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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탈보다 아름다운
지난 3월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아시아 감독 3인전’은 홍상수, 차이밍량, 이시이 소고 등 세 사람의 영화를 다시 보는 자리였다. ‘일상과 이탈’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영화제에서 영화상영 이상으로 관심을 모은 행사는 이들 3인 감독과 평론가들이 함께 한 포럼. 12일 저녁 8시30분부터 2시간가량 진행된 포럼에는 200여명의 관객이 자리를 함께 하며 세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같은 테두리로 묶었지만 세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서로 겹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때문에 토론 역시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자연스레 옮겨갔고, 이들 작가에게 든든한 후원자인 열혈관객들이 있음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됐다.
김성태 | 이번 포럼은 영화제의 주제인 ‘일상과 이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세 감독의 영화는 영화 내용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에서도 ‘일상과 이탈’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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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대표 선수들의 작업 목적 & 연애 덕에 봉 잡은 언니들
연애란 뭘까? 우선 연애(戀愛)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피는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애정’이란 뜻이라고.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연애를 하는 것일까? 옆구리가 시리다 못해 결려서? 아니면 결혼이라는 ‘절대반지’를 얻기 위해서? 천 가지 사랑에 천 가지 목적이 있으니 그걸 어떻게 다 설명하랴만, 대표적인 연애 목적을 통해 슬쩍 짐작이나 보자.
연애의 목적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만날 운명이면 반드시 만나게 돼 있는 걸까? <세렌디피티>의 못말리는 운명론자 커플은 당연히 “YES”라고 할듯. ‘세렌디피티’는 원래 ‘우연한 행운’이란 뜻이다. 영국에서 온 사라(케이트 베킨세일)와 미국인 조나단(존 쿠색)은 이 세렌디피티 때문에 7년간의 세월을 엎어버렸다. 크리스마스이브, 뉴욕의 한 백화점에서 각자 애인에게 줄 장갑을 고르다가 그만 눈이 맞아버린 두 사람. 그
영화를 통해 뽑아보는 9가지 연애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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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니까, 미국 관객이 즐겁게 만들어야죠”
지난 5월17일 오전 10시. <씨네21> 사무실로 나카다 히데오가 전화를 걸어왔다. J호러의 제왕은 할리우드에서의 경험과 <링2>에 대한 자신감을 조근조근 이야기해주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진행된 30분간의 전화 인터뷰.
-할리우드에서의 첫 작업이다. 일본 현장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일본에서는 어떤 앵글에서 촬영하고 편집할지를 대충 현장에서 결정한 뒤 그것에 따라 촬영하는데, 미국에서는 일단 여러 각도로 신중하게 숏을 찍어두어야 한다. 테스트 스크리닝을 한 뒤에 곧바로 포스트 프로덕션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나중에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하고는 많이 다른 방식이었다. 미국 관객을 위해 컴퓨터그래픽을 많이 사용해서 시각적인 공포감을 조성했던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전편인 <링>이 오리지널 일본판의 극적 짜임새를 많이 가져가는 것이었던
할리우드로 간 일본 호러 [3] - 나카다 히데오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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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의 강도를 높여라” 특수효과 가미
<링2>는 기술적으로도 복합적인 텍스트다. 일본 감독이 일본식의 스타일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낸 <그루지>는 서구적 취향으로 호러를 드러내기가 어렵지 않은 데 비해 미국 언론들이 <링2>에 보내는 비평은 호평이건 악평이건 간에 꽤나 다층적이다. 특히 도드라지는 특수효과의 이용에 대한 비평가들의 의견은 어딘가 모순이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링>을 가장 무섭게 만들었던 것들, 일상적인 물건과 관습들이 던져줄 수 있는 공포가 특수효과의 축제 속으로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 <링2>가 고어 버빈스키가 감독한 <링>보다도 더 미국적이라고 지적했고, <LA타임스>는 “나카다 히데오는 그에게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한의 특수효과를 보여주려는 매혹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시시 스페이섹의 등장이 에이단의 방에서 불타는 CG나무의 형상보다도 훨씬 오싹하다”고 실
할리우드로 간 일본 호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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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원혼’은 어떻게 할리우드에 이식됐나
고어 버빈스키가 감독한 <링>이 북미에서만 1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던 2003년은 J호러(일본 호러영화를 일컫는 일본과 서구의 호칭)의 할리우드 침공 원년이었다. 예상을 넘어서는 흥행에 고무된 할리우드는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 <여우령> <카오스>, 시미즈 다카시의 <주온> 등 구미가 당기는 J호러의 판권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통역불능(Lost in Translation)의 가능성이었다. 제작자들은 J호러라는 물건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마음대로 손을 대기에는 지나치게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 수 없는 공포의 근원을 생생하게 회치기 위해 할리우드는 호러의 사무라이들을 불러들였고, 나카다 히데오와 시미즈 다카시는 <링2>와 <그루지>라는 서로 다른 J호러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두 작품이 박스오피스에서 또렷한 성공
할리우드로 간 일본 호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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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근이 제대하면 또 같이 하고 싶다”
연출가 기국서가 말하는 배우 양동근 그리고 2005년 <관객모독>
객석에 둘이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범과 기주봉이 딴청부리며 함께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보다 더 편해 보이는 부자 사이라고 하면 맞을까. 양동근이 맨발을 좌석 팔걸이에 올리고 나른한 표정을 짓자 기국서 연출가는 뭘 해도 편해 보인다며 양동근을 향해 웃음을 짓는다. 둘은 서로 무슨 말을 주고받아도 고개를 끄덕거릴 것 같이 보였다. 한국 연극의 원조급 반항아와 그에 걸맞은 제자였다. 플래시 라이트에 어색해하던 기국서는 가게 앞이나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주봉, 정재진 등이 나온 공연에 비해 훨씬 가벼워지고 발랄해진 것 같다. 대사도 많이 수정하고 극중 내용도 고친 것 같은데.
