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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깡패 아입니다. 공무원 출신입니다. 공무원.” 아내와 삼남매, 그리고 결혼도 챙겨줘야 할 두 여동생, 그런 가족을 위해 동료들과 거리낌없이 비리를 저지르던 세관원 최익현은 우연히 알게 된 ‘먼 친척’이자 부산 최대 폭력 조직 보스 최형배를 만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저 밀수품을 빼돌리고 뒷돈을 받아 챙기던 수준과는 거리가 먼, 나이트클럽을 두고 상대 조직과 맞짱을 뜨고 정치인들을 구워삶아 호텔 카지노의 운영권을 따내는 ‘로비의 신’이 된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까지 왔는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검은 물이 들어간다. 하지만 최익현은 개의치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이 바라던 바였는지도 모른다.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일명 ‘반달’의 길, 그렇게 허세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지독한 생존본능은 그를 그렇게 ‘괴물’로 만들어간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감옥에 갇히기 직전 모습이라고 하면 맞을까. 최익현은 딱히 모델이 된 남자가 없다.
[최민식] 끝을 보는 남자,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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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나쁜 놈과 손을 잡고, 그러다 자기도 나쁜 놈이 되고 결국에는 누가 더 나쁜지 경쟁하는 지경에 이른다. 의리라는 거짓된 이름으로 편법과 권모술수가 횡행하던 시절,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순찰 중 적발한 히로뽕을 계기로 우연히 부산 최대 폭력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게 된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는 시기를 전후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꼰대’들의 세상이자, 서로 넘버원이 되려고 발버둥치던 ‘나쁜 놈’들의 춘추전국시대다. 충무로 남자배우의 신구 대결을 보는 듯한 최민식과 하정우의 호흡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꽉 채운 그 무엇이다. 곧 죽어도 자신은 공무원이라고 우기는 허세 가득한 ‘반달’ 최민식과 ‘건달은 싸워야 건달’이라는 정통 건달 하정우가 만났다.
[하정우, 최민식] Catch Me If You Can 캐치 미 이프 유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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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페이스 메이커> 맹자삼천지교
[정훈이 만화] <페이스 메이커> 맹자삼천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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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한 산골 마을, 7명의 수도사와 1명의 의사가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신과 인간>의 초반부는 수도원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는다. 수도사들은 함께 성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밭을 경작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간다. 마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이슬람식 축제에 참석해 기도를 나누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의 작업장에서 외국인 인부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마을에 위기가 찾아온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신과 인간>은 1996년에 알제리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무장 이슬람집단은 7명의 프랑스 수도사들을 납치했고, 인질 교환 협상이 결렬되자 그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뒤 수도사들의 죽음이 무장 집단이 아닌 알제리 정부군에 의한 것이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진상을 밝히려는
절제된 형식속에 담아낸 감정 <신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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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신촌 마돈나’이자 현재 에어로빅 강사인 정화(엄정화)의 꿈은 댄싱퀸이다. 자식과 남편 정민(황정민)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가도 회식 자리에만 가면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를 꺼내 좌중을 압도하고, 조용필 소속사라는 ‘대박기획’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는 무용담을 동료 헬스 트레이너들에게 몇번 얘기해도 지겹지 않은 그다. 넘치던 끼를 주체하지 못하던 정화는 <슈퍼스타 K>에 나갔다가 젊은 시절 자신에게 명함을 건넨 대박기획 실장 한위(이한위)에게 아이돌 그룹 ‘댄싱퀸’ 데뷔 제안을 받는다. 늦은 나이에 겨우 꿈을 이루는가 싶은데, 남편이 폭탄 선언을 한다. 지하철에서 위기에 빠진 한 시민을 도와준(?) 뒤로 인권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정민에게 서울시장 후보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너희 아빠(정민)가 시장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시장 아내가 되는 게 문제”라는 극중 정화의 대사처럼 <댄싱퀸>은 서울시장 아내와 아이돌
웃음과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댄싱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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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메이커>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과 <국가대표>(2009) 이후 지난해의 <글러브>와 <퍼펙트 게임> 등 이른바 ‘스포츠 휴먼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다. 굳이 그것이 실화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쓰러져도 그라운드 위에서 쓰러진다’ 혹은 ‘선수 생명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나는 꼭 끝까지 달릴 거야’류의 투혼의 스포츠영화다. 그런 가운데 빚에 시달리는 선수의 모습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자선수들끼리 갈등하고 화해하는 팀 분위기는 <국가대표>, 그리고 어딘가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마라토너의 모습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페이스 메이커>는 마라톤을 중심에 놓고 기존 스포츠영화들의 공식들을 영리하게 벤치마킹하는 전략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커스는 김명민의 영화라는 점이다. 홀로 버티고 선 ‘원톱’이 아닌 영화를 감히 상상하기 힘든 그의
폭주하는 감정에 페이스 메이커를 <페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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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은 지난 2007년 이른바 ‘석궁 테러사건’을 영화화했다. 대학입시 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김경호 교수(안성기)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김응수)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한다. 이후 김경호가 체포되고 담당판사의 피묻은 셔츠 등이 증거로 제출되지만 그것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확인되지 않는다. 이에 김경호는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하며 박준 변호사(박원상)와 호흡을 맞춰 법정 투쟁을 계속한다.
