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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는 1초에 24개짜리 거짓말이다”
영화제 기간 중 <망가진 꽃들> <라스트 데이즈>와 함께 현지 언론 평점 수위를 달리던 미하엘 하네케의 <히든>은 남녀 주연상보다도 먼저 감독상으로 호명받았다. 하네케는 시상식 무대에 올라가서도, 포토콜 현장에서도, 시상 뒤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비슷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매가 진해 미묘한 표정변화를 읽어내기 쉽지 않은 탓도 있었다. 하네케는 회견장 자리에 앉자마자 “상받을 것을 기대했다”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뒤 수상 결과에 대한 질문은 더이상 없었다. 하네케는 <히든>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9월에 개봉할 것이고, 현재 오페라 <돈 조반니>를 영화화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폐막 뒤 프랑스 일간지들은 ‘하네케가 수상 결과에 실망한 것이 역력하다’는 표현을 공통적으로 썼다.
-이 영화는 죄의식에 관한 영화인가.
=이것은 개인적인 영화이다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5] - 수상작 인터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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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사람의 삶에 대한 메타포다”
<망가진 꽃들>의 주인공 돈 존스톤은 22년 전 <천국보다 낯선>의 윌리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까지 여러 차례 망설이고, 여행을 떠나서는 던지지 못하는 말과 행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돈은 윌리보다 식어 있다. 윌리가 제 기준대로 살다 22년 뒤 중년을 맞았다면, 과거 그 많은 여자친구들을 찾아 우울하게 순례하는 돈이 되지 않았을까. 나이든 윌리처럼 짐 자무시는 조심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공식 시사 뒤 기자회견에서나 시상 뒤 기자회견에서 자무시는 영화 속 의미를 묻는 많은 질문에 “나는 그렇게 분석적이지 않다”, “나는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정말로 할말이 없어서라기보다, 경쟁부문 초청 감독들의 쟁쟁한 이름 앞에 작은 확신도 오만으로 비칠까 하는 걱정을 수시로 드러내면서. 그는 사회자가 상장 좀 보여달라는 요청에 “얼마든지”라며 천천히 붉은 리본을 끌렀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4] - 수상작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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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떤 꼬리표로도 환원될 수 없다”
에미르 쿠스투리차가 호명하고, 클론처럼 닮은 두 노인이 시상식 무대로 올라갔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은, 백발이 얹힌 몸을 허리까지 굽혀 젊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의좋게 트로피를 나눠 잡은 채 짧고 겸손한 수상소감을 남긴 두 노감독들은, 그러나 포토콜 때 네팔을 번쩍 들며 좋아라 함박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수상자 기자회견 때 사회자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자는 당신들이 처음이 아니냐”고 물을 만도 했다. 처음 탔대도 저렇게 좋아할 순 없어 보였다.
그것이 그들의 영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했다. 스무살 남자아이 브루노와 열여덟살 여자아이 소니아,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이 지미를 데려다놓고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영화를 만든 다르덴 형제는 “기름기 하나 없고 어떤 의미에서 순수한”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제58회 칸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3] - 수상작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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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돌아간 거장들
수상작은 일단 심사위원 마음대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작품의 절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스 반 산트, 허우샤오시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빔 벤더스, 라스 폰 트리에는 작품의 질에 상관없이 빈손으로 돌아간 거장들의 대표가 됐다. 홍상수도 이 목록에 포함된다. <씨네 21>과 인터뷰를 한 <포지티프>의 평론가 위베르 니오그레는 비꼬면서 말한다. “심사위원인 여배우 셀마 헤이엑이 1년에 영화를 몇편이나 봤겠는가? 멕시코영화와 미국영화 외에 무엇을 더 알겠는가?”
