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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시은의 스타화보 'Lovely Cat'은 1월 12일 NATE, KTSHOW, LGU+에서 감상 가능하다.
[스타화보] 박시은의 ‘Lovely 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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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은 일종의 도박이다. 관객이 기대했던 감정을 클로즈업 숏이 제대로 터트리지 못하면 리스크는 곱절이 된다. 1월12일 개봉하는 <밍크코트>는 클로즈업의 영화다. 배우에 대한 믿음 없이는 찍을 수 없는 영화라는 뜻이다. 그 결과는? 지난해 말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들은 <밍크코트>에 대상을 안기며 이렇게 덧붙였다.
“주연배우 황정민씨가 보여준 현순은 최근 충무로와 독립영화계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캐릭터였습니다”라고. <밍크코트>의 황정민은 극중 현순에 빙의된 것 같은 광기의 연기를 선보이며, 보는 이를 시종 리드한다. 2년 전 <하녀>에서 은이(전도연)의 친구 역으로 잠깐 얼굴을 비춘 것을 제외하면, <지구를 지켜라!>(2003)의 순이 역을 맡은 뒤 대부분의 시간을 연극 무대에서 보내왔던 황정민. 그녀가 돌아왔다. 제대로 돌아왔다.
-첫눈에 알아보지 못해 죄송해요. 너무 예쁘게 하고 나오
[황정민] 머릿속 계산보다 몸의 경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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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다녀왔다. 니가타 현립대학에서 자리를 마련한 ‘한국현대 소설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니가타에 갔다가 도쿄에 들러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의 일본판 출간 인터뷰와 기념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써놓으니, 대단한 한류 작가 같다. 그런 거 아니다. 그냥, 갔다 왔다. 일본의 한국 문학 팬들과 문학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니가타에 간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아, <설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국>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유명한 첫 문장은 이렇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직접 니가타에 가보니, 정말 그랬다. 화창한 날씨였는데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같은 일본이었지만 거긴 눈으로 둘러싸인 독립된 나라 같았다. 온천에 가서 피로도 풀고, 맛난 것도 많이 먹으면서 호강하고 왔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가장 많이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K-Country, 인생 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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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미녀 로맨스영화의 법칙은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 있다. 남들이 볼 때는 분명 연애인데 정작 본인들은 이게 뭔지 모르는 감정의 아노미 상태. 그게 풋풋함이다. <티끌모아 로맨스>는 여기에 먹고사는 문제를 끼얹는다. 악착같이 돈 모으는 여자와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남자는 동시대 청년세대의 생계, 주거문제를 로맨스에 결합해 풋풋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겨눈다.
영화의 단점은 그게 잘 들러붙지 않았다는 거고 따라서 영화적 상황보다는 송중기와 한예슬의 개인기에 더 의존했다는 데 있지만, 한편 이병훈 음악감독이 활동 중인 우쿨렐레 피크닉의 산뜻한 음악은 품질 좋은 순간접착제처럼 몇 군데의 허술함을 척, 착 붙여버리기도 한다. <The Water Is Wide>가 대표적이다. 기교없이 담백한, 말하듯 노래하는 송중기의 목소리는 음색으로 승부하는 우쿨렐레라는 악기와 결합해 묘한 발랄함을 형성한다. 엔딩 타이틀에 계피와의 듀엣곡으로 흐르는 이 곡은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생계와 로맨스, 순간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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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피터 휴잇이라는 감독이 연출한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은 <메이든 헤이스트>(2009, 사진)라는 코미디영화가 있다. 