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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자라지만 뉴질랜드여, 안녕
8월24일/ 한국행 비행기 안
결국, 뉴질랜드에서 촬영하기로 했던 장면 중 5% 정도를 찍지 못한 채 이곳을 뜬다. 변덕스런 날씨는 마지막 날까지도 우리를 괴롭혔지만, 키위들은 그래도 우리가 운이 좋은 편이란다. 이제 반환점을 돌았지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뉴질랜드 촬영 쫑파티 때 NZFX의 제프와 한국쪽 특수효과팀 경수가 합심해서 만들어낸 환상적인 불꽃놀이가 떠오른다. <반지의 제왕>과 <라스트 사무라이>를 해낸 그들은 훌륭하게 남극의 자연효과를 재현해줬다. 타이틀 시퀀스에 들어갈 대원들의 행군장면을 헬기로 촬영할 때 오렌지색 구름 뒤로 모습을 보였던 무지개도 머리를 스친다. (봉)준호 형은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 본 무지개에 미신적인 기대를 가졌다는데. 나 역시 그 무지개를 행운의 무지개로 맘속에 새기고 있다. 그 행운이 앞으로의 촬영을 순조롭게 만들어주길 바라며, 뉴질랜드여… 안녕!
세트라서 쉬울
<남극일기> 제작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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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만국공용어?
6월25일/ 마운틴 라이포드
<올드보이>의 마지막 장면을 비롯해서 전지현이 나오는 디카 광고까지 찍었다는 마운틴 라이포드. 마지막 헌팅 때까지만 해도 완벽한 설산이었던 곳이 눈이 다 녹아서 민둥산이 되어 있다. 팀의 막내인 민재가 리더인 도형의 엄청난 과거를 알게 되고, 근찬의 발은 동상으로 썩어들어가는 등 대원들이 점점 심리적·육체적 한계에 도달하는 듀피크 정상을 찍어야 하는 곳인데, 아무래도 원하는 풍경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대안이라면 산자락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방법 정도? 그러나 뉴질랜드 스탭들은 여건상 촬영이 어렵다며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묻자, 침착한 대답이 돌아온다. 장비의 이동과 전력문제. <태극기 휘날리며> 조연출 출신인 조감독 환희는 강원도 산꼭대기까지 수많은 짐을 지고 올라가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는데, 운동을 그렇게 싫어하는 나조차 직접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짐이건만 헬기를 불러야 한다
<남극일기> 제작기 [2] - 한국 스탭 vs 뉴질랜드 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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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가을. 임필성 감독은 무보급 남극 횡단에 도전했다 좌절한 허영호 대장의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접한 뒤, 한계상황에서 원형의 욕망을 드러내는 탐험대원들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6월 말, 5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데뷔작 <남극일기>의 촬영을 앞둔 떨리는 소감을 <씨네21>에 보내온 바 있다. 그리고 다시 1년. 칠전팔기 끝에 촬영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 굳게 믿었던 임필성 감독은 예상치 못했던 좌절을 연이어 겪으며 고난의 행군을 이어왔다. 작업환경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 뉴질랜드 스탭과의 불화와 화해, 철두철미한 준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뉴질랜드의 기상변화, 광활한 자연을 세트장 안에 고스란히 재현해야 하는 어려움 등 모든 것은 도달불능점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영화 속 탐험대의 여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숱한 눈보라와 화이트아웃 상황을 지나 이제는 CG와 믹싱 등 마지막 후반작업에 여념이 없는 임필성 감독. 그가 5월1
<남극일기> 제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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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9일과 3월14일,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미션 임파서블’을 달성했다. 이 영화들을 관람 가능한 15살 이상 인구의 27%에 해당하는 전국관객 1천만명을 동원한 것. 특정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는 식의 국민적 분위기가 형성된 결과 2월 한달간 한국영화 점유율이 82.5%로 최고를 기록했다. 이같은 결과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멀티플렉스와 엄청난 물량을 투여한 볼 만한 대작임을 강조했던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컸다. 민감한 소재를 다룬 영화(<실미도>)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자 역사적 사실이 다시금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일찍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태극기…>)을 목격한 관객은 한국영화를 할리우드영화와 대등한 것으로 여기게 됐다. 영화계 전체에서는 스크린 독점과 덤핑 의혹 등도 있었지만 한국영화 관객의 층을 한결 넓혔다는 점에서 장기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2002년 블록버스터영화들의 줄지은 참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11] -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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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올드보이> <장화, 홍련>. <씨네21>이 선정한 그해의 한국영화가 아니다. 전국관객 3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2003년 한국영화 흥행 5위 안에 포함된 영화들이다. 이는 변형된 조폭코미디 <가문의 영광>이 서울 160만명을 동원하면서 2002년 최고 흥행작이 되었던 것과는 분명 다른 현상이었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연출, 연기, 미술 등 제작 전반에 걸쳐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에 투철한 작가정신이 결합한 수작들이 양산되어 관객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킨 탓에 2003년 한해는 제작자와 관객, 그리고 영화저널 종사자들 모두에게 행복한 한해가 됐다. 