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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10주년을 맞았다. 10년의 세월, 500권의 잡지로 남은 지난 3500일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1995년, 한국에서 영화주간지가 되겠냐는 회의와 불신 속에서 첫발을 내디딘 창간 준비팀의 고투는 말할 것도 없다. 영화 저널과 기자의 한계, 취재원과의 관계, 잡지의 노선, 시장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고달프고도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그간 잡지를 만들면서 우리가 어떤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또 당했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다. 진지한 성찰과 겸허한 반성을 기대하신 분들께는 다소 얄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냥 함께 웃고 떠들고 탄식하면서, <씨네21> 취재와 마감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 추억을 나누었으면 한다.
<씨네21> 10년 사건과 실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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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장관이었다. 6천여명에 달하는 거대 인파가 개막식장인 부산 수영만 야외극장으로 모여들었다.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수군거림은 기우였고, 9월13일은 “한국 영화사 최대 길일”이 됐다. 시네필들의 환호 속에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이 눈을 떴고, 27개국에서 날아든 170여편의 영화들이 9일 동안 연달아 기지개를 켜는 동안, 남포동 극장가는 넘쳐나는 관객으로 매일 흥청거렸다. 총관객 수 18만4071명. 매표 수익은 애초 기대했던 3억원을 훨씬 뛰어넘는 4억5천만원이나 됐다.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미지의 영화들과 조우한 관객의 함성은 부산을 찾은 외국 게스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축제는 밤에도 이어졌다. 특히 해운대 앞 포장마차는 코리안 펍의 대명사가 됐고,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좌판에 자리깔고 앉은 파란 눈의 외국인들에게 소주잔 돌리기 바빴다. 관객의 부산영화제 애호증은 식지 않았다. 올해 10회 행사를 앞두고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간 이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3] -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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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탄생 100주년을 대한민국처럼 뜨겁게 기념한 나라는 없었다. 영화를 예술로, 영상문화를 대중문화의 심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탄생한 새로운 영화잡지들은, 그들을 낳은 흐름에 가속도를 보탰다. 영화잡지 시장은 5월 창간된 <씨네21>과 <키노>, 12월에 첫호를 낸 <프리미어>로 인해 재편됐다. <씨네21>은 <한겨레>의 저널리즘적 감각으로 영화광 문화를 폐쇄회로에서 끌어냈고 <키노>는 비타협적인 작가주의 비평의 관점을 견지했으며 <프리미어>는 국내 유일의 라이선스 영화잡지로서 사진과 할리우드에서 직송된 기사를 장점으로 내세웠다. 새로운 잡지들은 10대에 편중된 영화잡지 독자층을 30대 너머로 확장했고 감독과 제작자를 대중문화의 스타로 만들었다. 영화는 강의 리포트에서 일상대화까지 대학가 문화의 중심에 파고들었다. 영화예술에 대한 갈증은 창작과 배급 부문에서도 답을 찾았다. 국립영상원이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2] -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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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004 한국영화의 불타는 연대기
“가수 김광석이 죽었다. 김광석이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고 감독 허진호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촬영감독 유영길의 유작이 됐다. 유영길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눈을 갖고 있었다고 빈소에서 감독 이창동은 말했다. 이창동에게 메가폰을 들려준 건 제작자로 변신한 배우 명계남이었다. 스크린쿼터 집회에서 명계남은 명사회자로 통했다. 스크린쿼터 집회에는 감독 임권택도 빠지지 않았다. 임권택이 정부에 항의하며 삭발하던 날 배우 전도연은 울먹거렸다….”
지난 한국영화 10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네버엔딩 스토리다. 한번 들어서면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잊혀졌고, 다시 살아났다. 스크린쿼터는 바람 잘 날 없었고, 각양각색 전주(錢主)들이 으르렁거렸고, 덩치 큰 메이저 영화사들이 탄생했고, 무엇보다 3천편 이상 되는 영화들이 극장에 내걸렸다.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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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시내 라이트> Cine Lights
제작 남동철
감독 손홍주, 이종도
출연 안성기, 문근영
시나리오 이종도
진행 박혜명
옌볜어 교정 문근영
촬영·미술 손홍주
편집 박초로미
조명·세트 문성일, 김민주(디자인 이즈)
스타일리스트 이정민(안성기), 고민정(문근영)
의상협찬 이도, Lyle & Scott, Perry Ellis, 니체 이태리(이상 안성기) 시슬리, 레니본, 96ny(이상 문근영)
헤어 및 메이크업 이정민, 이지영(이상 안성기) 민지현(엘트레), 이희경(엘트레)(이상 문근영)
매니저 이바름(안성기), 한돈섭(문근영)
<시내 라이트> [4]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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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 10년 뒤
소녀는 시내리의 정기구독 10년 독자에게 주는 특별초청을 받고 채플린이 영화를 찍는 스튜디오로 찾아간다. 10년의 세월이 흘러서일까. 촬영장에 찾아갔지만 채플린은 소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녀 또한 수염을 깎은 채플린을 알아보지 못한다.
