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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실험은 전진한다
독립영화 작가들이 관객을 만나기 위해 직접 준비했던 인디포럼이 첫발을 내디딘 것이 1996년 5월. 인디포럼96이 ‘아마추어에서 작가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개최된 이래로 9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는 5월28일(토)부터 6월6일(월)까지 10번째 인디포럼이 새로운 서울아트시네마(구허리우드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인디포럼2005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디포럼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내실있는 기획전. 인디포럼 역대 상영작 중 홈페이지 투표를 통해 관객이 직접 선정한 작품 6편(<관객선택>), 역대 상영작 중 영화의 가능성을 확장했다고 여겨지는 프로그램 선정작 9편(<새로운 풍경>), 인디포럼에선 상영되지 않았지만 다시 관객을 만나야 한다고 평가되는 프로그램 선정작 5편(<아웃 오브 인디포럼>)이 그것이다. 20편에 달하는 기획전 영화들은 인디포럼 10년을 넘어 독립영화의 10년을 조망할 수 있는 작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6] - 인디포럼 추천작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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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7; 퀴어
소수자의 욕망, 커밍아웃하다
1997년 9월 열릴 예정이었던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는 그로부터 1년 뒤,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창립한 것은 1998년 9월. 표현의 자유와 검열문제로 독립영화계가 유난히 들썩거렸던 무렵이다. 독립영화인과 동성애운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많은 싸움을 함께했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물론 독립영화와 퀴어영화의 밀접한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이러한 집단 경험 이외에 좀더 근본적인 지적이 필요하다. 영화에 뛰어든 뒤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은 1997년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자극받아 첫 작품인 <언제나 일요일 같이>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제1회 퀴어영화제와 인디포럼에서 상영됐다. “독립영화계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커밍아웃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 그리고 그런 문화행사 자체가 커밍아웃하지 못한 동성애자 감독들에게 작품을 찍을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퀴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5] - 퀴어&독립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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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5; 스타
홍보전략에서 브랜드로
김동원, 변영주, 송일곤, 류승완, 정지우, 김용균, 임필성, 신재인, 이송희일, 노동석, 김정구, 민동현, 원신연, 이경순, 최하동하, 채기, 이하…. 이들 외에도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꼽히는 감독들은 많이 존재한다. 독특한 영화세계, 의미있는 성과, 참신한 시도, 또는 감독 개인의 캐릭터 등 덕분에 일부 감독들은 언론이나 영화제 등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유운성씨는 독립영화계의 스타가 1997년 무렵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타 만들기는 인디포럼 등 영화제가 자리잡지 못했던 당시만 해도 독립영화의 존재감을 주류사회에 알리는 유효한 전략이었다. 그런 전략을 영화저널을 중심으로 한 매체들이 받아들이면서 스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몇몇 스타는 독립영화라는 미지의 대지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얼굴마담’ 또는 ‘필요악’ 구실을 한 셈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제작되는 독립영화의 편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4] - 스타&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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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5; 영화집단
독립영화 발전의 동력, 지금은 재충전중
“그동안 독립영화의 역사는 영화집단의 역사였다.” 원승환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의 이야기처럼 영화집단은 독립영화 탄생의 맹아였으며 발전의 동력이었다. 1980년대 서울영화집단, 장산곶매, 바리터, 노동자뉴스제작단 등의 성과는 1990년대 들어 영화제작소 청년(김용균, 정지우, 박찬옥, 임필성, 이두만, 장희선 등), 푸른영상(김동원, 김태일, 오정훈 등), 기록영화제작소 보임(변영주, 장호준 등), 젊은영화(이송희일, 김성숙, 채기, 고은기, 박경목 등), 파적(김정구, 윤영호, 김설우, 유하 등), 영화제작소 몽(박지원, 김희진 등)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 신생 영화집단은 이념적 지향을 공유(청년, 푸른영상, 보임)하기도 했지만, 영화적 지향을 함께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띠어나갔다. 이에 따라 독립영화의 지평은 급속하게 확장됐다. 1995년 독립영화협의회 워크숍 멤버들이 만들었던 젊은영화 또한 사정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3] - 영화집단&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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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1; 검열
