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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무술 영화
<거칠마루>는 이상한 무술 영화다. 무술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복수의 테마도 없고 유혈낭자한 폭력도 없다. 그저 “도복을 입고 있을 때 최고이고 싶다”는 무술인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과정의 이야기일 뿐이다. 무림 최고의 고수 거칠마루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혹은 겨루고 싶어서 모여든 무술인들은 그나마도 승부에 연연하는 모습이 아니다. 대련을 피해 도망다니는 이가 있는가 하면, 탈락한 이들끼리 번외 경기를 펼치기도 한다. “우물을 파는 데 이기고 지는 건 없다”면서. 그러니까 <거칠마루>는 ‘무술’보다는 ‘무술인’ 그리고 ‘무도’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그저 ‘강해지고 싶어서’ 몸을 단련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이다. 생활인으로서 약자이고 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애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술을 놓지 못하는 열정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이 영화는 ‘무술영화의 탈을 쓴 휴먼드라마’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2] - <거칠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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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의 폭풍의 눈은 뜻밖에도 한국영화들이었다. 디지털 삼인삼색을 비롯해 인권영화 프로젝트 <다섯개의 시선> <별별 이야기>가 매진 사례를 기록한 것은 감독들의 지명도가 있으니 그럴 법한 일이었지만, 한국영화의 흐름에 소개된 낯선 이름들의 디지털 장편영화들에 관객이 몰려든 것은 주최쪽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지난해 <마이 제너레이션>이 펼쳐 보였던 디지털 독립 장편영화의 가능성은, 올해 장르적 재미와 야무진 만듦새를 겸비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층 넓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만든 무술 영화 <거칠마루>의 열정과 결기,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사회드라마 <다섯은 너무 많아>의 훈훈한 인간미, 호러 요소가 출몰하는 스릴러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의 비범한 스토리텔링, 음모론에 기반한 SF액션드라마 <브레인 웨이브>의 치열한 제작과정에 주목하지 않을
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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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4일 아침 9시, 전주국제영화제 프레스센터에서 영화평론가 홍성남과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이 만났다. 떡진 머리에 반쯤 감은 눈으로 나타난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자유로운 몽상가이자 조숙한 영재소년처럼 사람과 시간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느리게,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매우 이른 아침의 ‘역류’(Undertow) 같은 대담을 여기에 싣는다.
홍성남 | <언더토우>는 테렌스 맬릭 감독이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데뷔작인 <조지 워싱턴>을 본 테렌스 맬릭이 <언더토우>의 각본을 가지고 찾아왔었다. 그의 영화들은 언제나 나에게 대안을 제시한 작품들이었고, 그를 만나는 순간 온몸이 덜덜 떨릴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그가 가져온 각본의 영화화를 수락했다.
홍성남 | <언더토우>는 장르를 나눌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보통의 스릴러하고 다른 점이라면 절대로 서두르
전주영화제의 발견1: 데이비드 고든 그린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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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제2의 테렌스 맬릭이 나왔다!
시골 마을의 한 집안에 불쑥 ‘침입’해온 삼촌이란 자가 아버지를 살해하자 삼촌의 표적인 돈 주머니를 쥔 어린 두 소년은 그 악마 같은 남자를 피해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게 된다. 금방 떠올리게 되는, 찰스 로튼 감독의 <사냥꾼의 밤>(1955)은 이와 유사한 상황이 펼쳐진 뒤로 영화의 주조를 비정한 가족스릴러에서 몽환적인 모험담으로, 그리고는 이상한 동화로 바꿔나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같은 비약적인 진로 전환 때문에 당혹스러워했다. 로튼 영화의 현대적 번안이랄 수 있는 <언더토우>(2004)에서도 스토리상의 그 중요한 분기점이 지나가자 무언가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영화가 옮겨가는 발걸음이 다소 예기치 않은 것이라 이걸 지켜보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영화를 봐온 경험에 따르면 이제 영화는 스피드를 높여가며 관객의 정서를 강하게 몰고 가야 한다. 하지만 <
전주영화제의 발견1: 데이비드 고든 그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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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규는 영웅인가 반영웅인가
김봉석 | 참형 묘사에 있어 그렇게 잔인하게 표현했어야 했나 그런 지적들도 있는데.
김대승 | 원한에 의한 연쇄살인이고, 범인의 시점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이다. 칼로 훅 찔러 죽일 순 없는 거다. 천천히 죽는 과정을 지켜보게 하고 싶었다.
김봉석 | 과거 강 객주의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은 어땠나.
