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선배님의 눈두덩을 좋아합니다. (웃음)” 이정호 감독이 말했다. <방황하는 칼날>에 이성민을 캐스팅한 이유를 묻자, 그런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배우의 눈두덩이 영화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 싶겠지만, <방황하는 칼날>을 보면 알게 될 거다. 이 작품이 이성민의 눈매에 많은 걸 빚지고 있다는 것을. 성폭행당한 뒤 잔혹하게 살해된 딸의 복수를 위해 강원도 일대를 헤매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쫓는 형사 억관을 연기하는 이성민의 눈 밑 그늘은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순간도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것은 때로는 사회의 온갖 추악한 일들을 경험한 자의 얼굴에만 나타날 법한 표식이 되기도 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늘 ‘참으라’고 말해왔던 17년차 강력계 형사의 응어리진 마음을 에둘러 느낄 수 있게도 해준다. 그러니 두툼하게 내려앉은 그의 눈두덩을, 세월의 무게가 만들어낸 깊은 주름을, 가벼이 지나쳐선 안 될 것이다. 이성민의 눈매가, 곧 억관이란 인물의 실마리이므로.
[이성민] 예리한 보통 사람
-
갈 길을 잃고 모든 걸 포기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런 걸까. 눈 덮인 자작나무 숲에 웅숭그리고 있는 <방황하는 칼날>의 이상현 말이다. 시간조차 얼어붙은 듯한 그곳에서 돌처럼 굳어버린 사내 이상현을 배우 정재영이 연기한다. 올해 초 <플랜맨>에서 1분 1초까지도 딱딱 맞춰 살아가는 한정석이던 때의 정재영과는 전혀 포개질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얼굴을 하고 그는 나타났다. <실미도> <내가 살인범이다> <카운트다운> 같은 묵직한 전작들과 비교해봐도 그의 눈빛은 유난히 공허하다. 눈빛뿐만이 아니다. 얼굴, 심지어 온몸이 텅텅 비어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은 그는 산 자라기보다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에 훨씬 더 근접해 보인다. 아마도 그건 상현이 딸 수진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을 거다. 절대로 메워질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그의 마음에 생긴 것이다. 곧이어 그에게 도착한 한통의 문자. 수진이 또래 아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죽음
[정재영] 긍정을 위한 의심
-
“그냥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정말 최선의 방법이에요?” 하나의 질문이 두 남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방황하는 칼날>은 각자가 ‘최선’이라고 믿는 길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면서. 딸을 죽인 놈들을 찾아 아버지는 강원도 숲속을 헤매고 세상의 부조리에 이골이 난 형사는 그런 아버지를 추적하면서도 안타까워한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잿빛 세상에, 배우 정재영과 이성민이 서 있다. 이번 영화가 첫 협업이라는 두 배우는 뼛속까지 시리도록 추웠던 1년 전 겨울, <방황하는 칼날>의 현장에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경험했을까. 다음은 유난히 혹독했던 그 겨울에 대한, 두 남자의 치열한 기록이다.
[방황하는 칼날] 잿빛 길 위에서
-
“영화를 찍는 과정은 포기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박정범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산다>를 찍으며 무려 11kg이나 빠졌다. 4월15일 크랭크업을 목표로 전 스탭이 뒤돌아볼 새 없이 전진 중이다. <산다>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장편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만큼 영화제 상영에 맞추려면 이 시간도 빠듯해 보인다. 전작들에 비해 등장인물도 많아졌고 저마다의 사연도 얽히고설킬 예정이라 인물간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도 박 감독에게는 큰 숙제다. 그럼에도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이야기가 꿈틀대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죽기보다는 기어코 살아내는 사람들의 몸짓. 이것이 곧 <산다>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의 <일주일>, 인권위 단편 <어떤 시선-두한에게>도 찍었지만 장편은 <무산일기> 이후 5년 만이다.
=부담도 많이 됐고 시나리오 쓰면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간 준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이젠
[씨네스코프] 직관도 노력에서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
-
수연과 하나가 아무도 없는 지하실에 번개탄을 피우고 나란히 누웠다. 깊은 단잠에라도 빠진 걸까. 미동조차 없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왠지 엄마와 딸이라기보다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앞으로도 영영 만날 것 같지 않은 두개의 평행선처럼 보인다.
“하나, 원을 두르듯이 방석들을 둔다.” 본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박정범 감독은 수연과 하나를 앞에 두고 촬영 컨셉에 대해 일일이 설명한다. 여러 개의 방석들로 자신이 누울 자리를 만드는 하나와 그런 하나를 멀뚱히 바라보는 수연이다.
비좁은 지하실에 배우와 스탭 10여명이 꽉 들어찼다. 레드 에픽 카메라를 메고 원 테이크로 모녀를 따라가는 김종선 촬영감독을 쫓아 스탭들도 재빨리 걸음을 옮긴다. “커피콩을 볶아 번개탄 대용으로 쓰려고요.” 지상에서 아침부터 커피 원두 볶기로 씨름하던 스탭들의 노고 덕에 연기가 은근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어둑하고 음침한 지하실 위쪽 창으로 빛이 들어온다. 마을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뛰어노는 소리도 어렴풋
[씨네스코프] 스물일곱번 만에 오케이
-
<닌자터틀> Teenage Mutant Ninja Turtles
감독 조너선 리브스먼 / 출연 메간 폭스, 윌리엄 피츠너, 앨런 리츠슨, 노엘 피셔
레오나르도, 라파엘,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닌자 거북이’ 사총사가 돌아왔다. 마이클 베이가 제작을 맡아서인지 예고편 속의 도시가 공격받는 장면에서 <트랜스포머>가 떠오르기도 한다. 원작 만화에서 닌자 거북이들을 주로 취재하는 에이프릴 오닐 역에 메간 폭스가 캐스팅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미에서 8월 개봉예정.
