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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광섭 | 롯데시네마 대표
2004 31위 | 2003 22위
롯데시네마의 기세가 무섭다. 영화계 진출을 선언한 2003년 이후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던 롯데가 공격적인 확장노선을 펼치고 있는 것. 롯데의 거침없는 행보는 우선 극장에서 드러난다. 최근 서울 도심에 ‘명품 영화관’을 지향하는 에비뉴엘관을 연 데 이어 서울을 중심으로 스크린 수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롯데의 생각대로라면 현재 15개 극장 118개 스크린은 올해 말까지 28개 극장 203개 스크린으로 거의 두배 가까이 늘어나고, 2008년까지 450여개 스크린을 확보하게 된다. 투자·배급 부문 또한 대폭 확충해 이미 개봉한 <B형 남자친구>를 포함해 8편의 한국영화를 배급하게 된다. 특히 이중에는 임권택 감독의 신작 <천년학>도 들어 있어 롯데의 의지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게 한다. 롯데가 CJ, 쇼박스와 함께 3강 체제를 꾸리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12. 이승
2005 충무로 파워 50 [3] - 11위~2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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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동호 | CJ엔터테인먼트·CJ CGV 대표
2004 4위 | 2003 9위 | 2002 15위
CJ 독주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인가. 박동호 CJ엔터테인먼트·CJ CGV 대표가 8년 아성의 강우석 감독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충무로에서 CJ의 파워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외형적으로 투자에서 배급, 제작, 상영에 이르기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뤄냈을 뿐 아니라 싸이더스, 영화사 봄 등 탄탄한 제작사와의 제휴, 프리머스 인수 등 내실면에서도 충무로의 절대자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기 때문. 극장체인 CGV 또한 현재 확보하고 있는 29개 극장의 233개 스크린 외에 올해도 6개 극장 46개 스크린을 늘릴 계획이다. 특히 최근 시네마서비스에 150억원을 투자키로 한 결정은 CJ의 절대파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CJ의 발걸음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일본의 초대형 미디어기업 가도카와와 제휴를 맺었고, 중국시장을 노크하고 있으며, 미국시
2005 충무로 파워 50 [2] - 1위~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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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 영화산업을 이끄는가
대기업과 스타감독과 배우의 상승, 충무로 자본과 프로듀서의 하락. 2005 충무로 파워50의 결과는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지형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횟수로는 11번째이며, 순위를 매긴 것으론 9번째에 해당하는 2005 파워50에서 가장 놀라운 결과는 ‘파워 넘버원’의 교체다. 1997년 이후 내리 8차례 1위를 기록했던 강우석 감독이 한 계단 내려앉은 대신 CJ엔터테인먼트의 박동호 대표가 최초로 ‘권력교체’에 성공했다. 이는 대기업 자본의 ‘파워 업그레이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쇼박스와 롯데시네마 관계자들의 순위가 지난해보다 급상승한 결과는 CJ-쇼박스(오리온 그룹)-롯데의 ‘신3강’ 체제가 구축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박찬욱, 강제규, 봉준호 등 감독들과 송강호, 배용준 등 배우의 대거 진입 또한 감독 파워와 스타 파워가 커져만 가는 충무로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배우는 11명이 올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반면에 제
2005 충무로 파워 50 [1] - 설문참가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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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6. “우리 형님으로 포장을 해달라니까”
1999년 7월, 모 감독 형제 찾아와 협박
“우리 형님으로 포장을 해달라니까요!” 그들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온 것은 오전 11시경, 찾아오겠다고 큰소리치더니, 몇 시간 뒤 정말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그들이 화가 난 건 한 배우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어떤 영화의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씨네21> 기자에게 자신이 출연한 다른 영화를 가리켜 “내가 출연했다고 무조건 좋은 영화라고 하진 않는다. 촬영할 때부터 실망스러웠고, 작품에 애정도 없다”고 했는데, 이 표현이 해당 영화를 연출한 감독과 그 동생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문제는 이 배우가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 데서 시작됐다. 졸지에 없는 말을 지어낸 꼴이 되어버린 <씨네21>에 정정 보도를 의뢰하러온 이들은, 절충안으로 감독의 포장, 즉 표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최보은 취재팀장과 김영진 기자가
<씨네21> 10년 사건과 실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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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보은아, 나 죽고 싶어”
1995년 4월, 창간하자마자 개편 들어간 사연
1995년 4월24일, <한겨레>를 떠나 ‘야인’으로 지내던 최보은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은아, 나 죽고 싶어.” 친구이자 동료인 <씨네21> 조선희 편집장이었다. 축배라도 들고 있을 줄 알았던 조 편집장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사람 같았다. 임진각에 있던 최보은씨는 만삭의 몸으로 한겨레신문사 앞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신문사 앞 갈빗집에 들어서자, 조 편집장은 넋나간 사람 모양 널브러져 있었다. 권근술 <한겨레> 사장이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고, 뒤늦게 합류한 최보은씨는 “창간호가 나온 것만으로도 업적”이라며 치어리더처럼 뛰어다녔지만, 납덩이 같은 분위기를 띄울 수는 없었다.