=관객의 기호와 요새 감각에 맞추려고 했죠. 배우들이 나이가 있으면 무게가 생기고, 젊으면 그렇게 되는 셈이죠.
양동근과 기국서의 <관객모독> [3] - 기국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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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번을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
양동근이 말하는 연극 <관객모독> 그리고 배우 양동근
‘낯이 익다,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었느냐’며 밥을 먹자고 양동근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잡아끈다. 흰머리가 있던 것 같다고, 2년 전 기억도 더듬는다. <와일드카드> 개봉 때의 인터뷰를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다. 긴 질문에 답은 정진영에게 미루어두고 예, 아니오로만 답하며 냅킨으로 종이배를 접던 그가 아니다. 익숙한 솜씨로 버섯 수프, 치킨 샐러드와 립을 시킨 뒤 음식을 접시에 담아주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다. 그는 느릿느릿하게 어휘를 선택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곱씹은 뒤 신중하게 내뱉었다.
-기주봉의 소개로 연극을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따를 만한 남자 선배와 스승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것 같다.
=연극 한번 보러 오랬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봤는데 (배우 기주봉이) ‘동근이 연극 한번 했음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어요. 어른 이야기 듣는
양동근과 기국서의 <관객모독> [2] - 양동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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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하고 도발적인 만남
지난해 3월 기국서 연출의 <관객모독>에 대해 어떤 기자는 ‘부드럽고 지성적인 모독’이라고 썼다. 기국서의 동생인 기주봉과 최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휘몰아치는 대사로 무대를 뒤흔든 럭키 역의 정재진, 그리고 주진모와 고수민 네명이 만든 <관객모독>은 말의 4중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악적 울림과 지적으로 통제한 연기가 공연장의 온도를 높인 공연이었다. 기국서가 이끄는 극단 76단은 1978년 <관객모독> 초연 이후 배우와 대사를 바꿔가며 시대와 공감하는 <관객모독>을 만들어왔다. 양동근을 내세우고 지난해 출연진보다 젊은 배우들로 꾸린 2005년판 <관객모독>은 래퍼 양동근의 매력이 두드러지고, 대사의 전압이 더 높아지고, 배우가 관객을 모독하는 방법이 더 잔인해진 자극적인 버전이다.
