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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줄만 알았던 칠봉이의 역습이 시작됐다. 나정 앞에선 말간 얼굴로 웃기만 하던 칠봉이가 술기운을 빌려 나정에게 입을 맞추는 그때부터, 상황은 역전됐다. 저돌적인 그 입맞춤의 주인공이 유연석이었기에 더 속이 시원했는지도 모른다. 유연석이 <응사>에서 맡은 역할은 93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서 일곱 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두며 MVP로 뽑혀 ‘휘문고 칠봉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준’이다. 준의 이름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건축학개론>의 강남 선배 재욱, <늑대소년>의 얄미운 지태,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잔혹한 수행원 지원을 거치며 ‘국민 나쁜놈’ 이미지를 완성한 유연석이 착한 얼굴로 돌아왔다. 악역을 연기할 때 더 빛이 나고, 화제가 되었던 것이 아쉬웠던 걸까. “왜 하필 비호감 캐릭터를 했던 영화만 대박이 터졌는지 모르겠다”며 아이같이 투덜거리는 모습이 덩치에 안 맞게 귀엽기까지 하다. “칠봉이가 실제 모습과 많이 비
[유연석] 칠봉이의 역습은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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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겉과 속이 다른 배우라니! 오해는 말자. 11년차 배우 고아라를 향한 순수한 감탄사일 뿐이다. 인형 같은 외모만큼이나 응당 그 속내마저 도도하고 새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무슨 난데없는 썰렁개그며, 아저씨 같은 추임새인지. <응사>의 나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털털한 모습이다.
마산에서 상경한 신촌하숙 딸내미 나정은 연세대 농구부 “‘이상민 오빠야’의 극렬 빠순이”다. 강의실 출석보다 체육관 출석에 더 열심인 나정은 어느 순간부터 “머릴 쓰다듬던 (쓰레기) 오빠의 손, 오빠의 숨소리, 오빠의 냄새가 낯설어진다”. 똑같은 ‘순이’지만 <응칠>의 성시원(정은지)과는 여기에서 캐릭터가 확실히 갈린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사랑을 몰랐던 시원과 달리, 갓 어른의 세계로 접어든 나정은 사랑을 할 줄 아는 것이다. “작가님이 ‘빠순이는 사랑과 순이질을 동시에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 순이질은 사랑보다 더하다고 하셨다. 나정이는 이제 쓰레기의
[고아라] 모든 걸 내려놓고 ‘비커밍 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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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때였다. 허릿병이 도진 나정에게 과자봉지를 툭 던져두고 나가던 그 시점. 정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저분하고 바보 같아 ‘쓰레기’라고 불리던 오빠는 알고보니 천재과 레지던트였고 나정의 친오빠도 아니었다. 이 경상도 남자는 막말 속에 따뜻한 애정까지 장착한 고품격 멜로남이었다. <응사>가 시작된 이래 매 화 ‘정우의 멜로 폭탄’이 터지는 중이다. 나쁜 남자로 점철된 ‘실장님’ 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멜로드라마계에서 쓰레기는 흥미로운 별종이고, 매력적인 이단이다. ‘그 드라마 봤어?’가 ‘정우 봤어?’로 회자되고, 일찌감치 메인 CF 출연까지 대거 예약했으니, 그야말로 정우의 나날이다.
“닮긴 했는데 난 쓰레기보다 더 따뜻한 남자다. (웃음) 쓰레기는 나보다 열살 정도 어리니까 철부지인 면을 보탰다. 진지함과 코믹함의 적정선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정우에게 쓰레기는 회심의 도전은 아니었다. 장르는 다르지만 액션영화 <바람>의 ‘짱구’를 쏙 빼닮은 데다,
[정우] 쓰레기보다 더 따뜻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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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게임의 시간. 벌칙을 받은 칠봉이(유연석)가 나정(고아라)에게 키스를 했다. 이미 곯아떨어진 하숙생들을 패닝하던 카메라가 멈춘 곳은, 키스하는 그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쓰레기(정우)의 표정이다.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가 6화에서 미래 다섯 신랑의 구도를 좁혀, 삼각멜로의 본색을 드러냈다. 먼지 쌓인 결혼식 비디오테이프처럼 굳이 꺼내보지 않았던 1994년의 기억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안절부절, 노심초사는 앞으로 더욱 끓어오를 것이다.
삼각관계로 한데 묶인 정우, 고아라, 유연석, 세 배우는 사진 촬영 내내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 모습이 현장 분위기 그대로”라는 정우의 말처럼, 셋은 스스럼없는 사이임을 줄기차게 과시했다. 물론 그들의 애정을 증폭시킨 진짜 원동력은 <응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대본을 아예 주지 않아”서 도무지 이 사랑의 끝이 어떨지 역시 짐작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으는 세 배우들은 19
[응답하라 1994] 그들이 응답하는 삼각멜로의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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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버 데이> Labor Day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 / 출연 조슈 브롤린, 케이트 윈슬럿, 토비 맥과이어
조이스 메이나드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레이버 데이>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주노> <인 디 에어>의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의 연출력과 더불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까지 노릴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내년 1월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레이버 데이> Labo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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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올 이즈 로스트> 아임 킹 오브 더 월드
[정훈이 만화] <올 이즈 로스트> 아임 킹 오브 더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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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다섯권이 출간되었다. 그중 <데이먼 러니언>은 세계에서 가장 롱런하는 뮤지컬 중 하나인 <아가씨와 건달들>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가 된 <혈압>과 <세라 브라운 양의 이야기>를 비롯한 2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세라 브라운 양의 이야기>는 미국 대도시의 건달 스카이가 어떻게 한 아가씨의 품에서 평화를 얻는가에 대한 귀여운 이야기. 미국 대공황이 덮치기 전이었던 광란의 20년대를 무대로 한 소설들을 읽을 수 있다.