서로 어긋나는 두 사람.
소녀 | 10년 만이래서일까. 왜 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일까. 그래도 안 돌아갈 거야. 신께서 하나의 문을 닫을 때, 어딘가에선 창문을 열고 계신다고 하지 않았슴. 희망이란 좋은 거이 아니겠어. 아즈바이(아저씨), 이렇게 말씀하셨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채플린 | 음… 정기구독자를 초대했다는데 왜 소녀는 보이지 않는 걸까.
소녀, 채플린 서로 어깨가 엇나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 소녀는 입가에 손을 대고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채플린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하는 표정이다.
SCENE 5. 재회
시내리 스튜디오 창설 10주년
<시내 라이트> [3] - 10년 뒤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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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혹시 만나셨을지도 모르겠다.
춤추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 소녀를 말이다.
늘 웃고, 상냥하고, 그랫서 어디서 봤었노라고
착각이 들지 모르겠다.
소녀는 꽃을 판다.
그 꽃 한 송이가 그녀의 운명을 바꾼다.
SCENE 1. 10년 전 첫 만남
춤을 추던 꽃파는 소녀를, 지나가던 당대의 인기배우 채플린이 바라본다. 채플린은 소녀의 해맑은 눈동자에 반해 잠시 멈춰서 있다. 그리고 소녀에게 춤을 청한다. 우아하게 춤을 추는 채플린과 소녀. 소녀는 대스타와 춤을 춘 황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영화배우가 꿈인 소녀, 영화배우인 채플린.
채플린 | 너 참 눈이 맑게 생겼구나.
소녀 | 선생님, 선생님은 혹시 고저 영화배우, 그것도 인민배우 아니심까(아니십니까)?
채플린 | 머뭇머뭇. (싱긋 웃고는 손을 내밀어 춤을 청한다. 콧수염이 익살스럽다.)
소녀 | (처음엔 수줍어하다
<시내 라이트> [2] - 10년 전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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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안성기와 문근영 두 배우를 잡지의 얼굴로 초청하면서 특별한 표지를 기획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시티 라이트>에서 설정을 빌려 취재기자가 짤막한 시나리오를 썼고, 두 배우는 각각 채플린과 꽃을 파는 소녀 역을 맡아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했으며, 사진기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두 사람이 10주년 기념호의 얼굴이 된 데는 의미가 있다. 80년대를 충무로의 독보적인 주연배우로 활동한 안성기가 <씨네21>이 창간될 당시 ‘국민배우’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면, 어떤 여배우 계보에도 잇기 어려운 독특한 소녀성을 가진 문근영은 현재 만인의 누이이거나 조카 혹은 딸이다.
토요일 오후 1시.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달콤한 시간에 표지 촬영을 위해 두 배우와 여러 종류의 인력들이 스튜디오로 모였다. “공부하기 힘들지?” 안성기가 말을 건넨다. “그래도 고2 때보단 나아요. 고2 때까진 새로 배
<시내 라이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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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마그렙’(Maghreb)이라는 지명은 굉장히 낯설게 여겨진다. ‘마그렙’은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통상 ‘마그렙 영화’라 하면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모로코 등지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지칭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마그렙 영화들은 총 8편이 준비되어 있다. 낯선 지역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황홀한 이미지의 영토가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아프리카 북부지역의 영화들이면서도 지중해 북쪽, 특히 프랑스 영화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탓에 시네필적 감수성과 영화형식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영화들도 적지 않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 가운데 하나로서 <천일야화>를 떠올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것은 모로코 출신의 소설가 타하르 벤 젤룬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이슬람의 예술가들에겐 “거대한 집, 모든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7] - 마그렙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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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러셀의 밤
이단아 켄 러셀의 작품들은 정치적으로 도발적이고, 도덕적으로 부조리하며, 시각적으로 불편하다. 그는 어떠한 영화적 사조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영국 영화계가 낳은 가장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작가로 지속적인 행보를 해왔다. D. H. 로렌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사랑하는 여인들>은 켄 러셀과 여배우 글렌다 잭슨을 세계 무대에 소개한 작품. 남성의 전면 누드가 등장한 본격적인 (거의 최초의) 상업영화로 악명이 높다. <악령들>은 컨 러셀의 악마적인 비주얼 감각이 절정에 달한 작품으로, 성적으로 뒤틀린 곱사등이 수녀를 중심으로 성직자들간의 권력다툼과 마녀사냥의 피비린내나는 잔혹극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데릭 저먼이 참여한 미술과 주연배우들(올리버 리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광적인 연기는 세월이 지날수록 힘을 얻는다. <토미>는 켄 러셀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 69년에 발매된 록밴드 더 후의 음반을 토대로 한 이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6] - 불면의 3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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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 원컷. 소마이 신지의 영화세계는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영화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을 빌리자면 “한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컷을 넣지 않고 카메라를 여기저기 이동시키면서, 불투명한 소음으로 가득 찬 상상조차 못할 공간의 변화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일본 영화계는 이런 폭력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인 방법 속에 앙드레 바쟁이 30년 전에 정착시킨 ‘공간적 깊이에 의한 데쿠파주’라는 테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원리가 구현되었다고 믿고, 그의 영화를 광신적으로 숭배했다.”
