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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 10년 뒤
소녀는 시내리의 정기구독 10년 독자에게 주는 특별초청을 받고 채플린이 영화를 찍는 스튜디오로 찾아간다. 10년의 세월이 흘러서일까. 촬영장에 찾아갔지만 채플린은 소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녀 또한 수염을 깎은 채플린을 알아보지 못한다.
서로 어긋나는 두 사람.
소녀 | 10년 만이래서일까. 왜 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일까. 그래도 안 돌아갈 거야. 신께서 하나의 문을 닫을 때, 어딘가에선 창문을 열고 계신다고 하지 않았슴. 희망이란 좋은 거이 아니겠어. 아즈바이(아저씨), 이렇게 말씀하셨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채플린 | 음… 정기구독자를 초대했다는데 왜 소녀는 보이지 않는 걸까.
소녀, 채플린 서로 어깨가 엇나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 소녀는 입가에 손을 대고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채플린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하는 표정이다.
SCENE 5. 재회
시내리 스튜디오 창설 10주년
<시내 라이트> [3] - 10년 뒤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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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혹시 만나셨을지도 모르겠다.
춤추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 소녀를 말이다.
늘 웃고, 상냥하고, 그랫서 어디서 봤었노라고
착각이 들지 모르겠다.
소녀는 꽃을 판다.
그 꽃 한 송이가 그녀의 운명을 바꾼다.
SCENE 1. 10년 전 첫 만남
춤을 추던 꽃파는 소녀를, 지나가던 당대의 인기배우 채플린이 바라본다. 채플린은 소녀의 해맑은 눈동자에 반해 잠시 멈춰서 있다. 그리고 소녀에게 춤을 청한다. 우아하게 춤을 추는 채플린과 소녀. 소녀는 대스타와 춤을 춘 황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영화배우가 꿈인 소녀, 영화배우인 채플린.
채플린 | 너 참 눈이 맑게 생겼구나.
소녀 | 선생님, 선생님은 혹시 고저 영화배우, 그것도 인민배우 아니심까(아니십니까)?
채플린 | 머뭇머뭇. (싱긋 웃고는 손을 내밀어 춤을 청한다. 콧수염이 익살스럽다.)
소녀 | (처음엔 수줍어하다
<시내 라이트> [2] - 10년 전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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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안성기와 문근영 두 배우를 잡지의 얼굴로 초청하면서 특별한 표지를 기획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시티 라이트>에서 설정을 빌려 취재기자가 짤막한 시나리오를 썼고, 두 배우는 각각 채플린과 꽃을 파는 소녀 역을 맡아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했으며, 사진기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두 사람이 10주년 기념호의 얼굴이 된 데는 의미가 있다. 80년대를 충무로의 독보적인 주연배우로 활동한 안성기가 <씨네21>이 창간될 당시 ‘국민배우’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면, 어떤 여배우 계보에도 잇기 어려운 독특한 소녀성을 가진 문근영은 현재 만인의 누이이거나 조카 혹은 딸이다.
토요일 오후 1시.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달콤한 시간에 표지 촬영을 위해 두 배우와 여러 종류의 인력들이 스튜디오로 모였다. “공부하기 힘들지?” 안성기가 말을 건넨다. “그래도 고2 때보단 나아요. 고2 때까진 새로 배
<시내 라이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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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마그렙’(Maghreb)이라는 지명은 굉장히 낯설게 여겨진다. ‘마그렙’은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통상 ‘마그렙 영화’라 하면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모로코 등지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지칭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마그렙 영화들은 총 8편이 준비되어 있다. 낯선 지역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황홀한 이미지의 영토가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아프리카 북부지역의 영화들이면서도 지중해 북쪽, 특히 프랑스 영화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탓에 시네필적 감수성과 영화형식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영화들도 적지 않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 가운데 하나로서 <천일야화>를 떠올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것은 모로코 출신의 소설가 타하르 벤 젤룬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이슬람의 예술가들에겐 “거대한 집, 모든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7] - 마그렙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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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러셀의 밤
이단아 켄 러셀의 작품들은 정치적으로 도발적이고, 도덕적으로 부조리하며, 시각적으로 불편하다. 그는 어떠한 영화적 사조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영국 영화계가 낳은 가장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작가로 지속적인 행보를 해왔다. D. H. 로렌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사랑하는 여인들>은 켄 러셀과 여배우 글렌다 잭슨을 세계 무대에 소개한 작품. 남성의 전면 누드가 등장한 본격적인 (거의 최초의) 상업영화로 악명이 높다. <악령들>은 컨 러셀의 악마적인 비주얼 감각이 절정에 달한 작품으로, 성적으로 뒤틀린 곱사등이 수녀를 중심으로 성직자들간의 권력다툼과 마녀사냥의 피비린내나는 잔혹극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데릭 저먼이 참여한 미술과 주연배우들(올리버 리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광적인 연기는 세월이 지날수록 힘을 얻는다. <토미>는 켄 러셀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 69년에 발매된 록밴드 더 후의 음반을 토대로 한 이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6] - 불면의 3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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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 원컷. 소마이 신지의 영화세계는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영화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을 빌리자면 “한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컷을 넣지 않고 카메라를 여기저기 이동시키면서, 불투명한 소음으로 가득 찬 상상조차 못할 공간의 변화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일본 영화계는 이런 폭력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인 방법 속에 앙드레 바쟁이 30년 전에 정착시킨 ‘공간적 깊이에 의한 데쿠파주’라는 테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원리가 구현되었다고 믿고, 그의 영화를 광신적으로 숭배했다.”
