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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의 빈자리는 종종 유령이 대신한다. 유령은 연인의 얼굴과 목소리와 행동을 닮았고 심지어 추억까지 공유하고 있어서 부재의 공간을 채우기에 완벽하다. 그러나 유령은 당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도 웃지도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반응없는 대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부재가 쉽사리 채워지지 않을 것을 실감하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은 이런 유령과 함께 사는 여자 사강과 남자 지훈의 이야기다. 사강은 유부남 조종사와의 사랑에서 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와 이별했고 지훈은 10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에게 문자와 이메일 등으로 이별을 통보당한 남자다. 실연의 상실감에 그들은 SNS에 뜬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클릭해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이곳에 모인 실연 남녀는 모두 21명, 그들은 상실감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함께 식사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에는 겉으로는 모임
[도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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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11일까지
장소: 홍대입구역(경의선) 7번 출구 지하
문의: http://www.nemaf.net
당신의 머리 위에, 그들의 발아래. 문장 뒤에 물음표를 찍을까 느낌표를 찍어 읽어볼까. 그냥 스쳐가기는 힘든 전시 제목이다. 올해로 열두 번째를 맞아 열리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전시 초청전은 큐레이터 그룹 워크온워크(장혜진, 박재용)가 기획해 우리를 지하철 홍대입구역 7번 출구로 부른다. 왜 하필 7번 출구일까. 이곳은 2011년 두리반 칼국수 건물이 자리잡았던 영역의 지하(땅 아래)다. 지하의 빈 공간을 점유하는 전시는 다양한 태도로 도시를 다루는 시각예술 작업으로 올해 페스티벌의 이슈인 ‘XY 글로컬 미디어’ 를 새롭게 구성해낸다. 누군가의 머리 위에서, 그들의 발아래에서 매일 터져나오는 도시의 사건들은 이렇게 땅 아래에서 전시를 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말 것이다.
전시에는 국내외 9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작가들이 보여주는 ‘도시’는 뉴욕, 파리, 도쿄,
[전시] 그 도시에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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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2일까지
장소: 한미사진미술관 20층
문의: http://www.photomuseum.or.kr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한미사진미술관은 한미타워 건물 19층과 20층에 있다. 전시장이 꼭 지상 1층이나 2층에 있으리란 법은 없지만 건물 꼭대기에 있는 여기는 전시장이 곧 마천루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창문으로 보이는 외부 풍경은 그야말로 도시의 증명사진이다. 사각형 구도 안에 들어온 도시는 안개가 끼면 안개가 낀 채로, 장마가 오면 장마가 오는 채로 온통 고층빌딩의 격자무늬로 가득하다. 수직으로 쭉 뻗은 건물에서의 갑자기 탁 트인 바깥 풍경. 지금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 있다. 사진가 최중원이 찾아다니며 찍은 초창기 아파트의 사진들이다. 미술관의 창문으로 보이는 초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흠집없는 매끄러움을 자랑한다면, 최중원이 찍은 오랜 아파트들은 격자무늬 사이사이로 튕겨나온 삶의 이력이 건물의 낡은 이력을 고
[전시] 그때 그 시절의 욕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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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한때는 엄청난 호응도 경험했고, 이후 갈피를 못 잡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복귀하는 앨범이 나왔다. 첫인상만큼 건전하면서도 역동적인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것처럼 연주도 노래도 성의를 다해 달리고 있고, 특히나 대표곡 <Run>의 멜로디는 <비밀번호 486> 시절보다 훨씬 우수하다. 주류 무대에서 록을 추구하는 소녀가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
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긍정적인 의미로)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윤하가 돌아왔다. 그가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면,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가지고 돌아온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완성도로 이어지는 건 별개의 일이다. 록음악을 하고 싶다면 보컬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사운드 전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아직은 덜 익은 미완.
최민우/ 음
[MUSIC] 짙어진 뮤지션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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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가 되길 갈망하는 소녀랄까. 아니면 소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숙녀랄까. 짧은 파마머리며, 짙게 그려진 아이라인이며, 입술을 생기있게 뒤덮은 분홍 립스틱이며,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남보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우리가 알던 그는 언제나 교복을 입은 사춘기 소녀이자 누군가의 여동생 혹은 딸이 아니었던가(<고死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2010), <써니>(2011), <하울링>(2012)). 그러나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아이는 언젠가 성장해 어른이 된다는 진리를.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소녀’ 남보라가 익숙한 관객에게 호러 옴니버스영화 <무서운 이야기>의 단편 <콩쥐, 팥쥐> 속 그의 모습은 다소 생소, 아니 충격 그 자체다. 동명의 전래동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는 이 작품에서 남보라가 맡은 역할은 ‘공지’(정은채)의 동생 ‘박지’. 언니 공지가 가진 거라
[남보라]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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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술이 깨면 집에 가자> 슬프다는 게 뭐죠?
