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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소설가(<나주에 대하여> <동경>)
<러브레터>를 다시 봤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몇년 전 연말이었는데, 다시 보는 지금 역시 연말. 어떤 영화를 보는 일이 그 영화의 작동 방식과 비슷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지나간 시간이 자꾸만 지금의 내게로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이 영화가 마침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서일 테니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나, <러브레터> 별로 안 좋아하는데…’라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해서, 후반부를 지날 때 즈음이면 여지없이 운다.
영화는 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애인의 추모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죽은 이는 후지이 이츠키, 남은 이는 와타나베 히로코. 히로코는 죽은 애인의 집에서 그의 부모님이 보여주는 그의 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고, 당시 그가 살던 오타루의 주소를 손에 적어 간다. 이후에 히로코는 그 주소로 짧은 편지를 쓴다. 답장은 기대하지 않으며. 그런데 그 편지에 답장이 온다. 후지이 이
‘누가 더, 라고 말할 수 없는 세계’, 김화진 소설가의 <러브레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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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잠자리가 발밑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상복을 입은 소녀는 그제야 인정한다. “아빠가 돌아가셨구나.” 잠자리가 죽은 것은 그저 과거형,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 아래 박제된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야말로 현재형이다. 자각이란 그런 식이다. 뒤늦게, 엉뚱하게, 잔인하게도 생생히 나타난다. 시간의 지속 속에서 우리는 그럴 때에야 이따금 ‘지금’을 산다. 감정은 아버지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처리의 과정 속에서 언제 어떻게 서 있었는가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을까? 발아래를, 딛고 선 곳을 지그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편지가 향하기 위해선 언제나 수신의 장소들, 기억을 되찾고 되돌려줄 공간이 요구된다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베르그송의 강의를 들으면서 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가장 유명한 대목은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온몸의 신경세포가 미각으로부터 깨어나 기억의 시냅스에 불을 켜는 순간
[비평] ‘남아 있는 장소를 위한 멜로드라마’,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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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의 대중문화사적 의미
1990년대 일본 멜로드라마, 추억 속의 사랑 이야기, 이와이 슌지 스타일, 오타루를 꿈꾸게 하는 영화. 어떤 의미로든 <러브레터>는 하나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상징적으로 통용되는 <러브레터>에 관해 구전되는 전설은 이러하다. 극장에 개봉하거나 정식 비디오로 출시도 안된 영화를 모두가 알고, 봤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러브레터>를 모르는 이들에게조차 명대사 “오겡키데스카?”만큼은 남게 되었다는 것.
<러브레터>의 감수성이 전파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외화의 흥행 양상과 다른 지점이 많다. 1995년 제작된 <러브레터>는 1999년 11월 한국에 정식 개봉했다. 1998년 CGV강변, 2000년 코엑스 메가박스가 막 문을 열면서 국내에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한 무렵이다.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도입 이전에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 <러브레터>에 부치는 4가지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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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1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가 새해와 함께 다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맞이했다. 작품의 상징성만큼 숱한 재개봉으로 익숙한 영화지만 이번엔 탄생 30주년이라는 남다른 의미와 함께다. 1999년 국내에 정식으로 첫 개봉했을 때와 같은 세로 자막 형태로 보다 정확하게 다듬은 번역도 제공된다. 눈 쌓인 오타루의 설원과 재회하는 반가움이, 뜻하지 않게 더욱 애틋한 그림자를 입게 된 것은 그러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러브레터>의 표정이자 상징.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급작스러운 부고와 함께 다시 마주하는 <러브레터>는 시절과 만남의 유한함을 절감케 한다. 당대에 비디오테이프로 먼저 영화를 접했던 세대와 이제야 비로소 “오겡키데스카?”의 실체를 극장에서 마주하는 세대의 경험을 나누어보며, 새롭게 만나는 전설적 멜로드라마를 복기해보았다. 작품 비평과 김화진 소설가의 에세이, 배급사 워터홀컴퍼니의 재개봉 비하인드를 함께 전한
[커버] 여전히, 잘 지내나요?, 3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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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알레고리를 걷어내고 나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는 곧 죽음을 맞이할 육신과 그 죽음 앞에 놓여 있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영화로 보인다. 여기에는 전장을 누비고 사랑을 나누며 펜을 쥐고 글을 쓰던 몸의 확실한 죽음이 있다. 마사(틸다 스윈턴)가 사후 세계의 유령처럼 보이는 순간이 몇초간 있다고 하더라도 <룸 넥스트 도어>에서의 죽음은 관념적 사유를 활보하던 한 존재와 그 세계의 끝이라기보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육신의 종언에 더 가깝게 그려진다.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필름영화에서 디지털영화로 전환되는 한 시절을 소환한다. 기억을 잃은 배우 훌리오(호세 코로나도)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실패한 영화감독 미겔(마놀로 솔로)이 저물어가는 필름영화 시대를 바라보며 이제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려거든 두눈을 감으라 요청한다.
