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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위대한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났다.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일약 전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던 배우 피터 오툴이 지난 12월15일 런던 웰링턴 병원에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숨을 거뒀다. 향년 81. 6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인 피터 오툴은 아일랜드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래 귀족적인 외모를 바탕으로 한 정통 정극 연기로 이름을 알렸다. 1964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베킷>, 1980년 전미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스턴트맨>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잊지 못할 연기를 선보인 그의 죽음을 두고 마이클 D.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영화, 그리고 연극계의 거물을 잃었다”며 직접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골든글로브를 4차례나 수상한 피터 오툴이었지만 유독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무려 8차례나 후보에 오른 끝에 2003년 제7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
[해외뉴스] 한해가 가고 한 시대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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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2억명 시대가 열렸다. 어림잡아 5천만명이 1년에 4번씩 영화를 본 셈이다. 2011년 기준으로 미국 4.0회, 영국 2.74회, 호주 3.8회 등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이 극장을 찾는 횟수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임을 보여준다. 그중 한국영화는 현재 1억1500만명, 연말까지 가면 전체 관객수의 60%를 넘을 것이 확실하다. 더 놀라운 것은 올해 500만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 10편 중 무려 8편이 한국영화란 사실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것들이 후퇴한 2013년이었지만, 한국 영화산업은 분명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가 전부일 순 없다. 흥행 순위 1~20위의 매출 비중은 56%까지 치솟는다. 2013년 개봉한 835편의 국내외 영화 중 불과 2.4%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승자 독식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극장의 몰아주기 때문인데, 잘되는 영화 위주로 심지어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열어주다 보니 양극화
[한국영화 블랙박스] 한국영화,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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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 올겨울 유난히 춥습니다. 단단히 채비는 하고 떠나셨죠?
선배를 알고 지낸 지 벌써 15년째네요. 다큐멘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방송 외주 프로그램 PD였던 선배를 만난 건 1998년이었어요.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만드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신물이 나. 인도에 갈 거야. 살면서 내가 충분히 느끼는 이야기를 담을 거야.” 1999년 봄이었어요. ‘인도 사람들 속으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힌디어(인도어)부터 배우던 모습, 화장지도, 생수도, 게스트하우스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달리트(불가촉천민) 마을에 가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자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렇게 해서 만든 <보이지 않는 전쟁: 인도 비하르 리포트>는 선배에게 ‘인도’라는 화두를 던져준 작품이었죠.
세어보니 인도와 관련된 이야기로 2편의 다큐멘터리영화, 6편의 방송다큐멘터리, 1편의 극영화를 만들었네요. “거지들도 행복한 나라라고? 사람들은 인도에 대한 환상이 많아. 현실
[obituary] 선배는 제게 희망을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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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형이 한줌 재가 되어 회색빛 바다에 뿌려진 날, 제주도엔 종일 비가 내렸다. 제주도로 이주한 뒤 자신의 삶을 안식하고 위로받았던 이 예래포구에서 그는 생을 내려놓았다. 실족으로 인한 사고사로 결론지어졌지만 나는 형이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미필적 고의로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형이 평소에 삶에 관해서보다는 죽음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구성주 감독은 자기의 마지막 영화 <모크샤>(Moksha)의 제목처럼 죽음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 해방을 이루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형은 장선우 감독의 조감독 생활을 거쳐 1996년 영화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로 감독 데뷔했다. 이때부터 촬영의 주무대였던 제주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형은 제주도의 원시적 미학성과 처연함에 흠뻑 젖어들었다. 당시 형의 조감독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구성주 감독의 독특한 작가적 시각과 영화적
[obituary]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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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집내역
모집분야 취재
모집구분 신입
모집인원 약간명
근무형태 정규직
지원자격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으며 영화를 비롯한 제반 문화에 소양이 깊은 사람
남자는 군필 또는 면제자
2. 전형방법
1차 서류심사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 및 신체검사
3. 제출서류
이력서(연락 전화번호, 희망연봉 반드시 기재)
자기소개서
4. 서류접수
접수기간 2014년 1월3일(금)까지
우편접수
121-828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93-45번지 로하스타워 3층 씨네21(주) 경영지원팀
*우편접수 시 마감일 도착분까지 유효
이메일 접수 cinehrd@cine21.com
5. 기타
서류 전형 합격자는 개별 통지합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이메일(cinehrd@cine21.com)으로 문의 바랍니다.
