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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은 2008년 상암동 신청사 개관 이래 알찬 성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전임 조선희 원장 시절인 2007년 9월 국내 최초로 양주남의 <미몽>(1936) 등 7편의 영화가 동시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극영화인 안종화의 <청춘의 십자로>(1934)가 문화재청의 심의 및 실사를 거쳐 지난 2월 등록문화재(제488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시네마테크KOFA 관객 수는 지난 4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 2009년 9월 이병훈 자료원장이 취임한 이듬해인 2010년에는 거의 3배 가까운 관객 증가율을 보였다. 한편, 지난 2월17일에는 올해의 주요 사업계획을 발표하며 영상자료원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제2보존센터 건립을 발표했다. 지난 몇년간 이어져온 이런 의미있는 성장 뒤에는 많은 이들이 이병훈 원장의 묵묵한 추진력이 큰 바탕이 됐다고들 얘기한다. 공식임기 3년의 중간평가를 겸하여 자료원장으로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그를 만났
[이병훈] “영화도 문화재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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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나타난 김소연은 마치 신인배우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체인지> 이후 처음 와봐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여유보다 설렘이 느껴졌다. <체인지>라면 벌써 15년 전이다. 번개 맞아 남녀 고교생의 몸이 뒤바뀌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원류 격인 그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서극의 <칠검>에 고려시대 여인으로 출연한 적도 있지만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긴 힘들었다. 비중도 적었거니와 2주 동안 자신이 등장하는 부분의 번역본만 받아 소화해야 했던 역할이라 숲이 아닌 나무만 볼 수밖에 없었던 작업이었다.
열네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해 서른셋의 성숙한 여배우로 자리잡기까지 그녀의 안마당은 드라마였다. <순풍 산부인과>(1998)에서 오지명의 셋째 딸로 나와 나름 똑똑한 의사지만 엉뚱한 매력을 발산했던 것을 시작으로 <이브의 모든 것>(2000년)에서는 차가운 인상을 백분 활용해 최고가 아니면
[김소연] TV에서 스크린으로, 연기를 덜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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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커피를 찾는다. 자리에 앉아선 제일 먼저 담배를 꺼내 문다. 얘기할 땐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직설화법을 즐겨 쓴다. 머쓱한 얘기를 할 땐 숨겨둔 주름을 만면에 쓰윽 드리운다. “제가 인상이 세서 무섭죠?” 슈트가 잘 어울린다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 이렇다.
주진모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을 잘 관찰하는 사람이다. 레이더에 어떤 징후가 감지되면 즉각 반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일차적으론 방어기제가 동원되고, 이거다 싶으면 모험심과 책임감으로 내달린다. <가비>의 일리치가 되기로 결심할 때도 그랬다. 주진모는 <가비>를 통해 “진짜 큰 공부를 했다”. 장윤현 감독에게서 일리치라는 “활어와도 같은 캐릭터”를 받아든 그는 주방을 총책임지는 요리사가 된 심정으로 비늘부터 손수 다듬기 시작했다. “시나리오의 48%는 내가 썼다”는 말은, 펜을 들고 책을 쓰지 않았다뿐이지 사실이었다. 일리치는 러시아에서 커피와 금괴
[주진모] 자존심보다 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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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현 감독의 <가비>는 일본의 고종암살 작전 즉 ‘가비 작전’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를 그린다. 주진모와 김소연은 각각 비운의 스파이 일리치와 따냐를 연기한다. 주진모는 <가비>를 통해 텅 빈 숲에 빼곡히 나무를 채우는 법을 배웠고, 김소연은 버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는 스크린 연기에 대해 공부했다. 그런데 소파에 앉아 있는 법부터 배우로서 다져온 경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배우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으니 그건 ‘맡겨만 주면 정말 잘할 수 있는데’의 자세였다. 한정된 이미지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털어놓은 두 배우는 간절하게 새 출발을 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주진모, 김소연이라는 배우의 빙산의 일각만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김소연, 주진모] 배우는 프로페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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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과 김민희의 상관관계는 늘 결속력이 약했다. 스타일 아이콘으로 확립된 스타성이 항상 김민희를 규정하는 일차적 재료가 되었다. 그녀를 수식할 때 연기는 ‘잘 맞는 옷’이 아니라, 미처 생각지 않았던 특별한 차림이었다. 데뷔 13년차, 그 진입장벽 너머의 김민희의 연기는 매 순간 아름다웠다. <화차>의 강선영은 그간의 배우 김민희가 쌓아온 능력을 모두 입증해낸다. 평범한 인간이 괴물이 되기까지의 여정. 베일을 벗기는 과정에서 김민희는 그 다양한 범주의 얼굴을, 모습을 빠뜨리지 않고 표현해낸다. 단언컨대 <화차>는 배우 김민희가 폭발한 지점이다. 그러니 이제 우린 김민희란 배우로 인해 한국영화가 무엇을 얻었는지에 관해 생각해볼 차례다.
