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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권위가 소멸된 영화를 꿈꾼다”
<해성프로젝트>의 김계중 감독
알쏭달쏭한 이미지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운드로 이루어져 독해가 쉽지 않은 영화. 실험영화를 향한 일반적인 소감은 대략 이런 식이 아닐까. 새로운 영토를 향한 왕성한 도전은 높이 사지만 막상 그런 영화를 볼 마음은 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영화라면 응당 감독이 전달하고픈 무엇인가, 혹은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의 어떤 모습을 담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실험영화에 짜증이 나곤 했다는 불평도 익숙하다.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로 오해받기 십상인 기이한 제목의 영화 <해성프로젝트>는 실험영화를 바라보는 그러한 편견을 매우 겸손한 방식으로 돌파한다.
해성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끼적이는 영화의 첫 화면 위로 감독의 목소리가 흐른다. “이 영화는 해성이 준 시나리오와 그에 관한 인터뷰로 구성된다.”
인디포럼2005의 발견 [2] - <해성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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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새로운 상상력의 미래를!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노래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러나 하늘 아래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영화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열 번째를 맞이하여 푸짐한 잔치를 준비했던 인디포럼2005는 그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올해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29편의 신작들은 한결같이 ‘실험’이라는 수식어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디포럼2005의 신작 중에서, 이런 경향을 좀더 확실하게 증명할 만한 네편의 영화와 그 감독들을 골랐다. 일방적인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민이 영화적 재현 자체에 대한 고찰까지 이어진 박홍렬·황다은 감독의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제는 말장난에 불과해져버린 ‘작가의 죽음’을 영화에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김계중 감독의
인디포럼2005의 발견 [1] -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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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성욱 | 연애의 목적은 섹스와 사랑의 비율을 개인적으로 배합하고 성취감을 얻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 하지만 유림이 홍과 시작하는 지점에는 섹스와 사랑의 상관관계는 거의 없어.
이종도 | 20대 그 나이 때는 구분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이 여자랑 자고 싶은 건지, 이 여자를 사랑하는 건지.
김은형 | 그게 뭐. 30대 된다고 섹스랑 사랑이 구분이 되나. 에이.
김소희 | 유림과 그의 여자친구는 지루한 관계이고 부모 자식 같고. 유림이 그 여자친구랑 혹은 유림이 어떤 사람과 불타는 관계에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유림은 섹스도 목적이지만 그와 동반한 일상의 자극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어.
이성욱 | 내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사실 10대는 섹스에서 모든 게 시작되지만 마스터베이션으로도 해소되는 부분이 있지, 20대에는 그야말로 넣기만 해도 좋은.
일동 | 우하하.
이성욱 | 그래서 20대에는 “이거 하려고 나랑 사귀는 거
<연애의 목적>에 관한 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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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도 목적이 있는 거야? 그런 거야?
만리동 한겨레 건물의 한지붕 아래 지내는 30대의 네 기자. 그들이 어느 늦은 오후 홍익대 카페에 모여 얕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연애의 목적>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행간에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연애관과 경험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분방한 언변의 두 여성기자가 두 남성기자를 압도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좌담 중 이성욱 기자의 “언니들이 일단 본심을 드러내면 더 무서운 것 같아. 한국이란 조건에서 생긴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는 말처럼. 그들이 읽어낸 <연애의 목적>의 ‘연애의 목적’을 엿들어보자.
* 이 글은 <연애의 목적>에 대한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남자, 유림은 ‘선수’?
김소희 | 청춘 깜찍물로 포장했지만 메시지는 좀 무거워. 이 영화의 첫 번째 교훈은 조직 안에서는 연애하지 마라. 내 편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다. (웃음)
이성욱 | 유림은 기본적으
<연애의 목적>에 관한 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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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오즈, 브뉘엘, 르누아르를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어울리다보면 사람들이 항상 치사하다고 느껴졌어요. 몰려다니면서 편 짜고, 틀린 거 알면서도 (상대를) 누르고, 자신에 대해서 모르면서 남들을 비난하고. 사람들 만나서 적응이 안 된 것도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한데. 하여간 좀 사람들이 실망스러웠던 것 같아요. 친하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 건 있는데 어떤 건 용납이 안 되고 거슬리고 그러니까 가까이 못 가는 거죠. 지금 나이가 들어서 봐도 그래요. 제가 비위가 좀 생기고, 제 자신이 그 사람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느끼니까 전보다 낫지만.