<부러진 화살>은 지난해 의외의 흥행작 <도가니>처럼 법정에서 어처구니없이 종결된 사건에 대한 재점검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유사하다. 하지만 단선적인 자극의 파괴력보다 캐릭터 자체의 힘을 과감하고 세련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진 화살>은 보다 은근한 재미가 있다. 말하자면 <부러진 화살>은 무
관객이 영화 내내 함께 싸운다 <부러진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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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엔딩 스토리>의 두 남녀는 죽음을 선고받는 자리에서 만난다. 그것도 똑같은 뇌종양 판정이다. 동생 부부에게 얹혀사는 백수인 동주(엄태웅)와 모든 미래를 철저한 계획하에 진행하던 은행원 송경(정려원)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연인이 된다. “모든 의사가 말하듯”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이들은 전국을 돌며 데이트를 즐긴다. 죽기 전에 바다나 보자는 식의 체념이 아니다. 동주는 “행운 총량의 법칙”에 따라 죽기 전에 쏟아질 행운을 기대하며 전국의 로또 명당에서 번호를 고르고, 송경은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화장장, 수목장 등 온갖 종류의 장례식장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어차피 누군가가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은 혼자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시한부 연애. 죽음에 초연해 보이는 두 사람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지는 못한다.
<네버 엔딩 스토리>는 죽음을 이야기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게다가 로맨틱코미디의 소재로 설정한 전복적인 영화다. 설정의 힘
설정의 발칙한 기운 <네버 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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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을 왜 사신 거예요?”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던 동물원의 주임 사육사 켈리 포스터(스칼렛 요한슨)가 관객을 대신해 묻는다. 벤자민 미(맷 데이먼)가 우물쭈물 대답한다. “딸이 좋아하기에….” 사실 그는 동물원은커녕 자신이 키우는 개 한 마리에도 별 관심 없던 어설픈 가장이었다. 하지만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딛고 일어서보겠다며 덜컥 동물원이 딸린 집을 사버렸던 것이다. 막상 동물원을 재개장하자니 돈은 밑빠진 독에 물 붓듯 들어가고, 그로테스크한 드로잉으로 엄마를 잃은 슬픔을 표출하는 아들과의 불화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나는 왜, 굳이, 동물원을 산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제대로 된 답을 던져주지 못한다. 그의 어린 딸이 “우리가 동물원을 샀어요”라고 반복해 외치는 말도 공연하게 들린다.