[올드독의 영화노트] <술이 깨면 집에 가자> 슬프다는 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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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속편이다. 아무리 <아이스 에이지>가 <슈렉>과 함께 대표적인 CG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고는 하지만 속편은 조금 무리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3편에서는 빙하기로 사라진 공룡까지 등장시키며 시리즈의 생명을 이어나갔지만 더이상 무슨 이야기를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제작진은 기막힌 꼼수를 찾아냈다. 대륙이동설이다.
영화에 따르면 대륙이동을 불러일으킨 건 다람쥐 스크랫이다. 이 집념의 다람쥐는 도토리 하나를 필사적으로 쫓다가 지구의 내핵을 건드려 대륙들이 하루아침에 쪼개져 나가도록 만든다. 조금 위험한 설정이다. 만약 부모 관객이라면 아이들에게 ‘대륙이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몇 억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다’고 꼭 설명을 곁들여야 할 거다. 어쨌든 다람쥐 하나 때문에 대륙과 바다가 갈라지는 대재앙이 일어나자 <아이스 에이지>의 오랜 주인공 매머드 매니, 검치호 디에고, 나무늘보 시드는 작은 빙하에 매달려 망망대해로
기막힌 꼼수 <아이스 에이지4: 대륙이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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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횟집 수족관으로 고등어 ‘파닥파닥’이 잡혀온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수족관 안에서는 가장 오래 살아남은 ‘올드넙치’가 양어장 출신의 다른 생선들을 통제하며 권력을 누리고 있다. 놀래미, 줄돔 같은 다른 생선들이 나름의 생존비법을 알려주지만 자유롭게 바다 속을 가르던 ‘파닥파닥’에겐 희망을 포기한 좁은 수족관 속 세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올드넙치’ 역시 부질없는 탈출 시도를 계속하는 ‘파닥파닥’의 존재가 거슬리긴 마찬가지다.
‘물고기’ 영화가 아니라 ‘생선’ 영화다. 그것만으로도 신선하다. <파닥파닥>의 생선들은 <니모를 찾아서>의 익숙하고 깜찍한 물고기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애니메이션이 지닌 상징과 우화의 힘을 십분 활용한 이 작품에는 예쁜 관상용 물고기 대신 횟집 수족관에 갇힌 식용 생선들의 피곤한 표정이 담겨 있다. 당연히 이야기는 무거워지고 그만큼 우화도 짙어진다. 사회의 축소판인 수족관,
‘생선’ 영화 <파닥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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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게임을 하고 신경쇠약 직전의 여인은 메말라간다.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로 자란 한 소년과 애정을 전하는 데 서툴렀던 한 여인을 통해 모성의 다른 쪽 얼굴을 보여주는 영화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에바(틸다 스윈튼)는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당황시키는 건 자신을 향한 아들 케빈(이즈라 밀러)의 이유없는 적개심이다. 에바가 다가가려 할수록 케빈은 점점 더 교묘하게 그녀를 괴롭히고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급기야 더이상 에바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무시무시하다. 서늘한 정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완성도가 소름 돋을 정도다. 말랑한 가족영화들이 켜켜이 쌓아올린 모성 신화를 단번에 날려버리고 난도질하는 이 영화는 손대면 베일 듯 섬뜩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견디기 힘든 불편함에도 쉽게 고개를 돌리지 못할 기이한 마력 또한 함께한다.
데뷔작 <쥐잡이>를 통해 이름을
손대면 베일 듯한 섬뜩함 <케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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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둑 다섯이 마카오에 간다. 거기서 중국 도둑 넷을 만나 한팀을 이룬다. 마카오 박(김윤석)이라는 인물이 이 팀을 조직하고 주도한다. 마카오의 대형 카지노에 있는 ‘태양의 눈물’이라는 값비싼 보석을 훔쳐내기 위해 뭉친 팀이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각자 속사정이 따로 있다. 누군가는 팀원 중 하나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왔고 누군가는 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하고 다른 걸 챙기려 들고 누군가는 나누지 않고 혼자 통째로 가지려 한다. 그러므로 <도둑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카지노를 터는 이야기인 <오션스 일레븐>과는 사실 차이가 있다. <오션스 일레븐>은 똘똘 뭉쳐 물건을 훔쳐내는 낭만적 공동체의 이야기이고 <도둑들>은 같이 모여 물건은 훔치지만 의심과 음모가 횡행하는 배신자들의 이야기다.