‘표현의 자유’를 향한 고된 싸움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검열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은 대부분 충무로보다는 독립영화 진영에서 터져나왔다. <파랑새> <부활하는 산하>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를 관람하는 것은 시위 참여와 다를 바 없었다. 1996년부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전투는 극에 달했다. 그해 6월 푸른영상 김동원 감독이 불구속수사 처리된다. 이틀 뒤 대책위가 설립되며 표현의 자유와 영상 관련 악법 철폐에 대한 영화계의 대응은 급물살을 탄다. 그리고 10월 헌법재판소는 공륜의 영화 사전검열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다. 1997년 인디포럼의 상영 중단 사태, 퀴어영화제 무산으로 다시 불붙은 검열 철폐와 사전심의에 대한 논란은 제2회 인권영화제 사태를 통해 말 그대로 ‘폭발’한다. 홍익대쪽의 집행위원장 고소, 시설물 보호 요청, 상영장 봉쇄, 옮겨진 상영장 난입, 압수 수색, 개막작 상영 직전 단전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2] - 검열&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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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독립영화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인디포럼’이 처음 관객을 만난 것이 1996년 5월. 공교롭게도 이 시기를 전후한 몇년간은 독립영화계와 검열당국의 지루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레드헌트>와 <세발 까마귀> 등의 영화와 퀴어영화제, 인권영화제 등 수많은 독립영화제들이 사전심의를 거부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도전과 실험정신, 그리고 소수문화를 향한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독립영화가 지닌 건강한 정치성의 당연한 결과였다. 이는 다시 개별 독립영화들로 연결됐고, 주류영화와는 다른 새로움을 원했던 관객은 독립영화제로 모여들었다. 개인적인 에세이가 주를 이루는 외국과 달리, 첨예한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을 본연의 의무로 여겼던 한국의 독립큐멘터리들은 영화제를 통해 더욱 큰 사회적 파장을 그렸다. 더 많은 대중들이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상업영화 감독에 버금가는 인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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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얘기? 인간에 대한 얘기!
윤종찬 | 편집은 어땠는가. 단편영화는 내 돈 들여 찍는 거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장편영화는 주변에서 말들이 많지 않나.
임필성 | 다행히 싸이더스는 그런 점에서 감독들을 덜 괴롭히는 회사다. 차승재 대표가 요구한 건 딱 하나, 두 시간 내로만 끊으라는 거였다. 가장 논란이 됐던 장면은 민재의 꿈이었다. 마지막 오로라가 나타나기 전에 민재가 쓰러지면서 꿈을 꾸는데, 사라진 대원들이 서울의 공원 비슷한 장소에 모여 있다. 출발하기 전인 듯도 하고, 이미 죽은 사람들인 듯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애착이 강했다. 민재가 처한 가장 최악의 순간에 따뜻한 서울이 나오는 거다. 충격적인 아우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엔 최도형 대장이 안 나온다. 관객이 민재와 최도형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갑자기 스토리를 까먹을 것 같았다. 그 장면 말고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특
<남극일기>를 말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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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면 투쟁해야 한다"
며칠 전 독감에 걸렸다는 임필성 감독은 병원에 들렀다가 오느라 조금 늦겠다고 전해왔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윤종찬 감독은 아직도 후반작업 중인 <청연>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충무로 4대 재앙이라고 들어보셨어요?”라고 농담처럼 물었다. 제작비가 엄청나고, 촬영을 참 오래했고, 결과를 장담 못하는 영화 네편. 윤종찬 감독은 <남극일기>와 <청연>이 그중 두편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지루한 마라톤 코스를 함께 뛰어온 동료가 앞질러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아닐까. 그러나 편집 중인데도 시간을 내준 윤종찬 감독은, 미안해하며 감기약을 먹는 후배를 맞아 이해와 공감 섞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담 도중 임필성 감독은 가끔 “<소름>도 그렇지만…”, “<청연>도 비슷할 텐데…”라는 말로 답을 시작하곤 했다. 이성과 논리를 무색하게 하는 직관, 이유를 묻는 행위 자체가 의미없는
<남극일기>를 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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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게서 딜레마를 배웠죠”
이성욱 | 우선 <친절한 금자씨>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박찬욱 | 현재 편집까지 끝난 상태입니다. 오늘은 사운드에 대해서 처음으로 상의를 했습니다. CG나 디지털 색보정이라든가 그런 종류의 후반작업도 남아 있죠. 이 영화가 어떤 영화가 될지…. 확실한 것은 <복수는 나의 것>과도 다르고, <올드보이>와도 다르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세편 중에서 제일 이상한 영화…. (웃음) 그것도 확실해요. 이영애씨가 하는 행동이나 표정이나 말투나 이런 것이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다니는지 잘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영화가 한 3분의 2쯤 갔을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탁 수정하는 순간이 나와요. 갑자기 궤도수정을 하기 때문에 당황하게 될 거예요. 그것이 뭐 매력이라면 매력일 테고. 만약 그것이 실패하면 영화에 그동안 적응해온 관객은 굉장히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다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
영화인 7인 특강 [4] - 문소리·박찬욱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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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내 종교이자 남자친구, 무서운 선생님”
