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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가 남자 감독의 손에서 나왔다는 점은 아무래도 특별하다. 정혜의 아주 조그만 몸짓 하나, 눈빛 하나, 표정 하나가 쌓이고 쌓여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이 놀라운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숨결은 아프고, 슬프며, 저리다. 우리는 정혜의 처연한 보호본능이 실제로 어떤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정혜라는 캐릭터가 남다르지 않을 듯 보이는 소설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경린, 신경숙 두 작가가 흔쾌히 글을 보내주었고, 임상심리를 겸하는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영화 밖의 ‘전공’을 살려 정혜를 바라봐주었다.
“우리의 일상이란, 꼭 다문 조개 같은 것”
전경린/ 소설가·<황진이>
영화를 보는 내내 바람에 먼 곳의 문이 흔들리는 듯 희미한 경첩 소리가 들려왔다. 삐걱삐걱…. 이 세상 어디선가 오래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열리려고 저리 앓는 것일까…. <여자, 정혜>는 특별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여자, 정혜> 3인3색 감상 [1] - 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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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엔터테인먼트 배급예정작
3월 <마파도>/ 추창민
4월 <달콤한 인생>/ 김지운
4월 <미트 페어런츠2>/ 제이 로치
6월 <링2>/ 나카타 히데오
6월 <연애의 목적>/ 한재림
7월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7월 <연애는, 미친 짓이다>/ 오석근
7월 <마다가스카>/ 에릭 다넬
8월 <가발>/ 원신연
하반기(미정) <안토니 지머>/ 제롬 살레
하반기(미정) <매치포인트>/ 우디 앨런
하반기(미정) <카미카제 걸스>/ 나카시마 데쓰야
미정 <세인트 앙쥬>/ 파스칼 로기에
미정 <레드아이>/ 웨스 크레이븐
미정 <저스트 라이크 헤븐>/ 마크 S. 워터스
미정 <마녀 김추자>/ 이현승
미정 <너는 내 운명>/ 박진표
미정 <태풍>/ 곽경택
미정 <월레스 & 그로밋>/ 닉 파크
2005 한국영화 투자·배급 지형도 [3] -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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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의 미드필더, 중견 투자·배급사의 행보는?
수직계열화의 깃발 아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메이저, 자본으로 정글을 이룬 메이저의 반대편에는 충무로에서 발로 뛰며 오랫동안 쌓은 인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중견 투자·배급사들이 있다. 그곳의 대표와 헤드급 책임자들은 하루종일 본업인 영화 투자와 제작에 대한 고민보다는 10시간 중 8시간을 투자자들을 설득하느라 정신이 없다. 초조하게 당일 개별 프로젝트의 제작비를 보내고, 로열티를 외국으로 송금하는 긴장된 일상이 계속된다. 한국 영화산업의 미드필더, 중견 투자·배급사들(이하 마이너)은 2005년 한국영화 투자·배급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대다수는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CJ의 움직임을 근거로 CJ 중심의 양강 체제가 정착될 것으로 본다. 다만, 이 추세가 계속되면 중견 투자·배급사의 입지가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마이너도 생존전략을 모색할 것이고, 그것이 투자·배
2005 한국영화 투자·배급 지형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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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으로 치면 2005년은 한국영화 투자배급의 반환점이다. 결승점을 향해 숨막히는 레이스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페이스를 조절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휴식을 취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한국영화는 서 있다. 중견 투자배급사 쇼이스트 김동주 대표의 “2005년이야말로 쇼이스트가 도약할지 물러날지 확연히 결정될 시기”라는 출사표는 충무로 전체로 소급해도 큰 무리없는 전망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벤처캐피털 및 코스닥 시장의 활황과 <쉬리>를 필두로 한 한국영화 흥행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펀드들이 대거 만료되는 2005년은 새로운 자본의 안정적인 수급이 관건이 될 한 해일 것이다. 2000년 12월부터 2001년 말까지 1년 동안 조성된 펀드 규모는 1978억원에 달한다. 영화산업에서 역사와 구조는 반복되기 쉽다. 특히 그 무대가 충무로라면. 새로운 자본의 조달 양상과 경로에 따라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인과론은 충무로 자본, 비디오 판권으로 시작한 대기업의 충무로 러시,
2005 한국영화 투자·배급 지형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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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hot #2 파워 오브 블랙, 제이미 폭스와 모건 프리먼
샤를리즈 테론 | 남우주연상 후보 보시겠습니다. (후보 화면 지나가고) 오스카 수상자는, 제이미 폭스, <레이>.
(객석, 기립박수. 폭스, 동석한 11살짜리 딸의 보글보글한 뺨에 입을 맞추고 무대 위로 오른다.)