실제로 이해 연말 <씨네21>이 설문을 돌린 제작자 10명 중 8명이, 한국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변화로 웰메이드 영화의 성공을 꼽았다. 상업영화의 당연한 미덕에 불과한 웰메이드가, 한국영화의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10]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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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린 해였다. 그동안 꾸준히 3대 영화제에 발을 들여놓던 한국영화는 2002년 들어 연이어 쾌거를 이뤘다. 2000년 <춘향뎐>에 이어 <취화선>으로 두 번째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권택 감독은 제 5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후반에 시사를 하는 영화들이 주로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례에 따라 수상 예감은 이미 팽배했다. 폐막식 하루 전날 공식 시사를 가진 <취화선>은 “매혹적인 추상의 경지로 인도하는 정확한 연출의 소유자”라는 현지평과 함께 지난 세월의 노고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제 수상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역시 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축포를 이어갔다. 비공식 부문 4개 부문을 비롯, 이창동 감독이 감독상을, 여자주인공 문소리가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2002년의 영화
홍상수의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9] -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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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은 한국영화 관객점유율이 50%를 넘어선 기록의 해였다. 2000년의 35.1%에 비하면 약 15% 성장한 괄목할 만한 수준이었다. 한국영화 관객 수도 4481만명으로 전년도 2271만명에 비해 두배 정도 늘어났다. <친구>와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대박에 큰 힘을 얻었고, 흥행 5걸 안에 들어 있는 조폭영화들의 선전도 한몫을 했다. 한국영화의 상승폭이 두드러진 만큼 직배영화의 하락폭이 뚜렷했다. 직배영화의 관객점유율은 전년도 64.9%에 비해 15% 떨어진 49.9%였고, 관객 수도 2천만명 이상 하락했다. 한국영화 관객점유율 상승세의 원인은 우선 우후죽순처럼 문을 연 멀티플렉스들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CGV가 12월19일 기준 13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것으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급작스런 지형변화가 몰고올 흥행 양극화와 독과점 현상, 제작비와 마케팅비 상승 등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많았다.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8] -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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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사용이 적극적으로 도입된 한해였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마련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에 각각 충무로와 실험영화를 대표하는 박광수, 김윤태 감독이 중국영화 감독 장위안과 함께 참여했다. 영화제용 디지털영화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박철수 감독은 <봉자>로, 임상수 감독은 <눈물>로 디지털 영화제작의 상업적 일반화를 시도했다. 남기웅 감독의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는 디지털 제작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또 다른 저예산 프로젝트의 예였다. 한편, (주)씨네포엠이 주최한 인터넷 단편영화 상영 프로젝트에는 세명의 젊은 감독이 참여했다. 8월7일 <커밍아웃>(김지운), 9월20일 <극단적 하루>(장진), 12월12일 <다찌마와 Lee>(류승완)로 이어졌고, <다찌마와 Lee>의 경우 조회 수 18만번에 이르렀다.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7] -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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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게 뭐야?” 1월14일, 전국의 50여개 극장에는 권총 든 한석규의 전신 사진이 실린 <쉬리>의 대형 스탠디가 배치됐다. 영화홍보용 입간판을 말하는 스탠디는 그때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유물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50분의 1도 안 되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한국영화가 극장에 거금을 들여 스탠디를 세운다는 건 상상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쉬리>는 똑같이 했다. 얼마 뒤, ‘1999년 1급 프로젝트’라는 <쉬리>의 홍보 문구는 거짓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쉬리>가 뛰어넘으면서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음을 영화인들은 목격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기이한 범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1998년은 강제규 감독의 말처럼 “10억원을 들여 30억원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30억원을 들여 5억원을 벌어야 하는”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홍콩영화의 퇴조는 아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6] -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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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 축소 위협으로 풍전등화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탈출을 위해 미국과의 경제협상에 안간힘을 썼고, 스크린쿼터 축소는 대미협상 타결을 위한 미끼로 매번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7월에는 한-미투자협정을 진두지휘하던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쪽 입장을 대변하다 영화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얻어맞았다. 