원신 원컷의 원칙
1980년 만화 원작을 각색한 <꿈꾸는 열다섯>으로 데뷔한 소마이 신지는, 첫 작품부터 일관된 원신 원컷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가장 실험적인 영화 <숀벤 라이더>의 7분40초간 지속되는 첫 장면은, 3대의 크레인을 이용하여 컷을 나누지 않고 수영장에서 운동장으로, 다시 교문으로 이어지는 긴 시공간을 하나의 호흡으로 끌어들여 전설이 되었다. 소마이 신지는 자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5] - 소마이 신지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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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
피델 카스트로에 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 <지휘관>(Comandante, 2002)에 이은 올리버 스톤의 두 번째 쿠바 잠입기. 2003년, 일단의 쿠바인들이 선박과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으로의 불법적인 이민을 시도하려다 실패한다. 쿠바 정부는 이들에게 전례없이 가혹한 처벌을 내렸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계는 쿠바의 인권문제를 또다시 도마 위에 올렸다. 올리버 스톤은 다시 한번 쿠바로 날아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고, 그와 처벌당한 수감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짚어낸다. 논쟁적인 감독은 공격적이고 객관적인 질문을 수시로 퍼붓고, 여기에 고집스레 대항하는 피델 카스트로의 거만한 제스처는 금방이라도 관객의 눈앞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63분의 짧은 시간 동안 올리버 스톤은 과거의 다큐멘터리들로부터 가져온 자료화면과 현재의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노쇠한 카리스마를 기가 막힌 편집으로 섞어서 흔든다.
세계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4] - 거장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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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봉봉
사람 좋은 중년 남자 후안 ‘코코’는 이십년 동안 일했던 주유소가 팔리는 바람에 실직자가 된다. 그는 나무로 나이프 손잡이를 깎아 팔아보지만 신통치 않고, 직장을 구하려 해도 경기침체 때문에 자리가 없다. 막막한 심정을 헛웃음으로 감추는 코코. 그는 도로변에 고장난 차를 세워두고 있던 여자를 도와주었다가 죽은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도고 아르젠티노종 개 한 마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변한다. <나의 개 봉봉>은 별다른 사건이 없는 영화다. 초라한 남자의 일상이 계속되다가 크고 하얀 개 한 마리가 나타나고 그 둘이 동무가 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코코와 봉봉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한 사람과 한 마리는 그들 나름대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딱 한 가지가 부족했던 봉봉이 마침내 완벽한 개로 태어나는 순간, 코코의 조용한 환희는 잔물결처럼 공기를 흔들며 이상하도록 선명한 아르헨티나의 햇빛을 받아 반사광을 내뿜는다. 자신의 이름 그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3] - 강추! 리스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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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과 막스 오필스의 동명영화로 익숙한 이야기다. 생일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하얀 장미를 선물받아온 남자가 어느 해 장미 대신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엔, 18년 동안 그를 사랑했고,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옆집에 이사온 남자를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사랑을 시작해서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았고 하룻밤 사랑 끝에 그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끝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주연과 감독을 겸한 쉬징레이는 1900년대 비엔나를 1930, 40년대 베이징으로 옮겨 귀부인의 밀실처럼 우아한 향기를 불어넣었다. 남자가 건넨 흰장미, 전후 베이징의 퇴폐적인 댄스홀, 응고된 사랑이 새겨진 여인의 표정은 단순한 스토리를 애틋하고 섬세한 손길로 매만진 흔적. <귀신이 온다>의 장원이 무심한 플레이보이를 연기했다.
