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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 아래 앙상하게 윤곽을 드러낸 도심의 밤, 범죄와 음모가 스멀거리는 문명의 그늘, 자신 외에는 믿을 것 없는 현실의 생존법칙 앞에 선 삐딱한 사내들.
험프리 보가트의 찌푸린 양미간과 잭 니콜슨의 음울한 표정의 시대는 갔어도 도심의 뒷골목, 누아르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만물의 법칙이 그러하듯, 누아르 세계에도 세대교체가 있다.
보가트의 후예들, 할리우드를 점령하다
한적한 L.A 교외의 폐모텔, 헤드라이트로 어둠을 가르며 한대의 차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사내는 먼저 도착해 있던 사내에게 말을 건네고, 서로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두 사람은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깨닫는다. 연관이 없어 뵈는 일련의 살인사건이 거액의 마약을 노린 상사의 음모 때문임을 알게 된 두 형사 버드 화이트와 에드 엑슬리. 자리를 미처 피하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는 불빛이 다가오고, 총을 집어든 두 사람은 폐건물의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목숨을 건 일전을 벌인다.
할리우드 누아르의 새 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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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세이 나부 어게인’ ‘오래된 희망’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스타워즈’ ‘아나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상은 곧 만들어질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부제를 네티즌들이 유추해 본 것들이다.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의 영화제목을 재미있게 패러디한 이 부제들은 만든 이의 유머감각에 경탄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외에도 요즘 인터넷에는 <스타워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갖가지 정보와 재미있는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의 대대적인 성공의 견인차가 되었던 스타워즈 마니아들의 집산지가 바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겨워질 정도로 <스타워즈 에피소드1>을 여러번 본 그들의 관심은 벌써 다음 에피소드에 가 있는 것이다.
일단 현재까지 알려진 새로운 에피
<스타워즈 에피소드2>를 둘러싼 각종 소문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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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르게! 더 세게!”(Faster! More intensity!)
이는 조지 루카스가 촬영현장에서 배우들을 향해 입버릇처럼 외치기로 유명한 얄궂은 주문이다. <에피소드3>의 배우들은 이 막연하고 난해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 외에도 19년 뒤(<에피소드3>와 <에피소드4>의 갭)의 나이 든 자신 혹은 자신의 아이를 상상하며 연기하는 별난 경험을 했다.
알렉 기네스 따라잡기
이번이야말로 고 알렉 기네스의 업적을 따라잡을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오비완 케노비 역의 이완 맥그리거는, 대배우의 혼령을 접신하겠다는 일념으로 3주 동안 분장실에서 4, 5, 6편에 나오는 알렉 기네스의 모든 장면을 쉬지 않고 재연했다. 내털리 포트먼 역시 아미달라의 딸인 레이아 공주 캐리 피셔의 연기를 복습했다. 팰퍼타인 역의 이안 맥다이어미드는 프리퀄의 제작으로 말미암아 내막을 알 수 없는 악당 연기에서 한 인물이 변모하는 궤적을 온전히 그려내는 배우로 흡족한 일을 얻
<스타워즈3> 미리 보기 [5] - 캐릭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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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세대의 모험을 그린 오리지널 3부작보다 오히려 더욱 풍요롭고 고도로 산업화된 <에피소드1>과 <에피소드2>의 세계는 우리를 잠시 의아하게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는 납득할 만도 하다. 악의 제국이 은하계를 점령하기 이전이 문화적으로 융성하고 부강한 아름다운 시절일 수 있기 때문이다. 랄프 매커리와 작업한 첫 번째 <스타워즈> 때부터 조지 루카스는 판타지영화의 창작 과정에서는 초기부터 아티스트와의 공동작업이 긴요하다는 사실을 숙지했다. 그림에서 얻는 영감에 힘입어 이야기가 전진하고 캐릭터가 완결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프리퀄의 우아함과 오리지널의 역동성을 연결하라
<에피소드3>에서도 ILM의 아티스트들은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드로잉을 독려받았다. 미술팀의 임무는 시각적으로도 로맨틱하고 윤택한 <에피소드1> <에피소드2>와 역동적이고 거친 오리지널 3부작의 비주얼 사이에 가교를 세우는
<스타워즈3> 미리 보기 [4] - 미술&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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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타이, 스위스, 튀니지 찍고~
호주와 영국의 세트와 은하계 다양한 행성의 모델이 될 중국, 타이, 스위스, 튀니지를 여행한 <에피소드3>는 ‘444’라 불리는 신기술로 촬영됐다. <에피소드2>를 메이저 영화로서는 최초로 HD 24프레임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루카스가 개발한 훨씬 높은 해상도를 얻어내는 테크놀로지라고. <에피소드3>는 ‘여봐란 듯’ 혁명적인 비주얼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다만 2200개의 방대한 양의 시각효과 숏을 때로는 한 장면에 50∼60개까지 이음새 없이 융합시켰다. 요다와 다스 시디어스의 대결, 오비완이 적을 쫓을 때 타는 용의 형상을 한 도마뱀 보가, 무스타파 행성의 용암 등을 묘사하는 데에 쓰인 애니메이션 작업 분량은 90분으로 2편의 70분, 1편의 60분보다 훨씬 길다.
