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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봉한 영화 <우리 선희>의 이선균과 정유미. 가까운 듯 아닌 듯, 닿을 듯 닿지 못한 둘은 10년 후 영화 <잠>에서 신혼부부로 다시 만난다. <잠>에서의 호흡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ARCHIVE] 10년 전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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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성비의 시대다. 각종 플랫폼에서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시간은 부족하다. 빨리 감기로 영화를 보는 걸 넘어 아예 스토리 요약본으로 콘텐츠의 내용을 이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 수 있다. 사실 한편의 영화나 한 시즌의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관람하는 건 꽤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만 그렇게 본 내용으로 ‘영화를 보았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축약된 영상들은 별도의 2차 창작물에 가깝다. 축약본으로 스토리를 학습하는 것과 본편으로 전체를 관람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체험이다. 이제 영화는 스크린 바깥으로 나와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구태의연하게 ‘영화가 무엇인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는 시대는 그렇게 도래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완성도의 영상물이 넘쳐나고, 긴 상영시간으로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으며, 입체영상처럼 더 실감나는 기술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한 건 무엇일까. 질문을 달리하자. 영화는
[리뷰]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네오 클래식 무비 199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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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캘리그래피 쓰기
글자로 아름답게 쓰는 일을 좋아한다. 캘리그래피를 한 이후로 작품을 할 때 타이포를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됐다. <마스크걸>은 ‘걸’의 ‘ㄹ’이 넷플릭스의 N과 유사하게 만들어졌더라. 이런 디자인적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콩물
어려서부터 엄마가 절기마다 음식을 꼭 챙겨주셨다. 대보름에는 오곡밥에 나물을, 동짓날에는 팥죽에 새알심을 빚으셨다. 여름에는 단연 콩물. 직접 콩을 삶고 갈아서 설탕 듬뿍 넣고 우무채 썰어 넣어 얼음 동동 띄운 맛이란! 이제는 이걸 손수 해먹는 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잘 알지만.
조조영화
리스트에 영화를 한편 추천하고 싶지만, 그보다 더 나를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침 일찍 보는 조조영화다. 아이를 등교시킨 후 아침 일찍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
[LIST] 염혜란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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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변호사 판이던 드라마에 초능력자들이 출몰하는 요즈음이다. 생업과 악귀 소탕을 겸하는 tvN <경이로운 소문>이 새 시즌으로 돌아왔고, 디즈니+ <무빙>은 음지의 공무원으로 일하던 능력자들이 다음 세대를 지키려 골목의 자영업자로 살아간다. tvN <소용없어 거짓말>에서 거짓을 판독하는 주인공의 능력은 뱃속 아이에게 먹고 살 재주를 내려주시되 돈 많이 드는 예체능 계열은 피하게 해달라는 엄마의 기원으로 인한 것이었다. 특수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과 접점을 만드는 데 생계의 구체화는 유용하고 JTBC <힙하게> 역시 그렇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반려 동물 진료가 늘어나리라 기대했던 수의사 봉예분(한지민)은 개발은 소문뿐인 충청도 무진에서 ‘소, 돼지 전문’ 전단지를 돌리고 광어양식장으로 출장도 간다. 예분의 능력은 출산을 앞둔 소금실이의 엉덩이를 살피다 축사에 유성우가 떨어지며 생겨났다. 예분은 손으로 엉덩이를 만지면 대상의 기억을 볼 수 있
[유선주의 드라마톡] ‘힙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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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것처럼>
웨이브, 왓챠 ▶▶▶▶▶
한때 인간의 고유한 역량으로 간주됐던 인지작용은 이제 우리를 둘러싼 사물과 기기의 자동화된 역학으로까지 분산됐다. 동시대 감독들이 현실의 재현을 회피하는 이유는 인간화된 주체의 의지와 욕망을 토대로 경험의 형식을 구조화하는 관습적 극작술이 그런 시대를 담는 데 불충분한 도구이기 때문일 테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그런 한계를 일찍이 돌파했다는 점에서 재평가가 시급한 걸작이다. 핸드폰, 자동차, 전자레인지 등 온갖 사물이 빚는 시청각적 물성이 영화적 현실의 지분을 당당히 점유하는 이 작품에, 상실된 2010년대의 시공이 근사하게 구현돼 있다.