“오늘 강연 제목이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캐릭터’인 걸 보면, 저를 다양한 장르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로 평가하신 것 같아요. 소재나 형식에 반복적인 요소가 있고, 그런 것들로 분류될 수 있는 게 장르일 텐데, 제가 출연한 영화 대부분이 장르에 맞추기 어려운 영화들이었어요. 왜 장르와 손 잡고 일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제가 인형 같은 외모가 아니라 사람 같은 외모를 가진 관계로 장르영화와 친해질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장르영화 배우들은 데뷔부터 정해진 타입이 있잖아요. 김지미씨는 모던 여성, 최은희씨는 고전 여성, 장미희씨는 지적인 여성, 그리고 문근영양은 국민 동생, 이런 식으로요. 저는 <오아시스>를 통해서 모든 이미지를 깨버렸다고 생각해요. 6월에 들어가는 것도 비장르영화인데, 그런 인연은 제 관심이 거기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도쿄 필름엑스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아시아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영화인 7인 특강 [3] - 문소리·박찬욱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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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문소리의 연기론, 친절한 박찬욱의 연출론
5월16일 저녁, 문소리가 연세대 위당관 지하 1층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 차림, 정갈하게 쪽진 머리의 ‘매력적인 여교수’ 스타일로 등장한 문소리의 미모를 재발견한 기쁨과 반가움이었으리라.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강의는 무슨. 우리 담소나 나누죠”라며 친근하게 운을 띄운 문소리는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캐릭터’라는 특강 테마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와 연기에 대해 솔직하고 속 깊은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놓았다. 대담자인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진행자인 <씨네21> 이성욱 기자, 그리고 관객의 질문에 진심과 성의와 재치로 답변하는 모습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압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강이 끝나자마자 절반 가까운 수강자들이, 그것도 적지 않은 연배의 그들이 사인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악수를 하기 위해
영화인 7인 특강 [2] - 문소리·박찬욱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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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못한 거, 답답한 거, 좋아
이 | 왜 감독 역할에 나를, 또 거짓말하는 발레리나로 심은하씨를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다.
변 | 스케줄이 비는 배우가 둘밖에 없어서. (웃음) 캐스팅할 때 제일 중요한 기준은 영화감독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 영화감독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형성들, 규정들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으니까. 영화감독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껴야 하고 담배도 피워야 되고 하는 식의. 하지만 나를 포함해 어떤 감독이라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이정재씨도 배우를 하지 않고 연출부에 들어갔으면 감독이 됐을수도 있다. 그랬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하는 게 중요했다. 이정재씨의 출연작들을 구해 보고, 같이 작업했던 감독들 만나서 얘기 듣고, 또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확실한 캐릭터가 그려졌다. 그렇다면 극중의 은석 이야기도 어디까지 가야 효과적이겠구나 하는 감도 잡혔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그려놨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
변혁 vs 이정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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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픽션, 경계의 영화 <인터뷰>
<인터뷰>는 멜로드라마이되 멜로드라마가 아니고, 다큐멘터리이되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되 픽션이 아니고,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이되 또한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변혁 감독의 <인터뷰>는 하나로 매듭지어 버리기 곤란하게 풍성한 결을 지닌 영화다. 그리고 그 결 사이사이에는 카메라란 영화란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깔려 있다. 변혁 감독은 또, 심은하 이정재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으면서도 스크린에서 그들의 스펙터클을 지워냈다. 이것만으로도 주류영화에서는 파격적인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인터뷰>는 따라서, 배우 이정재에게도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극중 감독 이정재가 실제 감독 변혁을 인터뷰했다. 극중 감독은 성실히 물었고, 실제 감독은 골똘히 대답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나누며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거리들을 길
변혁 vs 이정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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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
댄 징크스·브루스 코헨 <아메리칸 뷰티>
댄 징크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앨런 볼의 <아메리칸 뷰티>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섹스와 마약, 호모 포비아, 협박과 부정, 도시의 가족 붕괴를 다룬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 “세상에는 아름다운 게 너무 많아서 가슴이 벅차다”고 말하는 소년 리키가 있었다. 그리고 관객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샘 멘데스, 이 시나리오를 받아들이고, 세계 각지의 관객을 감동시킬 만한 영화로 아름답게 영상화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
브루스 코헨/ 케빈 스페이시, 정말 고맙다. 누구와도 비교 못할 연기를 보여준 아네트 베닝, 그리고 우리 배우, 스탭 모두에게 감사하다. 당신들 모두 대단했다. 이 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 2년 전 이 시나리오를 모두 내쳤지만, 드림웍스는 받아들였다. 글렌 윌리엄스, 스티븐 스필버그, 드림웍스 직원들에겐 아무리 감사의 말을 전해도 부족할 것이다
제72회 아카데미상 [2] - 수상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