[알림] <씨네21> 취재기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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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수와 문채원이 강제규 감독의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에 출연한다
=영화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 60년간 헤어져야 했던 부부의 사연을 그린다. ‘Beautiful 2014’라는 슬로건하에 홍콩국제영화제가 제작을 지원한 아시아 감독 4인의 옴니버스영화 중 한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12월19일 표준VFX계약서 권고안을 발표했다
=표준VFX계약서는 시각효과작업의 정량화와 작업진행절차의 합리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2014년부터는 이 계약서를 사용해야 영진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12월19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가 멀티플렉스를 상대로 낸 한국 영화음악 공연권료 요구 소송 2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1심 판결에 이어 한번 더 극장쪽 손을 들어줬다. 음저협이 이 결론을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댓글뉴스] 배우 고수와 문채원이 강제규 감독의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에 출연한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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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사가 극장 설비에 들어간 비용을 부담하는 게 정당한가. 한국영화산업공정거래환경조성을 위한 세미나 ‘디지털 영사기 사용료(VPF, Virtual Print Fee) 부당 징수, 이대로 좋은가?’(주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민주당 우원식 의원실)가 12월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VPF는 2008년 디시네마오브코리아(DCK)가 국내 극장에 디지털 영사 시스템을 보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구입 및 설치 비용을 배급사에 전가하면서 발생한 비용이다. DCK는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각각 50%씩 출자해 디지털 영사 시스템을 보급한다는 취지로 설립한 회사다. 초기 설비에 들어간 나머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배급사로부터 영화 개봉 시 상영관 1관당 80만원의 금액을 VPF로 징수해왔다. 그렇게 거둬들인 돈이 무려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월16일 영화사 청어람은 <26년>의 VPF 지급과 관련해 DCK를 상대로 VPF를 낼 의무가 없음을 확인
[국내뉴스] 합의인가, 강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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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뉴스룸에 나온 한 사회학과 교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현상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원적 무지’(많은 사람들이 같은 처지에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데도 그것이 소수의 입장인 것으로 잘못 인지되는 상태)에 빠져 있다가 한 사람의 발언을 계기로 생각을 분출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동의한다. 피로사회에 이어 소진사회, 탈진사회, 급기야 질식사회라는 얘기가 나오던 중이다. 뽑았으니 어떻게든 하겠지 했다. 더 나빠질 것도 없을 듯했다. 집권 1년, 스멀스멀 차오르던 어이없음과 불쾌감이 공포와 불안으로 바뀌었다. 우격다짐도 그렇거니와 내용도 없고 예측도 안 되기 때문이다. 바쁘고 귀찮고 피곤해서 무지하고 싶었지, 우리 사람, 진짜 무지한 건 아니거든.
철저히 정부 편향적인 언론 환경에서 철도노조 파업에 우호적인 여론이 더 높다는 것은 민영화에 대한 거부감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설명이 너무나도 설득력이 없어서다. 내용에서 앞뒤가 맞지 않으니 그 많은 프레임도 마이크도 소용이 없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벌거벗은 여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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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변호인> 우리의 시간
[헌즈 다이어리] <변호인> 우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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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1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는 크리스마스 전미 개봉(한국은 2014년 1월1일)을 앞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레드카펫 시사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디어 인터뷰가 진행됐다. 슈퍼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로서는 높은 제작비(약 9천만달러)와 프로모션의 규모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거는 이십세기 폭스 스튜디오의 기대치를 가늠케 했다. 그러나 이날 시드니 엔터테인먼트 센터에 모인 무수한 관계자들의 긴장을 전부 더한다 해도 영화의 감독과 주연을 겸한 벤 스틸러의 어깨에 얹힌 중압감의 무게엔 1%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에서 기상천외한 헤어젤을 발명한 이후, 전세계 관객의 뇌리에 벤 스틸러는 미국 코미디의 얼굴로 등록됐다. <미트 페어런츠>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성공은 이 이미지를 공고히 하며 벤 스틸러를 출연작 총수입으로 보면 톰 크루
몽상과 집착의 멋진 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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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라는 말이 범람하는 세태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기시감을 느꼈다. 최근 <잉투기>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등의 영화가 만들어져 화제가 된 것이 그 원인일 것이나 나로서는 한두번 받아본 ‘호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담론의 측면에서 봐도 <속물과 잉여>와 <잉여사회>가 최근에 책으로 묶여 나왔으니 ‘잉여’는 여전히 생명력을 갖춘 말이며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필자들에게 분석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일 거다.
