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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그래비티> 무중력, 무개념
[정훈이 만화] <그래비티> 무중력, 무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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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전후 관계가 이상한 것이 참 많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건 고민거리도 아니다. 조지 클루니가 멋있어서 좋아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니까 멋있어 보이는 걸까. 이런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자학을 맛동산처럼 깨물어먹고 후회를 무좀처럼 달고 산다. 앙꼬 작가 역시 그런데, 고민은 이렇다. 과자를 너무 좋아하는 앙꼬는 노래방용 포스틱도 한번 뜯으면 끝장을 보는 열정의 소유자다. 맛만 보겠다던 처음의 결심은 오간 데 없고, 빈 봉지를 앞에 두고 자학에 빠지기를 여러 차례. 그러다 어느 책을 읽고 알게 된다. 자신의 우울증은 바로 설탕에서 온 것임을. 설탕을 끊고 나니 몸무게는 44kg까지 빠졌다. 설탕 없는 음식은 없으므로. 그러다 그만, 선물로 받은 고급 초콜릿과 함께 설탕의 참맛을 느끼고, 술만 취하면 설탕주정을 시작,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손으로 퍼먹기에 이른다. 결론? “난 좀더 건강해진 것 같고”(다음에 안 먹으면 되지), “설탕을 안 먹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웃픈 일상의 연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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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의 저자로 김소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수학자의 아침>은 그녀가 시인이었음을 일깨우는 시집이다. 도시의 후미진 곳에, 명명되지 않은 시간들에 대해 속삭이는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상가의 컴컴한 내부가 최대한 컴컴해지는 때, 쓰레기차가 쓰레기봉투를 쓸어담을 때, 창문 열린 원룸 밖에서 앞집 가게의 옥외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러나올 때,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도시는 이렇게 시가 된다.
[도서] 시간에 대해 속삭이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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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중 7번째 작품으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본 사람이라면 반길 만한 소설이다. 그 캐스팅 그대로 영화화도 진행 중. 은퇴한 늙은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는 과거 자신과 함께 싸웠던 에스토니아 출신 망명자 장군 블라디미르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위험 속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다 죽은 블라디미르의 복수를 위해 스마일리는 다시 한번 첩보전의 중심에 복귀한다.
[도서] 은퇴한 늙은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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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을 중심으로 뮤지션, 에세이스트 등 여러 필자들이 여행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어떤 날> 시리즈 4권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각별한 글이 하나 실렸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오즈, 만춘 그리고 교토>. <만춘>의 줄거리를 아주 길게 소개하면서 시작하는 이 글은 <만춘>의 장소에 가본 그의 소회를 전한다. 료안지의 가레산스이(돌과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정원을 오즈 야스지로는 왜 찍었을까. 여행만큼이나 영화 권하는 글.
[도서] 영화 권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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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소설가란 이름의 인종은, 학교 선생이나 중처럼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를 테마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홀가분함 덕분에, 즉 무절제한 사고에 브레이크를 걸 실질적인 체험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중요한 테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머지 전혀 실태를 모르는 구석이 있다. 특히 오랜 세월 작가생활을 하거나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예술가라고 믿는 자들 중에 많은 것 같다.”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 <소설가의 각오>에 나오는 말이다. 저 책을 읽었을 때 짐작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뛰어난,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을 쓴 기타노 다케시와 같은 독설능력자다. 그 사실은 이번에 출간된 에세이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에서 증명된다.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필경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다) 소설 <물의 가족>이나 <천년 동안에>를 읽어보라고 권
[도서] 독설능력자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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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일 거라고 생각한 건 이성은이라는 이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성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사랑해! 진영아>는 서른살의 여성 시나리오작가 진영(김규리)의 사랑과 진로 그리고 가족에 대한 고민을 그려낸 작품이다. 때로는 섬세하게, 또 때로는 귀엽게 진영과 그의 주변 인물을 묘사한 솜씨 때문에 감독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성 감독의 영화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여성 감독인 줄 알았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예전에 초등학교 여학생 진영이의 성장통을 그렸던 <진영이>(2006)로 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모임에 갔는데 강릉씨네마떼끄 박광수 사무국장이 여성 감독인 줄 알고 나를 한참 찾다가 내 얼굴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 돌아선 적도 있었다. (웃음)”
-<사랑해! 진영아>는 단편 <진영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들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진영이>를 보
[flash on] 서른, 비로소 성장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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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의 발굴과 제작지원을 목표로 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야심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방글라데시의 영화감독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의 발견은 단연 돋보이는 성취다. 2009년 BIFF에선 그의 <제3의 인생>이 소개됐고, 아시아영화펀드 지원으로 완성된 <텔레비전>은 지난해 BIFF 폐막작으로 선정된 뒤 각종 해외 영화제로부터 기분 좋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 영화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파루키 감독이 <텔레비전>의 개봉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에게 방글라데시영화라는 신세계에 대해 전해 들었다.
-<텔레비전>은 2003년 투레쿠에 마수드 감독의 <클레이 버드> 이후 방글라데시영화로는 두 번째 해외 개봉작이다.
=대단히 기쁘다. 두 번째 해외 개봉까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렸다. 그간 방글라데시의 젊은 영화감독들은 아시아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지만 끊임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방식으로 해보
[flash on] 잘 만든 픽션은 다큐처럼 다가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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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서 주연을 맡은 앤드루 가필드와 에마 스톤(왼쪽부터).