토요일 낮 공연이어서일까. 1, 2층 300석은 일찌감치 사람들로 꽉 찼고 자리를 얻지 못한 관
양동근과 기국서의 <관객모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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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다양성에 감탄했다”
위베르 니오그레는 장 자크 베넥스와 클로드 밀러 등 프랑스 저명한 감독들의 영화를 프로듀싱해왔으며, 여러 편의 영화사 다큐멘터리 작업도 직접 병행해왔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프랑스에서 첫 개봉할 때 그에 대한 글을 썼고, 구로사와 아키라와 이마무라 쇼헤이 및 아시아 작가들에 대한 저작을 출판할 정도로 아시아영화 전문가다. 약 3년간 파리 3대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었다. 지난해에는 국제비평가연맹 심사위원 자격으로 부산영화제를 찾기도 했었다. 오래전 영화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와의 인연으로 <포지티프>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고, 그뒤 <포지티프>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비평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한국영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현재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제)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후반작업 중이다. 수상작이 발표된 다음날 5월22일 낮에 주상영관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내 기자클럽에서 그를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7] - 한국영화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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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기적을 만들지 않는 기적
무엇이 됐건 홍상수 감독이 분명 상을 탈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수상 소감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좋을지 짬짬이 크루아제트 인파 속을 헤매며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극장전>에 관한 흥미로운 평을 써줄 만한 필자는 누구일지도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떠오른 것이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이었다. 지난해에 한국에서 그를 인터뷰했을 때 프로동은 특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인광을 빛냈다. 하지만 과연 응하기는 할까? 칸과 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카이에 뒤 시네마>, 그 잡지의 편집장이 매일 낮밤으로 계속되는 파티 속에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쓸 시간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런데 장 미셸 프로동은 흔쾌히 청탁에 응했다. 그러고나서 며칠이 지났다. <극장전>은 수상작 어디에도 있지 않다. 때문에 이 글은 이제 ‘축사’가 아니라 ‘변호’의 의미를 갖게 됐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6] - <극장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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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는 1초에 24개짜리 거짓말이다”
영화제 기간 중 <망가진 꽃들> <라스트 데이즈>와 함께 현지 언론 평점 수위를 달리던 미하엘 하네케의 <히든>은 남녀 주연상보다도 먼저 감독상으로 호명받았다. 하네케는 시상식 무대에 올라가서도, 포토콜 현장에서도, 시상 뒤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비슷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매가 진해 미묘한 표정변화를 읽어내기 쉽지 않은 탓도 있었다. 하네케는 회견장 자리에 앉자마자 “상받을 것을 기대했다”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뒤 수상 결과에 대한 질문은 더이상 없었다. 하네케는 <히든>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9월에 개봉할 것이고, 현재 오페라 <돈 조반니>를 영화화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폐막 뒤 프랑스 일간지들은 ‘하네케가 수상 결과에 실망한 것이 역력하다’는 표현을 공통적으로 썼다.
-이 영화는 죄의식에 관한 영화인가.
=이것은 개인적인 영화이다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5] - 수상작 인터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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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사람의 삶에 대한 메타포다”
<망가진 꽃들>의 주인공 돈 존스톤은 22년 전 <천국보다 낯선>의 윌리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까지 여러 차례 망설이고, 여행을 떠나서는 던지지 못하는 말과 행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돈은 윌리보다 식어 있다. 윌리가 제 기준대로 살다 22년 뒤 중년을 맞았다면, 과거 그 많은 여자친구들을 찾아 우울하게 순례하는 돈이 되지 않았을까. 나이든 윌리처럼 짐 자무시는 조심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공식 시사 뒤 기자회견에서나 시상 뒤 기자회견에서 자무시는 영화 속 의미를 묻는 많은 질문에 “나는 그렇게 분석적이지 않다”, “나는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정말로 할말이 없어서라기보다, 경쟁부문 초청 감독들의 쟁쟁한 이름 앞에 작은 확신도 오만으로 비칠까 하는 걱정을 수시로 드러내면서. 그는 사회자가 상장 좀 보여달라는 요청에 “얼마든지”라며 천천히 붉은 리본을 끌렀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4] - 수상작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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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떤 꼬리표로도 환원될 수 없다”
에미르 쿠스투리차가 호명하고, 클론처럼 닮은 두 노인이 시상식 무대로 올라갔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은, 백발이 얹힌 몸을 허리까지 굽혀 젊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의좋게 트로피를 나눠 잡은 채 짧고 겸손한 수상소감을 남긴 두 노감독들은, 그러나 포토콜 때 네팔을 번쩍 들며 좋아라 함박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수상자 기자회견 때 사회자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자는 당신들이 처음이 아니냐”고 물을 만도 했다. 처음 탔대도 저렇게 좋아할 순 없어 보였다.
그것이 그들의 영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했다. 스무살 남자아이 브루노와 열여덟살 여자아이 소니아,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이 지미를 데려다놓고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영화를 만든 다르덴 형제는 “기름기 하나 없고 어떤 의미에서 순수한”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제58회 칸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3] - 수상작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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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돌아간 거장들
수상작은 일단 심사위원 마음대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작품의 절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스 반 산트, 허우샤오시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빔 벤더스, 라스 폰 트리에는 작품의 질에 상관없이 빈손으로 돌아간 거장들의 대표가 됐다. 홍상수도 이 목록에 포함된다. <씨네 21>과 인터뷰를 한 <포지티프>의 평론가 위베르 니오그레는 비꼬면서 말한다. “심사위원인 여배우 셀마 헤이엑이 1년에 영화를 몇편이나 봤겠는가? 멕시코영화와 미국영화 외에 무엇을 더 알겠는가?”
예컨대 우리 생각에 <아이>가 범작은 아니지만, 허우샤오시엔의 <최호적시광>이나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어떤 폭력의 역사>보다 훨씬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 <르몽드>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영화제가 끝난 5월24일치 신문에 “올해의 특징
제58회 칸영화제 최종 결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