<우리도 사랑일까>
웨이브, 왓챠, 티빙 ▶▶▶▶
좀더 어렸을 때엔 엉뚱한 몸짓과 괴상한 수다로 가득한 <우리도 사랑일까>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 까닭 모를 기호들이 사랑이라는 사건의 본질
[OTT 추천작] ‘사랑에 빠진 것처럼’ ‘우리도 사랑일까’ ‘일본 곤충기’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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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마크 잡스트, 팀 서덤, 에마 설리번, 조지프 쿠보타 블라디카 / 각본 맷 오언스, 스티븐 마에다 / 출연 이냐키 고도이, 아라타 맛켄유, 에밀리 러드 / 플레이지수 ▶▶▶
<원피스>의 실사화는 반가운 뉴스지만 전적으로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원피스>는 만화적 기호를 다루는 비상한 유머 감각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실적 세계를 비추던 20세기 영화사의 기억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가령 주인공 루피의 여정은 서부극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반영한다. 주인공이 마을 공동체를 지킨다는 소명을 간직한 여타 소년 만화와 달리 처음부터 마을을 떠나는 루피는 뿌리내린 공동체를 수호하겠다는 자의식이 없으며, 그렇기에 부담스러운 도덕적 장광설도 내뱉지 않는다. 악당이 주인공의 마을을 찾아오는 소년 만화의 관습과 달리 루피는 고유한 질감과 개성을 갖춘 여러 장소를 직접 방문하며, 해적인데도 해적 사냥꾼, 해적을 혐오하는 도둑과 임의적인 동료의식을 빚는다. 이는
[OTT 리뷰]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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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즈> 시리즈,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등을 연출한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이 AI 블록버스터의 신세계를 펼친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만든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리면서 인류와 AI간에 극렬한 전쟁이 시작된다. 전직 특수부대 요원인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실종된 아내를 찾겠다는 목적으로 작전팀에 합류하고, 그 안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기는 누가 만들었는가.’ 영화는 단순하지만 필연적인 질문을 건네며 최초의 창조자를 찾아나서고, 이내 그 창조자가 아이의 얼굴을 한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임이 드러나면서 도덕과 규율에 대한 사유를 제안한다. <크리에이터>는 AI와 대척점을 이룬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과 소멸, 인간다움과 야만성, 공정과 불공정을 내밀하게 다루며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각본은 개러스 에드워즈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Coming soon]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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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국 극장가의 화제작은 선아오 감독의 <고주일척>이다. 왕대륙과 장이싱 주연의 이 영화는 인터넷 도박 범죄 실화를 다룬 범죄 스릴러로 8월8일 개봉해 지금까지 37억위안의 박스오피스를 올렸다. 중저예산의 제작비에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며 여름 극장가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 영화의 배후에는 감독이자 제작자인 닝하오 감독이 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의 황제>에서 닝하오는 오랜만에 자신의 연출작으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유덕화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유덕화는 홍콩의 슈퍼스타 리우웨이치로, 닝하오 감독은 린하오 감독으로 등장한다. 리우웨이치는 재기에 성공하기 위해 린하오 감독과 농촌을 주제로 한 영화를 공동 작업하기로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의 오만으로 인한 불협화음들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처럼 <영화의 황제>는 엔터테인먼트와 영화 업계의 현실을 풍자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영화의 황제>보다
[베이징] 영화에 녹아든 인연, ‘영화의 황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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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상영작을 발표했다. 9월5일 진행된 부산영화제 온라인 기자회견엔 남동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과 강승아 운영위원장 직무대행이 참석했다. 개막작은 장강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한국이 싫어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행복을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향하는 20대 후반 여성 계나(고아성)의 이야기다. 폐막작은 17년 만에 폐막작으로 다시 돌아온 닝하오 감독의 <영화의 황제>다. 유명 감독과 스타 배우의 영화 만들기 과정을 그린 영화로 유덕화가 주연한다. 그 밖의 상영작으로는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 각본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키즈의 <괴물>,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호평 중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과 데이비드 핀처의 <더 킬러> 등
영화의 바다에 빠질 시간, 제 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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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21>이 토크룸에서 개봉작 감독, 배우들을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토크룸은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영상 라이브 방송입니다. 생방송이 끝난 뒤에도 <씨네21> X 계정(@cine21_editor)과 유튜브 채널(@cine21tv)을 통해 다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잠>의 숨은 공신
