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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커뮤니케이션의 개성은 재기발랄함이다. 그래서 코미디류의 통통 튀는 영화가 그쪽 팀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서도 기존의 전형적인 방법을 잘 쓰지 않는다. 키치적인 요소나 방법을 도입해 잘 활용한다. 그런 점이 많이 어필을 했던 팀인 것 같다. 그래서 특별히 포스터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걸 디자인적인 요소로 가장 커버를 잘하는 팀이다. 순발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김미희 좋은영화 대표)
히스토리
그림커뮤니케이션은 2000년 7월7일에 태어났다. 광고디자인사의 디자인팀장으로 이미 영화 포스터 작업을 해오던 배광호 실장은 그 팀의 해체와 함께 다른 지인들과 회사를 꾸렸다. 초기에는 멜로물 작업이 주를 이뤘고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와니와 준하>(2001) 등 그의 포스터들은 대부분 사진 자체의 감성을 살려 여백도 말을 하게 하는 서정적인 풍경화에 가까웠다. 최근 들어 이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사람들 [2] - 그림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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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통하게 하라!
“잠깐 밥먹고 올 테니까 그동안 끝내라고.”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포스터 촬영을 해야 했다는 한 사진작가의 회고는 까마득한 옛일이 아니다. 원치 않는 도둑촬영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때마다 뒷일은 언제나 포스터 디자이너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랬으니 보수 적고 일 많은 영화쪽 일은 디자인 업계에서 기피하는 분야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버틴 이들이 있었고, 이들 덕에 지난 3, 4년 동안 영화 포스터 디자인은 “몰라보게 바뀌었네”라는 말을 충무로 안팎에서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소개하는 이들은 지난 혹한기를 날밤 새워가며 버텨낸 주인공들이다. 이미지의 감흥을 말로 풀어내기 저어하는 이들을 붙잡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작업에 대해 물었다.
키포인트라면 파격도 서슴없다
“시나리오를 주면 항상 맘에 드는 표지를 만들어줬다. 매번 가져오는 시나리오 표지의 색감이나 글자 크기, 그리고 형태가 시나리오를 제대로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사람들 [1] - 꽃피는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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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상의 급진성과 내용상의 프로파간다”-김선
상영작 <자본장 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 필모그래피 <반변증법> <시간의식> <빛과 계급>
“노골적인 프로파간다가 좋다.” 지난해 쌍둥이 형인 김곡 감독과 함께 <시간의식> <반변증법>을 들고 이미지포럼을 찾았던 김선 감독의 말이다. 독립영화가 정치적인 선언을 뒤로 감추고, 좀더 대중적인 화법을 구사하면서 충무로 제작자들에게 구애를 던지기 시작한 지도 오랜 일.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이른바 문화적 세례를 받아 탈정치화됐다는 90년대 후반 학번의 입에서 튀어나온 선언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착취는 반복되고, 욕망은 충족되지 못하며, 언제나 공급은 수요를 초과하여 공황을 부르는 악몽 같은 자본주의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자본당선언>은 그 숨막히는 순환의 구조를, 엄격한 영화적 형식에 적용해 완성했다. 김선 감독에게 가장 큰 아쉬움은, 지루한
일본에서 만난 한국 독립영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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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는 사회를 지킨다”-황철민
상영작 <프락치> 필모그래피 <퍽햄릿>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 <옥천전투>
“저렇게 때깔나는 실험영화가 있다니!” 황철민 감독이 이미지포럼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1985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이다. 독일 유학 무렵 그가 일했던 독립·실험영화 상영관 ‘라거할레’가, 이미지포럼에서 만들어진 일본 실험영화를 상영했던 것. 그러나 “일본의 독립영화는 최대한 유예시켜야 하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 그는, 더이상 일본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70년대 이후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변잡기 일색으로 흐르게 된 일본의 독립영화”는 그저 사회의 노후함을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독립영화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거의 없지만, 사회의 바로미터가 될 수는 있다”. 황철민 감독은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역동성을 예술의 유정(油井)에 비유한다. 네오리얼리즘
일본에서 만난 한국 독립영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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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미래는 어디 있는가?
40여편의 한국 독립영화가 일본 관객을 만났다. 3월5일에서 11일까지 도쿄 이미지포럼에서 ‘한국 독립영화 2005 뉴시네마 리로디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영화제를 통해서였다. 길이와 장르를 불문한 이들 상영작들은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들. 그간 드라마와 상업영화를 통해 이루어졌던 한·일 문화교류의 깊이를 더해준 이번 행사는, 새로운 한국영화를 만나고 싶어하는 일본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 12명의 감독들이 자신의 최근작을 낯선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독립영화를, 주류영화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오랜 기간 최선을 다해온 주인공들이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독립영화판(?)에서 확고한 작업세계를 구축하여 안정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여섯명의 감독들을 만났다. 황철민, 이송희일, 채기
일본에서 만난 한국 독립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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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에이리언>의 한강수 타령쯤 되려나”
-웨타와는 일이 잘 진행됐다고 들었다.