디지털시네마 패키지 이전에 셀룰로이드 필름 릴은 오랜 세월 영화의 몸과도 같이 여겨졌으므로 <
[비평] 어느 육신의 죽음, <룸 넥스트 도어>와 <클로즈 유어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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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에서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자를, 반대로 총기 사용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은 후자를 택한다. 총이 사람을 죽인다는 주장은 총 자체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말에서 총은 단순한 도구로 간주되어 칼이나 다른 흉기로 대체 가능한 것이 된다. 양쪽 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나로서는 총구가 사람을 향해 겨누어지고 총알이 발사되는 것 외에 총이 다르게 사용될 일이 있을까 싶어 전자에 마음이 갔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과학기술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이 문제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총과 사람 중 어떤 쪽도 사람을 죽이는 본질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총과 사람이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 혹은 ‘사람이 방아쇠를 당긴 총’
[임소연의 클로징] 총과 여자 그리고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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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교수
여기 한 여성의 몸짓이 있다. 간소한 가구가 놓인 가정의 실내 공간 안에 있다. 꼼짝없이 피사체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앞에 있다. 지속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플랑세캉스 안에 있다. 부엌 가스 조리대 앞에 서 있던 여인은 복도로 나가서 한 남성에게 문을 열어준다. 복도 끝의 방 안으로 사라졌던 여성은 남성과 함께 방문을 열고 나와 우리가 보고 있는 시각적 장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남성이 떠나고 난 후 여성은 다시 부엌, 방, 욕실 등 가정의 평범한 공간 속에서 일상적인 동작을 이어간다. 가스 조리대 앞에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서서 불을 조절하고, 두손으로 방의 창문을 열고, 초록색 벽 앞의 흰색 욕조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씻는다. 몸을 다 씻고 나서는 부지런한 손동작으로 욕조를 닦는다. 식탁보를 깔고, 그릇을 놓고, 감자를 깎고, 고기를 저민다. 3시간10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우리는 거의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일하는’ 여성, 주부, 어
[이나라의 누구의 예술도 아닌 영화] 샹탈 아케르만과 춤추는 몸, <잔느 딜망>의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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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경매시장에 다녀왔다. 소들이 사고 팔리는 곳이다. 다들 소 경매시장이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풍경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텔레비전에서 종종 봤던 풍경이라 낯설지는 않았다. 수많은 소들이 통로쪽으로 엉덩이를 향한 채 일렬로 쭉 묶여 있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소들의 몸을 구석구석 살핀다. 그리고 경매가 끝나면 소들은 새로운 주인과 함께 트럭에 실려 떠난다.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 조금 난감했다. 밀폐된 공간에 수만 마리의 닭들이 사는 양계장이나 돼지들이 맞으며 끌려가는 도살장 앞에서 느꼈던 충격을 바로 받지는 않아서였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착각이 들어서일까. 많은 인파가 내 시선을 흩트리기도 했다. 소에게만 집중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찍으러 다녔다. 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담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말을 걸었다. 뭘 찍고 있냐, 유튜브 하는 거냐, 여기에 뭐 찍을 게 있냐. 그러다 한 무리의 젊은 사람들이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촬영하는 나
[장윤미의 인서트 숏] 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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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다니엘손 <세계 그 자체>
과학은 우리가 세계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보여준다. 암튼 세계는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는 것.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그런 것에 나는 큰 인상을 받고 호기심을 갖게 되며 훅 끌린다. 이 영화는 내겐 ‘그런 것’.
음악가 샘 겐델
나에겐 가장 새로운 음악가라고 느껴진다. 그가 참여한 모든 음악을 체크하며 즐긴다.
공연 <77쑈>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공연 중, 이 공연에 항상 가장 큰 관심이 있다.