그날 아침, <씨네21> 창간호가 나왔더랬다. 기대 이하였다. 조선희 편집장은 “낯뜨거울 정도로 후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사이
<씨네21> 10년 사건과 실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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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10주년을 맞았다. 10년의 세월, 500권의 잡지로 남은 지난 3500일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1995년, 한국에서 영화주간지가 되겠냐는 회의와 불신 속에서 첫발을 내디딘 창간 준비팀의 고투는 말할 것도 없다. 영화 저널과 기자의 한계, 취재원과의 관계, 잡지의 노선, 시장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고달프고도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그간 잡지를 만들면서 우리가 어떤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또 당했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다. 진지한 성찰과 겸허한 반성을 기대하신 분들께는 다소 얄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냥 함께 웃고 떠들고 탄식하면서, <씨네21> 취재와 마감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 추억을 나누었으면 한다.
<씨네21> 10년 사건과 실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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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장관이었다. 6천여명에 달하는 거대 인파가 개막식장인 부산 수영만 야외극장으로 모여들었다.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수군거림은 기우였고, 9월13일은 “한국 영화사 최대 길일”이 됐다. 시네필들의 환호 속에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이 눈을 떴고, 27개국에서 날아든 170여편의 영화들이 9일 동안 연달아 기지개를 켜는 동안, 남포동 극장가는 넘쳐나는 관객으로 매일 흥청거렸다. 총관객 수 18만4071명. 매표 수익은 애초 기대했던 3억원을 훨씬 뛰어넘는 4억5천만원이나 됐다.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미지의 영화들과 조우한 관객의 함성은 부산을 찾은 외국 게스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축제는 밤에도 이어졌다. 특히 해운대 앞 포장마차는 코리안 펍의 대명사가 됐고,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좌판에 자리깔고 앉은 파란 눈의 외국인들에게 소주잔 돌리기 바빴다. 관객의 부산영화제 애호증은 식지 않았다. 올해 10회 행사를 앞두고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간 이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3] -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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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탄생 100주년을 대한민국처럼 뜨겁게 기념한 나라는 없었다. 영화를 예술로, 영상문화를 대중문화의 심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탄생한 새로운 영화잡지들은, 그들을 낳은 흐름에 가속도를 보탰다. 영화잡지 시장은 5월 창간된 <씨네21>과 <키노>, 12월에 첫호를 낸 <프리미어>로 인해 재편됐다. <씨네21>은 <한겨레>의 저널리즘적 감각으로 영화광 문화를 폐쇄회로에서 끌어냈고 <키노>는 비타협적인 작가주의 비평의 관점을 견지했으며 <프리미어>는 국내 유일의 라이선스 영화잡지로서 사진과 할리우드에서 직송된 기사를 장점으로 내세웠다. 새로운 잡지들은 10대에 편중된 영화잡지 독자층을 30대 너머로 확장했고 감독과 제작자를 대중문화의 스타로 만들었다. 영화는 강의 리포트에서 일상대화까지 대학가 문화의 중심에 파고들었다. 영화예술에 대한 갈증은 창작과 배급 부문에서도 답을 찾았다. 국립영상원이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2] -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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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004 한국영화의 불타는 연대기
“가수 김광석이 죽었다. 김광석이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고 감독 허진호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촬영감독 유영길의 유작이 됐다. 유영길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눈을 갖고 있었다고 빈소에서 감독 이창동은 말했다. 이창동에게 메가폰을 들려준 건 제작자로 변신한 배우 명계남이었다. 스크린쿼터 집회에서 명계남은 명사회자로 통했다. 스크린쿼터 집회에는 감독 임권택도 빠지지 않았다. 임권택이 정부에 항의하며 삭발하던 날 배우 전도연은 울먹거렸다….”