원신 원컷의 원칙
1980년 만화 원작을 각색한 <꿈꾸는 열다섯>으로 데뷔한 소마이 신지는, 첫 작품부터 일관된 원신 원컷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가장 실험적인 영화 <숀벤 라이더>의 7분40초간 지속되는 첫 장면은, 3대의 크레인을 이용하여 컷을 나누지 않고 수영장에서 운동장으로, 다시 교문으로 이어지는 긴 시공간을 하나의 호흡으로 끌어들여 전설이 되었다. 소마이 신지는 자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5] - 소마이 신지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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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
피델 카스트로에 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 <지휘관>(Comandante, 2002)에 이은 올리버 스톤의 두 번째 쿠바 잠입기. 2003년, 일단의 쿠바인들이 선박과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으로의 불법적인 이민을 시도하려다 실패한다. 쿠바 정부는 이들에게 전례없이 가혹한 처벌을 내렸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계는 쿠바의 인권문제를 또다시 도마 위에 올렸다. 올리버 스톤은 다시 한번 쿠바로 날아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고, 그와 처벌당한 수감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짚어낸다. 논쟁적인 감독은 공격적이고 객관적인 질문을 수시로 퍼붓고, 여기에 고집스레 대항하는 피델 카스트로의 거만한 제스처는 금방이라도 관객의 눈앞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63분의 짧은 시간 동안 올리버 스톤은 과거의 다큐멘터리들로부터 가져온 자료화면과 현재의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노쇠한 카리스마를 기가 막힌 편집으로 섞어서 흔든다.
세계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4] - 거장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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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봉봉
사람 좋은 중년 남자 후안 ‘코코’는 이십년 동안 일했던 주유소가 팔리는 바람에 실직자가 된다. 그는 나무로 나이프 손잡이를 깎아 팔아보지만 신통치 않고, 직장을 구하려 해도 경기침체 때문에 자리가 없다. 막막한 심정을 헛웃음으로 감추는 코코. 그는 도로변에 고장난 차를 세워두고 있던 여자를 도와주었다가 죽은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도고 아르젠티노종 개 한 마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변한다. <나의 개 봉봉>은 별다른 사건이 없는 영화다. 초라한 남자의 일상이 계속되다가 크고 하얀 개 한 마리가 나타나고 그 둘이 동무가 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코코와 봉봉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한 사람과 한 마리는 그들 나름대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딱 한 가지가 부족했던 봉봉이 마침내 완벽한 개로 태어나는 순간, 코코의 조용한 환희는 잔물결처럼 공기를 흔들며 이상하도록 선명한 아르헨티나의 햇빛을 받아 반사광을 내뿜는다. 자신의 이름 그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3] - 강추! 리스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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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과 막스 오필스의 동명영화로 익숙한 이야기다. 생일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하얀 장미를 선물받아온 남자가 어느 해 장미 대신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엔, 18년 동안 그를 사랑했고,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옆집에 이사온 남자를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사랑을 시작해서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았고 하룻밤 사랑 끝에 그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끝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주연과 감독을 겸한 쉬징레이는 1900년대 비엔나를 1930, 40년대 베이징으로 옮겨 귀부인의 밀실처럼 우아한 향기를 불어넣었다. 남자가 건넨 흰장미, 전후 베이징의 퇴폐적인 댄스홀, 응고된 사랑이 새겨진 여인의 표정은 단순한 스토리를 애틋하고 섬세한 손길로 매만진 흔적. <귀신이 온다>의 장원이 무심한 플레이보이를 연기했다.
퀼
옆구리에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2] - 강추! 리스트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