예컨대 우리 생각에 <아이>가 범작은 아니지만, 허우샤오시엔의 <최호적시광>이나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어떤 폭력의 역사>보다 훨씬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 <르몽드>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영화제가 끝난 5월24일치 신문에 “올해의 특징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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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다르덴 형제의 <아이>… 허우샤오시엔, 홍상수 등은 수상실패
58회 칸영화제는 정치적인 구호의 깃발이 나부끼는 대신 거장들의 입성으로 술렁였다. 현존하는 영화 작가들 중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이들이 이곳 칸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중에서도 황금종려상을 쥐고 돌아간 이는 벨기에 출신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이다. 그러나 거장들의 집결이 영화제 자체를 평가하는 데 있어 오히려 우려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영화제 본연의 가치인 발견의 눈을 버리고 단지 존립을 위한 안정을 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칸이 해결해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편, 한국영화는 7작품이라는 사상 초유의 입성을 기록했고, 제각기 호평을 얻었다. <씨네21>은 지난해 칸 결산기사에서 영미 3대 산업지에 ‘영화제에 대한 평가’를 제의한 것에 이어, 올해는 프랑스 양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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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스톱을 부르는게 프로듀서다”
“한국영화, <씨네21> 공히 최근 10년은 의미심장한 세월이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MKB지만 명필름도 올해 10주년이니까요. 1995년 8월에 창립한 명필름이 지나온 궤적이 한국 영화산업과 자본의 변화를 읽는 한 사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코르셋>이 창립작인데 그 작품은 삼성영상사업단 전액투자를 받았어요. <접속>은 창투사의 선두격인 일신창투와 작업했고 일신과는 3편, 대기업인 CJ엔터테인먼트와는 <해피엔드>를 비롯해서 3편을 했죠. MKB는 각자 코스닥 상장에서 좌절을 맛본 두 회사가 후일 기업결합을 한 것인데 MK버팔로가 법인명, 제작브랜드가 MK픽처스예요. 강제규&명필름으로 했는데 강 감독님이 본인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게 싫다고 하셔서, MK라는 이상한 이름을 갖게 되었죠. 남들은 몽구픽처스냐고 하고, ‘프랑스의 MK2가 자회사냐’라는 사람도 있어요. (웃음) 현재 실제 대표이사는 이
영화인 7인 특강 [7] - 차승재·심재명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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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장개방에 대비해야 한다”
준비된 원고가 없기 때문에 논리가 뒤죽박죽입니다. 잘 편집해서 들으시길 바랍니다. (웃음) 한류, 한류 그러는데. 사실 <겨울연가> <대장금> 같은 드라마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영화가 갖는 위치는 대단합니다. 얼마 전 대니얼이라는 친구가 우리 회사에 왔는데 재밌는 이야길해주더군요. 25년 경력을 가진 노련한 프로듀서로, 현재 내몽골에서 홍콩영화를 촬영 중인 그 친구 말이, 촬영장 방문 길에 내몽골인 택시운전사가 자긴 홍콩영화와 중국영화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곤 유일한 관심은 한국영화라면서, 한국 배우 이름을 50명쯤 말하더랍니다.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수입되어 개봉한 한국영화는 없는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요?
“중국에 웬만한 한국영화는 해적판 DVD로 나와있더라”
먼저 중국의 상황을 보죠. 중국 영화계는 스크린쿼터보다 훨씬 강력한 수입쿼터를 갖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배급 루트를 통해 상영
영화인 7인 특강 [6] - 차승재·심재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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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더스F&H 차승재 대표는 피곤한 기색이었다. 알고보니 비즈니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석달 전부터 동국대 연극영화과 강단에 서고 있었다. 영상원, 중앙대 강의까지 합해 일주일에 무려 16시간을 강단에서 학생들과 씨름하고 있다고 하니, 몸무게가 8kg이나 줄었을 법도 하다. 핼쑥하기까지 한 얼굴로 연세대 위당관에 들어선 차승재 대표는 “벌써 졸립나요?”라는 낮고 굵직한 음성으로 네 번째 특강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꾸벅꾸벅 조는 청중은 없었다. 평소 언변이 뛰어난 차승재 대표는 최근엔 강단에서까지 맹훈련을 해서인지 특유의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여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발휘하려면 중국시장에 좀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화답하듯 200여명의 청중은 질문을 아끼지 않았다. 위기냐 기회냐, 한국영화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차승재 대표의 특강이 끝나고 나자, 청중들은 “시나리오를 어떻게 고르는지”, “<슈퍼스타 감사용> <역도산> <남극일기
영화인 7인 특강 [5] - 차승재·심재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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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영화이다. 그나마 오해를 줄이기 위해 한 가지 당부와 두 가지 질문을 먼저 제시하겠다.
첫째, 반드시 시설이 좋은 상영관을 찾아야 한다. 긴장감 있는 사운드는 이 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요소인데, 시설이 나쁜 상영관에서는 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으로밖에 안 들리며, 대사조차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영상 역시 스크린이 컴컴하게 느껴지는 낙후된 상영관에서는 ‘미지의 팔’이나 ‘맘모스의 눈’ 따위가 전혀 식별되지 않기 때문에, 보고나서 남들이 하는 말에 (“그런 게 있었어?” 하며) 미지의 생물체처럼 눈만 굴릴 공산이 크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거나 국내 상영관의 실정에 맞지 않은 과욕을 부렸음에 분명한데, 관객이 ‘알아서’ 피하는 도리밖에 없다.
