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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보고 강혜정을 캐스팅했다”
5번째 장편 <보이지 않는 물결> 촬영 중인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은 펜엑 라타나루앙(43)의 필모그래피에서 변곡점 같은 영화다. <펀 바 가라오케> <69> 등이 로테르담, 베를린 등에 소개되면서 한때 ‘타이의 타란티노’라 불렸던 그는 타이 서민들이 즐겨 듣는 룩퉁 뮤직을 뼈대로 한 영화 <몬락 트랜지스터>로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에서 재기발랄함을 완전히 버렸다. 대신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정적인 화면에 깊이있게 담아냈다. 전작들에 비해 “더 느리고, 더 조용하고, 더 황폐하고, 더 신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도일, 아사노 다다노부와의 협업의 결과물이었다. 2월24일 촬영을 시작한 펜엑 라타나루앙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보이지 않는 물결>(Invisi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6] - 펜엑 라타나루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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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는 아무 생각없이 보면 아주 쉽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35)은 방콕에 없었다. 그는 <세계의 욕망> 촬영을 마치고 고향 콘캔에서 신작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 전날 그는 자신의 모교 콘캔 대학에서 워크숍 강의가 있어 도저히 방콕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전해왔다. 급한 놈이 나선다고, 하는 수 없이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떨어진 콘캔으로 날아갔다. 방콕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고향에선 달랐다. <열대병>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그를, 지인들은 유명 감독이라며 자신의 또 다른 동행자들에게 알리기 바빴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면서부터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그의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병원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였다. 타이영화의 신성, 아핏차퐁이 새우볶음밥을 오물거리며 털어놓은 자신의 영화에 관한 짧은 주석.
-<정오의 낯선 물체>에선 시체놀이(exquisite corps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5]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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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영화 연표(1897∼1995)
활동사진에서 시작, 영화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1897
산바사트라 왕자, 출라롱컨 왕 유럽 여행 중에 유럽 여행길에 촬영장비 들여옴(그가 찍은 단편기록들은 1900년 이후 것만 발견됨). <멋진 파리풍의 촬영: 살아 움직이는 그림> 맘 차오 알랑칸 극장에서 상영.
1904∼05
일본 흥행사들, 방콕의 왓턱에 거대한 텐트 설치하고 러일전쟁 영상 등을 보여줌. 1905년에 일본 영화관 건립. 타이 최초의 영화관.
1904∼22
유럽과 할리우드에서 수입된 무성영화 상영. 캄베안베르 왕자, 정부 활동 소개 위해 시사영화제작소 설치(1922)
1923
미국 감독 헨리 멕레, 타이인들로 출연진을 구성한 35mm 무성영화 <샴국의 미스 수완> 제작.
1927
방콕영화사, 타이인이 제작한 최초의 영화 <두배의 행운> 만듦. 잇따라 최초의 영화사인 샴영화사의 <뜻밖의 사건> 완성.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4] - 타이 영화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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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옹박> 머지 않았다
90년대 타이영화 르네상스부터 2005년 현재까지의 타이 영화 산업
1996년의 어느 날. 논지 니미부트르와 위시트 사사나티앙은 방콕 쑤꿈윗가의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파콘 예술대학 미술과 동기인 두 사람의 대화는 여느 때처럼 영화 이야기로 흘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틴에이저영화 지겹지도 않나”라는 불평을 했고, “볼 영화 참 없지” 하고 맞장구쳤다. 그리곤 만취해서 헤어졌다. 둘의 회합은 그뒤로도 계속됐다. 광고 후반작업을 위해 사사나티앙이 칸타나 스튜디오 편집실에 갔을 때 역사가 이뤄졌다. 거기엔 니미부트르가 와 있었고, 두 사람은 이날 “우리 말로만 그러지 말고 보고 싶은 영화 직접 만들어볼까”라는 데 의기투합했다.
아이템은 니미부트르가 오랫동안 품어온 1940년대 방콕을 배경으로 한 갱영화였다. 10대 영화나 슬랩스틱코미디로만 근근이 연명하던 타이영화를 바꿔보자는 심산이었다. 공동 작업 끝에 두 사람은 완성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3] - 타이 영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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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괴상한 촬영현장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계의 욕망> 촬영 현장을 가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따로 지시하는 것도 별로 없다. 디지털캠코더 이동시에 곁에 있는 1∼2명의 스탭들을 손짓 아니면 눈짓으로 부르는 게 전부다. 감독이긴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액션’을 부르지도 않고, ‘컷’을 외치지도 않는다. 35mm 카메라는 모니터 앞에 다리 뻗고 앉은 한 여자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남녀 배우 두 사람도 그녀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반면, 위라세타쿤은 염탐이라도 하듯 캠코더를 들고 수풀 사이를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다. 쓱 돌아보면 누구나 쉽사리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는 혼자서 유령놀이라도 하듯 비밀촬영이라도 하듯 자신을 숨기느라 애쓰며 35mm 구역을 맴돈다. 머리에 쓴 국방색 얼룩 모자는 어쩌면 은신을 위한 보호장구일지도.