-시사 반응이 뜨겁다. 같이 출연한 조성하씨가 관객 300만명이 넘으면 셔플댄스 추겠다는 공약을 했던데.
=그러게, 난 뭘 해야 할까. 옆에서 박수라도 쳐야겠다. (웃음)
-강선영은 배우라면 정말 욕심나는, 놓쳐선 안될
[김민희] 연기라는 잘 맞는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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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열아홉>의 도미는 쾌활하고 애교도 많다. 실제 본인의 모습은 어떤가.
=그런 모습이 없는 건 아닌데 겉으로 보면 도미랑 많이 다르다. 내성적이고 낯도 많이 가린다. 도미의 모습이 나오려면 10년쯤 같이 지내야 한다.
-도미는 호야(유연석)를 좋아하지만 호야의 마음은 서야(백진희)에게 가 있다. 연기하면서 질투심이나 서운함을 느끼진 않았나.
=연석 오빠가 진희는 여동생처럼 대하고 난 남동생처럼 대했다. 나도 여동생처럼 아껴줬으면 좋겠는데 남동생처럼 너무 막 대하니까 ‘난 왜?’ 그런 마음은 들더라. (웃음) 그런데 그러면서 쉽게 친해진 것 같다.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로 데뷔했다.
=그전에 잡지 모델로 활동했다. 길거리 캐스팅을 계기로 잡지 <쎄씨>의 전속모델 콘테스트에 나갔고, 합격했다. 소속사 없이 혼자 일하다 보니 연예기획사에서 전화가 자주 걸려왔다. 연기에 뜻이 없어 거절했는데 어느 말주변이 좋은 여자 대표님을 만나 홀려
[who are you] 엄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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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연애의 감정에 관한 다양한 곡절이 담긴 <러브픽션>을 보고 나면 누구나 이렇게 묻게 된다. 감독의 실제 연애 경험담은 얼마나 반영됐을까. “멜로영화나 로맨스영화를 찍은 감독들이라면 자신이 연애하며 느꼈던 좋았던 것과 나빴던 것 혹은 반성해야 할 것들까지 녹여넣으려고 하긴 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러브픽션>은 나의 실제 연애담과 그다지 상관이 없다.” 전계수 감독의 말이다. 듣고 보니 좀 이상하다. 시사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했던 “이건 전적으로 나의 연애담이고 과거 여자친구들을 울린 반성의 의미에서 제작했다”는 말과는 상반되지 않은가. 전계수 감독은 그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크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속사정까지 자세히 밝히기는 어려워도 하여간에 그 말 때문에 요즘 많이 곤혹스럽다고도 했다. 이제라도 제대로 정정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러니 바꿔주자. <러브픽션>은 감독 전계수의 실제 연애담이 아니라 감독 전계수의 연애에 관한
[전계수] “연애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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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살았던 시대가 그녀의 연기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먼로가 당시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를 쥐락펴락하는 동안,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먼로가 활동하던 1930∼1950년대 할리우드가 소비한 다소 소박한 섹시함의 개념이다. 1930년대 들어 청교도주의적인 제작 규범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영화에서 에로틱한 이미지는 모두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먼로는 규제의 한가운데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검열에서 자유로워진 1960년대 이전에 활동을 접었다. 말하자면 먼로는 그녀가 우상으로 여겼던 진 할로처럼 아슬아슬할 만큼 솔직하고 성적인 대사로 섹시함을 과시하는 대신 나름의 정숙함을 유지해야 했고, 그녀 이후 섹시함의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과거 할리우드 배우들의 수줍음을 모두 내다버린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옷을 다 벗지 않고서도 그 이상의 섹시함을 보여줘야 했다. 데이비드 톰슨은 말한다. “그녀의 출연작 중 단 한 장면도 섹스장면이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만약 한 장면이라도 섹
[마릴린 먼로] 단 한번의 섹스장면도 없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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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마릴린 먼로가 우상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녀 스스로 마릴린 먼로와 노마 진 모텐슨이라는 두명의 삶을 풀 수 없을 정도로 촘촘히 엮어놓았다는 점에서 오는 신비감이 클 것이다. 1946년 처음 그녀를 고용한 스튜디오 이십세기 폭스사는 먼로를 당시 최고의 섹스 심벌이었던 진 할로를 능가할 재목 이라 판단했고, 노마 진보다는 좀더 고상해 보이는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을 급조해 사용하게 했다. 두 이름이 충돌한 시기이자, 이후 그녀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 바로 두개의 삶이 시작된 시작점이기도 하다. 먼로에 관한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을 연출한 사이먼 커티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고의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마릴린 먼로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노마 진의 삶이 치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녀의 결혼, 사적인 일화들,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마릴린 먼로라는 신화에 기여하고 있다.”