취향에 미친 세 노인네에 관한 영화다.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로저(크리스토퍼 워컨)는 미술관에 걸려 있는 <외로운 여인>이라는 그림을 평생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걸 인생의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이 그림이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가게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그즈음 그는 미술관의 다른 경비원 두 사람, 찰스(모건 프리먼)와 조지(윌리엄 H. 메이시)도 자신과 같은 심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찰스는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그림 한점을, 조지는 늠름한 남성의 나체 동상 한점을 평생 남몰래 애지중지해왔던 거다. 그들이 마침내 각자의 취향을 위해 합심하여 이 세 미술품을 탈취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코미디다. 세 사람의 나이를 대강 어림짐작으로 합할 때 200살은 넘어 보이니 적어도 내
[타인의 취향] TV로 영화 보던 즐거움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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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 그중에서도 경찰소설을 좋아한다. 영화를 고를 때도 경찰이 주인공이면 ‘일단 볼까’로 마음이 기운다. 대학 졸업반 시절 방황하다 본 <춤추는 대수사선>에 감명받아 경찰공무원의 길을 잠시 상상하기도 했고(비록 두달 만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뒀지만), 그리 만듦새가 좋지 않은 영화임에도 <강력3반>은 극장에서 세번이나 봤다.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기괴한 총기난사사건을 풀어나가는 <웃는 경관>이며 가장 공감했던 소설 주인공이 스웨덴의 나이든 워커홀릭 이혼남 발란더 형사인 이 처자, 그러니 <특수본> 같은 제목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물론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홈스 오라버니는 나의 태양이시지만 나이가 들수록 경찰, 정확히 말하면 경찰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초인이나 변신 만능의 천재가 아니라 나처럼 조직에서 관계를 맺고 일하는 직장인이라 그런 것 같다. 성향도 취향도 개인사도 모두 다른 타인
[최지은의 TVIEW] 참 영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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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미국 TV시리즈들은 특별 편성된 프로그램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휴방과 재방에 들어간다. 이 시기에 맞춰 드라마들은 한 시즌을 종료하기도 하는데, 2011년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두편이 최근 첫 시즌의 막을 내렸다. 한편은 <씨네21> 827호 ‘미드의 역습’에 소개된 <홈랜드>(<쇼타임>)이고, 다른 한편은 이번에 소개하려는 <보스>(<스타즈>)다. 두 드라마 모두 고른 호평과 시청률을 기록해 2012년 시즌2 방영을 예정한 상태다.
<보스>는 <스파르타쿠스> 시리즈와 <카멜롯> 등의 오리지널 TV시리즈를 제작한 케이블 채널 <스타즈>에서 기획한 야심작으로, <스타즈>를 <HBO> <쇼타임> <FX> <AMC> 등의 케이블 채널들의 경쟁자로 급부상시킨 주역이다. 파일럿은 시카고시의 시장인 톰 케인(켈시 그래머)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추락할 권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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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대정원이 사유 재산이던 18세기 유럽 귀족에겐 조망권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높은 인구밀도로 가옥들이 밀집된 현대적 주거 조건에서, 부와 권력을 모두 거머쥔 실력자라 한들 인접 건물의 부피와 각도에 따라 전망의 일부는 쉽게 훼손되기 십상이다. 조망권 확보를 위해 법적 분쟁이 이어지는 이유다. 대기업 오너간 소송까지 연결된 조망권 다툼은 한쪽이 다른 쪽 집을 구입해버림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림에서 인물의 크기를 작게 그리는 대신 배경에 넉넉한 여백을 배당한 흔치 않은 풍경화도 있다. 인물보다 그의 소유 부동산을 과시할 목적에서다. 전망의 확보를 드러내는 건 그 소유자의 능력과 지위를 증명하는 방편이다. 오늘날 관광지 중에는 한 시절 군사시설이던 곳이 많다. 경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높게 쌓아올린 성채나 요새의 넓은 시야가 우연히 현 시대 관광객의 조망 욕구와 맞닿기 때문이다.
