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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숏 원 킬!’ <파파> 촬영현장의 슬로건은 ‘두번은 없다’였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90% 이상을 촬영한 <파파> 제작진은 5주 동안 25회의 촬영을 어떻게든 오차없이 끝마쳐야 했다. 시간이 곧 돈인 상황에서 오늘 못 찍으면 내일 찍자는 요량은 아예 품지도 못했다. 촉박한 일정 탓에 배우들은 모니터조차 확인하지 못했고, 제작진은 현장편집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한지승 감독이 지난해 여름을 악몽의 나날로 기억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승 감독은 무사히 돌아왔고, 그의 손엔 <파파>가 들려 있었다. 한지승 감독이 한여름밤의 악몽을 견딜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
-<싸움>(2007) 끝내고 어떻게 지냈나.
=일단 반성부터 했다. <싸움>은 관객과 호흡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끌고 간 영화였다. 진심을 담아서 고스란히 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실이 아닌 외피에만 너무 신경을 썼다. <파파
[한지승] 억지로 울리고 웃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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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00만원과 치킨집을 경영하는 악바리 아내, 아빠보다 선동열을 좋아하는 아들을 가진 <퍼펙트 게임>의 박만수가 홈런을 때렸다. 홈런볼이 그리는 포물선에서 또 다른 남자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드라마 <히트>의 ‘미키성식’ 이후 <비스티 보이즈> <심야의 FM> <부당거래> <통증>에서 마동석을 통해 현신한 남자들이다. 현실의 무게와 소심한 내성에 짓눌려 있는 그들은 폭력적일 때도 절박해 보였다. 특히 여성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덩치 큰 남자의 뒷모습이 짠했다. 그간에 억눌려 쌓였던 감정의 무게가 박만수를 통해 터져나왔고, 그래서 박만수는 마동석이 연기한 남자들의 결정판이 됐다. <퍼펙트 게임> 이후 마동석의 다음 타석은 빨리 돌아왔다. 그는 현재 2012년 1월과 2월의 한국영화를 잇는 키워드 중 하나다. 지난해에서 넘어온 <퍼펙트 게임>은 물론이고 우정출연으로 등장한 <댄싱퀸>
[마동석] 연기는 앙상블, 어느 지점에서 나를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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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이라고 해주세요. 지금 초심의 자세란 말이에요. (웃음)” 이나영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손사래를 친다. 10년 넘게 연기생활을 해왔으니 이제 중견 연기자가 아니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살인을 한 늑대개를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유하 감독의 스릴러영화 <하울링>에서 이나영은 차은영이라는 형사를 연기한다. 이나영은 <하울링>을 촬영하면서 스스로 여러 가지 도전 과제를 만들어냈다. 그 과제들을 수행하는 과정이 그녀가 말하는 ‘초심의 자세’다.
우선 이나영은 오토바이를 배워야 했다. “강력계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은영이라는 인물은 오토바이 순찰대에 있었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기본이었어요. 면허도 따야 했죠. 박정률, 주영민 무술감독에게 논두렁에서 650cc 오토바이를 배웠어요. (웃음)” 스쿠터도 타본 적 없는 이나영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때문에 <하울링>을 선택하기도 했다. “제가 그런 걸 좋아해서요.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나영] 솔직한 그녀가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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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대한민국 영화 속 형사는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에서 논두렁을 구르며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국영화의 무수한 형사들이 박두만에 대한 찬양을 복제로 오마주로 바꿔가며 형사 캐릭터를 유지 계승하는 동안, 그 기원이 되었던 남자는 건달과 산악인, 한강 매점의 아저씨, 뱀파이어가 되어 오히려 ‘원형’에 대한 부담을 벗고 있었다. <하울링>의 형사 상길은 <살인의 추억> 이후 단 한번도 형사 연기를 한 적 없던 그가 9년 만에 택한 형사 역할이다.
“유하 감독이 깜짝 놀라더라. 설마 송강호가 하겠나 싶었다고 하더라.” <하울링>은 늑대개가 연루된 연쇄살인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상길과 여형사 은영(이나영)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파트너십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노나미 아사의 원작 <얼어붙은 송곳니>는 단연 여형사의 심리적 변화가 부각되는 구성이다. 유하 감독 역시 이번엔 <말죽거리 잔혹사>의 거
[송강호] 형사의 원형,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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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형사, 진작 이렇게 하고 다녔어야지~.” 표지 촬영 중 포즈를 취하던 송강호가 이나영에게 농담을 건넨다. 송강호의 농담에 스튜디오의 모든 스탭들은 자지러지고 이나영은 쑥스러워하는 눈치다. 송강호와 이나영은 유하 감독의 스릴러영화 <하울링>에서 파트너 형사로 출연한다. 논두렁을 구르던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이후 9년 만에 형사 역할로 돌아온 송강호는 승진에 매번 실패하고 말썽만 일으키는 아들을 둔 생활형 형사 조상길로 출연한다. 이나영은 오토바이 순찰대 출신으로 강력계에 갓 들어온 형사 차은영을 연기한다. 흔하지 않은 남녀 파트너 형사로 만난 둘은 살인을 한 늑대개와 연루된 사건을 좇는다. 송강호의 연기에서 여유로운 연륜을 기대할 수 있다면 이나영에게서는 첫 형사 연기의 패기가 엿보인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하울링>의 두 형사와 똑 닮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인 고참 송강호와 신참은 아니지만 스스로 신참임을 자처하는
[송강호, 이나영] 연륜과 패기의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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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장발이 아니어서… 누군지.
