앞과 뒤의 순서를 바꾼다. 거의 젖어들어가는 듯한 숨결로 꿈을 꾸는 정글 속에서의 몽환적 세계. 나는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표를 그만 구하지 못했다. 거의 죽어버릴 듯한 심정으로 웹사이트를 뒤지던 나에게 표를 팔겠다고 나선 분께 다시 한번 감사, 꾸벅.
<2046> 왕가위
이 영화가 그저 그렇다고? 천만의 말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아비정전>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중이다.
<카페 뤼미에르> 허우샤오시엔
오즈에게 보내는 허우샤오시엔의 마음의 뜻이 담겨 있는 영화
2004년 송년특집 편집위원 3인 좌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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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성을 보여주는 디지털 장편의 매력
허문영 l 디지털 장편은 예전에는 이야기 매체로 일정한 결함이 있는 듯했으나 올해는 완결된 구조의 영화들이 나왔다. 그중 <마이 제너레이션> <양아치어조>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세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독이 지닌 영화 매체에 대한 관심과 세계관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양아치어조>는 비교적 관습적인 이야기 방식을 채택하면서도 자기 번민의 감독적 독백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신성일…>은 감독의 개성에 걸맞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고도의 우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전체적으로 디지털 장편에 대한 기대나 호감은 그것이 지닌 물질적 제약 때문에 오히려 주류영화들보다 등장하는 인물도, 공간도 함께 살고 있다는 영화의 동시대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정성일 l 그것과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시실리 2km>의 성
2004년 송년특집 편집위원 3인 좌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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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화의 이상한 경향들
정성일 l 다른 해와 달리 올해 이런 이상한 경향, 증후가 있었구나라고 감지한 게 있다면.
김소영 l TV와 영화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일종의 망각술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 과거를 잊어버리고 과거의 사람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만난다. 망각이 역사적으로 비정치화되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허문영 l 상반기 좌담할 때 김소영 선생이 말한 한국영화의 세트에 대한 집착을 그 이후로 유심히 보게 됐다. 이를테면 여름 공포영화 대부분이 세트에서 촬영을 했던데 예컨대 어떤 학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외딴 곳에 세트를 지어놓고 공포를 만든다. <역도산>이나 <바람의 파이터>는 아예 무대를 일본으로 옮긴 경우에 해당하고. 괴담 유행의 시초였던 <여고괴담>은 그래도 의정부의 학교에서 직접 찍었다. 지금은 세트로 도피하거나 아예 무대를 딴 곳으로 옮겨간다. 이는 영화의 때깔을 높이려는 의도와 함께 제작비 규모의 상승과 밀접한
2004년 송년특집 편집위원 3인 좌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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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혼란스런 작가주의의 좌표
정성일 l 한국영화의 작가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중의적인 의미로 김기덕과 연관지어서 표현하자면 김기덕이 있기 때문에 홍상수가 덜 외롭고 박찬욱이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다. 올해 단편영화를 심사하고, 영화아카데미 입학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느낀 건 박찬욱의 영향력이었다. 많은 차세대 영화지망생들이 박찬욱의 자장권 안에서 장면을 카피하고 영감을 받고 있다. 작가주의 담론을 논하기 위해선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옆에 그를 놓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칸이 주는 상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올드보이>는 공감하기 힘든 영화였다. 그냥 재미있는 상업영화였다. 그것도 많은 결함을 갖고 있는. 그런데 이제 그 영화가 많은 비평담론들에서 예술적으로 나아갈 좌표처럼 이야기되고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영화처럼 이야기될 때 대중성과 B급영화들이 가져야 할 자리와 예술성의 문제가 혼돈스러운 자리로 떨어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됐
2004년 송년특집 편집위원 3인 좌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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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영화의 진화를 말한다
정성일 l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산업적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기대된 영화가 <역도산>이라면, 올해의 감독은 누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걸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김소영 l 한국영화에서 여자를 때리는 폭력적 남성은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부분적 현상이었지만, 일관된 주제는 주변화된 남성성이었고 그게 힘없는 아버지로, 또 그를 바라보는 아들로 나타났다. 문제는 주변화된 남성성이 자기 연민과 자기 구원을 위해 여성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게 한국 문화의 장치라는 점이다. 그 정점이 <서편제>였다. 여자의 눈, 딸의 눈을 멀게 하고 거기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장면이 민족적 미학으로 받아들여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 생긴 관심이 주변적 남성성이 여성을 학대, 착취하지 않고 어떻게 주체성을 확보해나가느냐였다. 액션영화에 대한 관심도 여기에 있었다. 남성성의 곤경이기도 하고 젠더의 곤경이기도 한 봉쇄
