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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스는 내게 감독을 꿈꾸게 했다"
“로제 바딤이 오늘 죽었다. 내 사랑을 담아,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 잔 모로(72)의 허스키 보이스가 커다랗게 울려퍼지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올 베를린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 그는, “유러피언 시네마의 산증인인 잔 모로에게 이 상을 바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집행위원장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이 모든 기쁨을 로제 바딤 감독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프랑스 기자들이 불어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소한 신경전이 있었으나, 기자회견 자리에서만 4개국어를 구사해보인 잔 모로의 대답은 명쾌했다. “내 어머니는 영국인이고 아버지는 프랑스인이다. 주지시켜줘서 고마운데, 날 그냥 유럽인으로 생각해달라(Let’s be European.)” 불확실한 사실을 들먹인 이들은 잔 모로의 즉각적인 정정 발언에 주춤해야 했고, 마땅찮은 질문을 한 기자들은 은근슬쩍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장은 그렇게 온통 ‘마담 모로’에게 압도당하는 분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3] - 잔 모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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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중국 영화인들의 희망”
50주년을 맞은 베를린영화제가 심사위원장 자리에 공리를 앉힌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88년 <붉은 수수밭>에 금곰상을 안기면서, 겨우 데뷔작을 내놓은 장이모와 공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선사했으니, 베를린영화제로서는 ‘우리가 발굴하고 키웠다’는 자부심이 과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중국영화계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공리는 12년 전의 감회를 되살려, 모리츠 드 하델른 집행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안제이 바이다, 마리아 파레데스, 월터 살레스 등 8명의 쟁쟁한 다국적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중책을 맡아, 상당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영어와 독어를 못한다는 것이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공리는 중국 전통의상을 응용한 화려한 의상과 기품있는 언행으로 영화제 내내 ‘페스티벌 레이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리가 출연하고 선 자오 감독이 연출한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는 ‘공리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로 공식 프로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2] - 공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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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패기, 유럽과 교감하다
공공장소에도 영어 표지판 하나 없는 이곳 독일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 영어할 줄 알아”하고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월20일 밤, 열이틀의 행사를 마감하는 폐막식 자리에서 금곰상 수상자 폴 토머스 앤더슨이 독일어를 모른다고 사과하자, 관객이 보인 반응이다. “정말?” “예스!” 마치 록 공연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유럽 관객과 교감한 할리우드의 젊은 감독은 그제야 “이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다. 심사위원 모두에게, 그리고 베를린에 감사한다”고 달뜬 얼굴로 소감을 전했다. <매그놀리아>의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은 수상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스타였다. 그는 이미 관객이 가장 많은 찬사를 보낸 작품을 만든 감독, 배우를 제치고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거의 유일한 할리우드 감독이었다.
“오스카가 저버린 영화, 우리가 살렸다”
금곰상 이외의 관심거리도 있었다. 심사위원장 공리가 본선에 진출한 장이모에게 과연 상을 주겠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1] - 수상작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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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선택, 사실은 느낌으로 한다”
아침 8시의 블라디보스토크 광장. 흐트러진 머리칼과 아무렇게나 걸쳐입은 듯한 의상. 영화 촬영을 위한 모습 그대로 나타난 이미연은 약간 피곤한 기색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에너지를 쏟아서 연기하면 삭신이 쑤신다. 소염제, 파스… 약만 늘어난다”며 웃어젖힌 그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포즈를 취하는 순간만큼은 에너지를 되찾은 듯 생생해졌다. 누추한 의상에 당황했던 사진기자의 셔터 소리도 덩달아 탄력을 받는다.
-입은 옷과 몸상태를 보아하니, 명주라는 역할이 대충 가늠은 된다.
=20년을 자기 뜻과 상관없이 험난하게 살아온 여자다. 그런데 그 인생역정은 생략하고 망가진 이후부터 보여줘야 하니, 한신만 촬영해도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는 기분이다. (온몸의 멍을 보여주며) 차라리 액션장면 찍다 이랬으면 남들이 고생했다고 치사나 하지. (웃음) 몸이 아픈 상태라 항상 기운없이 자빠져야 한다. 또 가슴에 멍을 안고 사는 여자이기도 하고
<태풍> 블라디보스토크 촬영현장 [3] - 이미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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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된다는 믿음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냈다”
곽경택 감독은 예전보다 살도 10kg 이상 빼고, 머리도 깍두기 스타일로 짧게 잘랐다. 감독 자신이 건강한 모습을 지켜야만 지난 11월부터 한국과 타이와 러시아를 유랑민처럼 돌고 있는 스탭들을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나자마자 그간 <태풍>의 이미지나 스토리에 대해서 극도로 노출을 꺼려와서 원성이 높았다고 전하자 “오래 찍어야 하니까. 개봉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괜히 조금씩 보여드렸다가 ‘벌써 개봉했나?’ 이런 말 나오면 안 되지 않냐”며 능글맞게 우회로로 들어선다.