잘난 사람 TV에서 틀어주고, 그 사람 본받게 하려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걸 흉내내는 데 한계가 있고, 또 성공한 사람을 가까이 가서 보면 성공 요소라는 게 제 속에 없고. 그러니까 모델이 되는 게 아니라 방해가 되더라고요. 대신 자기를
영화인 7인 특강 [10] - 봉준호·홍상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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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원칙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 겁니다”
“제가 69년생이거든요. 88학번. 오슨 웰스가 26살 때 <시민 케인>을 찍었는데, 되게 안 좋은 사례인 것 같아요. (웃음) 젊어서 정력과 예술적 에너지를 그렇게 심하게 방출하면 되겠어요. 저의 희망은 앨프리드 히치콕 아저씨입니다. 그분이 1899년생이에요. <싸이코>가 1960년 영화잖아요. 그럼 환갑잔치 다음해에 찍은 거예요. 저도 환갑잔치 다음날 <싸이코> 같은 영화를 크랭크인할 수 있다면 정말 성공적인 인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씨네21>쪽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제 차례 앞에 ‘평온한 일상을 비트는 힘’이라고 붙여놓았는데, 제가 이야기할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플란다스의 개>는 정말 일상에서 출발한 영화였죠. 저의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들로부터 쏟아져나온 영화거든요. 그 영화 찍은 아파트가 제가 신혼 초 3년 동안 살던 곳이에요. 거기
영화인 7인 특강 [9] - 봉준호·홍상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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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일 <씨네21> 창간 10주년 특강 ‘한국영화의 현재를 묻다’가 강의장이었던 연세대 위당관에 미열을 남긴 채 끝을 맺었다. 마지막 주의 단상을 장악했던 인물은 봉준호 감독과 홍상수 감독이었다. 6월20일쯤부터 차기작 <괴물> 촬영에 돌입할 예정인 봉준호 감독은 원효대교 아래서 최종 헌팅을 진행하다가 강연장에 바로 도착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특유의 입담이 시작되면서 체력 또한 살아난 듯했다. 사회자인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와의 문답에 들어가기 앞서 그는 장장 40분에 걸쳐 영화에 입문한 뒤 겪었던 일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봉 감독의 예의 ‘비주얼’한 화법 덕분에 관객은 상체를 강단으로 기울일 정도로 집중한 채 경청하고 있었고, 오기민 대표는 “준비할 시간이 없어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었을 텐데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봉 감독의 이야기는 때때로 다른 곁가지로 빠져나가곤 했지만, 그 덕분에 내용은 오히려 풍부해졌다. 이어진 문답에서 그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인 7인 특강 [8] - 봉준호·홍상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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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쉽게, 값싸게, 신실에 가까이
뜨거운 거리의 함성, 유폐된 창살 아래 깔린 침묵, 후미진 구석의 외로운 투쟁. 80년대 후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독립영화 단체들에는 아무도 보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들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홈 비디오를 들고 나섰다. 16mm 필름 작업에 비해 가격이 싸고 복제가 쉽고 조작이 용이하며 현장에서의 기동성이 중요했던 이들에게 성능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저 카메라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로부터 10여년. 사무실은 새로운 디지털 주인들이 차지했고 예전에 현장을 누볐던 기기들은 유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선에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96년부터. 당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우수한 디지털 카메라는 소니의 VX1000였는데, 97년 푸른영상의 <명성, 그 6일의 기록>, 서울영상집단의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이 카메라를 썼다. 하지만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4] - 독립 다큐멘터리와 디지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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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미래를 두드린다
영화의 미래를 노크하는 주문으로 우리가 새삼 그 이름을 외치기 전부터 디지털은 우리 곁에 있었다. 특수효과, 상업 영화의 제작일지를 담은 메이킹 필름, 동네 비디오숍 한쪽 벽을 메운 에로 영화들은 모두 이제껏 심상하게 마주쳐온 디지털 영화의 얼굴들이다.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전해듣는 디지털을 둘러싼 영화계의 희망찬 야단법석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영화로서의 디지털 작업’에 대한 발견 그리고 발명이다. 혁신된 성능의 카메라는 디지털로 하여금 필름 발뒤꿈치 쫓아가기에 바빴던 만년 열등생 처지를 털고 독자적 영상문법까지 배태할 수 있는 당당한 매체로 끌어올리는 중이며, 인터넷과 디지털 프로젝터 극장의 대두는 바야흐로 디지털 영화가 촬영부터 상영까지 독자적인 일생을 꾸려갈 생육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문제의 초점은 누가 이 씨앗을 가꿔 풍성한 열매를 맺느냐다. 모색은 도처에서 활발하다. 가장 열띤 궁리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은 세계 영화 커뮤니티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3] - 진행중인 디지털 프로젝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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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에 투항한 건 아니다"
-단편이긴 하지만 박광수답지 않은 영화다. 제목부터.
