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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상과 소품과 세트엔 다∼ 이유가 있다
배트맨의 기원을 따져 올라가는 <배트맨 비긴즈>에는 설명해야 할 것투성이다. 브루스 웨인은 어쩌다 배트맨이 됐을까? 하고 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박쥐였을까? 검은 고무 의상은 어쩌다 입게 된 걸까? 새끈한 배트 모빌은 어디서 났을까? 누가 그를 곤경에 빠뜨렸을까? <대부>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이야기의 가운데 토막에서 시작된 <배트맨> 시리즈는 다섯 번째 에피소드 <배트맨 비긴즈>에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번도 설명되지 않았던 아이콘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처음으로 돌아가 배트맨의 유래를 서사로, 비주얼로 만들어내는 것이 엄청난 부담과 노동이 수반된 작업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놀란의 <배트맨> 팀은 모든 것을 철저히 ‘리얼리티’에 기반해 세팅했다. 모든 의상과 소품과 세트엔 이유가 있어야 했
미리 보는 <배트맨 비긴즈> [2] -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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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스타워즈>가 완결편을 내고 화려하게 퇴장하는 이즈음, ‘우린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라고 외친 시리즈가 있다. 팀 버튼과 조엘 슈마허의 손끝에서 모두 네편의 에피소드를 풀어냈던 <배트맨> 시리즈는 태초의 진공으로 돌아가, 이제 어떻게 배트맨이 탄생하고 진화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할 참이다. 그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 월드의 창세기를 빚어낸 이는 <메멘토> <인썸니아>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와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에 이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수혈된 독립영화계의 젊은 스타 놀란은 자신의 전작들과 친연성이 없어 보이는 <배트맨 비긴즈>에 어떻게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녹여넣었을까? 그가 만든 <배트맨 비긴즈>는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비주얼 컨셉으로 태어났는지를 이야기해본다. 또한 5월3
미리 보는 <배트맨 비긴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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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의 4단계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보겠다”
<유니언>의 김자연 감독
모이스 루이스의 흘러내리는 도상이나 프랭크 스텔라의 무한히 연장되는 선과 캔버스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애니메이션 <유니언>(Union)은 적당한 선택이 될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경향이 뚜렷한 배경 위에 팝아트의 카툰 이미지나 모바일 게임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무대 위에 세워지며 <유니언>은 여정을 시작한다. <유니언>은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2D애니메이팅으로 그려내지만, 선과 면만으로 3D의 입체적 공간감을 넘나드는 변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 <유니언>은 인물의 동선과 공간을 자유롭게 치환한다. 이러한 두 대상을 잇는 주된 이음매가 바로 사운드다. “처음에는 왈츠를 생각했고, 여러 곡이 작곡되었다가 결국은 현재의 최소화되고 절제된 형식으로 결정되었다”는 <유니언>의 사운드는 미니멀한 이미지의 구슬
인디포럼2005의 발견 [4] - <유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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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영화의 새로운 구조다”
<실종자들>의 민제휘 감독
천년 묵은 이무기는 용이 되려 하고, 정체불명의 지하집단은 이를 막으려 하며, 주인공은 어느 날 집을 나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찾기 위해 실종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송사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다. 이상은 영화가 시작된 뒤 러닝타임의 3분의 2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 흐를 때까지 진행되는 <실종자들>의 줄거리. 그렇고 그런 말장난과 서툰 비유로 가득 찬 듯 산만하기만 한 이 영화가 보는 이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지하철역 플랫폼에 멍하니 서 있던 주인공이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주인공은 지하철에 오르는 그녀를 미처 잡지 못하고, 이무기를 반대하는 지하집단의 누군가가 석유가 가득 찬 통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른다. 플랫폼에 그가 흘린 석유에선 어느새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끊임없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악할 수 없는 실체의 주변을 맴돌던 영화는, 그렇
인디포럼2005의 발견 [3] - <실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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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권위가 소멸된 영화를 꿈꾼다”
<해성프로젝트>의 김계중 감독
알쏭달쏭한 이미지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운드로 이루어져 독해가 쉽지 않은 영화. 실험영화를 향한 일반적인 소감은 대략 이런 식이 아닐까. 새로운 영토를 향한 왕성한 도전은 높이 사지만 막상 그런 영화를 볼 마음은 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영화라면 응당 감독이 전달하고픈 무엇인가, 혹은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의 어떤 모습을 담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실험영화에 짜증이 나곤 했다는 불평도 익숙하다.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로 오해받기 십상인 기이한 제목의 영화 <해성프로젝트>는 실험영화를 바라보는 그러한 편견을 매우 겸손한 방식으로 돌파한다.