-<똥개>를 끝내고 나서 김형욱에 대한 영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결국 <태풍>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
=사실 <똥개>보다 <태풍>의 시놉시스를 더 일찍 만들어놓았었다. <똥개>를 촬영하면서도 끝내자마자 <태풍>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l
<태풍> 블라디보스토크 촬영현장 [2] - 곽경택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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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 인구 70만명의 러시아 항구에 내려앉는 순간 극동 끝자락의 냉기가 슬며시 얼굴을 때린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착역이 있는 도시, 소비에트연방의 극동함대 본부가 자리잡았던 도시. 이곳이 바로 꽁꽁 숨겨져 있던 곽경택의 150억원 블록버스터 <태풍>의 제작진이 한달여간 자리잡고 촬영을 진행 중인 곳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풍>의 제작진은 극소수의 매체만을 초빙한 채 6월17일부터 19일까지 현장의 문을 비밀리에 열어젖혔다. 지난 5월26일 부산 해운대에서 선행되었던 1차 현장공개는 쓰나미처럼 몰려든 100여명의 기자단으로 가득했고, 도저히 <태풍>의 진면모와 곽경택의 솔직한 비전을 훔쳐볼 수조차 없는 이벤트였다. 초대받은 소수로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한 탓일까. 블라디보스토크의 현장에서도 <태풍>은 빙산의 일각만을 슬쩍 내보였을 뿐이다. 바다도, 액션도, 스펙터클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태풍> 블라디보스토크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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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 빌어먹을 섹스 심벌은 뭐하는 직업인가?”
인터뷰 시간은 낮 12시30분으로 예정돼 있었다. 기자들은 마제스틱호텔 8층 스위트룸 야외 테라스에 모여 “10분만”, “20분만” 하는 영화사 직원 말에 “그럼 그렇지” 하며 기다렸다. 미키 루크는 1시30분에 나타났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미안하다고 그가 말했다. 술냄새가 풍겼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를 꺼내며 “햇볕을 쬐고 싶은데 파라솔을 걷어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이미 햇빛을 1시간이나 쬐고 벌겋게 익은 기자들의 얼굴색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리라. 새카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니까. 그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그의 얼굴을 기자들도 다 보지는 못했다.
-연기를 그만두고 복싱을 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신 스스로를 망가뜨린 것 아닌가.
=맞다.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도 했던 일이지만 그때의 선택은 그랬을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전의 내 행동들
돌아온 탕아 미키 루크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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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세번째 인생
미키 루크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름이다. 그의 화려한 시절은 <럼블 피쉬> <나인 하프 위크> <엔젤 하트> 등을 찍었던 80년대였고 그 시절은 그때로 끝났다. 그는 한심한 액션영화 주연이나 별볼일 없는 조연으로 훨씬 긴 침체기를 보냈다. 6월30일 국내 개봉을 앞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신작 <씬 시티>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멋쟁이 반항아 미키 루크가 못난이 부랑아가 되었다. 영화 속 캐릭터 마브가 그와 썩 잘 어울리며, 입체적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해졌는지 궁금해졌다. 미키 루크의 지난 20년을 들춰보기로 하면서 올해 칸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를 함께 실었다.
미키 루크는 늙고 상처입은 곰 같았다. 그의 몸은 아름다움 없이 비대하기만 했고, 넙적하고 푸석푸석해진 얼굴 오른쪽 귓가에는 뚜렷한 흉터가 있었다. 영화 <씬 시티>의 캐릭터 마브의 사포면 같은 목소리는 배우가 만들어낸 변조
돌아온 탕아 미키 루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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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펜던스 데이>의 한 장면. 외계인이 세계 주요 도시 상공에 출몰한다. 뉴욕의 어느 고층 빌딩 옥상 위에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이상한 옷을 입고… 한마디로 시집, 장가 가는 사람들마냥 설렌 모습으로 모여 있다. 임박한 외계인의 등장에 전세계가 긴장하는 시국에 무슨 난리냐고? 이들은 외계인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늘을 향해 외친다. “우리를 데려가줘요!” “환영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외계인의 영접을 받아 낯선 별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느냐고? 글쎄, 인간의 몸을 순식간에 태워버리는 게 새로 개발된 외계인의 텔레포트 방법이 아니라면 저승에 다들 가 있는 것 같다만. 요점은 이것이다. 세상에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아주 적지 않다는 것.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들에서 그들의 존재는 대개 희화화되지만,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종교까지 있는 것을 보면(사이언톨로지는 톰 크루즈, 존 트래볼타 같은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다) 외계인이란 아이들이나 믿는 것이라고
알쏭달쏭 외계인백과 - 영화를 통한 세 가지 사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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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2005)
페넬로페 크루즈와 매튜 매커너헤이
성적 | 6560만달러 상관관계 | 출연작마다 상대와 염문을 뿌리는 두 배우, 함께해서 주목도가 한결 높아졌다 이후 | 현재까지 교제 중
<사하라> 영화 정보 보기
<나를 책임져, 알피>(2004)
주드 로와 시에나 밀러
성적 | 1340만달러 상관관계 | 당시 주드 로의 출연작 여섯편이 거의 동시에 개봉했기 때문에 어쨌거나 식상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 | 약혼한 상태
<나를 책임져, 알피> 영화 정보 보기
<데어데블>(2003)
벤 애플렉과 제니퍼 가너
성적 | 1억254만달러 상관관계 | 청소년층이 좋아하는 코믹북 소재 영화로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됐던 작품이다 이후 | 약혼한 상태
<데어데블> 영화 정보 보기
<질리>(2003)
벤 애플렉과 제니퍼 로페즈
성적 | 610만달러 상관관계 | 영화 밖에서 너무 많이 봐서 지
스캔들과 흥행 [2] - 흥행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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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이 낳은 아이, 대박일까? 쪽박일까?