제이미 폭스 | (수상소감 전략) 이 업계에 있다보면 여러 가지 다른 길로 쓸려갈 때가 있습니다. 그럼 사람들이 그러죠. ‘다른 사람하고 일해보면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니, 피부색이 다른 사람 말이야.’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매니저들을 향해) 당신들은 내 가족과도 같아요. 바로 당신들을 향해 ‘아프리칸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객석의 오프라 윈프리, 불끈 쥔 오른주먹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롱숏으로 잡힌다. 폭스, 수상소감을 아직 안 끝냈다.)
제이미 폭스 | (점점 수줍게 고개가 낮아지면서 감독과 스튜디오와 가족을 향한 감사 리스트 주절주절하다가) 오프라
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 지상중계 [2] -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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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이 지난 2월27일 LA 코닥극장에서 열렸다. 전세계 대중이 주목하는 지상 최대의 쇼는 올해에도 여러 볼거리들을 장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스릴 넘치는 대목은 지금까지 감독상 후보로 네 차례 지명돼 매번 고배를 마신 마틴 스코시즈가 다섯 번째 출전에서 과연 트로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에비에이터>는,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가운데 의상, 미술, 편집, 촬영 등 스탭들의 헌신적인 수공(手功)만을 크게 치하받음으로써 쇼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판정승자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감독·주연을 겸하기도 한 이 영화는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 트로피들을 시상식 후반에 몰아 가져가 극적으로 알짜란이 되었다. 새로운 사회자 크리스 록의 정신없는 오프닝 멘트로 시작해 4시간을 꽉꽉 채우던 전례를 거스르며 3시간15분 만에 끝난 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 쇼의
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 지상중계 [1] - 수상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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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우드식 비온정주의
평론가 폴린 카엘은 돈 시겔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하리> 시리즈를 두고, “파시스트적인, 비도덕적인 영화”라고 비난했는데, 그 말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비온정주의’적 도덕관에 관한 반대의견인 것처럼 들린다. 그 선고는 꽤 오랫동안 그를 뒤쫓아다녔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거기에 수긍할 생각이 여전히 없다. “그녀 생각에는 그것이 정말 비도덕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더티 하리>가 파시스트영화는 아니다. 그건 단지 그녀가 동의하지 않는 다른 도덕일 뿐이다”라고 못 박는다. 그의 어떤 영화에도 온정주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온정어린 행위로 사건이 해결되는 경우가 그의 영화에서는 거의 드물다. 해리 칼라한이 매그넘 44 권총으로 세상의 도덕을 바로잡는 원칙은 90년대 이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형식적 도약을 이뤘음에도 다른 방식으로 변함없이 다뤄지고 있다.
법적 도덕이 거리의 법보다 무력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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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스물다섯 번째 장편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감동의 펀치는 버티겠다고 마음먹은 정도를 뛰어넘는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어려운 영화가 아닌데 철학이 있고, 대중영화인데 가볍지 않다. 영화에는 비유없이 한 세계가 들어 있다. ‘이스트우드주의’라는 조어를 만들어 그의 영화 세계를 정리해보고, 그것을 지표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기를 권하고 있지만, 이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보던지 그건 상관없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세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데뷔작으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를 연출하겠다고 말했을 때, 제작사 유니버설 영화사는 그렇다면 감독 급료를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이, 즉 코만도나 람보가 연출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반색할 제작사는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기회를 얻었으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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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로폼 뭉치가 전투기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리라 예상되었던 부분은 세트였다. <결전의 날…>은 대부분이 전투기 속과 지휘선에서 진행된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실사로 찍어 CG로 합성한다지만 전투기 내부를 위한 세트는 꼭 필요했다. 어설프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역시나) 그만한 돈도 없었다. 대신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특수효과 전문회사인 ‘데몰리션’ 소속으로 <화산고>를 작업했던 문봉섭씨를 만났고, “SF 장르를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데몰리션’의 김광수 팀장을 소개해주었다. 김광수 팀장은 “세트 만드는 공간과 인력과 노하우를 얻으려면 AI쪽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다시 ‘AI’의 오선교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 한 다리 건너서 또 한 다리, 박선욱 감독은 지인과 지인을 통해서 해답을 얻었다. 그러나 ‘AI’팀이 박선욱 감독의 일을 도맡아서 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은 명백했고, 오선교 대표는 “미사리에 있는 ‘AI’