지난 한국영화 10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네버엔딩 스토리다. 한번 들어서면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잊혀졌고, 다시 살아났다. 스크린쿼터는 바람 잘 날 없었고, 각양각색 전주(錢主)들이 으르렁거렸고, 덩치 큰 메이저 영화사들이 탄생했고, 무엇보다 3천편 이상 되는 영화들이 극장에 내걸렸다.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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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시내 라이트> Cine Lights
제작 남동철
감독 손홍주, 이종도
출연 안성기, 문근영
시나리오 이종도
진행 박혜명
옌볜어 교정 문근영
촬영·미술 손홍주
편집 박초로미
조명·세트 문성일, 김민주(디자인 이즈)
스타일리스트 이정민(안성기), 고민정(문근영)
의상협찬 이도, Lyle & Scott, Perry Ellis, 니체 이태리(이상 안성기) 시슬리, 레니본, 96ny(이상 문근영)
헤어 및 메이크업 이정민, 이지영(이상 안성기) 민지현(엘트레), 이희경(엘트레)(이상 문근영)
매니저 이바름(안성기), 한돈섭(문근영)
<시내 라이트> [4]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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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 10년 뒤
소녀는 시내리의 정기구독 10년 독자에게 주는 특별초청을 받고 채플린이 영화를 찍는 스튜디오로 찾아간다. 10년의 세월이 흘러서일까. 촬영장에 찾아갔지만 채플린은 소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녀 또한 수염을 깎은 채플린을 알아보지 못한다.
서로 어긋나는 두 사람.
소녀 | 10년 만이래서일까. 왜 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일까. 그래도 안 돌아갈 거야. 신께서 하나의 문을 닫을 때, 어딘가에선 창문을 열고 계신다고 하지 않았슴. 희망이란 좋은 거이 아니겠어. 아즈바이(아저씨), 이렇게 말씀하셨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채플린 | 음… 정기구독자를 초대했다는데 왜 소녀는 보이지 않는 걸까.
소녀, 채플린 서로 어깨가 엇나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 소녀는 입가에 손을 대고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채플린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하는 표정이다.
SCENE 5. 재회
시내리 스튜디오 창설 10주년
<시내 라이트> [3] - 10년 뒤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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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혹시 만나셨을지도 모르겠다.
춤추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 소녀를 말이다.
늘 웃고, 상냥하고, 그랫서 어디서 봤었노라고
착각이 들지 모르겠다.
소녀는 꽃을 판다.
그 꽃 한 송이가 그녀의 운명을 바꾼다.
SCENE 1. 10년 전 첫 만남
춤을 추던 꽃파는 소녀를, 지나가던 당대의 인기배우 채플린이 바라본다. 채플린은 소녀의 해맑은 눈동자에 반해 잠시 멈춰서 있다. 그리고 소녀에게 춤을 청한다. 우아하게 춤을 추는 채플린과 소녀. 소녀는 대스타와 춤을 춘 황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영화배우가 꿈인 소녀, 영화배우인 채플린.
채플린 | 너 참 눈이 맑게 생겼구나.
소녀 | 선생님, 선생님은 혹시 고저 영화배우, 그것도 인민배우 아니심까(아니십니까)?
채플린 | 머뭇머뭇. (싱긋 웃고는 손을 내밀어 춤을 청한다. 콧수염이 익살스럽다.)
소녀 | (처음엔 수줍어하다
<시내 라이트> [2] - 10년 전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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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안성기와 문근영 두 배우를 잡지의 얼굴로 초청하면서 특별한 표지를 기획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시티 라이트>에서 설정을 빌려 취재기자가 짤막한 시나리오를 썼고, 두 배우는 각각 채플린과 꽃을 파는 소녀 역을 맡아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했으며, 사진기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두 사람이 10주년 기념호의 얼굴이 된 데는 의미가 있다. 80년대를 충무로의 독보적인 주연배우로 활동한 안성기가 <씨네21>이 창간될 당시 ‘국민배우’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면, 어떤 여배우 계보에도 잇기 어려운 독특한 소녀성을 가진 문근영은 현재 만인의 누이이거나 조카 혹은 딸이다.
토요일 오후 1시.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달콤한 시간에 표지 촬영을 위해 두 배우와 여러 종류의 인력들이 스튜디오로 모였다. “공부하기 힘들지?” 안성기가 말을 건넨다. “그래도 고2 때보단 나아요. 고2 때까진 새로 배
<시내 라이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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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마그렙’(Maghreb)이라는 지명은 굉장히 낯설게 여겨진다. ‘마그렙’은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통상 ‘마그렙 영화’라 하면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모로코 등지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지칭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마그렙 영화들은 총 8편이 준비되어 있다. 낯선 지역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황홀한 이미지의 영토가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아프리카 북부지역의 영화들이면서도 지중해 북쪽, 특히 프랑스 영화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탓에 시네필적 감수성과 영화형식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영화들도 적지 않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 가운데 하나로서 <천일야화>를 떠올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것은 모로코 출신의 소설가 타하르 벤 젤룬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이슬람의 예술가들에겐 “거대한 집, 모든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7] - 마그렙 특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