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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세상을 간지럼 태우자
여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광대가 있다. 직장에선 게으르고 무능하다는 이유로 궁지에 몰리고, 아버지에겐 “언제 철들래”라고 구박받으며, 마음에 둔 여자한텐 기껏 큰 맘 먹고 사랑을 고백했다가 “술 드셨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여자에게 상처 받은채 광화문 앞을 가면에 넥타이 차림으로 질주하는 남자. 그는 우리를 대신해 고통받고 상처받으며, 피흘리고 핍박받으며, 난처해지고 좌충우돌하며, 바보짓을 하고 설움을 당한다. 이를테면 그는 태어날 때 불운이라는 탯줄을 끊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손뼉 치며 목젖 울리게 웃어제껴도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자신의 불행과 낭패를 대행해주는 2000년의 채플린이며, 우리 자신의 신경증과 콤플렉스를 떠안은 서울의 우디 앨런이기 때문이다.
<반칙왕>의 주인공 대호는 “배, 배, 배신이야. 배반, 배신”을 연발하던 <넘버.3&g
김지운식 코미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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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 장르 전문의 미술감독
“영화는 감독의 것이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언제나 감독이 내린다.”. 류성희의 이 말은 백번 옳다. 감독들이 류성희의 제안을 혹은 제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앞서 열거한 부분들은 각 영화의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에 대한 류성희의 미학적 ‘관점과 해석’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몇몇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이쯤 돼서 궁금해지는 것. 그렇다면 과연 류성희가 그들의 영화를 해석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또는 반대로, 류승완,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그들이 공유하게 된 류성희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그럼으로써 류성희를 고리로 한 그들 사이의 공유점은 무엇인가?
류성희는 이미 그 좌표에 대한 많은 향방을 쥐고 있다. 말 속에 은연중의 대답들도 있다. 먼저 류성희는 “언제나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경계를 고민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꽃섬>이 첫 작품이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영화는 자체로 ‘리얼리티와 판타
류성희 미술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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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평론가가 묻고 답했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와 <달콤한 인생>의 공통점을 아는가? 그건 바로 미술감독 류성희다. 비상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목에 힘을 주고 말했지만 <씨네21> 역시 이미 궁금증을 갖고 있던 터라 오히려 외국의 평자에게도 이 점이 보인다는 것이 어떤 확인 차원의 경험이 되었다. 류성희 미술감독 역시 <씨네 21>에 실린 그 인터뷰(호수와 제목)를 보았다며 말한다. “영광이죠.” 그러나 다시 되묻는다. “근데 묶인다는 거 말고 뭘로 묶이는지 말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게 뭘까요? 뭔가요?” 그 질문이 만남의 이유가 됐고, 그래서 사실 류성희의 인간극장보다는 미술감독 류성희를 하나의 화두로 놓고 보았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오히려 그런 거라면 다행”이라고 시원하게 응대한다. 류성희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과연 류성희는 누구이며, 왜 류성희인가? 미술감독 류성희에 대한 소개와
류성희 미술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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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외계의 매혹
장르 세계에서 외계인들이 본격적으로 지구를 침공하기 시작한 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 때부터다. 20세기 초가 되자 영미권에서 본격적으로 SF 장르가 성립했고 외계인 침공은 그중 가장 인기있는 소재가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외계인 침공이 본격화된 건 UFO 열풍과 냉전시대의 히스테리가 공존하던 50년대. 외계에서 온 채소 외계인이 남극 기지를 공격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 온 물체>(The Thing From Another World)가 이 장르의 본격적인 시작이다(30년대 인기 스페이스 오페라 시리즈인 <플래시 고든>이나 <버크 로저스> 같은 작품들의 영향력을 무시한다면). 아마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우주 콩깍지가 사람들로 변신하는 <신체 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일 것이다. <화성에서 온 침입자>나 조지 팔 버전인
<우주전쟁>과 스필버그 [3] - 외계인침공영화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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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스필버그씨, 손들어 주세요
이상한 일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미국 상업영화의 영광과 오류를 대변하는 신화로 자리를 굳혀갈수록 평론가와 관객은 그의 실체에 자꾸만 무관심해졌다. 대중은 스필버그를 A코스와 B코스의 만찬- 가벼운 가족용 판타지 어드벤처와 시대적 이슈를 그린 묵직한 드라마- 중 택일할 수 있는 레스토랑처럼 여기게 됐다. 그러나 대중영화 연구자 피터 크레이머가 지적했듯 스필버그에게 두 부류의 영화는 기법상으로 경계가 없다. 그리고 스필버그의 영화 가운데 더욱 온전하고 풍성한 텍스트는 <쉰들러 리스트>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E.T.>나 <죠스>쪽이다. 스필버그의 ‘B코스’에 해당하는 영화는 종종 ‘A코스’ 영화들의 일부를 잘라낸 각론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쉰들러 리스트>가 오스카를 석권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다시 감독상을 거머쥔 이후 스필버그는 대중영화이면서도 상당히 사적
<우주전쟁>과 스필버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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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주의 마케팅을 고수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의 여름영화 <우주전쟁>이 뇌성없는 벽력처럼 포문을 열었다. 영화의 실체는 과연 위력적이다. 박스오피스 반응 역시 스필버그의 명성에 오래간만에 호응할 조짐. 지난 6월29일 북미 개봉한 <우주전쟁>은 6일간 1억1328만달러를 벌어 2000년대 들어 스필버그 최고 흥행작이 될 전망을 높이고 있다(<캐치 미 이프 유 캔> 최종수입 1억6460만달러). <우주전쟁>의 오프닝 성적이 말 많은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 커플에 대한 국민 찬반 투표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파라마운트의 염려는 기우로 끝나는 듯하다. 2005년은 스필버그와 그의 30년지기 조지 루카스가 다시금 엔터테인먼트의 명장 계관을 위풍당당하게 탈환한 여름으로 추억될 것이다.