SF단편 <결전의 날이 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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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C대학의 영화과 학생 조지 루카스가 15분짜리 SF단편 <THX1138: 4EB>를 만든 것은 1970년이었다. 예브게니 자마친의 <우리들>을 연상케 하는 이 자그마한 소품에서 <스타워즈>의 미래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다만 루카스의 선배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달랐다. 그는 고독하게 작업하는 괴짜 대학생에게 거금의 제작비를 덜컥 지원했고, 루카스의 장편 데뷔작 <THX1138>은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0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하나 벌어지고 있다. 충무로 스탭들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작은 독립 SF영화 <결전의 날이 왔다>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60%에 달하는 분량에 상업영화 수준의 CG와 3D애니메이션, 제법 비용이 들어갈 세트가 필요했던 이 작품은 가능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였다. 박선욱(35) 감독은 이에 아랑곳
SF단편 <결전의 날이 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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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웃는 얼굴의 영정
학창 시절에 이은주는 바이킹을 타면 안전벨트도 풀고 서서 소리를 지를 만큼 겁없는 성격에 복도를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반마다 불을 끄고 다닐 만큼 장난기 많고 밝은 아이였다고 한다. 물론 남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익숙하고, 사진이든 대본이든 지나간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 정 많고 내성적인 면도 있었지만, 궁금했던 그의 영정 사진 속 모습은 그렇게 밝기만 했다. 한껏 웃는 맑은 옆모습을 담은 사진은 발인 전 영결예배와 함께 공개됐다. 정교하고 능숙하게 포착된 그 찰나의 사진은, 여배우라는 공인된 사람에 대한 상실감보다 우연히 내뱉은 한숨으로도 시든 꽃을 세워일으킬 수 있는 향기로운 나이를 먼저 실감하게 했다. 전성기에 은퇴를 선언하는 여배우보다 더 어쩔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을 꽃다운 시절에 가둔 사람. 그는 인터뷰 때마다 “세월이 흘러도 신비롭게 여겨지는,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종종 말하곤 했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은주 추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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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이은주가 세상을 떠났다. 2005년 2월22일 오후, 드레스룸 안에서 숨이 끊어진 채로 있는 것을 그의 친오빠가 발견했다 한다. 1980년 12월22일생, 올해 스물다섯. 웃기만 해도 주위가 봄날 같아질 화사한 나이로, 데뷔 초 보여준 영민한 재능을 다 펼치지도 않은 채 세상과 작별한 배우 이은주를 추모한다.
배우 이은주의 사망 소식이 보도된 날 밤,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기자 출입을 통제한다는 사전 정보에 주눅 들어 큰맘먹고 올라갔건만, 빈소가 마련된 3층 10호실 근처는 이미 취재진들로 오래전부터 메워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딩동 소리를 내고 문이 열리면, 기다렸다는 듯 겹겹의 셔터 소리와 발자국 소리들이 소란스럽게 울렸다. “상주들이 앉을 자리가 없다”면서 자기네들과는 상관없는 일로 몰아닥친 기자 떼를 원망하던 다른 빈소의 사람들도 코앞에서 지나가는 연예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빈소를 나오는 누군가의 오열 소리가 모든 이들의 신음을 한꺼번에
이은주 추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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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2일 화요일 오전
촬영장인 온정리 마을로
아침 7시 20분에 호텔방을 나서자 냉기가 목구멍을 넘어 위장까지 서늘하게 만든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는 날이다. 기자단을 합쳐서 180여명에 이르는 스탭, 배우, 제작진이 동시에 버스에 올라 온정리 마을로 향했다. 온정리 마을에는 <간큰가족>의 주요 북한 로케이션 장소인 온정각이 있다. 온정각은 남한의 여느 관광지 복합시설과도 비슷한 곳으로 식당, 공연장, 편의점, 쇼핑센터 등이 깔끔하게 들어서 있다. 여기서 지난 몇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건너편에는 늘어나는 관광객에 대응할 제2 온정각이 건설 중이고, 작은 스키장과 눈썰매장,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새로운 건물 터가 시원하게 개간되어 있다. 멀찍이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이 보일 듯 말 듯 그 모습을 쉽게 내어 주지 않고 있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려는 참에 제작진이 황급히 달려와서 파란 ‘PRESS’완장과 ‘제11차 이산가족 상봉. 특파
<간큰 가족> 북한 촬영 동행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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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영화, 휴전선을 넘다
영화 <간큰 가족>의 제작사인 두사부필름으로부터 북한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겨우 한달 전이었다. <간큰 가족>은 간암 말기의 실향민 김 노인(신구)을 위해 ‘통일 자작극’을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큰아들 부부(감우성, 이칸희)와 삼류 에로영화 감독인 둘째아들(김수로), 북에 두고 온 전처를 그리워하는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김 노인의 부인(김수미)이 선의를 위한 거짓말을 거듭하며 달려가는 <간큰가족>은 소박한 이상주의자들의 소동극이라 할 만하다. 생각해보면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했다. 간이 큰 가족의 간 큰 이야기 아닌가. 한국영화 최초로 북한 로케이션을 감행한 사건의 이면에는 간 큰 제작사의 배포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훌쩍 180여명의 스탭, 배우, 기자단들과 섞여서 떠난 2박3일간의 여정. 그것을 담은 이 짧은 기행문은 철책선을 넘나들며 기록한 작은 삽화들의 모음이다.
2월21일
<간큰 가족> 북한 촬영 동행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