=형배(하정우)의 지시로 익현(최민식)을 형님처럼 모시지만, 사실 그가 자기 자리를 뺏는 것 같아 내내 못마땅한 형배의 오른팔 박창우를 연기했다. 속마음이 어떤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저도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습니다”라는 대사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친구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다 첫 번째 영화 출연작에서 무척 큰 역할을 맡았다.
=몇번 오디션을 보긴 했지만 영화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개인적으로 절박한 상황이어서 합격이 큰 힘이 됐다. 대구 출신이라 사투리 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웃음)
-연극 <보고 싶습니다> <라이어>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우연히 <보고 싶습니다>라는 연극에 대해 알게 된 뒤 미친 듯이 주인공 ‘손독희’를 연기하고 싶었고 그게 결국 서울 대학로로 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어딘가 거칠면서도 섬세한, 그리움이 가득한 연극이다. 그리고 <라이어&
[who are you] 김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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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외모와 달리 가지고 오는 시나리오는 정말 골때린다.” 이석훈 감독의 전작 <방과후 옥상> <두 얼굴의 여친>을 함께한 스탭에게 그가 어떤 감독이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온 이석훈 감독을 보니 확실히 외모는 모범생처럼 보였다. 이 얘기를 들은 그는 웃으면서 말한다. “학교를 졸업한 뒤 스크립터로 현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오전 9시에 편집실에 출근해 순서편집하고 오후 5시에 퇴근했다. 규칙적인 패턴으로 일을 하다보니 ‘공무원’, ‘법대생’, 그런 별명이 많이 붙었다.” 영화는 감독을 닮는다더니 <댄싱퀸> 역시 모범적인 코미디영화다. 서울시장이 되려는 남편 정민(황정민)과 남편 몰래 아이돌그룹 데뷔를 앞두고 가수와 서울시장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내 정화(엄정화), 부부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 그리고 춤과 음악과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두 얼굴의 여친> 이후 5년 만에 충무로에 복귀한 ‘모범생’ 이석
[이석훈] 두 얼굴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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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이 꼬였다. 커버스타 인터뷰가 예상보다 늦어졌고, 고아라는 최민식, 하정우 두 선배 배우들과 맞닥뜨리는 상황이 됐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아라를 보면서 이렇게 넘겨짚었다. 선배들과 시선 마주치기조차 어려우니 그냥 분장실로 직행하겠지, 그런데 웬걸. “안녕하세요. 고아랍니다!” 선배들 앞에 가서 또렷한 목소리로 배꼽인사를 한다. 심지어 최민식에겐 새해인사까지 곁들인다. <반올림>(2003)을 시작으로 드라마 <눈꽃>(2006), <누구세요?> <맨땅에 헤딩>, 영화 <푸른 늑대: 땅끝 바다가 다하는 곳까지> <스바루> 등에 출연한 10년차 배우 고아라.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신인배우’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페이스 메이커> <파파> 등 2012년 초에 한국영화 2편을 양손에 들고 찾아온 고아라는 인터뷰 내내 ‘이름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몇번이고 말했다. 보일락 말락이 아니라
[고아라] 미션: 파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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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의뢰인>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 <러브픽션> 촬영, 그리고 백상예술대상에서 내건 약조를 완수하기 위한 국토대장정과 9일간 세편의 단편영화를 릴레이로 찍는 프로젝트. 200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두해 동안 하정우가 일과 일 사이에 가졌던 가장 긴 휴식은 보름 남짓에 불과했다. “해보니까, 부작용이 있더군요.” 실험 결과를 보고하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의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이 근면한 배우가 안타까워 속엣말로 물었다. 저, 그걸 꼭… 해봐야만 아나요? 윤종빈 감독과의 세 번째 작업 <범죄와의 전쟁>에서 부산 폭력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로 분한 하정우는 꼭 필요한 장면에만 나와 정확한 점에다 바둑돌을 놓아 집을 짓고 슬쩍 물러나는 연기를 한다. 조금 말하고, 가만있다 느닷없이 몰아서 움직인다. 러닝타임의 상당량을 거의 무성영화처럼 대사도 없이 상대도 없이 몸만으로 연
[하정우] 프로파일러형 배우,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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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깡패 아입니다. 공무원 출신입니다. 공무원.” 아내와 삼남매, 그리고 결혼도 챙겨줘야 할 두 여동생, 그런 가족을 위해 동료들과 거리낌없이 비리를 저지르던 세관원 최익현은 우연히 알게 된 ‘먼 친척’이자 부산 최대 폭력 조직 보스 최형배를 만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저 밀수품을 빼돌리고 뒷돈을 받아 챙기던 수준과는 거리가 먼, 나이트클럽을 두고 상대 조직과 맞짱을 뜨고 정치인들을 구워삶아 호텔 카지노의 운영권을 따내는 ‘로비의 신’이 된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까지 왔는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검은 물이 들어간다. 하지만 최익현은 개의치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이 바라던 바였는지도 모른다.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일명 ‘반달’의 길, 그렇게 허세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지독한 생존본능은 그를 그렇게 ‘괴물’로 만들어간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감옥에 갇히기 직전 모습이라고 하면 맞을까. 최익현은 딱히 모델이 된 남자가 없다.