또한 SF블록버스터 <우주전쟁>은, 이미 ‘할리우드’의 비슷한 말이 돼버린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의 실체, 즉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고강한 기량
<우주전쟁>과 스필버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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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솔직한 쪽을 택했다”
최익환 감독은 여고에 불쑥 들어가더라도 바바리맨쯤으로 오해받지 않을 만큼 어려 보인다. 그 때문에 소녀의 마음 어두운 구석의 파장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는 단편영화 <트루 로맨스> <나는 왜 권투심판이 되려 하는가>로 주목받았던, 벌써 서른여섯 먹은 감독이다. <여고괴담>의 조감독을 했던 경력이 십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 시리즈 네 번째 영화에 맞닿은 신기한 인연. 언제나 정체성과 기억에 관해 물어왔다는 그는 데뷔작을 만들면서 목소리에 자신의 존재 전부를 실을 수밖에 없는 슬픈 원혼을 발견했고, 시리즈에 묻히지 않는 비전을 드러냈다. 첫 번째 시사회가 끝난 다음날, 필름현상소에 가기 전의 바쁜 막간, 약간은 혼돈에 빠져 있다는 최익환 감독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기자시사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도 든다. 내가 기본적으로 영화를 보는 기준과는 다른 측면으로 영화를 평가
<여고괴담4: 목소리> [2] - 최익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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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러의 새로운 기로
소녀 귀신이 돌아왔다. 1998년 첫 번째 영화가 시작되었던 <여고괴담> 시리즈는 재생을 거듭하면서 ‘학교’와 ‘소녀’와 ‘괴담’이라는 키워드만으로 느슨하게 묶인 속편을 생산해왔다. 사랑받지 못했던 소녀의 원한,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을 원했던 소녀의 슬픈 사랑, 저주로 변해버린 소녀들의 시기와 증오. 그리고 네 번째 영화 <여고괴담4: 목소리>. 유령의 시점으로 학교를 바라보는 <여고괴담4: 목소리>는 세편의 전작과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그물에 갇히지 않으면서 잔인하고도 애틋한 소녀들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기억되고 싶고 살아남고 싶은 소녀의 욕망으로 일그러지는 학교는 차가운 공포의 세계이고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떠도는 혼돈의 세계다. 듀나가 이 세계를 주목해야만 한다고 설득하는 리뷰를 보내왔고, 데뷔작을 내놓은 최익환 감독의 인터뷰가 그 뒤를 따른다.
오늘 이 글에서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최익환의 <여고괴담4:
<여고괴담4: 목소리> [1] - 지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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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과일처럼 싱싱한 귀신들이 사이좋은 연인들을 싸우게 만드는 때가 왔다. 심령 사진을 소재로 한 <셔터>, 악령이 씌인 친족살해 현장 <아미티빌 호러>가 테이프를 먼저 끊은 가운데, 귀신 붙은 구두 <분홍신>, 한국 귀신영화의 대표적 프랜차이즈가 된 <여고괴담4: 목소리>가 개봉일을 잡았으며, 으스스한 가발을 소재로 한 <가발>, 사람 잡는 의문의 선율 <첼로>가 그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보자아∼”, “싫엇!” 하며 극장 앞에서 승강이를 벌이는 연인을 위해, 갖은 귀신들에 대한 조금은 가벼운 특집을 준비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준비운동이랄까. 개개의 캐릭터와 사연을 보자면 귀신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말은 이렇게 한다만, 기획 덕분에 귀신영화에 둘러싸인 알찬 한주를 보내자니, 얼마나 송름스럽고 꺼림칙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귀신도 자신의
영화 속 귀신들 -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인 귀신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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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동산에 방울소리 들린다
새 천년 2월, 애니메이션 은하계 에로스 행성에서 한국 비디오시장을 향해 두번째 운석이 날아왔다. 휴대폰은 커녕 편지 쓸 종이도 없는, 컴퓨터는 고사하고 기계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원시사회의 성 풍속도를 담아낸 비디오용 애니메이션(OVA) <고인돌>. 보이면 난리가 나는 신체 특정 부위를 아슬아슬한 의상으로 슬쩍 가린 원시 남녀들을 내세운 이 에로스의 운석은, <누들누드>1탄과 2탄으로 패인 성적 판타지의 구덩이를 또 한뼘 넓힐 요량이다.