2004년 송년특집 편집위원 3인 좌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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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지도를 펴 드는 것은 대부분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다. 달리는 속도도 경치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일보다 여행에서 중요하지 않다. 2004년의 대단원을 맞은 <씨네21>도 그런 마음으로 세 편집위원을 한자리에 초대했다. 상반기를 결산하는 좌담 이후 6개월 만의 자리였다. 박스오피스와 국제영화제의 어마어마한 기록들이 부추기는 연말 자축연의 공기는 아랑곳없이, 이날의 주제어는 영화와 작가와 시장이 봉착한 ‘곤경’이었다. 가장 최근에 도착한 한국영화 <역도산>에 대한 소회로부터 거슬러올라간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정성일 영화평론가, 허문영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의 대화를 옮긴다. /편집자
<역도산>: 합작 영화에 대한 우려를 극복하다
정성일 l 가장 최근에 본 영화부터, 그러니까 엊그제 본 <역도산>부터 거꾸로 올라가면서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한해 내내 사람들이 기다린 영화이고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2004년 송년특집 편집위원 3인 좌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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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엔 가끔, 하나의 연기 속에 배우와 역할과 영화가 너무나도 강렬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나머지 연기자의 커리어 전체를 특징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알렉산더>에서의 콜린 파렐의 연기가 있다. 2300년 전 얼마 동안 그리스 제국을 만들어나갔다가 32살에 죽은 젊은 마케도니아 왕을 맡은 콜린 파렐의 연기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의 피터 오툴과 같은 대열에 선다. 이런 연기는 자주 나타나진 않지만, 나타날 땐 틀림없는 느낌이 난다. 배우가 역할을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스크린에서의 페르소나를 지나치고 넘어서서 그 인물 자체가 돼버리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그 역할에 놓고 상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서사영화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에 완벽한 무대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의 오툴, <벤허>에서의 찰턴 헤스턴, <클레오파트라>에서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이 있다. 오툴이 그
[외신기자클럽] <알렉산더>의 콜린 파렐, 최고의 연기 선보여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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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매너리즘의 성(城)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9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은 그가 창조해온 세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류를 타고 부유하는 날틀, 만물에 영혼을 내리는 애니미즘, 강한 소녀와 지혜로운 할머니, 왈츠가 흐르는 가상의 유럽왕국.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미야자키의 새로운 경지에 열광했던 관객에게 <하울의…>의 의연한 진부함은 과거로의 회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은 실망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가냘픈 네개의 다리와 증기를 내뿜는 굴뚝, 고철덩어리로 짜깁기한 것 같은 풍채로 안개 속의 산자락을 누비는 하울의 성은 맥박의 떨림이 느껴질 만큼 생생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유럽의 모든 지형들을 모자이크해놓은 듯한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19세기’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비행의 쾌감은 온전하다. <하울의…>가 매너리즘의 혐의에 의해 업수이 여겨진다면, 그것은 풍요로운 상
지혜롭고 풍요로운 거장의 새로운 악상, <하울의 움직이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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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말부터 2000년까지 할리우드에는 오랜만에 틴 무비 열풍이 몰아쳤다. 공포영화부터 코미디,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10대들은 스크린 위를 점령했다(<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아메리칸 파이> 등). 겉으로는 미성숙하고 여린 그들의 육체 속에는 성인들보다 한술 더 뜨는 노숙한 영혼이 깃들어 있었고,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춘기 모습을 대변한다기보다는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미국사회를 반영하는 은유적인 존재들이었다(그때 쏟아져나왔던 화장실 유머들은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지퍼 게이트’ 사건과 맞닿는 미국 전체의 트렌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 한해 한국에서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틴 무비 시장은 어떤 식으로 볼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하이틴물이라면 <얄개전>부터 <돌려차기>에 이르는 명랑하고 건전한 청소년들의 성장기거나, 부모님과의 갈등 혹은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
철없는 여고생들의 백일몽, <여고생 시집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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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부대’한테 크리스마스는 곧 쥐약이다.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23일 밤에 잠들어 26일 아침에 깨어나는 것뿐. 그래도 눈 뜨고 크리스마스를 맞고 싶다면? 돈을 벌자. 가족도 애인도 돈 주고 사면 된다. <서바이빙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 화끈한(?) 교훈을 전파하는 ‘자본주의 솔로족’을 위한 영화다.