동물도감이 빼곡한, 따뜻하고 가벼운 가족 드라마에 정색할 필요는 없지만 카메론 크로가 1996년에 만들었던 <제리 맥과이
절박한 제2의 인생이 필요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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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일본 북규슈에 사는 중학교 3학년 다섯 남자들은 오로지 이것에만 관심이 있다. 바로 가슴이다. 다섯명 모두 남자 배구부 소속이지만 배구는 전혀 해본 적이 없다. 후루야 미노루의 <이나중 탁구부> 주인공들이 배구부로 옮겼다고 해도 믿을 법한 이 아이들은 부실에 모여 도색잡지 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 한심한 배구부는 ‘발리볼’부가 아닌 ‘바보’부라 불린다. 이렇게 유명무실한 배구부 아이들이 투지에 넘치는 아이들로 변하는 계기가 생긴다. 새로 부임한 미카코 선생님(아야세 하루카)이 배구부 지도교사가 되면서 아이들과 엉뚱한 약속을 했다. 대회에 출전해서 1승을 하면 가슴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가슴 배구단>은 유쾌한 일본판 <몽정기>다. 중학교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표출하는 에피소드가 웃음을 담당한다. 이웃 중학교 배구부에 전략 탐사를 갔다가 레오타드를 입은 리듬 체조부의 등장에 넋을 놓기도 하고, 힘든 훈련으로 지칠 때는
유쾌한 일본판 <몽정기> <가슴 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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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안무가 롤랑 프티가 찰리 채플린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발레 <Charlot Danse avec Nous>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수오 마사유키. <쉘 위 댄스>의 연출가로도 유명한 그는 <댄싱 채플린>을 통해 발레가 영화로 옮겨지는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는 연습이 진행될수록 댄서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누그러지는 묘한 순간과 의상 제작과정 등을 상세하게 다룬 제작기다. 매년 170회 이상의 공연을 통해 찰리 채플린의 새로운 영혼이 된 발레리노 루이지 보니노가 출연하는데 그의 파트너는 감독의 아내이자 <쉘 위 댄스>에서 이미 얼굴을 알린 발레리나 구사카리 다미요다. 전반부의 초점은 롤랑 프티와 수오 감독의 <댄싱 채플린>에 대한 회의로 수렴된다. 발레와 영화라는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은 때때로 대립하고 이해하며 새로운 채플린을 만들어간다. 작품의 후반은 마침내 탄생한 발레 공연이다. <
새로운 채플린의 탄생 <댄싱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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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이야기들은 왜 일부러 ‘동화’라고 구분해 부르는 걸까. ‘아이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까닭은 그들에게 이야기를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가 굴뚝 타고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갔다고 믿는 어린 마음은 좁은 방 안에 피터팬을 날아다니게 하고, 언제든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이미 단단히 배낭을 꾸리고 있다. 동화를 믿는 사람에게 꿈은 무엇보다 빛나고 생생한 현실이기에 우리가 동화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갈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피어나고 동화 속 인물들도 생명을 얻는다. <엘리노의 비밀>은 이러한 동화의 힘을 일깨워주는 순수한 믿음에 가슴 따뜻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나다니엘은 할머니 엘리노가 읽어주는 동화를 제일 좋아하는 일곱살 소년이다. 매년 여름 가족과 함께 할머니가 사는 바닷가 케리티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도 소년을 설레게 하는 건 늘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이윽고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손녀딸 안젤리카에게는 예쁜 도자기
잃어버린 동화의 마력 <엘리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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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전화 수화기에 고집스럽게 귀를 대고 있다. 그는 결번을 알리는 신호음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잠시 뒤 소년은 보육원 선생님과 몸싸움을 벌인 뒤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망쳐버린다. 그리고 카메라가 소년의 뒤를 따라 흔들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리듬, 다르덴 형제의 영화다. 다르덴의 인물들은 주로 생존문제 때문에 일상의 혈투를 벌인다. 그리고 그 혈투의 한가운데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아마도 이 소년은 처음부터 생존이 아닌 가치를 향해 내달리는 거의 유일한 다르덴의 인물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자전거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토마 도레)의 슬픔과 절망을 각별히 지켜보도록 만든다. 시릴은 소식이 끊긴 아빠(제레미 레니에)와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자주 보육원에서 도망친다. 그는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릴은 우연히 미용실 주인인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를 만나고, 그녀는 시릴의 주말 위탁모가 된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
가치를 향해 내달리는 소년 <자전거 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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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미로스의 성스러운 별>(이하 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인공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이하 에드, 박로미)과 동생 알폰소 엘릭(이하 알, 구기미야 리에)은 여전히 여행 중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는 아라카와 히로무의 원작과 그간 방영된 TV애니메이션 1, 2기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숨겨진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라는 소리다. 제작사인 본즈 스튜디오가 이런 이야기를 극장판으로 내세운 이유는 원작 만화와 TV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미 각각의 결말을 본 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2005년 공개된 <강철의 연금술사: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가 선택한 무대는 국경도시 테이블 시티다.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계곡에는 사라진 왕국 미로스인들이 살고 있다. 탈옥수를 쫓아 이곳에 오게 된 에드와 알은
팬들만을 위한 숨겨진 에피소드 <강철의 연금술사: 미로스의 성스러운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