‘액션’도 ‘컷’도 없는 조용한 현장
지난 1월21일이었다. 여태껏 본 적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2]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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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는 지금 또다른 르네상스를 꿈꾼다
인디컴이 이번엔 <아시아영화기행>을 만든다. 1995년 <세계영화기행>을 내놓으며 주목받았던 인디컴은 전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아시아영화로 포커스를 좁히는 대신 좀더 심도있는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이란, 인도, 타이, 홍콩, 중국, 중앙아시아 등 아시아 9개국과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까지 모두 10개국이 대상. 올해 10회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열돌을 맞은 <씨네21>이 후원하며, CJ미디어가 협찬하는 이 대장정의 기록은 현재 방영을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과 협의 중이다. <씨네21>은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인디컴의 취재과정에 동행하고 있고,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영화의 이해를 위한 첫 번째 디딤돌로 타이 편을 내놓는다. 전주국제영화제 3인3색 프로그램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계의 욕망> 현장 방문기,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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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에서 광야를 헤매는 전성환의 목소리는 질풍노도 같다. 천둥치는 듯한 박력과 우렁찬 성량, 끊어서 관객의 폐부를 치는 듯한 명확한 발음은 리어왕의 분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악기 같다. 그는 낮에는 부산 MBC의 PD로 일했고 밤에는 연극을 했다. 40년 연극 생활 동안 그는 리어왕이거나 윌리 로먼(<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무대 위를 통치했다. 흰 구레나룻과 이국적인 눈매, 압도적인 성량은 무대 위의 왕에게 잘 어울리는 외투였다. 영화 데뷔는 늦었다. <오구>와 <청풍명월>에서 잠깐 얼굴을 내비치긴 했지만 김기덕 감독의 <활>은 전성환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맡겨진 영화 배역이다. 부산 연극계의 얼굴로 이해랑연극상을 받기도 한 이 배우의 크기에 비로소 맞는 역할이 아주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데이브 브뤼벡의 <테이크 파이브> 선율에 맞춘, ‘교수인 줄 알았는데 학생이더라’는 내용의 그가 찍은 이동통신 CF는 나이는
김기덕 신작 <활> 이야기 [3] - 주연배우 전성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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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활>의 활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쏘는 활이며, 또 하나는 김기덕 감독이 쏘는 활에 소리통을 붙여서 만든 개량 악기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며(무기), 남의 상처를 위로하기도 하는(악기) 두겹의 의미인 것이다. <수취인불명>에 활을 등장시켰던 김 감독은 그 활을 다른 뜻으로 다시 들고 나온다. 치명적인 무기로 쓰여 눈을 다치게 했던 화살은, 이 작품에선 운명을 읽는 점괘가 된다. 노인은 활점을 볼 때(노인이 활을 쏘면, 활이 맞은 지점을 보고 소녀가 점괘를 본다. 아무에게나 봐주는 것은 아니고 단골 낚시꾼만 그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는 없는 점술이지만 매우 그럴듯하다고 한다), 그리고 외지인(노인의 배 위에서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온 낚시꾼)이 소녀에게 수작을 부릴 때 경계용으로 활을 쏜다. 전성환은 사직공원 근처의 활터인 황학정에서 촬영 시작 전날 집중적으로 국궁 연습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연습은 촬영 기간 틈틈이 했다. 무
김기덕 신작 <활>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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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 사이, 심원한 사랑의 구원을 찾아서
김기덕 감독의 12번째 작품 <활>이 시위를 당겼다. 5월12일 강남의 씨너스G극장과 부산의 부산극장 두 군데서 비밀리에 찍은 <활>을 공개한다. 시사회나 프리뷰 기사 하나없이 바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개봉 2주차엔 스크린 수가 6개로 늘어난다고 한다. 영화는 훨씬 더 깊고 부드러워졌으며 단순한 이야기를 끌고 나아가는 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칼바람 부는 1월 서해에서 20일도 안 돼 완성한 <활>의 제작과정을 스탭들에게 들어보았다. 그리고 리어왕으로 잘 알려진 뛰어난 연극배우 출신으로 <활>의 60대 노인 역을 맡은 전성환을 만났다. 김기덕 감독은 인터뷰를 사양했다(당분간 국내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김 감독이 ‘이미지의 과다 노출’을 꺼리는 바람에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단 한장의 스틸과 포스터가 전부였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받은 김 감독
김기덕 신작 <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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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만 주목하지 말라!
조연배우와 스탭에게 상대적 박탈감 안기는 <씨네21>의 균형감각을 비판한다
<씨네21>은 건강한 잡지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한국 영화시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사명의식을 밑에 깔고 나아가고 있다. 흥미를 추구하면서도, 선정주의보다는 영화 판도 전체를 뜯어보면서 하는, 그러면서 충무로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문지다. 다만 맹점은 있다.