마포구
내가 거주하며 일하는 동네이자 내 최고의 여행지. 심지어 나는 마포구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LIST] 백현진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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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는 주크박스 뮤지컬, 이라고 첫 문장을 쓰려다 주크박스라는 비유 자체가 너무 옛날 표현은 아닌가 하며 잠시 주저했다. 뮤지컬을 위해 새로 넘버를 창작하지 않고 기존 뮤지션의 노래를 서사화해 재구성한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일컫는다. 아바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올 슉 업> 등이 대표적이다. <광화문 연가>는 가수 이문세와의 협업으로 대중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광화문 연가>는 기성 뮤지션의 곡을 무대 서사로 재편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곡이 (좋은 의미로) 중장년 관객들을 공략하는 ‘옛날 감성’의 노래라는 점에서 흔쾌히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칭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명우는 생을 떠나기 1분 전 신비의 존재 월하와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갓 스무살이 된 1980년대에 만난 첫사랑 수아와의
[culture stage] 광화문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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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JTBC)가 돌아왔다. 5년 만에 “원조 국민 쿡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예전 모습 그대로. 김성주와 안정환은 여전히 특유의 입담과 적절한 ‘깨방정’ 진행으로 게스트와 요리사들이 프로그램에 편안하게 스며들게 한다. 서로를 ‘디스’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절친’인 요리사들의 요리 대결도, 요리하는 장면을 보다보면 어느새 군침이 도는 것도 익숙하다. 에드워드 리, 최강록, 이미영, 박은영 등 2024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했던 요리사들이 새롭게 투입된 것 빼고는 변한 게 없다. 심지어 불균형한 성비까지 그대로다.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은 프로그램에 독일까, 약일까? 포맷이나 진행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대중문화 생태계에서 게으른 기획이라 여겨지기 쉽다. ‘올드’한 것으로 취급되어 외면당할 수도 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인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수경의 TVIEW] 냉장고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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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이후 레나타 레인스베를 만날 일이 부쩍 늘었다. 몇주 전 레인스베의 주연작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가 개봉했고 <무죄추정>도 레인스베가 제 몫을 다한 Apple TV+의 시리즈였다. 레인스베의 새로운 얼굴은 <언데드 다루는 법>에서도 펼쳐질 예정이다. 안나(레나타 레인스베)는 어린 아들을, 데이빗(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은 아내 에바를 잃었다. 토라(벤테 보르숨) 또한 동성 연인 엘리자베트를 먼저 보냈다. 어느 날 원인불명의 정전이 벌어지고, 세상을 떠난 이들이 시체의 형상 그대로 오슬로에 돌아온다. <렛 미 인> <경계선> 등을 통해 북유럽 호러의 인장을 만든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기생충> <추락의 해부> <아노라> 등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북미에 배급한 네온(NEON)의 감각을 믿어봐도 좋을 영화다. <
[coming soon] 언데드 다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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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고 실험적인 콘텐츠 전략을 선보이는 중이다. 미국내셔널풋볼리그(NFL)의 크리스마스 매치업과 같은 이색적 스포츠 콘텐츠, 어김없이 전세계적 열풍을 도모 중인 <오징어 게임> 시즌2,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의 대표 프로그램인 <WWE RAW>의 독점 스트리밍까지. 넷플릭스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NFL의 크리스마스 매치업은 스포츠 콘텐츠를 향한 넷플릭스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걸음이었다. 사고 없는 완벽한 생중계는 물론 비욘세의 하프타임 이벤트 공연까지, 슈퍼볼 경기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경기 중간 넷플릭스의 새로운 콘텐츠 광고를 배치하는 등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전략도 효과적이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글자 그대로 난리가 났다. 3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이트 진로, 오뚜기 등 다양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2025년의 넷플릭스를 규정하는 네 가지 키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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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달력 교체하는 날이다. 매년 새해가 오면 이렇게 되뇌어왔다. 지난 1년의 후회와 다가올 새해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주문. 한해의 끝자락에 설 때마다 매번 우울감에 취한다. 1년 동안 해놓은 일을 정리하다 보면 살짝 초라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내년엔 뭔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싫었다. 그래서 종종 냉소주의의 주문을 되뇐다. 1년의 끝과 시작이란 그저 숫자일 뿐, 괜한 의미 부여하지 말자. 자책도 부담도 내려놓자. 아무것도 아니다.
올해는 그런 주문을 되뇔 필요가 없었다. 일상이 무너진 탓에 연말연시 준비된 여러 순간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매년 소소한 우울감에 시달렸는데 막상 자책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보니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2024년 12월 이후 이어진 거대한 상실 앞에서 한국 사회는 일제히 얼어붙었다. 숨쉬기가 어렵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몸이 아프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최선의 최선, 30주년을 여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