광고회사의 경영진인 드루 래덤(벤 애플렉)은 그야말로 돈이 ‘튀는’ 남자. 크리스마스에 피지로 놀러가자고 애인에게 말 한번 잘못 했다가 책임감 없이 촐랑대는 남자로 찍히면서 그는 졸지에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생겼다. 괜히 어린 시절 살던 집 앞에 찾아가 불만을 종이에 적어 태우는 이상한 짓을 하던 드루는, 마침내 그 집에 사는 발코(제임스 갠돌피니) 가족에게 25만달러를 줄 테니 크리스마스 동안 가족이 되어달라고 주문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25만달러 벌기도 쉽지 않은 일. 평생 닭살 돋는 소리 한번 한 적이 없던 발코 가족은 이제 루돌프 티셔츠도 입어
크리스마스에 싱글로 살아남으려면?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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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 로버트 저메키스, 톰 행크스가 <포레스트 검프>와 <캐스트 어웨이>에 이어 세 번째로 의기투합하여 선보인 영화는 3D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다. 제안은 네 아이를 가진 자상한 아버지 톰 행크스의 습관적인 동화책 읽어주기에서 비롯됐고, 합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줘야 한다는 두 어른들 사이의 소명의식으로 이뤄졌다. 메마른 어른들조차 현실을 구부러뜨려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크리스마스 전야, 그날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동화 <폴라 익스프레스>는 그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소재로 비쳤을 것이다. 산타를 기다리는 혹은 의심하는 스크린 안팎의 아이들 앞에 로버트 저메키스와 톰 행크스는 북극으로 가는 특급열차를 대령한다.
산타는 가짜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주인공 소년은 수집한 자료들을 서랍에서 다시 꺼내 확인하며 아쉽고도 불쾌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든다.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고, 집 앞에는 난데없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 못 드는 아이들을 위하여, <폴라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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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마릴루 베리)는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포악한 삶 가운데 예술의 위안을 예찬하는 노래를. 그러나 소녀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가 이어폰을 빼자 택시 안의 우악스런 음악이 달려든다. 볼륨을 낮춰달라 부탁해도 택시기사는 막무가내다. 차 안의 권력은 그에게 있다. 결국 기사의 무례를 이기는 것은 소녀의 호소가 아니라,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장 피에르 바크리)의 더 강력한 무례다. <룩 앳 미>는 이렇게 첫 장면부터 이 영화에서 ‘최강의 악당’이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임을 분명히 한다. 명성과 부를 누리는 작가이자 파리 문화계의 권력자인 에티엔은, 훌륭한 예술가라고 훌륭한 인격자는 아니라는 속설의 흉한 마스코트다. 그는 남의 이름을 결코 기억하지 않으며, 다른 인간에게서 귀기울일 만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믿지 않기에 질문만 던지고 대답을 듣지 않는다. 가학적 농담을 사교의 기술로 착각하는 에티엔은 본인이 가장 연약할 때에도 위로하는 사람을 용케 상처줄 방법을
권력과 관용의 함수관계에 대한 고찰, <룩 앳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