미국은 3월31일 한-미 통상협의체회의에서 한국영화를 일정기간 의무상영하도록 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의 내국민대우 규정에 위반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쿼터를 줄여주면 한국의 극장업계에 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하는 등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던져댔다.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스크린쿼터 현행유지에는 변함없다”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지만 영화인들에게 신뢰를 안겨주지 못했다. 여기에 서울시극장협회가 8월18일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86일로 줄여달라는 공문을 문화관광부에 보냄에 따라 영화계 안에서도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갈등이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5] -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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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사전심의는 위헌이라고 일러줬지만, 가위든 자들은 귀머거리였다.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가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라는 이유로 수입되지 못했고,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는 “아이 아버지 이름은 김영삼”이라는 대사를 자진 삭제한 다음에야 개봉이 가능했다. <나쁜 영화>도 지루한 싸움 끝에 두 장면을 직접 걷어내고 극장에 걸렸고, <억수탕>은 곳곳에 ‘보카시’ 처리를 해야 했다. 새 영화진흥법이 발효되고 공륜을 대체한 공진협이 10월부터 심의 업무를 떠맡았지만 수십년 버릇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11월5일, 서준식씨는 제주 4·3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아 체포됐다. 알아서 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삼성이 주최한 제2회 다큐멘터리영상제에선 중국과의 무역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주최쪽의 판단에 따라 개막작 <태평천국의 문> 상영을 취소했고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4] -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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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김미희 | 좋은영화 대표
2004 21위 | 2003 16위 | 2002 10위 | 2001 48위
오정완 대표와 함께 ‘포스트 차승재’ 시대의 주역으로 꼽히던 그가 40위권으로 추락한 것은 <아라한 장풍대작전> <여선생 vs 여제자> <발레교습소>가 예상보다 낮은 성적을 기록한 탓일 터. 시네마서비스의 우산에서 나와 독자노선을 꾸리던 그에게 요즘은 시련기다. <혈의 누>는 “꾸준히 중요한 영화를 내놓는 제작자”인 그의 명예회복을 위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42. 전지현 | 배우
2004 25위 | 2003 42위 | 2002 43위
전지현에겐 여전히 월드스타로서의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국내에선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정작 홍콩과 일본에서 호응을 얻은 점만 봐도 그렇다. 정우성과 함께 캐스팅된 유위강 감독의 <데이지>는 꾸준히 제기된 연기력의 문제와 세계적 지명도
2005 충무로 파워 50 [6] - 41위~5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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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문근영 | 배우
첫 진입
충무로에서 캐스팅을 논할 때 “일본에서 장사하려면 배용준, 국내에선 문근영”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문근영은 단 세 작품으로 ‘국민배우’로 떠올랐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걸리게 하는 깜찍한 외모와 그 또래다운 영화 속 이미지, 그리고 모든 이의 마음을 녹이는 숨은 선행에 이르기까지 문근영의 흠은 찾기가 힘들다. 신작 <댄서의 순정>은 문근영이 10대 타깃 영화를 넘어설 수 있을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32. 안성기 | 배우
2004 47위 | 2002 40위 | 2001 27위
1980∼90년대 한국영화라는 나무의 꽃이었던 그는 이제 든든한 밑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실미도>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에 조연으로 나오길 서슴지 않으며,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의 공동위원장을 맡아 “오래된 산업화의 멍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영화계
2005 충무로 파워 50 [5] - 31위~4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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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설경구 | 배우
2004 15위 | 2003 12위 | 2002 23위
<실미도>를 건너 <역도산>을 넘고 <공공의 적2>를 무찌른 설경구의 다음 작품은 멜로영화다. 그로선 첫 ‘정통 멜로’가 될 전망. 이번엔 몸무게를 늘릴 차례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그는 영화를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아왔다. 차기작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문이 진행됐음에도 높은 평가를 받은 데는 그만큼 헌신적인 연기자가 드물다는 뜻일지 모른다.
22. 김기덕 | 감독
2004 24위 | 2003 50위 | 2002 28위
지난해 베를린과 베니스를 휩쓸었던 그는 신작 <활>로 올해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860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의 오랜 푸대접에 반발심을 표출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계가 보유한 보물이자 진정한
2005 충무로 파워 50 [4] - 21위~3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