김대승 | 그 장면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원규의 기억들이 완전히 깨지는 장면이다. 초반부에 원규는 인권에게 화두를 던지며 소작농들에 대한 자신의 아버지의 품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후반부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미화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강 객주가 처형당하는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던 것은 관객에게 ‘재밌습니까’ 하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기억을 품고 있었던 원규에게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다.
김봉석 | 그 장면의 묘사가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텔미썸딩>이나 <H>에서 보여지듯이 왜 한국영화에서 미
<혈의 누>를 말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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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영화라는 심정으로 죽어라 달렸다”
김대승 감독은 스스로 소심한 인간형이라고 털어놓는다. 이전 인터뷰에서 “프린트를 뜬 이상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던 그는 요즘도 쉽사리 맘을 놓지 못하는 눈치였다. 대담 첫머리에 국내 극장들의 열악한 상영 여건에 대해 한바탕 성토한 그는 여러 차례 “내 영화를 볼수록 부끄러워 죽겠다”고 했다. 대담자가 “<혈의 누>는 요즘 영화들이 갖추지 못한 보기 드문 미덕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아직 멀었다”며 겸손의 손사래를 쳤다. 아마 5월9일 개봉을 한 다음에도 그의 소심함은 다음 영화를 내놓기 전까지 계속될 것 같다. “한 장면 한 장면 꼬치꼬치 물어볼까봐 사실 겁났다. 한 차례 기자시사회밖에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웃음) 영화에 관해선 소심하고, 깐깐하고, 고집불통인 김대승 감독과 “<혈의 누>는 역사 미스터리에 멜로를 끼워넣고 그 아래 신랄한 사회비판까지 깔아놓은 정직하고 뚝심있는 영화”라고
<혈의 누>를 말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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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1980에 대한 연민
가작에 당선된 <날개, 1980>은 현재 영국 유학 중인 조창열(32)씨에게서 날아왔다. 막동이 시나리오 당선자와 서면 인터뷰를 시도하는 이례적인 일은 그렇게 이뤄졌다. 역시나 유학의 이유는 영화였다. 한겨레영화학교, 그리고 중앙대 연극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던 그는 지금 런던필름스쿨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있다. <데자뷰>라는 16mm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영화를 공부하도록 한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단편에서 발생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여기 런던에까지 왔다”고 한다.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언제인가부터 관심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괴발개발’이라는 희곡 모임 집단에서 글쓰기를 수련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작가협회에서 <엔드 게임>으로,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아바타>로 당선된 적이 있는 공모전 선수이기도 하다. <아바타>의 경우에 완성되지는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4] - <날개, 1980>의 조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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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이 위대하다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한 로맨틱코미디 <원더풀 나이트>는 이중삼중의 복안으로 재수 끝에 탄생한 와신상담의 결실이다. 당선자 이경의(26)씨는 지난해 막동이 공모에서 소동극 <3일만 버티는 남자>를 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가 올해 준비한 카드는 더블 캐스팅. 당선된 <원더풀 라이프> 외에 <이노센스>라는 시나리오를 제출한 이경의 작가는 철학을 전공했고, 대전 영화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를 처음 배웠다. 집필 구력은 2년, 장편은 3∼4편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방송, 독립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아이템 작가 등 짧은 기간 동안 강하게 스스로를 트레이닝한 이력을 가졌다. “그중 1년은 아르바이트하느라 보냈다”라는 것이 그의 전언. 2003년 싸이더스HQ의 시놉시스 공모에서 <전지현 따라잡기>로 당선된 일도 그가 ‘될성부른 떡잎’임을 보여준다. 등록금이 연출과보다 적아서 시나리오과로 전과했던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3] - <원더풀 나이트>의 이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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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상상력에서 뽑은 재밌는 이야기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공중곡예사>의 박대민(30)씨가 <씨네21>로부터 기다리는 연락은 두 가지였다.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는 소식과 얼마 전 신청한 <씨네21> 데이터베이스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는 소식. 그래서 “<씨네21>인데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거 아르바이트 하라는 전화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순간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몇 곱절 더 좋은 낭보가 날아든 셈이다.