조망권은 유려한 자연 경관을 바라볼 권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지만, 인류의 욕망은 자연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풍경과 조망의 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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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란 무엇보다 시각예술이며, 따라서 제작의 측면에서나 감상 및 비평의 측면에서 최우선으로 강조해야 할 것은 이미지라고 하는 믿음은, 유성영화가 도래한지 80년이 넘은데다 미디어간 간섭에 의해 영화의 ‘순수성’이 점점 의문에 부쳐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미장센 비평(및 그와 결부된 시네필리아)에 토대를 부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동시대 영화의 상당수가 미장센에 입각해서만 바라보면 어쩐지 무언가 미끄러져 달아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페드로 코스타의 <반다의 방>), 덜 ‘영화적’으로 비치거나(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 심지어 공허해 보이기까지(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쉬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장센 개념을 폐기하고 창작의 애티튜드만을 강조하거나 영화와 인접한 예술의 영향을 추적하며 비교에 매달리는 것은 게으른 이들의 방편일 뿐일 터, 오히려 이
[유운성의 시네마 나우] 시네필리아의 가능성 (다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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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에서 정명훈은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합창> <환희의 송가> 앞부분과 독창이 등장하는 부분을 짜깁기해서 지휘를 했다. (…) 정명훈은 음악을 지휘하던 지휘봉을 이명박에게 활짝 웃음 띤 얼굴로 선물한다. 이튿날 대형 기득권 보수참칭(僭稱) 종이신문들은 일제히 ‘대한민국을 잘 지휘하라는 의미로 지휘봉을 준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명박의 부역자
김상수라는 이름의 연출가가 여러 진보매체를 오가며 집요하게 지휘자 정명훈을 물고 늘어졌다. 정명훈은 세계적 지휘자가 아닌데 과도한 연봉을 받았다는 것이다. 무지로 점철된 그의 글은 이미 여러 클래식 애호가들의 반박을 받아 한갓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으니, 그 얘기를 굳이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그가 정명훈을 물고 늘어지던 그 ‘정치적’ 방식의 고약함에 대한 지적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치 독일 치하에서 히틀러의 생일 전야제 공연으
[진중권의 아이콘] 자유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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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9일 CGV압구정에서, 무비꼴라쥬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씨네톡 행사를 진행하는 평론가들이 모두 모여 대담하는 행사가 있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인 남인영 동서대 교수가 가장 힘을 줘 절찬한 영화가 최근 개봉한 <Jam Docu 강정>이었다. 옆에서 그의 얘기를 듣다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여덟명의 감독이 100일 동안 각자의 컨셉으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형식이 전혀 다른 여덟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평이한 것도 있고 색다른 것도 있지만 모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편에 서서 찍은 것이다.
참신한 시도 돋보이는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
볼 때는 쓸데없는 장난처럼 보였던 작품인데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인적으로 최진성이 연출한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이었다. 항공모함에 타고 싶어서 해군에 자원입대했다는
[김영진의 인디라마] 타인의 고통 껴안으려는 자세 존경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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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의 무책임한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분노하거나 울지 않고 어느덧 자기들끼리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큰아들의 제사를 위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부모의 집에 모인다. 함께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들의 마음은 엇갈리며, 실은 서로 다른 기억을 쳐다보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영화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억압된 감정이 폭발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해두지 않는다. 감정적인 해소 이후의 화해나 결속은 불가능하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 삶은 언제나 이별 혹은 죽음을 품고 있고,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는 (가족의) 현실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코이치, 류노스케 형제와 이들의 친구, 가족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후<기적>)의 세계도 위의 두 영화
[전영객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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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민지 조선인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전쟁을 경험하며 만주와 소련, 유럽의 노르망디를 경유한다. 대단한 우연이지만 때론 그런 일도 일어난다. 한장의 사진과 몇줄의 소략한 기록을 토대로 제작된 <노르망디의 조선인>(2005)이라는 SBS 다큐멘터리는 만주와 모스크바, 노르망디를 경유한 조선인의 전쟁 여정을 다룬 바 있다. 문제는 한명이 경험하기에도 기구한 우연이 두명에게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에 있다. 식민지 조선 청년과 제국 일본 청년. 이 둘은 마라토너이자 라이벌이다. 일본 청년에게 마라톤이란 그의 조국 일본이 치르는 성전(聖戰)의 등가물이다. 그는 전쟁을 등지고 유학하기보다는 마라토너로서 남기를 바란다. 그에게 질주란 전쟁에의 몰두다. 하지만 조선 청년에게 마라톤이란 무엇이었으며, 그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이 점이 영화가 분명하게 질문하지 않은 점이다. 이 미진함은 영화의 끝까지 이어진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보다 퇴보한 준식
영화는 194
[영화읽기] ‘왜’를 묻지 않는 소박함, 초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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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추리소설을 각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명탐정이라는 인물들이 얼마나 정적인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도 않고 육체적 액션도 많지 않다. 작가의 인기만 생각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당하기 일쑤다. 셜록 홈스 영화가 그렇게 많은 건 그가 보통 명탐정들보다 훨씬 육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심난다면 애거사 크리스티 각색 영화들 중 성공한 작품들을 보라. <검찰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처럼 탐정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린다. 아마 예외가 있다면 토미와 터펜스 정도? 하긴 가장 먼저 각색된 크리스티 소설도 이들의 출연작이었다.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 드루리 레인도 각색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여러분은 지금까지 나온 엘러리 퀸 영화들 중 한편이라도 아는 게 있는가?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살리려면 영화보다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게
존 딕슨 카의 탐정들에게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