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십대 청소년이었을 때 조카들을 조용히 시킬 목적으로 <라이온 킹>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강렬한 감정이 우리 모두에게 교차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를 잃고 고향을 떠난 외톨이 아기 사자는 거친 정글에서 조용히 성장해 세상을 개혁한다. 이 모든 것을 온화한 이미지로 말하는 시간이 마법 같았다.” <문라이트>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등 고유한 시각언어를 보여준 배리 젱킨스 감독이 <무파사: 라이온 킹>의 연출을 맡은 건 오직 <라이온 킹>에 대한 사랑과 존경 때문이었다.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와 삼촌인 스카의 역사를 돌아보는 새로운 연대기가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다. 원작에 뿌리내려 소생한 이야기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확인시키며 너그러운 희망을 찾게 한다.
- 2003년 <마이 조세핀>부터 2018년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까지 연출자이자 각본가로서 시나리오를 직접 써왔다. 이번 <무파사: 라이온 킹>에서 이미 정해진 각본을 연출해야 했는데, 이번 경험은 이전과 어떻게 달랐나.
연출자로서 각본을 직접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다만 <무파사: 라이온 킹>은 제작 기간이 무척 길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효율성을 높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각본가의 도움으로 작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초반 시나리오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에 연출로 합류한 이유가 바로 시나리오 때문이다. <무파사: 라이온 킹>이 꼭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또 이전에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미니시리즈를 연출한 적 있는데, 이때 일부 에피소드는 내가 쓰고 몇몇 에피소드는 작가들이 썼다. 이 협업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됐다.
- 이번 영화는 <라이온 킹> 주인공 심바의 아버지와 삼촌인 무파사와 스카의 역사를 조명한다. 두 캐릭터의 관계성이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맞다. <무파사: 라이온 킹>은 관계에 집중한 영화다. <라이온 킹>에서 우리는 무파사가 선역이고 스카가 악역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구도 그 배경을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공백을 더 넓게 펼쳐 보이고 싶었다. 무파사와 스카가 지닌 선과 악의 특성은 무엇인지, 이들이 어떻게 선과 악으로 경계를 나누게 되었는지, 그럼에도 형제로서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 등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둘의 메인 스토리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의 반응까지도 모두 담고자 했다.
- 배리 젱킨스 감독의 첫 실사 애니메이션이다. 지금까지 작업해온 극영화와 어떤 차이를 느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영화제작에는 늘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 실사 애니메이션이어서 어려운 게 아니라 그냥 영화제작이 어렵다. 이 과정에서 나는 기술 중심의 작품이 지닌 언어와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려 했다. 일단 기술을 익히고 나면 다른 영화제작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영화 촬영장에 가면 많은 배우가 조명 아래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움직인다. 실제 자신의 몸을 쓰면서. 이 모든 움직임과 동선이 하나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반면 <무파사: 라이온 킹>은 실재하는 것들이 거의 없다. 나무도 없고 빛도 없고 심지어 사자도 없다. 사자라는 생명체를 인지하기 위해 빛부터 묘사해야 한다. 움직임을 하나의 이야기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무척 흥미로운 배움이었다. 배우들과 스태프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게 생기면 춤추듯 몸동작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발레 리허설장 같았다. (웃음)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오직 대화를 나누고, 또 대화를 나누고, 끝까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동일한 언어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하나의 방정식을 설정해서 애니메이터에게 보내면 애니메이터가 그 답과 의견을 제시한다. 그럼 그것을 보고 다른 애니메이터가 또 다른 방정식에 대입해 다른 답을 보내주었다. 궁극적으로 단일한 이미지를 계획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되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쓰면서 소통했다. 어느 순간 대화가 필요 없는 지점에까지 도달했는데 여기에 오기까지 무척 어려웠다.
- 배리 젱킨스 감독은 작품의 현실적이고 오묘한 풍경을 통해 다양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파사: 라이온 킹>에는 어떤 다양성이 녹아 있다고 생각하나.
원작 <라이온 킹>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심바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프리카 대륙은 굉장히 넓지만 영화는 심바의 한정된 공간을 좇다 보니 지역적 풍경을 다양하게 즐기기 어렵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아쉬움을 줄이고 싶었다. 무파사가 처음으로 혼자, 그리고 가족이 된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긴 여정을 그리는 만큼 관객이 아프리카 대륙의 풍경과 문화를 다양하게 탐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 <라이온 킹>은 가족의 사랑, 포기하지 않는 끈기, 삶을 함께 향유하는 친구들의 중요성 등 다양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무파사: 라이온 킹>이 지닌 희망은 무엇인가. 무기력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힘을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라이온 킹>은 인류의 유산이다. 우리 안에는 사자의 모험담이 늘 살아 있다. 어떤 상황에도 누구나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는 역경과 회복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무파사: 라이온 킹>은 타고남과 양육(Nature vs. Nurture)이라는 주제 안에서 선과 악이 어떻게 결정되고 탄생하는지 풀어나가고자 했다. 무엇보다 파편화 시대에 귀중해진 공동체 개념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보호하고 나아가는지 돌아보고 싶었다. 원작 <라이온 킹>과 공유하는 주제가 많기 때문에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쉽게 자신을 탓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많다. 현재의 슬픔에 매몰되기보다 경험을 통해 새로 점검하고 배우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다.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