먼저 영화예술 지향이 너무 크다는 것. 영화가 지니는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두루 균형있게 아울러야 하나 문화쪽에 20%가량 치우쳐 있다. 예술영화를 우상화한달까. 그리고 너무 감독 중심으로 가는 나머지 지나치게 감독을 미화한다는 느낌도 있다.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감독의 철학과 감각을 디테일하게 다뤄보고 대변하는 순기능도 있으나 이런 와중에 과대평가된 감독도 적지 않게 만들어냈다. 감독 말고도 함께하는 스탭이 많고, 그들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명해야 한다. 이를
<씨네21>을 비판한다 [7] - 이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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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장르가 무슨 죄인가?
코미디 감독의 고뇌를 무시하는 <씨네21>을 비판한다
‘관객이 웃는다! 행복하다’
위 문장은 내가 <두사부일체>로 입봉하여 첫 번째 가진 <씨네21>과의 인터뷰 기사에 나온 헤드라인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이 기뻐서 웃는 그 모습을 극장 구석에서 훔쳐보며, 감독이란 얼마나 보람되고 행복한 직업인가를 온몸으로 느끼며,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곤 했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씨네21>에서는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해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혹평으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한동안 <씨네21>이란 잡지를 다시는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에 대한 자부심이 <씨네21>을 만나면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수없이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라는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라고 배웠고
<씨네21>을 비판한다 [6] - 윤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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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날을 다시 세워라
초심의 기개를 잃어버린 <씨네21>을 비판한다
한때 대한민국에 영화 주간지가 다섯개나 서식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세계를 탈탈 털어 영화 주간지가 발행되고 시장에서의 입지 또한 굳건한 나라는 라식수술을 두번 했대도 찾을 수 없으니, 그들의 번성은 자체로도 경이였다. 그때 ‘생각있는’ 자들에게 <씨네21>만큼 강박적인 텍스트도 없었다. 온갖 문화적 레시피를 곁들인 이 매체를 통과하지 않고는 동시대의 ‘앞선 벗’도 온전한 ‘시민’도 될 수 없었다.
<씨네21>의 10년은 권세가로서의 시간이기도 했다. 창간 즈음과 한국 영화산업의 고속 성장이 같은 좌표를 그리고, 영화산업의 영역들이 <씨네21>을 주요 저널로 인식하면서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좌파적 문화잡지가 진보적 무엇인 영화와 융합되자 단숨에 문화권력자의 면류관을 쓴 것이다. 일개 잡지가 영화정보의 매개체 역할뿐 아니라 ‘저널’로서의 방향성과 표표함까지 보
<씨네21>을 비판한다 [5] -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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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이고 다각적인 분석을!
영화산업을 다루는 방식에서 구태의연한 <씨네21>을 비판한다
만만하게 보인 죄로 며칠 전부터 담당 기자의 원고 독촉 전화가 계속이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씨네21>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달라는 부탁인데 사실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스스로 비판할 만한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반성하면 될 일이지 당사자가 굳이 쓰기 싫다는데 억지로 떠맡길 건 뭐란 말인가? 더욱이 창간 10주년이라는 잔칫상을 받아들고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부탁하는 건 아무래도 진심이라기보다 구색맞추기라고 이해하는 것이 똘똘한 처신이 아닐까 싶다. 이제 분위기 파악은 끝났는데 문제는 파악된 분위기에 맞게 언뜻 보면 예리한 비판 같으면서도 잔칫집 체면은 거스르지 않을 만한 비판의 내용이 뭔지 도통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냥 개인적 감상이나 끼적이기로 결심했다.
<씨네21>? <씨네21>! <씨네21>?… 무지하게 촌
<씨네21>을 비판한다 [4] - 오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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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로가 정말 미남이야?
증명해야 할 것을 당연한 사실인냥 써놓는 <씨네21>을 비판한다
나 열살 됐어.
정말? 정말이야? 이야, 축하해. 근데 음, 정말 열살밖에 안 됐니? 난 니가 마흔은 된 줄 알았어.
(<씨네21>, 미소를 잃지 않으며) 무슨 뜻이지?
아니, 난 그냥 니가 항상 있었던 거 같아서, 어디에나 있었던 건가? 지하철 타러 가면 항상 가판대에 걸려 있어서 만날 니 표지를 보다가 차를 타곤 했는데 음… 너의 옴니프레즌스가 근데 자가용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더라.
자주 보이면 오래된 건가 보구나. 근데 나를 비판해줄 사람이 많은데 하필 네게….
그래, 그래. 자, 비판을 시작하자. 우선 비판받겠다는 건 참 훌륭한 생각이야. 근데 너 정말 비판받고 싶은 거 맞지, 응? 왜냐하면 전에 “맘에 안 드는 거 있음 말해줘요. 다 고칠게요” 그러는 애들을 간혹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친구들 생각이 나서 좀 겁나. 하지만
<씨네21>을 비판한다 [3] - 신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