그러나 이 ‘유행’은 제법 오래되었다. <속물과 잉여>에 수록된 글들은 여러 필자들이 몇년에 걸쳐 여기저기서 발표한 것들이 묶인 것이고 최태섭씨의 단행본인 <잉여사회>의 논의 또한 그 정도 시간 동안 숙성된 것이다. 당장에 내가 청탁받은 글에서 ‘잉여’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도 적어도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당시에는 FANA라는 가수의 <잉여인간>이란 노
자조와 냉소 사이, 잃어버린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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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노모는 아직도 날 ‘백수’라고 부른다. 마땅한 직업 없이 한량처럼 사는 게 걱정스러운지 이따금 “요즘은 뭐하고 사냐?”라고 넌지시 떠보시곤 한다. 칠십 노모의 눈에 영화감독이란 뭐하고 사는지 늘 궁금한 인생 낭비의 딴따라인가 보다.
하긴 나도 내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로 달력과 시계를 멀리하고 산다. 어쩌다 출근길 지하철을 탈 때마다 그 물씬한 낯섦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그 흔한 노동사회의 ‘평균인간’의 전형에서 한참이나 탈피된 삶을 살아가니까 말이다. 남들 잘 때 일어나 앉아 하릴없이 우주와 지구를 걱정하고, 남들 일할 때 허리가 아플 때까지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세월을 쏠고 있는 처지니까.
적지 않은 영화판 인간들이 나처럼 방바닥에 찰싹 눌어붙은 채 만유인력의 법칙을 스스로 증명하며 살아간다는 게 한줌 위안이랄까. 이번에 함께 작업한 촬영감독의 중학생 조카는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꿈은 삼촌처럼 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딴짓으로 빚는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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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이(Pai)의 한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치앙마이에 있다가 빠이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세 시간이나 달려왔는데 막상 빠이에 오니 대체 뭘 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빠이에서 보통 뭘 보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별로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 이곳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오는 곳인 것 같다고 대답하자 그의 표정은 더 복잡해졌지만 사실이 그랬다. 빠이는 특별히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랄까.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목적은 그냥 ‘잉여’ 그 자체였다. 거리에서는 ‘빠이는 시큰둥한 곳’이란 문장이 적힌 티셔츠를 팔고 있었다. ‘빠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라는 문구도 자주 보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개처럼 늘어져 있다가 기타를 치거나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부치곤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는 곳이라니, 마침내 허탈해진 그는 오후에 떠
저울의자 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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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오후의 벤치는 한산하다. 바람이 제법 매섭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햇빛이 비쳐 눈이 부시다. 하얀빛이 물결 위에서 반짝이며 춤을 춘다. 시인 L씨라면, 텅 빈 벤치 하나를 즐거이 차지한 채 이 즉흥적인 춤을 분명 두어 시간은 넋놓고 바라봤을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려 빛의 춤이 일시적으로 멎어도 감상은 여전히 지속된다. 이번엔 구름과 해의 숨바꼭질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풍경의 명암을 시시각각 바꾸는 이 숨바꼭질은 하늘과 땅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큰 스케일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드넓은 풍경 전체의 분위기가 끊임없이 바뀐다. 인상파 화가라면 이 변화무쌍한 빛의 유희에 황홀해하며 그 과정을 붓으로 기록했을 것이다. 시인 L씨에게는 이 위대한 놀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그저 바삐 제 갈 길만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멍청해 보인다.
직장의 룰, 잉여생활의 적
열정적인 잉여생활을 위해 드러머 K씨는 최근에 학교 강의를 중단했다. 직장은 단연코 정규 잉여생활 최대의 적이다. 직장의
밤이 되면 그곳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