=그렇다. 사실, 이 영화에 관해 고민할 때 한국영화의 예산 수준에서 이런 완성도 있는 3D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는데 일단 한고비를 넘긴 셈이다. 경험이 풍부한 그들로부터 내 스스로 자신이 없었던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듣고 나니 한시름 놓인다.
-그쪽에선 어떻게 받아들이던가.
=처음에 접촉할 때는 한국에서 SF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다니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번에 만났을 때, 웨타의 창립자이자 수장인 리처드 테일러는 우리가 시각효과 예산을 안 밝히니까 초조해하더라, 아주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를까봐. 멀리서 왔는데 거절하기도 힘든 것 아니겠나. 어쨌건 우리가 300만달러 수준이라고 하니까, “영화 전체 예산이?”라고 황급히 묻더라. 그래서 다시 “아니, 시각효과 예산만”이라고 했더니 너무 기뻐하면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더라. 그때
봉준호 감독의 <괴물> 프리프로덕션 [4] -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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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프리프로덕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화와 관련된 이미지들을 참조한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 당시에도 신디 셔먼 등의 사진이 작업실 곳곳에 붙어 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러 종류의 사진이 그의 책상 주변 벽을 메우고 있다. 이런 이미지들이 영화 속에 똑같은 구도와 앵글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준 영감이 영화 속으로 투영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그가 생각하는 이미지 컨셉은 “분쟁과 재앙, 상처받은 아이들과 고전 장르 이런 게 한데 뒤섞이는 것”이다.
①~③은 사진작가 찰리 화이트 사진집 <Charlie White: Photographs>에 담긴 작품들로, 봉 감독이 웨타에서 받아온 것. 봉 감독이 일상적인 시공간 속에 낯선 괴물이 출현한다는 기본적인 구상을 설명했더니 리처드 테일러가 대뜸 이 책을 줬다. LA의 과장됐다 싶을 정도로 일상적인 풍경 속에 괴생명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④~
봉준호 감독의 <괴물> 프리프로덕션 [3] - 괴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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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부터 괴물 디자인 시작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등 각종 SF영화의 DVD 서플먼트와 서적을 통해 비주얼디자인이 선결돼야 함을 알게 된 봉 감독은 2003년 12월 시나리오 작업을 본격화함과 동시에 hellnaut(그는 현재 한 게임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탓에 이름을 밝힐 수 없다)를 현실 속 동물과 상상력을 결합해 괴물의 외양을 창조하는 ‘크리처 디자이너’로 기용해 괴물 디자인에 돌입했다. 이후 또 다른 게임업체의 디자이너가 합류해 각기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 성과물은 2004년 1월 웨타와의 첫 접촉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때는 시나리오가 준비되지 않았고, 웨타 또한 <킹콩>의 제작 일정이 명확하지 않아 생산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뒤인 올해 1월 봉 감독팀은 시나리오 초고와 수백장의 디자인, 동영상 콘티인 애니매틱스 등을 들고 다시 웨타를 찾았다. 꼼꼼한 준비 덕분에 이야기는 예상
봉준호 감독의 <괴물> 프리프로덕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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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까지는 1년하고도 5, 6개월이 남았고, 아직 촬영에도 들어가지 않은 태아 상태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잡아끄는 프로젝트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가제)이 그것. 지난해 부산영화제 PPP에서 소개돼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 영화가 다시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특수효과를 담당해 시각효과 분야에서 세계적 맹주로 부상한 뉴질랜드의 웨타 디지털과 함께 작업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물론, <괴물>을 주목하는 이유가 봉준호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과 웨타의 기술력이 결합돼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통해 장르영화를 자신의 방식대로 경쾌하게 변주한 봉준호 감독의 호러 또는 괴수 장르영화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이나 특이한 방식으로 정치·사회적 어젠다(agenda)를 제시한다는 차원에서도 이 영화는 주목할 가
봉준호 감독의 <괴물> 프리프로덕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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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두일/ 이두일
두일은 마흔살의 낙오자다. <두근두근 체인지>의 주인공 모두의 남성판이다. 요즘엔 “곰 푸우의 환생”이라며 팬들의 귀여움을 받지만, 사실 냉정한 기준으로 보면 외모나 경제력이나 사람들이 꺼리는 조건들만 갖췄다. 두일은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른 인물처럼 나서서 웃음을 주는 게 아니라 남들의 코미디를 받쳐주는 그는 극중 배역도 희생적이다. 시청자들에게 부각되기는 힘드나 사랑받아야만 하는 극의 심장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사랑스런 파자마를 주로 입는다. 이두일 형은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극중 인물과 가장 닮지 않은 배우다. 보고 있으면 대학 시절 열혈 운동권 복학생 선배가 생각난다. 실제로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과묵한 중에 힘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상처받은 소년 같다. <앞집 여자>에서도 동네 아줌마와 수다 떠는 남자 역을 했지만 무서울 만큼 강인하고 따뜻한 분이다. 원
<안녕, 프란체스카> [3] - 캐릭터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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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시트콤? 불법체류 콩가루 극빈 가족 시트콤!