한국과 중국 배우들이 모여 한팀을 이루고 그 팀의 동력을 음모와 배신이라는 긴장감으로 움직이게 하는 발상 자체는 재미있다. 마카오 박, 뽀빠
의심과 음모가 횡행하는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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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남은 목숨을 맞바꿔야 했던 셰에라자드만큼 공포영화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주인공이 어디 있을까. 민규동 감독은 그녀가 풀어낸 <천일야화>의 액자구조를 빌려와 영화 속 영화 4편을 열고 닫는다. 서걱서걱, 칼질 소리에 기척이 든 여고생(김지원)은 정체불명의 사내(유연석)에게 저당 잡힌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정범식 감독의 <해와 달>이다. 어미의 귀가를 기다리는 오누이에 관한 전래동화를 초고층 아파트촌에 입주시킨 이 영화는 문(門)과 선(線)으로 공포를 짓는다. 열린 문틈 사이로 공포는 침투하고, 관객은 어린 선이(김현수)와 문이(노강민)를 따라 문 뒤에 숨었다 다음 문으로 달음질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악몽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어른들의 분노 혹은 죄의식임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악질적 보복담에 머무르고 만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임대웅 감독의 <공포 비행기
목숨과 맞바꾼 <무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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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바람과 불>은 현재 한국이 앓고 있는 지독한 ‘미국병’의 근원을 찾아 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되짚는다. 대한민국에서 미국이라는 표상은 자유, 민주주의, 기독교, 정의 등 홀로 있으면 바람직하기 그지없는 기표들과 결합하는 순간 민족주의, 신자유주의, 수구, 우익, 기득권과 같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기의들을 파생시킨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기록영상과 대한뉴스, 국정 홍보 영화 등 기존의 영상자료들과 현재 그 정신을 이어받은 행사들에 관한 촬영분을 교차편집하여 화면 안에 있는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비틀어 재기술한다. “어떤 숏도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관계가 마치 세계 자체가 그러하듯 중층적이고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는 미로와 같은 것이길 바란다”는 김경만 감독의 발언은 하나의 숏에 담긴 내용보다는 숏과 숏의 연결을 통해 의미가 생성된다고 믿었던 ‘소비에트 몽타주’의 미학적 원칙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지독한 병의 근원 <미국의 바람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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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감독 호소다 마모루 목소리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오오사와 다카오 수입 (주)얼리버드픽쳐스 개봉 9월6일
여름, 단발머리, 자전거, 철도 건널목 그리고 첫사랑. 호소다 마모루 감독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3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다. 제목은 <늑대아이>. 늑대인간을 사랑한 여대생 하나는 그 사랑의 결실로 두 아이를 낳는다. 아이들은 흥분하면 귀가 쫑긋 서고 꼬리가 쏘옥 나온다. 남들과 다른 운명을 떠안고 살아가는 이들 남매와 아이들을 정성스레 키우는 어린 엄마의 이야기가 <늑대아이>의 큰 줄거리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늑대아이>가 아이들은 물론 부모 세대까지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특별한 사건을 신비롭게 풀어내는 호소다 마모루의 재능이 <늑대아이>에선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물론 아련한
[Coming soon] 귀가 쫑긋, 꼬리가 쏘옥 <늑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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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낯설다. 낯선 것은 신선하다. 미래는 번개처럼 빠르게 우리 곁에 다가오지만 그 생경함과 거침없는 발걸음에 그만 알아볼 틈도 없이 흘려보낸다. 여기 미래를 찬찬히 보고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린다. 영상과 미술, 뉴미디어의 접목을 통해 영상예술의 오늘과 미래를 가늠해온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이 올해로 열두 번째 축제의 막을 연다. XY 글로컬 뉴미디어(Glocal New Media)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경쟁부문 ‘글로컬 구애전’, 비경쟁부문 ‘글로컬 초청전’ 등 총 5개 섹션을 통해 20개국에서 초청된 141편의 장·단편 영상물이 상영된다.
명실상부 국내 유일의 뉴미디어아트 축제로 자리잡은 네마프는 12회를 맞아 그간 접하기 어려웠던 뉴미디어 예술세계를 좀더 오래, 좀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오는 7월25일부터 8월11일까지 총 18일간 한국영상자료원, 코레일공항철도 홍대입구역, 미디어극
[영화제] 영상예술의 미래 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