“사랑에 빠지지 않고 그런 척 연기해선 안 된다.” <클레오파트라>(1963)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진짜’ 사랑에 빠진 리처드 버튼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각자 가정이 있던 두 주연배우는 현장에서 눈이 맞았고, 둘의 불륜(당사자에겐 로맨스!) 사실이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까 전전긍긍하던 스튜디오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테라스에서 키스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광경을 노출했다. 설상가상으로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솟구치면서, 제작비를 환수하는 미션을 달성하는 것조차 힘겨워졌고, 영화는 우려한 대로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제작사인 이십세기 폭스사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의 스캔들이 정말 흥행에 독이 되었던 것일까. 이후 수십년 동안 암묵적으로 주연배우들의 연애를 금기시했던 할리우드에 최근 들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년 만의 흉작으로 먹구름이 드리웠던 미국 극장가에 간만에 흥행의 단비가 내렸
스캔들과 흥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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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현장을 주목하는 이유 셋!
하나! 단편영화제의 스타감독
이하 감독의 단편영화 <용산탕>과 <1호선>의 주인공은 동네 목욕탕 때밀이와 ‘야메’ 운전학원 원장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다. 주변인들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응원하기 위해 일상의 작은 부분에 현미경을 들이밀고, 극적이거나 치열하지 않은 표면 밑에 은근한 무게를 담는다. 연출작의 전부인 단국대 연극영화과와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두편이 온갖 단편영화제를 휩쓸면서 기대를 모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둘! 빵점자리 시나리오의 불가해한 유혹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좀 이상하다. 하나같이 점잖은 직업을 지녔으면서 치졸한 인물들이 여럿 나오는데 정확히 주인공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여교수를 둘러싼 애매한 갈등은 황당한 사건으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상업영화로는 빵점짜리인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는 오가원 PD는 “상업영화로 쉽게 만들어질 수
신인감독 3인의 현장 [4] - 이하 감독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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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현장을 주목하는 이유 셋!
하나! 백 선생의 선택
신인감독의 스타메이커인 백윤식은 신한솔을 “장준환 더하기 최동훈”이라고 표현했다. <싸움의 기술>은 판수와 병태라는 독서실에서 만난 두 인물이 벌이는, 나이차를 넘어 주고받는 교감과 공고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왕따, 학교폭력, 가정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하드보일드한 소년담을 조합하려 한다.
둘! 파렴치한 그러나 매혹적인 상상력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은 “신한솔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1년 후배였다. 아카데미는 처음 입학하면 누구나 다섯컷짜리 영화를 찍는다. 이전까지 봉준호 감독의 다섯컷이 제일 유명했는데 16기 신한솔이 그걸 뒤집었다. 달나라에서 인형들이 섹스하는 내용의 그의 작품에 15기 전원이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졸업작품 <염소가족>이 무척 파렴치하고, 유치한데 그걸 눈 딱 감고 해치우는 이상한 매력을 가졌다”라고 말한다.
셋! 배짱은 원칙엄수에서부터
제작자가 참석
신인감독 3인의 현장 [3] - 신한솔 감독의 <싸움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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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현장을 주목하는 이유 셋!
하나! 인터넷 포르노방송
해외에서 한국으로 쏘아올리는 인터넷 포르노방송의 현장을 LA에서 재현한다. 끔찍하게 가학적인 포르노 <디즈니랜드>를 찍어 ‘화제’에 오르기도 했던 한국인 포르노 제작자들의 내부로 들어가보려는 시도다.
둘! 웨스턴 누아르
로케이션 인력의 절반을 넘는 할리우드 현지 스탭들은 <러브하우스>의 영문 스크립을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올랐다고 한다. 동양인 유학생으로서 셰익스피어의 본고장 영국에서 영국 배우들을 데리고 셰익스피어 극의 전통을 재해석한 단편 사극 <바람의 속삭임>을 만들었던 김판수 감독은 LA에서 다시 한번 당돌한 모험을 시작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부기 나이트>를 만났을 때 같은 웨스턴 누아르를 만들고 있다.”
셋! 젊은 해외파 집결
김판수 감독은 런던영화학교 재학 시절 만든 단편 <잘 자라 우리 아기>가 영국 최우수 단편영화로 선정된 바
신인감독 3인의 현장 [2] - 김판수 감독의 <러브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