앤드루 가필드는 러시아 출신의 악당 라이노를 연기하는 폴 지아매티에게 찬사를 쏟아냈다. 그는 “폴이 찍은 5분가량의 롱테이크 신을 봤다. 그가 짐승처럼 보이더라. 폴은 (연기)천재다!”라고 평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크 프라이드버그는 작업하기 가장 어려웠던 세트가 바로 “피터 파커의 방”이라고 말했다. “피터는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때문에 벽을 걸어다니는 피터에 걸맞게 회전하는 방을 디자인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촬영장에서 앤드루 가필드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역대 뉴욕에서 제작된 영화 중 가장 큰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연기가 편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팀워크가 확고해 든든하다.” 자신만만한 그의 모습이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알게 된 뒤 뉴욕 도심을 마음껏 날아오르는
[현지보고] 도시를 구하니 키스를 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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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 코디네이터 앤디와 제임스 암스트롱(이들은 부자지간이다)에 따르면, 1편에서부터 “실제 올림픽 체조선수들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스턴트를 구성”했으며, “최대한 CG를 줄여달라”는 마크 웹 감독의 부탁으로 배우와 스턴트맨들이 직접 연기해야 하는 장면이 많다.
지난 6월 햇살이 따갑던 초여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촬영장을 찾았다. 브루클린이 보이는로어 맨해튼 이스트리버의 공원이 바로 그 배경이었는데, 촬영이 진행된 곳은 이스트 빌리지와 인접하고 계단식 객석이 갖춰진 원형극장 ‘앰퍼시어터’였다. 이날 촬영분은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와 그웬 스테이시(에마 스톤)의 고교 졸업식. 그웬은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하지만, 그날도 역시 ‘범죄와의 전쟁’을 하느라 연설을 놓친 피터가 뒤늦게 극장 뒤로 몰래 날아들어온 뒤 졸업장을 무사히 받고 내려가는 장면이었다. 때문에 일렉트로를 연기한 제이미 폭스나 해리 오스본 역의 데인 드한, 라이노 역의 폴 지아매티는 아쉽게도 볼 수
[현지보고] 뉴욕 마천루의 기운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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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1일부터 27일까지 이화여자대학교 ECC 내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스웨덴영화제가 개최된다. 이화여대와 주한스웨덴대사관, 스웨덴대외홍보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노베이티브 스웨덴’ 행사의 일부분으로 진행되는 이번 영화제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초대된다. 소개되는 작품들은 전부 2010년 이후에 완성된 최신작들이며, 상영은 모두 무료다. 흔히 ‘스웨덴영화’ 하면 잉마르 베리만으로 대표되는 정서적 고전의 느낌이 강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스웨덴영화의 최신 경향을 살필 수 있다. 같은 기간 동일한 프로그램의 행사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도 진행된다.
개막작은 시몬 카이저의 <스톡홀름 이스트>(2011)다. 스톡홀름의 동쪽 교외에서 펼쳐지는 이 비극적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정을 가진 두 남녀다. 어느 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던 요한은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에 연루된다. 사고의 주인공은 아홉살 소녀 토베로, 같은 지역에 사는 안나의 딸이다. 그렇지만 이 불행한 사고 이후에
[영화제] 북유럽 스타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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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단편영화제 중 최고의 관객점유율을 보유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무서운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2013 최강애니전이 남산 서울애니시네마에서 개최된다. (재)SBA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애니충격전 연합사무국, 주상하이 한국문화원 주최로 11월20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최강애니전은 세계 4대 애니메이션영화제인 안시(프랑스), 오타와(캐나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 히로시마(일본)를 비롯해 세계 10대 영화제의 수상작들을 엄선해 선보이는 영화제로 유명하다. 최고의 작품들을 단순히 소개할 뿐 아니라 경쟁부문을 마련하여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선발하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올해 경쟁부문에는 총 34개국의 장/단편 애니메이션 101편이 최고의 자리를 두고 열띤 경쟁을 벌인다. 비경쟁부문에서도 총 236편이 소개된다.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이란, 라트비아, 벨라루스 등 낯선 나라의 다양한 애니메이션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한국 최초로 영화제의 해외 진출 기회가 마련되어 올해부터는 최강애니전을
[영화제] 다양한 정서와 질감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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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를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된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겉과 속이 생판 다르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거리를 활보하는 경찰 브루스 로버트슨(제임스 맥어보이). 살인 사건을 해결해 승진하겠다는 야심을 내보일 때만 해도 누구나 그를 평범한 경찰관으로 오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는 이간질과 능청으로 제 잘못을 덮어버리기 일쑤고, 단 하루도 술과 마약 없이는 살 수 없으며, 그것도 모자라 동료 부인들과의 은밀한 관계를 거리낌없이 즐긴다. 브루스는 어쩌다 속수무책의 삶에 빠져든 것일까.
‘필스’는 역겨울 정도로 더러운 오물이라는 뜻으로 경찰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브루스는 실상 자신의 질투로 동생이, 뒤이어 아버지가 죽었다는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브루스를 맨 눈으로 지켜보기란 쉽지 않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자신을 방기하다시피 하는 인물의 비열하면서도 불안한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속수무책의 삶 <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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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임지규)는 ‘핑크보이즈’의 리더다. 핑크보이즈는 소아암 완치자들로 구성된 밴드다. 오랫동안 병실 생활을 해온 까닭에 그는 누구보다 소아암 환자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취업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틈틈이 소아암 병동에 들러 소아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한다. 어느 날, 온유는 병원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소아암 환자 시절, 자신을 위문 방문해준 걸그룹 멤버 예나(심이영)다. 그때 “병이 완치되면 함께 무대에 서자”고 약속했던 예나의 말이 어린 온유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많은 인기를 모았다가 이상한 소문과 함께 모습을 감췄던 예나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과거와 반대로 온유가 예나의 병문안을 간다. 온유와 예나,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된다.
“소아암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제작사 대표의 말처럼 <완전 소중한 사랑>은 소아암 투병 환자들에게 삶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 <완전 소중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