둘째, 이 영화의 주제는 뭘까? 아마 이런 것일 게다. ‘도달불능점’이라는 형용모순에 가득 찬 지구상의 어느 지점에 가려는 탐험대가 있다. 왜 가느냐? 불가능을 욕망하기 때문에, 그것이 인
<남극일기> 찬반논쟁 [3] - 황진미의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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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남극일기>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홀바인의 <대사들>을 보면 그림 아래 부분, 어떻게 봐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구석이 마음을 찜찜하게 한다. 류트와 책, 지구본이 놓여 있는 아래쪽 탁자 밑에 사선으로 치우쳐 있는 것인데 그것은 이지러진 그림자 같기도 하고, 창으로 들어온 햇빛의 왜곡 같기도 하다. 그것은 옆으로 자세히 보면 해골임이 드러나는데, 그림 속 해골은 마치 보는 사람을 놀리기라도 하듯, 그림 정면에서 관람객을 바라보는 두 대사의 시선을 압도한다. 죽음의 시선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남극일기>는 매우 단순하고 작은 미니멀리즘적 드라마이다. 줄거리는 여섯명의 탐험대원이 남극의 남위 80도 지점인 도달불가능점을 향해 떠난다는 것이다. 그 조건은 여섯달은 낮만 계속되는 여름 동안에 그곳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밤만 계속되는 겨울이 오면 무보급 횡단 여행은 중단될 수밖에
<남극일기> 찬반논쟁 [2] - 이종도 기자의 지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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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이 맞다 VS 이 산이 아니다
송강호, 유지태 주연, 5년의 제작기간, 60억원의 제작비 등 여러 면에서 2005년 상반기 기대작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남극일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2주가 지났다. 개봉을 앞두고 폭발적인 예매율을 기록한 이 영화는 2주차에 접어들며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에 밀리는 양상이다. 아무래도 기대만큼 좋은 흥행성적을 내긴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흥미로운 건 흥행성적보다 극단적으로 갈리는 평론가와 관객의 평가이다. 좋다고 말하는 쪽과 나쁘다고 말하는 쪽이 이렇게 선명히 구분되는 영화는 드문 편이다. <남극일기>를 유사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한계까지 밀어부친 냉정하고 뜨거운 응시라고 평가한 <씨네21> 이종도 기자의 지지론과 도달불능점을 향한 감독의 집념이 관객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황진미 영화평론가의 비판론을 함께 들여다보며 <남극일기>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남극일기> 찬반논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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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적 캐릭터, 관심 없다"
-전작 <히트>를 두고 대히트를 예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그렇지 못했다.
=러닝타임(171분)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주말 하루 통상적으로 3회 상영할 수 있는 영화를 2회밖에 못 틀었으니. 미국 내에서 7500만달러∼8천만달러를 벌었고, 해외에선 그 두배 정도 벌어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디오와 DVD로는 꽤 장사가 됐다고 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 정도도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은 처음부터 거대한 스크린에 보여줄 요량으로 영화를 만든다. 비디오와 DVD의 활성화가 다행스런 점도 있지만, 대형 스크린에서 영화를 틀고 보여주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누구나의 이상이다. 관객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리지널 명화보다 컬러 복사기의 수십번째 프린트를 더 좋아하는 이는 없지 않나.
-액션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왔는데, 실화에 근거한 리얼한 사회드라마를 만들었다.
=한가지 선택만 가능한 건 아니다.
마이클 만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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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삶, 감독은 실수할 수 없다
마이클 만은 시시한 이야기를 재미있는 영화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나왔던 <히트>는 강력한 스타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사실 시시한 영화다. 수많은 영화에서 써먹었던 형사와 범죄자의 대결 구도에 전문가의 윤리의식 문제를 입힌 것일 뿐이지만, 또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허장성세에 가까운 것인지만, 이 영화는 굉장한 흡인력이 있었다. 담배회사의 압력으로 시사프로그램 <60분>의 중견기자와 제보자가 겪었던 시련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한 <인사이더>도 미국인들에게는 그리 새롭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대기업의 이익과 개인의 도덕이 대립하는 이야기 구도에 굉장한 힘을 불어넣는다. 시시한 이야기에 웅장한 배경을 입히고 성격파 배우의 뛰어난 연기를 끌어내는 만은 현대 미국영화 감독의 계보에서 가장 뛰어난 세부묘사와 시각 표현력을 지닌 감독으로 평가받
마이클 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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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영화연대, 중심은 한국
무엇을 꿈꾸고 있나
지난해 <쉬리>로 흥행판도를 뒤흔든 강제규 감독은 올 2월 국내 최대 벤처투자사인 종합기술금융(KTB)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한국영화산업 지형재편의 기폭제가 되었다. KTB가 강제규필름에 57억5천만원을 투자하고 지분 20%를 갖는 조건. 절대 투자액이 파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강제규필름과 KTB의 제휴가 폭발력을 갖는 것은 공모주를 모으고 코스닥에 등록한다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식 공모를 시작하면 예상주가를 최하로 잡아도 1500억원 많게는 3천억원까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사실 KTB와의 제휴가 아니더라도 이제 강제규 감독은 돈이 없어 할 일을 못하는 상황은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큰폭의 재편기를 맞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강제규 감독은 “영화산업이 자본 중심에서 창작주체 중심으로 바뀌면서 건강한 생산구조와 풍토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대기업과 창업투자사 등
벤처시대 충무로 3인방 [5] - 강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