건축과를 4학년 2학기까지 다 다니고도, 이미 대학 3학년 때 결심했던 늦깎이 열정으로 동국대 영화과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 손을 잡고 영화관을 드나들고, 한때 유행했던 예술영화 불법 비디오테이프 보기도 불사했던 전형적인 시네필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 덥다>(2000), <이봐요, 무얼 찾고 있나요?>(2002) 등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2] - <공중곡예사>의 박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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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결과 발표, 당선작은 박대민의 <공중곡예사>
영화배우 한석규가 전액 후원하고, 인터넷 한겨레와 <씨네21>이 공동 주최하는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결과가 발표됐다. 예년에 비해 200여편이 늘어난 총 600여편의 작품이 수상을 놓고 격전을 벌였다. 그중 박대민의 <공중곡예사>가 당선작으로, 조창열의 <날개, 1980>과 이경의의 <원더풀 나이트>가 각각 가작으로 뽑혔다. <공중곡예사>는 구한말 한 살인사건을 추적해가는 조선 탐정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 역사 추리물이고, <날개, 1980>은 폭정의 시대에 형사로 일했던 자의 쓰라린 후회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과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원더풀 나이트>는 결혼을 앞둔 한 여자가 갑자기 새로운 사랑에 눈뜨는 유쾌한 로맨틱 스토리다. 심사를 맡은 권칠인 감독은 코미디가 약세를 보이는 대신 스릴러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1] -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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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제2의 기술혁명 초읽기
<보이지 않는 위험>과 디지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이 영화기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루카스 필름은 6월18일부터 LA와 뉴욕의 네 군데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디지털 영상으로 상영하고 있다. 디지털 방식의 영화란 셀룰로이드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영화 화상을 디지털 부호로 옮겨 디지털 영사기를 통해 상영하는 영화다. 특수효과나 편집에 디지털 방식이 도입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영화 전체를 디지털 방식으로 상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디지털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처럼 긁히거나 말릴 우려가 없다. 영사기 초점이 흐려지거나 릴에서 릴로 바뀔 때 생기는 시차도 없다. 무엇보다 디지털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에 비해 화면 해상도가 뛰어나고 명암 차이가 뚜렷하다. 색감 차이가 특히 돋보이는데 디지털 영사기는 10억개 이상의 색깔을 재현할 수 있어 화면 색깔이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조금
조지 루카스의 '포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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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 인터뷰
"평론가들 비웃음, 이제 익숙해졌다"
-인터뷰를 잘 안 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나를 ‘은둔자’라고 말하는 건 언론의 오해다. 영화를 만들지 않을 때 난 1년에 보통 15번 정도 인터뷰를 한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7번 인터뷰를 했다. 이만하면 외부접촉이 잦은 편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은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영화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보다 더 어린이용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 때문에 악평이 쏟아지는 거겠지만.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이거 디즈니영화구먼”하고 만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험>이라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거다.
-영화가 과대포장돼서 역효과를 발휘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자신의 영화가 평론가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난 내 영화에 대한
조지 루카스의 '포스'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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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는 그저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영화일 뿐이다. 섹스와 같다. 섹스는 사랑과 달리 한순간의 쾌락이다. 하지만 그 쾌감이 20년 이상 지속된다면, 그것은 '최고의 ' 섹스이거나 낭만적인 사랑이다." <스타워즈>는 이미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세대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 하고 있다. <스타워즈>가 위크엔드 무비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사회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도 <스타워즈>에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 기억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름에서 보이듯 루크는 조지 루카스 자신이고, 조지 루카스와 그의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욕망과 향수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이야기꾼인 것이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
영화홍보에 가장 까다로운 감독을 꼽자면, 첫손가락에는 얼마 전 작고한 스탠리 큐브릭이 꼽힌다. 스탠리 큐브릭은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 자신의 작품을 개봉할 때도 모든 것을 챙겼다.
조지 루카스의 '포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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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러운 도시 방콕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티즌 독>의 위시트 사사타니앙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위시트 사사나티앙(41)은 ‘올림픽 감독’이다. 4년 만에 한번씩 신작을 내놓기 때문이다. 타이 최대의 광고회사 필름팩토리의 주력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코카콜라,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의 광고를 도맡고 있다) 그는 “영화로는 밥먹고 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광고 일을 놓지 못하고 가끔 취미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지만, 최근작 <시티즌 독>(Citizen Dog)을 본 이들이라면 지독할 정도로 완벽성을 기하는 성미 탓에 과작의 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쉽사리 추측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후반작업을 했다는 <시티즌 독>(타이에선 지난해 12월 개봉했다)은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과는 또 다른 판타지의 세계로 보는 이를 안내하는 영화. 타이 고유의 의상, 건축물 등의 색감에서 뽑아낸 화려한 비주얼을 구경하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7] - 위시트 사사타니앙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