박수동 화백의 18년 연재물 <고인돌>
<고인돌>은 서울애니메이션과 오돌또기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오돌또기에서 실제작을 담당한 성인용 비디오 애니메이션이다. 고인돌? 제목을 되새겨보고 ‘아하’하는 감탄사를 흘린다면 20대 후반 이상일 가능성 90%. <고인돌>은 74년부터 <선데이 서울>에 연재된 박수동 화백의 만화가 원작이다. 정력 센 미
2000년 애니메이션 제1탄,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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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토바이를 탄다. 핸들을 잡아야 할 두팔을 벌려 고개를 하늘로 치켜든다. 질주하는 젊은이, 그는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는 달리는 기차에 털썩 오른다. 가벼운 옷차림에 변변한 짐도 없이. 기차가 멈추는 곳이 땅끝마을이든, 아프리카든, 홀로 당당할 수 있는 남자. 그는 욕망과 야심이 질척거리는 땅에서 떠나온 지 오래다. 정우성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당당한 체격에는 그 무엇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의 이미지가 있다. 어린아이처럼 씩 웃을 때면 투명한 마음이 비치는 듯하지만 착한 눈망울이 독기를 품을 땐 순수한 분노가 타락한 어른들을 겁먹게 만든다. 그것은 80년대를 창백한 회색지대에 웅크려 있어야 했던 청년문화가 정우성에게서 발견한 시대정신이다.
서태지의, 혁명과도 같은 폭발적 힘은 아니지만, 정우성의 순수한 반항에도 큰 물결을 거스르는 몸부림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자기 재능에 운명을 내맡긴 과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폭력교사의 행동을 힘으로 제압하는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7] -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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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여자들마다 녹아내렸다던 전설의 돈 주앙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먼지 한점 섞이지 않은 햇살 같은 소년, 천상에서 추락한 듯한 천사의 얼굴. 옆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이마와 코와 턱의 선이 얼마나 완벽한 각도를 그리며 떨어지는지 알 수 있는 라이언 필립(25)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에 영감을 주었던 소년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향기를 품은 그 입술이 무언가를 호소할 때, 하늘이 내린 천재 미켈란젤로도 욕망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에서 무심하게 드러내는 그의 나체는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유혹이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소년이 순진무구해 보일 때는 조심해야 한다. 짧게 곱슬거리지만 짓궂지 않은 머리카락과 키스의 자취가 남아 윤기있게 빛나는 입술은 신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는 결국 인간이다. 독을 품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그저 금발의 미소년일 뿐인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6] - 라이언 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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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로(27)는 스크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탄성을 자아내는 배우다. 그의 어깨는 잊혀진 시대의 귀족처럼 당당하며, 단호한 입술은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 밑의 깊은 주름은 파란색과 녹색을 오가는 눈동자에 사색의 깊이를 더한다. 황금처럼 빛나는 금발이 후광으로 느껴지는 주드 로는 <그리스 신화>에 비유하자면, 아폴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상적인 남성미의 화신으로 추앙했으며 세상의 유일한 빛이었던 태양신 아폴론.
유전자로 계급을 결정하는 <가타카>의 미래사회가 한순간이나마 설득력을 가지는 까닭도 주드 로가 연기하는 제롬 때문이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힘겹게 계단을 오를 때 제롬은 어찌할 수 없이 초라하지만, 의자에 앉는 순간,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는 당당한 우성인자가 된다. 그때만은 관객도 유전자의 품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구가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주정할 때도 제롬은 운명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빈센트(에단 호크)의 투쟁을 희미하게 만든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5] - 주드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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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37)의 아름다움은 명료하다. 뾰로통한 입술, 아르누보풍의 예리한 호(弧)를 그리는 눈과 눈썹. 순백의 도화지에 세필로 먹을 찍어 그린 듯한 그의 선(線)은 아주 작은 움츠림으로도 공기를 흔든다. 호화로운 색채도 구구한 대사도 군더더기로 느껴질 뿐이다. 1995년 <데드 맨>과 <에드 우드>에서 그가 흑백 스크린의 순수한 음영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때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1920년대 유럽 멜로 드라마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이목구비를 가지고 표정과 제스추어만으로 수만 가지 수사를 구사하는 이 배우는, 초기 무성 영화 스타들의 혼과 교령(交靈)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런 까닭일까. 조니 뎁은 100년 전 세상에서 길을 잃고 아직도 지상을 헤매고 있는 미아 같다. 버스터 키튼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채플린처럼 행동하는 몽상가로 분한 <베니와 준>에서는 마치 혼자 달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뎁의 출연작 가운데 비교적 현실을 ‘똑바로’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4] - 조니 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