해성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끼적이는 영화의 첫 화면 위로 감독의 목소리가 흐른다. “이 영화는 해성이 준 시나리오와 그에 관한 인터뷰로 구성된다.”
인디포럼2005의 발견 [2] - <해성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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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새로운 상상력의 미래를!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노래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러나 하늘 아래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영화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열 번째를 맞이하여 푸짐한 잔치를 준비했던 인디포럼2005는 그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올해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29편의 신작들은 한결같이 ‘실험’이라는 수식어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디포럼2005의 신작 중에서, 이런 경향을 좀더 확실하게 증명할 만한 네편의 영화와 그 감독들을 골랐다. 일방적인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민이 영화적 재현 자체에 대한 고찰까지 이어진 박홍렬·황다은 감독의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제는 말장난에 불과해져버린 ‘작가의 죽음’을 영화에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김계중 감독의
인디포럼2005의 발견 [1] -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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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성욱 | 연애의 목적은 섹스와 사랑의 비율을 개인적으로 배합하고 성취감을 얻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 하지만 유림이 홍과 시작하는 지점에는 섹스와 사랑의 상관관계는 거의 없어.
이종도 | 20대 그 나이 때는 구분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이 여자랑 자고 싶은 건지, 이 여자를 사랑하는 건지.
김은형 | 그게 뭐. 30대 된다고 섹스랑 사랑이 구분이 되나. 에이.
김소희 | 유림과 그의 여자친구는 지루한 관계이고 부모 자식 같고. 유림이 그 여자친구랑 혹은 유림이 어떤 사람과 불타는 관계에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유림은 섹스도 목적이지만 그와 동반한 일상의 자극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어.
이성욱 | 내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사실 10대는 섹스에서 모든 게 시작되지만 마스터베이션으로도 해소되는 부분이 있지, 20대에는 그야말로 넣기만 해도 좋은.
일동 | 우하하.
이성욱 | 그래서 20대에는 “이거 하려고 나랑 사귀는 거
<연애의 목적>에 관한 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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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도 목적이 있는 거야? 그런 거야?
만리동 한겨레 건물의 한지붕 아래 지내는 30대의 네 기자. 그들이 어느 늦은 오후 홍익대 카페에 모여 얕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연애의 목적>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행간에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연애관과 경험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분방한 언변의 두 여성기자가 두 남성기자를 압도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좌담 중 이성욱 기자의 “언니들이 일단 본심을 드러내면 더 무서운 것 같아. 한국이란 조건에서 생긴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는 말처럼. 그들이 읽어낸 <연애의 목적>의 ‘연애의 목적’을 엿들어보자.
* 이 글은 <연애의 목적>에 대한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남자, 유림은 ‘선수’?
김소희 | 청춘 깜찍물로 포장했지만 메시지는 좀 무거워. 이 영화의 첫 번째 교훈은 조직 안에서는 연애하지 마라. 내 편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다. (웃음)
이성욱 | 유림은 기본적으
<연애의 목적>에 관한 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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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오즈, 브뉘엘, 르누아르를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어울리다보면 사람들이 항상 치사하다고 느껴졌어요. 몰려다니면서 편 짜고, 틀린 거 알면서도 (상대를) 누르고, 자신에 대해서 모르면서 남들을 비난하고. 사람들 만나서 적응이 안 된 것도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한데. 하여간 좀 사람들이 실망스러웠던 것 같아요. 친하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 건 있는데 어떤 건 용납이 안 되고 거슬리고 그러니까 가까이 못 가는 거죠. 지금 나이가 들어서 봐도 그래요. 제가 비위가 좀 생기고, 제 자신이 그 사람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느끼니까 전보다 낫지만.