퀼
옆구리에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2] - 강추! 리스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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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가 벌써 여섯 번째 해를 맞았다. 메가박스를 주요 상영관으로 삼아 공간의 집중도를 높인 전주영화제는 디지털과 대안영화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대중과 격차를 좁히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 때문에 상영하는 영화의 편수도 100여편 가까이 줄었다. 정성 들여 고른 영화를 여러 번 상영해 관객과 좀더 자주 만나겠다는 것이다. 올해 전주를 찾는 영화는 170여편. 지난해 신설된 비디오 아트 섹션 ‘영화보다 낯선’ 또한 20여편만을 상영하는 대신 강의와 세미나를 보완해 관객이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바람꽃> <세라복과 기관총>으로 유명한 일본 독립영화감독 소마이 신지의 회고전과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그렙(모로코와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가 있는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의 총칭)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이 밖에도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영화궁전’과 낯익은 작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시네마스케이프’가 비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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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는 제작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르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기획이 구체화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나리오 작업에만 3년 가까운 시간을 들인 <혈의 누>는 지난해 6월28일 고대하던 첫 촬영을 개시했지만, 북상한 장마전선 때문에 크랭크인을 한 뒤 곧바로 한달 가까이 쉬어야 했다. 이후에는 찌는 듯한 무더위와 싸워야 했고, 이들의 고난의 사투는 올해 2월이 되어서야 끝을 봤다. 제작진의 대장정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 어디 변덕스런 기상뿐이었을까. 남도의 바닷가를 돌며 피를 뿌리고, 눈물을 뿌리던 제작진의 하소연을, 여기 모아 담았다.
“양반 되기는 글렀군”
예를 갖추려면 몸가짐부터 바로 해야 한다 했겠다. 차승원, 윤세아, 박용우, 3인의 배우 또한 촬영 전 한달 동안 삼청각(三淸閣)을 드나들며 절하고 차 마시는 기본 예법을 숙지해야 했다. “옛 양반들의 놀이문화라는 게 상놈들이 따라하지 못하도록 비틀고 비튼 것이더군.” 차승원
<혈의 누> [3] -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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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없는 자들의 지옥을 보여주고 싶었다”
새벽까지 믹싱 작업을 하고 왔다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프린트 나오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개봉을 3주 앞두고 막바지 후반작업에 진력하고 있는 김대승 감독은 겉은 몰라도 요즘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말한다. 2년 가깝게 <혈의 누>와 씨름했던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자신의 영화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복기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편집본을 보니 촬영장소 헌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전봇대야 어디든 꽂혀 있을 거라 예상했었지만 대부분의 바다에 양식장이 있어서 힘들었다. 포구마을 세트 부지도 알아봤는데 오목하게 들어간 적당한 곳은 이미 현대식 건물들이 다 들어서 있었다. 발품 팔아서 찾아낸 공간들을 영화의 전체 톤에 맞게 통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마와 배우 스케줄 때문에 한달 정도 촬영이 멈춘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쫓기는 심정으로 헌팅했다.
<혈의 누> [2] - 김대승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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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 그 핏빛 미궁 속으로
숨기려 들면 더 궁금한 법이다. 조선시대 역사 추리극 <혈의 누>는 제작기간이 3년이나 되지만, 제작진이 약속하고 입을 봉한 탓에 좀처럼 얼개가 드러나지 않았던 영화.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이를 과학적인 수사방법으로 뒤쫓는 조선시대 수사관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저 <장미의 이름> 같은 모양새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5월4일 개봉을 앞두고, 슬쩍 들여다본 <혈의 누> 판본은 그런 추측이 완전히 틀렸음을 말해줬다. CG, 믹싱, 색보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게다가 VHS로 본 불완전한 판본이었지만, 피 묻은 칼자루를 쥔 자가 누구인지 묻는 데만 영화가 진력하지 않았음을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봉건의 썰물과 근대의 밀물이 빠르게 교차하는 시대를 상상으로 불러들인 제작진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연쇄살인극 아래 무엇을 숨겨둔 것일까.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는 것이 호기심을 달랠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그
<혈의 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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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을 통한 역사만화 해보고 싶다
-종이만화 외에 멀티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만화가로 안다. 잠시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도나스’라는 이름의 회사였는데 인터넷 사업 기획에 뛰어들지 않으면 뭔가 큰 기회를 놓치는 것처럼 생각하는 골드러시의 시기였다. 24시간 365일 열려 있는 남기남의 사이버 마을 같은 것을 꿈꾸었다. 밖에서 비가 오면 그 마을에도 비가 내리고, 꽃가게에 들어가면 기남이가 주문을 받고 극장에 가면 영화를 볼 수 있는 <트루먼쇼> 같은 세계를 신나게 구상했는데, 유기적으로 관리할 통제시스템 비용이 수익성에 맞지 않았다. 지금도 아이디어는 많다. 영화의 세트처럼 3D 세상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화를 그리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어울리는 친구들이 궁금하다.
=만화와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고 내 만화를 열심히 읽지도 않는 친구들이다. 만화가끼리는 어쩌다 만나면 모임을 발족하자고 말만 해놓고 다시 각자
만화가 정훈이를 만나다 [2] - 정훈이가 뽑은 만화 BEST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