[도서] 광란의 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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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아름다운 물건의 하나로 애정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절대 놓치지 말 것. 전세계 20곳의 아름다운 서점을 골라 소개하는데, 도시의 개성과 문화를 고스란히 품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들이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 유명한 파리의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당연히 수록되었고, 기적의 서점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아틀란티스 북스는 꿈에서나 봤을 법한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도서]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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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고골의 ‘코’뿐이랴. 어찌 체호프나 톨스토이뿐이랴. 도스토옙스키도 있고, 고리키도 있지 않겠는가. 문학판이라면 문학 얘기여야 마땅한 것. 그러고 보면 작가 정태언씨의 소재의 창고에는 보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없을까.”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이런 평은 우연이 아니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모스크바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정태언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러시아 인문주의에서 태동한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의 첫 번째 소설집.
[도서] 러시아 인문주의에서 태동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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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적으로 글을 썼던 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였던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를 묶은 <다시 태어나다>를 읽기 전에 사유의 원형이나 지성의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 중 하나는 그녀의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가 쓴 엮은이의 글이다. 리프는, 어머니가 평생 써온 막대한 분량의 일기를 언급하며, 어머니가 그 존재를 입에 올렸으나 어떻게 처분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불에 태워버릴까 고심하다가 책으로 출간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1947년부터 63년까지, 즉 14살부터 30살까지 손택의 일기 묶음인데, 리프는 어머니를 신화로 포장하기 위해 보기 좋은 것만을 추리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손택이 일기에 적은 젊은 시절은 대개는 두서없고, 지적 열망에 시달리느라 읽을 것들을 나열하며 느낌표를 반복해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24번째 생일을 앞두고 ‘규칙과 의무들’이라는 제목하에 자세를 더 곧게
[도서] 수전 손택도 20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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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의 저자 마이클 크라이튼은 1999년에 쓴 <타임라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100년 전 19세기가 막을 내릴 때,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은 이제 물질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흡족해했다. 물리학자 앨러스테어 리의 표현대로 ‘19세기 말까지는 물리적 우주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원리들이 두루 밝혀진 것 같았다.’ … 그러나 누군가가 만일 1899년의 물리학자에게, 100년 뒤인 1999년에는 하늘에 떠 있는 위성을 통해 전세계의 가정들에 동영상이 전송될 거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 여성들이 투표권과 함께 출산을 조절할 알약을 갖게 될 거라든지, 사람들이 전화선도 없이 전세계 어떤 곳에 있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느니…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그 물리학자는 그 사람이 미쳤다고 판단할 것이 틀림없다. 1899년에는 이런 종류의 발전들을 대부분 예측할 수 없었다. … 따라서 20세기의 문턱에서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그리하여 진보는 여기 도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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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타운>(2008),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 등 이른바 ‘<타운> 3부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전규환 감독은 가장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진정한 독립영화감독 중 하나다. 이후 <불륜의 시대>(2011)를 지나 <무게>(2012)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 데이’ 부문에 초청돼 ‘퀴어사자상’을 수상했다. <무게>는 시체안치실에서 시체를 닦아 관에 담는 일을 하는 ‘꼽추’ 정씨(조재현)와 성기를 잘라내고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배다른 동생 동배(박지아) 등 태생적인 ‘무게’를 떠안은 채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지속적인 장르 실험을 해오고 있는 그에게 <무게>는 ‘판타지 멜로’다. 물론 그는 이후 몇번의 실험을 더 끝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마이 보이>(2013)와 유준상 주
[flash on] 비울수록 많이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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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는 제임스 서버의 단편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1939년작)을 원작으로 한다. 더불어 대니 카가 주연을 맡은 영화 <월터의 비밀 인생>(1947)도 있는데, 이 점이 부담이 되진 않던가.
=늘 영화의 전반적인 면모를 먼저 보는 편이다. 스티브 콘래드의 시나리오는 원작을 좀더 감성적인 측면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현재의 나 자신이나 연출가로서, 배우로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나에겐 새로운 시도였다.
-월터의 실생활은 무척 지루해 보인다. 당신의 인생에선 이런 경우가 없었을 것 같은데.
=부모님이 배우라 어릴 적부터 쇼비즈니스쪽에 관심이 많았다(그는 유명 코미디언 부부 제리 스틸러와 앤 미어러의 아들이다.-편집자 ). 재미있고 화려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도 배우 지망생 시절에 카메라 가게 점원이나 쓰레기 수거 등 많은 일을 했다. 다행히 월터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
[현지보고] “코미디언의 눈으로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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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코미디영화의 대표적인 얼굴, 벤 스틸러가 연출에도 재능이 있다는 점은 종종 잊혀지곤한다. 그는 X세대의 상징적인 영화 <청춘 스케치>와 더불어 <미트 페어런츠> <쥬랜더> <트로픽 썬더> 등의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이하 <월터>)는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연출과 주연을 겸한 작품이다. 벤 스틸러 하면 으레 떠오르는 <미트 페어런츠> <쥬랜더>의 코믹한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지 말 것. 이 영화는 스틸러의 연출작 중에서는 <청춘 스케치>의 정서와 가장 비슷하다. 다시 말해 <월터>는 인물들의 솔직함과 소박한 꿈을 담고 있고, 때로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처럼 약간은 비현실적이지만 환상적인 장면과 현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작품이다.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16년 동안 잡지 <라이프&
[현지보고] 웃기고 슬픈, 평범남의 백일몽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