=글쎄. <그 섬에 가고 싶다> 때 떠오른 이야기였다. <그 섬…>에 출연했던 안소영씨가 벗는 장면 때문에 고민하는 걸 봤다. 안소영씨는 우리 세대의 뇌리엔 깊이 새겨진 배우다. 에로 스타가 예술 영화에 출연해 진지한 연기자로 변신하려고 하는데, 여기서도 벗어야 한다면? 그런 모티브가 흥미로웠다. 당시에 삼성이 제작비를 대 장편 감독 몇몇이 단편을 만들기로 했는데, 나만 시나리오를 썼다. 7년 잠자고 있다가 이번에 기회가 온 거다.
-<이재수의 난>에서 예고된 변신이라고는 얘기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특별히 변신을 의식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최근 세 작품이 모두 시대물이었기 때문에 현대물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유행하는 가벼움을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거다. 모두가 가벼움을 좇고 있는데, 나까지 그럴 필요가 뭐 있겠는가. &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2] - 박광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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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문동 영상원 스튜디오에 마련된 <빤스 벗고 덤벼라> 촬영장엔 촬영감독이 둘이다. 한 사람은 충무로 출신 이병호 기사, 다른 한 사람은 영상원 졸업생 김병서(23)씨다. 이병호씨가 35mm 카메라로 영화 속 영화 <보일러>를 찍고 있고, 이병호씨가 <빤스 벗고 덤벼라>의 촬영감독이다. 이병호씨는 말하자면 촬영감독이라는 배역을 맡은 배우인 셈이다. 말하다보니 좀 헷갈린다. 자세히 설명하면, <빤스 벗고 덤벼라>는 예술 영화 <보일러>에 출연한 에로물 출신 여배우 이야기다. 예술 영화에 출연했으니, 점잖고 지적인 연기만 할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벗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고민이다. 정말 여기까지 와서도 감독 말대로 빤스 벗고 덤벼야 하나.
6mm다윗과 35mm 골리앗의 한판?
<빤스…>는 전주영화제가 기획한 삼인삼색 디지털 영화 <N>의 첫 번째 영화. <N1>이 주제이며 <빤스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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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에 <꿈의 미로>(1996) <엔젤 더스트>(1994) <반쪽 인간>(1981, 단편) <셔플>(1986, 단편) 등 4편의 영화가 상영된 이시이 소고 감독(43)은 84년작 <역분사가족>으로 유명해진 인물. <역분사가족>은 중산층 가정의 악몽과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을 통해 일본사회의 집단적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 지난 10일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는 <역분사가족>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영화다. 한마디로 펑크난 타이어 같은 느낌”이라고 신랄하게 자평했다. “유럽에서 호평받기도 했지만, 일본에선 정제되지 않은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거친 느낌 때문에 일본에선 제작비 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10년 동안 장편을 못찍었다. 제작자가 요구하는 대로 찍긴 싫었고 그래서 가끔 돈이 되는 대로 단편을 찍었는데, <셔플> <도쿄 블러드> 등이 그렇게 해서 만들었다. 어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4] - 이시이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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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43)은 더이상 소개가 필요없을 정도로 국내 관객과 익숙한 이름이지만, 정작 그의 영화 가운데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것은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수상작인 <애정만세>(1994) 한편밖에 없다. <청소년 나타>(1992) <하류>(1997) <구멍>(1998) 등 세편을 상영한 차이밍량의 날은 ‘아시아 감독 3인전’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아 보조의자를 놓고도 서서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멍> 이후 아직 신작이 없다. 11일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나타난 그는 “3년간 새 영화를 안 찍어서 이렇게 만나는 게 쑥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동안 쉰 건 아니다. 시나리오 2개를 완성했고, 그 중 한편을 올해 말까지 찍고 싶다. <흑안권>(Dark Eye Circle)이라는 영화인데 눈주위가 검게 되는 걸 일컫는 말이다. 맞아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을 너무 많이 해도 그런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3] - 차이밍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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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세 번째 영화 <오!수정>의 촬영을 마친 홍상수 감독(40)은 후반작업 진행중에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은 국내 개봉, 비디오로도 나왔지만 50여명이 필름으로 다시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특이한 건 상영시간에는 한산했던 객석이 감독과의 대화시간엔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들어찬 점.
일상성의 영화에 대해 그는 스스로 이렇게 설명했다. “나 스스로는 일상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부른다면 그건 내가 다룰 수 있는 진흙덩어리 같은 거다. 손에 잘 붙는 진흙은 자꾸 만지게 된다. 내겐 본질적인 냄새, 상징화하기 쉬운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있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 그걸 재생산하는 건 재미없다. 패널로 참여한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일상의 리듬에는 슬픔이나 고통도 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고 기쁨도 있다. 하지만 홍 감독 영화는 행복에 금이 가고 기쁨이 끝나는 순간에 시작해 하강하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2] - 홍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