[최민식] 끝을 보는 남자,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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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나쁜 놈과 손을 잡고, 그러다 자기도 나쁜 놈이 되고 결국에는 누가 더 나쁜지 경쟁하는 지경에 이른다. 의리라는 거짓된 이름으로 편법과 권모술수가 횡행하던 시절,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순찰 중 적발한 히로뽕을 계기로 우연히 부산 최대 폭력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게 된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는 시기를 전후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꼰대’들의 세상이자, 서로 넘버원이 되려고 발버둥치던 ‘나쁜 놈’들의 춘추전국시대다. 충무로 남자배우의 신구 대결을 보는 듯한 최민식과 하정우의 호흡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꽉 채운 그 무엇이다. 곧 죽어도 자신은 공무원이라고 우기는 허세 가득한 ‘반달’ 최민식과 ‘건달은 싸워야 건달’이라는 정통 건달 하정우가 만났다.
[하정우, 최민식] Catch Me If You Can 캐치 미 이프 유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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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의 모녀 관계를 보며 실제 엄마 생각도 했나.
=원래 엄마랑 무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서울로 대학 진학해 떨어져 지내면서 애틋한 사이가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엄마가 한 개인으로 다가왔을 때 되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내가 지금껏 엄마 개인의 삶을 먹으면서 자라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묘한 공감이 왔다. 그래서 딸 ‘수진’을 꼭 하고 싶었다.
-임신부로 나온다. 특별히 힘들지 않았나.
=임신부처럼 무게중심을 뒤에다 놓고 몸을 무겁게 해야 했다. 반면 마음도 무거운 영화다. A, B 카메라가 동시에 돌아가니까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로 잡힐지 모르니 항상 긴장해야 했다. 그냥 내 몸이 아니다, 생각했다. (웃음)
-기억에 남는 장면은.
=큰이모(김미향)에게 대들면서 싸우는 장면. 막 병실로 달려와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숨이 가쁜 상황에서 스스로도 계산하지 않은 느낌의 연기가 나왔다. 그때 엄마 현순과 닮아 있다는 얘기를 들어 뿌듯했다. 그런데 김미향
[who are you] 한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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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은 일종의 도박이다. 관객이 기대했던 감정을 클로즈업 숏이 제대로 터트리지 못하면 리스크는 곱절이 된다. 1월12일 개봉하는 <밍크코트>는 클로즈업의 영화다. 배우에 대한 믿음 없이는 찍을 수 없는 영화라는 뜻이다. 그 결과는? 지난해 말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들은 <밍크코트>에 대상을 안기며 이렇게 덧붙였다.
“주연배우 황정민씨가 보여준 현순은 최근 충무로와 독립영화계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캐릭터였습니다”라고. <밍크코트>의 황정민은 극중 현순에 빙의된 것 같은 광기의 연기를 선보이며, 보는 이를 시종 리드한다. 2년 전 <하녀>에서 은이(전도연)의 친구 역으로 잠깐 얼굴을 비춘 것을 제외하면, <지구를 지켜라!>(2003)의 순이 역을 맡은 뒤 대부분의 시간을 연극 무대에서 보내왔던 황정민. 그녀가 돌아왔다. 제대로 돌아왔다.
-첫눈에 알아보지 못해 죄송해요. 너무 예쁘게 하고 나오
[황정민] 머릿속 계산보다 몸의 경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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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은 트위터에 <부러진 화살>에 관해 안성기와 나눈 대화를 올렸다. “형님! <부러진 화살> 죽인다면서요?”라고 묻자 안성기는 “응, 본 사람들이 좋아해. 극장·배급 관계자들도 호감을 가져서 괜찮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박중훈의 인사는 “야아~ 잘됐네요. 개봉하면 볼게요”. 그러자 안성기의 대답. “<라디오 스타> 이후로 내 연기 평가가 제일 좋네….”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가 좋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안성기처럼 좀체 세월의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바꿔 말하자면 연기에 대한 평가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관록의 배우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워낙 좋아하니까 또 극장을 찾고 싶다”고 아이처럼 말하는 그를 보면서 묘한 신선함이 든다. 그렇게 안성기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게 여전히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고 싶은 배우다.
안성기를 만난 곳은 공교롭게도 헌법재판소 근처 카페였다. <부러진
[안성기] '국민배우'를 넘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