<잠>의 주인공 부부 수진(정유미)과 현수(이선균)의 거실 나무 현판에는 굵은 글씨로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라고 각인돼 있다. 영화 속 문제의 정체가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인 탓에 특수 소재로 안전하게 제작된 이 소품이 토크룸에 등장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 문구가 두 사람의 집에 함께하기를 바랐다는 유재선 감독이 “부부만의 좌우명”을 떠올린 경위를 들려줬다. “수진은 직장을 다니면서 무명 배우인 남편을 응원해주잖아요. 저도 뒤늦게 깨달았는데, 수진과 현수 사이가 곧 아내와 제 관계와 비슷해요. 제가 직업 없이 시나리오를
[토크룸] ‘잠’ 토크룸 라이브,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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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이 지면에 영화 기자의 비애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씨네21> 기자라면 넘어야 할 산 몇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담력 약한 사람도 공포영화를 보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편 영화잡지 편집장의 비애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스포일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최근엔 <마스크걸>에서 누가누가 죽음의 퇴장을 맞이하는지 스포당했다. 자고로 영화잡지 편집장이라면 스포일러에 의연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지 못했으나 이미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들이 자주 생겨난다. 이번주 긴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하는 <어파이어>의 시사회 기회를 놓쳤다. 그럼에도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인터뷰, 페촐트의 배우들, 지난 작품들, 독일 영화사에서의 위치 등을 총정리하고 났더니 <어파이어>를 보지 않았는데도 <어파이어> 속 붉게 물든 하늘을 이미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씨네21>은 크리스티안
[이주현 편집장] 크리스티안 페촐트와 지하철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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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란은 자꾸만 무언가를 잃는다. 정확히 말하면 염혜란이 맡아온 역할은 대부분 소중한 것을 잃어왔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한 그는 어린 딸 민영이를 병상에서 떠나보내고, 영화 <빛과 철>에서는 영남이 되어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남편을 2년간 보살핀다. <경이로운 소문>의 추 여사는 동료와 정의, 힘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더 글로리>에서 현남은 자신의 기쁨인 딸 선아를 유학길에 올리며 타지의 보호자에게 사랑을 청탁한다. 이렇듯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는 서사의 굴곡 속에서 염혜란은 과잉된 감정보다 땅에 붙는 현실성을 낚아챈다. 거칠게 마모된 피부, 굽은 등, 교양이란 말이 무색한 걸걸한 성미와 우렁찬 목소리까지.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은 <마스크걸>의 경자를 표현할 준비를 진작에 마쳤다는 듯, 염혜란은 보다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다. <마스크걸>이 공개된 이후 온오프라인에서 그의 이름이
[기획] 지지고 볶으며 살아간다는 일, ‘동백꽃 필 무렵’부터 ‘더 글로리’와 ‘마스크걸’까지 배우 염혜란이 연기의 폭을 넓혀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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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만 놓고도 심상치 않은 기대감을 불러내더니, 8월18일 시리즈 공개와 동시에 2화 ‘주오남’, 3화 ‘김경자’를 연달아 본 시청자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지금 안재홍은 <마스크걸>이 지닌 화제성의 중심에 있다. 올봄 영화 <리바운드>에서 실존 인물을 연기하면서 이미 굳건한 존재감을 보여주었음에도, <마스크걸>에서 다시 만난 안재홍의 얼굴엔 익숙한 구석이 없다. 탈모와 피부병 분장을 한 안재홍이 연기하는 인물은 주인공 김모미의 직장 동료이자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주오남. 외모 콤플렉스를 숨긴 채 인터넷 방송의 스타가 된 마스크걸에게 동질감을 넘어 사랑을 느끼는 남자다. 이른 죽음 이후에도 유령처럼 떠도는 주오남의 잔상은 자칫 희화화에 머무를 위험이 있는 캐릭터에 정확한 표정과 순정을 투여한 배우의 자질에 힘입어 선명히 지속된다.
“어떤 작품과 만날지는 내가 재단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라지만 <마스크걸>이 결코 흔치 않은
[기획] '변신은 나의 성질', 정봉이에서 주오남까지, 배우 안재홍이 자신의 지도를 개척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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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얼굴을 완전히 달리 보이게 한다. 아무리 에피소드별 주인공이 바뀌는 독특한 구성에 힘입었대도 혹은 훌륭한 분장이 그들을 도왔대도 신묘한 일이다. <마스크걸>의 두 배우, 염혜란과 안재홍이 그것을 해냈다. 이들은 김모미로 뭉친 세명의 디바들(고현정, 나나, 이한별) 사이에서도 캐릭터의 파급력을 오롯이 심어넣으며 자기만의 기세로 빛난다. 배우 안재홍, 염혜란과의 만남을 토대로 두 배우가 쇄신해온 개성 있는 행보를 되짚어보았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마스크걸> 안재홍, 염혜란 배우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연기라는 이름의, 냉정과 열정 사이, <마스크걸>에서 재확인한 배우 안재홍과 염혜란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