1942년 첫 번째 남편 짐 도허티와의 결
[마릴린 먼로] 마릴린과 노마 진, 두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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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사망 50주년이다. 이미 박제가 되고도 남을 그 시간 동안, 마릴린 먼로라는 아이콘을 향한 뜨거운 관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불행한 유년기,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성공, 그리고 미스터리한 죽음은 그녀 스스로의 삶에 국한되지 않고 거대한 연예산업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책과 영화, 다큐멘터리가 마릴린 먼로를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20세기의 여배우가 21세기에도 여전히 핫할 수 있는 이유를 먼로의 지난 삶을 통해 유추해본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올해로 마릴린 먼로의 나이는 85살이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섬싱스 갓 투 기브>(1962)를 촬영하다 해고된 사실도 잠깐 잊어보자. 그랬다면 마지막으로 그녀가 구원을 원했던 케네디가 남자들의 비극적 최후를 경험했을 거고, 그 충격으로 남자 따윈 잊고 새로운 다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항간에 떠도는 대로 타살설이 맞다면, 케네디의 죽음으로 그녀에게도 면죄부가
[마릴린 먼로] 죽어도 죽지 않는 20세기의 가장 기막힌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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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팔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팔에 살짝 닭살이 돋았다. 가느다란 두팔을 쓸어내리며 백진희가 말한다. “체력이 워낙 좋아서 밤새워도 끄떡없고, 보기보다 튼튼해요.” 통통할 것 같던 볼살도 어디다 숨겨놓고 온 것 같았다. “다들 그러세요. 실제로 보면 되게 홀쭉하다고.” 역시, 백진희는 배반의 쾌감을 안겨주는 배우다.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에서의 밝고 꿋꿋한 모습을 현실의 백진희에게 대입했다가는 실망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캐릭터와 배우를 하나의 인물로 오해하곤 한다. <하이킥3>는 일주일에 5일이나 방송되는 데다 극중 캐릭터의 이름과 실제 배우의 이름이 같아 더더욱 그런 오해를 살 법하다. “실제로는 말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무슨 일 있어?’, ‘힘없어 보이네’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게 원래 제 모습인데, 요즘 들어 저도 좀 헷갈리는 것 같아요. 원래의 내가 어땠지? 그리고 저 안 당 돌한데…. <
[백진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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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된 소감은.
=난 사실 마티(그는 마틴 스코시즈를 애칭으로 부른다.-편집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휴고>에 출연한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마어마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됐다. 출연을 확정짓고 마티의 영화 <에비에이터>와 <셔터 아일랜드> <디파티드>를 봤는데 정말 좋더라. 그에겐 다른 감독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는 좀 봤나.
=촬영에 들어가기 전 마티가 숙제로 내줘서 봤다. 또 다른 숙제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과 <7인의 사무라이>, <매직 박스> 등 마티에게 영감을 준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들을 보며 나 역시 영감을 받았다. 언젠가 감독으로 카메라 뒤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촬영 중 선배들이 연기에 대해 조언을 해주던가.
=촬영 초기에 벤(킹슬리)이 가르쳐줬다. 카메라를 보고 연기해야 할 때는 카메라에 가장 가까
[who are you] 에이사 버터필드 Asa Butter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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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선(37) 촬영감독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0년대 중반 조명 스탭으로 일찌감치 영화 일을 시작했고, <바람난 가족>(2003)으로 남들보다 빨리 조명감독 타이틀도 얻었다. 그랬던 그가 <비스티 보이즈>(2008) 때부터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있다. 윤종빈 감독은 <비스티 보이즈>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그에게 촬영을 맡겼다. “조명감독 출신이라 빛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 촬영으로 멋을 부리려고 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찍어서가 아니다.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찍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배우의 눈을 겨냥한 그의 카메라는 투박하고 동시에 묵직한데, 그런 시선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윤종빈 감독은 다른 촬영감독들과 다른 그의 이력이야말로 그의 카메라가 갖는 장점이라면서 “다음 작품도 무조건 같이할 것
[고락선] 클래식하게, 정석대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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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이 아니라 ‘뮤신’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주목받는 개그맨으로 출발했던 정성화는 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10년에는 <영웅>으로 국내 뮤지컬 시상식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한국 뮤지컬 대상’과 ‘더 뮤지컬 어워즈’의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영화는 새로운 도전 무대다. <황산벌>(2003)로 ‘첫삽’을 뜬 이후 지난해에는 <히트>에서 불법 이종 격투기장을 찾은 까칠하고 변덕스런 고객, <위험한 상견례>에서 경상도 여자 다홍(이시영)의 오빠이자 순정만화 마니아로 출연해 뮤지컬로 바쁜 가운데 의미있는 ‘다작’을 했다.
최근 35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그의 영화 출연작들 중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될 <댄싱퀸>은 그 흥행 결과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의 정성화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젊
[정성화] 이 배우가 짓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