잘난 사람 TV에서 틀어주고, 그 사람 본받게 하려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걸 흉내내는 데 한계가 있고, 또 성공한 사람을 가까이 가서 보면 성공 요소라는 게 제 속에 없고. 그러니까 모델이 되는 게 아니라 방해가 되더라고요. 대신 자기를
영화인 7인 특강 [10] - 봉준호·홍상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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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원칙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 겁니다”
“제가 69년생이거든요. 88학번. 오슨 웰스가 26살 때 <시민 케인>을 찍었는데, 되게 안 좋은 사례인 것 같아요. (웃음) 젊어서 정력과 예술적 에너지를 그렇게 심하게 방출하면 되겠어요. 저의 희망은 앨프리드 히치콕 아저씨입니다. 그분이 1899년생이에요. <싸이코>가 1960년 영화잖아요. 그럼 환갑잔치 다음해에 찍은 거예요. 저도 환갑잔치 다음날 <싸이코> 같은 영화를 크랭크인할 수 있다면 정말 성공적인 인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씨네21>쪽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제 차례 앞에 ‘평온한 일상을 비트는 힘’이라고 붙여놓았는데, 제가 이야기할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플란다스의 개>는 정말 일상에서 출발한 영화였죠. 저의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들로부터 쏟아져나온 영화거든요. 그 영화 찍은 아파트가 제가 신혼 초 3년 동안 살던 곳이에요. 거기
영화인 7인 특강 [9] - 봉준호·홍상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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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일 <씨네21> 창간 10주년 특강 ‘한국영화의 현재를 묻다’가 강의장이었던 연세대 위당관에 미열을 남긴 채 끝을 맺었다. 마지막 주의 단상을 장악했던 인물은 봉준호 감독과 홍상수 감독이었다. 6월20일쯤부터 차기작 <괴물> 촬영에 돌입할 예정인 봉준호 감독은 원효대교 아래서 최종 헌팅을 진행하다가 강연장에 바로 도착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특유의 입담이 시작되면서 체력 또한 살아난 듯했다. 사회자인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와의 문답에 들어가기 앞서 그는 장장 40분에 걸쳐 영화에 입문한 뒤 겪었던 일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봉 감독의 예의 ‘비주얼’한 화법 덕분에 관객은 상체를 강단으로 기울일 정도로 집중한 채 경청하고 있었고, 오기민 대표는 “준비할 시간이 없어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었을 텐데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봉 감독의 이야기는 때때로 다른 곁가지로 빠져나가곤 했지만, 그 덕분에 내용은 오히려 풍부해졌다. 이어진 문답에서 그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인 7인 특강 [8] - 봉준호·홍상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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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쉽게, 값싸게, 신실에 가까이
뜨거운 거리의 함성, 유폐된 창살 아래 깔린 침묵, 후미진 구석의 외로운 투쟁. 80년대 후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독립영화 단체들에는 아무도 보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들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홈 비디오를 들고 나섰다. 16mm 필름 작업에 비해 가격이 싸고 복제가 쉽고 조작이 용이하며 현장에서의 기동성이 중요했던 이들에게 성능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저 카메라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로부터 10여년. 사무실은 새로운 디지털 주인들이 차지했고 예전에 현장을 누볐던 기기들은 유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선에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96년부터. 당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우수한 디지털 카메라는 소니의 VX1000였는데, 97년 푸른영상의 <명성, 그 6일의 기록>, 서울영상집단의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이 카메라를 썼다. 하지만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4] - 독립 다큐멘터리와 디지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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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미래를 두드린다
영화의 미래를 노크하는 주문으로 우리가 새삼 그 이름을 외치기 전부터 디지털은 우리 곁에 있었다. 특수효과, 상업 영화의 제작일지를 담은 메이킹 필름, 동네 비디오숍 한쪽 벽을 메운 에로 영화들은 모두 이제껏 심상하게 마주쳐온 디지털 영화의 얼굴들이다.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전해듣는 디지털을 둘러싼 영화계의 희망찬 야단법석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영화로서의 디지털 작업’에 대한 발견 그리고 발명이다. 혁신된 성능의 카메라는 디지털로 하여금 필름 발뒤꿈치 쫓아가기에 바빴던 만년 열등생 처지를 털고 독자적 영상문법까지 배태할 수 있는 당당한 매체로 끌어올리는 중이며, 인터넷과 디지털 프로젝터 극장의 대두는 바야흐로 디지털 영화가 촬영부터 상영까지 독자적인 일생을 꾸려갈 생육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문제의 초점은 누가 이 씨앗을 가꿔 풍성한 열매를 맺느냐다. 모색은 도처에서 활발하다. 가장 열띤 궁리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은 세계 영화 커뮤니티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3] - 진행중인 디지털 프로젝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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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에 투항한 건 아니다"
-단편이긴 하지만 박광수답지 않은 영화다. 제목부터.
=글쎄. <그 섬에 가고 싶다> 때 떠오른 이야기였다. <그 섬…>에 출연했던 안소영씨가 벗는 장면 때문에 고민하는 걸 봤다. 안소영씨는 우리 세대의 뇌리엔 깊이 새겨진 배우다. 에로 스타가 예술 영화에 출연해 진지한 연기자로 변신하려고 하는데, 여기서도 벗어야 한다면? 그런 모티브가 흥미로웠다. 당시에 삼성이 제작비를 대 장편 감독 몇몇이 단편을 만들기로 했는데, 나만 시나리오를 썼다. 7년 잠자고 있다가 이번에 기회가 온 거다.
-<이재수의 난>에서 예고된 변신이라고는 얘기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특별히 변신을 의식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최근 세 작품이 모두 시대물이었기 때문에 현대물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유행하는 가벼움을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거다. 모두가 가벼움을 좇고 있는데, 나까지 그럴 필요가 뭐 있겠는가. &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2] - 박광수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