[WHAT'S UP] <닌자터틀> Teenage Mutant Ninja Turtles
-
[정훈이 만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처절한 응징
[정훈이 만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처절한 응징
-
가장 연극적인 소설을 꼽는다면 아마도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공황 시대인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소도시를 무대로 한 이 소설에는 네명의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비감한 어조로 각자의 사연을 쏟아놓는다.
당시 찾아보기 힘든 흑인 의사인 코플랜드 박사는 가장 위대한 나라로 자칭하는 미국에서 처참한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 아침 여기 모인 젊은이들 중에는 교사나 간호사나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 필요를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절당할 것입니다. … 우리들은 짐승의 일보다 더 쓸모없는 노동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흑인 여러분! 우리들은 궐기하여 다시 완벽해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제이크 블런트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 의사보다 더 드문 존재인 공산주의자(겸 알코올중독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들은 사람들의 피를 빨고 뼈를 약하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의지한다는 것
-
글작가 르네 고시니와 협업한 <꼬마 니콜라>의 삽화가 장 자크 상페의 그림과 더불어 그의 삶에 대한 상세한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귀엽기도 하지만 주로 말썽을 부리는) 그림을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그리는 이유가 어린시절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불행했던 기억 때문임을 고백하는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이후부터는 빨리 걷거나 뛰는 사람만 그린다니까요.”
[도서] 불행했던 어린시절의 기억
-
존 세이무어는 1998년, 몬산토사에서 실험용으로 심은 유전자 조작 사탕무를 망친 혐의로 체포되었다. 평생 전원생활, 환경운동, 그리고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생활양식을 널리 알렸던 영국 활동가인 그는 50년대부터 자급자족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대지의 선물>은 1953년부터 저자가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먹고살아본 기록이다. 바깥세상과 거래하기 위한 활동(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과의 균형에 대한 고민까지 상세히 담았다.
[도서]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먹고살다
-
기록은 사실을 남긴다지만 그 기록조차도 사실일까라는 의심은 창작자들에게 좋은 힌트가 되나보다. 인조반정으로 궁에서 쫓겨난 광해군의 유배생활 19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팩션이다. 궁 안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별감 진현은 궁녀와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에게 붙잡힌다. 죄를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임무를 받는다. 이야기 전개 속도가 빨라 몰입도가 높다.
[도서] 광해군의 유배생활
-
한 학생이 학교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학생의 등에는 꼬집힌 상처가 수도 없고, 휴대폰에는 숙제부터 스포츠음료까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셔틀’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네에서 다 아는 부잣집 외아들이지만 왜소한 체격에, 사건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이 “따돌림당하게 생겼잖아”라고 수군거리는 인상. 경찰은 집단 따돌림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고 같은 테니스부 소속이던 네 아이를 본격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를 쓴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인 <침묵의 거리에서>는 중학생의 사망사건에 연루된 여러 사람의 상황을 차례로 보여주며 진실에 접근하고자 시도한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선생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죽은 아이의 부모와 친척, 가해자로 몰린 아이들과 그 부모들, 경찰과 검사가 이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감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묵직한 분위기에 놀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 소개
[도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
※ 3월11일 일기에 <노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의 매력이 지아장커 영화의 손꼽히는 장점은 아니다. 그의 인물에게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드는 힘은 대개 배우보다 카메라의 시선에서 나온다. 감독의 오랜 파트너 자오타오가 예외지만, 그녀는 종종 지나치게 만사를 꿰뚫어보는 관찰자의 표정을 지어 영화 밖으로 돌출한다. 픽션의 양식에 전례 없이 충실한 <천주정>에서 제일 생동하는 배우는 유흥업소 종업원 역의 조연 리멍(李夢)이다. 그녀는 장면과 메이크업에 따라 표변하는 인상 속에서도, 캐릭터의 견고한 본령인 정직함과 상냥함을 보존한다.
3/9
일요일 아침 조조 영화 나들이는 즐겁다. 휴일 오전 영화관에는 오후 인파가 밀려들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호젓함이 있다. 관람을 마치고 입장 무렵과 딴판으로 북적이는 로비를 통과하며 느끼는 뿌듯함은 뭐랄까, 한식 새벽에 성묘를 마치고 귀경하며 하염없이 정체된 하행선을 곁눈질하는 우월감과 비슷하다. 전 벌써 한편 봤습니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뱀도 태워요?
-
-스파이더맨은 보통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근육질에 거구는 아니다. 몸관리는 어떻게 하나.
=앤드루 가필드_이소룡을 모델로 했다. 그는 말랐지만 멋있는 무술을 선보이지 않았나. 슈퍼히어로 중 토르는 근육질인데, 스파이더맨은 나같이 마른 애들에게 희망을 줬다. 스파이더맨은 똑똑하고, 위트와 재치를 활용해 싸운다. 직접 펀치를 날리기보다는 상대가 자신의 꾀에 넘어가게 한다. 물론 3~4%대의 체지방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남자친구가 스파이더맨처럼 데이트보다 세상을 구하는 데 앞장선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에마 스톤_내가 연기한 그웬은 아버지가 경찰청장이라 늘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보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영웅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할 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그런 충동을 갖고 있다.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의 파트너는 정말 존경스럽다.
-한국에서 슈퍼히어로영화가 마니아층을 벗어나 대중적인 성공
[현지보고] “대규모 예산의 예술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