전 국민의 문제인 외모 지상주의를 다룬 <두근두근 체인지>(이하 <두두체>)가 10대들의 시트콤으로 수용된 것이 못내 아쉬웠던 노도철 PD는 그때부터 가족 이야기를 구상했다. “나와 신정구 작가도 가족을 떠나 혼자 오래 살아왔다. 오늘날의 가족은 한달에 1시간도 마주앉아 대화하기 힘들다. 눈뜨면 같이 밥 먹고 얘기하고 다투는 장면 자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신정구 작가도 말한다. “우리 세대나 더 어린 세대는 가족을 불편해한다. 가족들이 가족임을 느끼려면 친구를 사귀듯 노력이 필요하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당연히 뭘 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뿐 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흔들리고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미움의 핑계로 삼기도 한다.” 5번째 에피소드 ‘묘하게 미끌거리고 낯선 명절’의 도입부를 보자. 짐짓 늦게 들어간다고 전화를 걸고 깜짝 귀가로 가족을 기쁘게 하는 정
<안녕, 프란체스카> [2] - 어처구니없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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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신명나게 작두를 타며 월요일 밤을 귀곡성 같은 웃음소리로 물들이고 있다. 물론 4회 10.9%, 5회 9.4%로 집계된 시청률(전국 닐슨 미디어 리서치 집계)은 인기 드라마들에 견줄 바가 못 되고 동시간대에 포진한 <야심만만> <폭소클럽>의 벽은 강고하다. 그러나 이 우격다짐 뱀파이어 가족에게 일단 ‘물린’ 시청자들은 서슴없이 ‘피의 아들딸’을 자칭하며 방영 5회 만에 온라인 게시판에 6천여건의 글을 올리는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어둠의 경로로 불리는 불법 파일 받기 사이트에서도 <안녕, 프란체스카>의 인기는 만만찮다. 사태의 주범은 지난해 <두근두근 체인지>로 시트콤계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는 평가를 받은 노도철 PD와 신정구 작가(본지 464호 참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최고의 코미디로 꼽는 PD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는 작가가 창조한 극악무도한
<안녕, 프란체스카> [1] - 노도철 PD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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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는 예뻤다… 그것뿐이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그애 이름은 은희였다. (가명입니다) 본드 불다 한번, 말 안 듣는 학교후배 손 좀 봐준다고 두들겨팼다 두번. 부모가 이렇게 가다가는 소년원이 제격일 것 같다며, 억지로 입원을 시킨 곳이 정신과. 그런데 내가 그녀를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은희는 예뻤다. 처음엔 너무 소리를 질러서 독방에 있기도 했지만 곧 병실 한가운데 있는 탁구대에 나와 웃음을 흘릴 때면 탁구를 치던 남자 환자들이 그만 헛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본인은 자기가 예쁘다는 걸 잘 모르는 듯이 행동했다는 것이다. 얼굴과는 정반대로 팔자걸음을 걷는가 하면, 면담 도중 어쩌다 ‘은희씨… 참 예뻐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펄쩍펄쩍 뛰며 ‘어휴 어휴 내가 뭐가 예뻐요. 내 눈에는 선생님이 더 예쁘다’라며 선머슴 같은 웃음을 씩 지었다. 하지만 커튼은커녕 작은 콤팩트에 있는 거울조차 다 회수한 병동에서도 (환자들이
<여자, 정혜> 3인3색 감상 [3] - 심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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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는 비밀을 지닌 여자들의 집합체
신경숙/ 소설가·<J이야기> <바이올렛>
무슨 맥락에서였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낀 첫 소감은 내 소설 <바이올렛>을 읽어준 독자들이 참 힘들었겠구나, 고맙구나, 뒤늦은 감사였다. 감독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우체국 여자 정혜 위에 나는 내 소설 <바이올렛>의 꽃집 여자 오산이를 떠올렸다. 정혜는 스물아홉 산이는 스물 셋이었으니 정혜가 언니일까? 아니 <바이올렛>이 쓰여진 때가 4년 전이니 산이도 이제 스물일곱이거나 여덟이 되었겠다. <바이올렛>을 쓸 때 내 마음과 견주어 짐작해본건대 <여자, 정혜>를 만드는 동안 감독은 아마 모든 여자들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앉아 있는 여자, 졸고 있는 여자, 거울을 보는 여자, 눈썹을 떼어내는 여자, 서 있는 여자, 음식을 먹는 여자, 응시하는 여자, 뒤돌아보는 여자, 귀기울이는 여
<여자, 정혜> 3인3색 감상 [2] - 신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