은하영웅들의 잔혹한 액션이 펼쳐진다
<에피소드3>의 액션은 6부작 중 최고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에피
<스타워즈3> 미리 보기 [3] - 촬영&액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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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는 조지 루카스의 복수가 될 것인가?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이하 <에피소드3>)는 1972년 젊은 독립영화 감독 조지 루카스의 노트로부터 아직 스크린으로 옮겨지지 않은 은하영웅전설의 마지막 고리다. 괄호는 풀리고 은하계 전쟁의 역사는 28년 전 출발한 그곳으로 돌아와 긴 한숨을 토할 것이다. 최초의 <스타워즈>인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1977)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1980)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1983)이 레아와 루크 남매가 이끄는 반란군의 사악한 제국에 맞선 투쟁을 그린 상승의 드라마였다면, 총명한 소년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제다이의 길을 버리고 암흑의 유혹에 붙들리는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1999)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2002) 그리고 <에피소드3>는 하강의 드라마다. 결국
<스타워즈3> 미리 보기 [2] - 촬영&액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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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상상도 그리기
<제다이의 귀환> 이후 16년의 긴 막간 휴식 끝에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제2차 대장정에 올랐던 조지 루카스의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 연작이 5월26일 국내 개봉하는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로,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종막을 앞두고 있다. <에피소드3…>는 <스타워즈> 6부작이 그리는 궤적 중 가장 깊은 나락을 이루는 동시에 오리지널 3부작(<에피소드> 4, 5, 6)의 상승을 예비하는 도약의 플랫폼이다. 예언의 청년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의 검은 갑옷에 갇히는 것도, 그를 구원하고 포스의 균형을 회복할 레이아와 루크 남매가 탄생하는 것도 여기서다. 오래전 예언된 ‘과거’를 직접 목도하는 날을 손꼽아 헤아리며, 루카스필름의 프로덕션 노트와 ILM 컨셉 아티스트들의 스케치, 스카이워커 랜치의 작업현장
<스타워즈3> 미리 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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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당했다! 그것도 뇌수술이다!
신태라 감독은 8년 전 서울역에서 이런 전단을 받은 일이 있다. “저는 실험을 당했습니다. 그때부터 내 몸이 이상해졌고, 환청도 들립니다. 난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전단 돌리던 남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미친 걸까? 그가 제정신이라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실제로 모종의 사건을 겪었고,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휘둘려 고통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브레인 웨이브>는 이처럼 언뜻 떠오른 음모론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 상상으로 태어난 SF영화다.
영화는 거리의 화가 준오가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시작된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들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준오의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준오를 취조하지만, 엄청난 두통과 청각장애를 앓던 준오는 자신에게 비상한 초능력이 있음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한다. 준오는 자신이 특수한 뇌파 조절 능력을
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5] - <브레인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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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에서 벌어진 섬뜩한 괴담
정강우 감독은 평소 막걸리를 마시면서 소일하다가 꿈에서 영화의 소재를 얻곤 한다.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도 꿈에 나온 영화였지만, 이번엔 스토리가 아니라 제목만 하나 떠올랐다. 천사가 그녀와 섹스한 진짜 이유는. 너무 직접적이고 재미없는 듯하여 제목을 바꾼 <책을 읽거나…>는 정강우 감독이 그 진짜 이유를 만들고 몇 가지 에피소드를 덧붙여 5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한 영화다. 소박한 발상과 규모지만 드문드문 던져진 단서와 조각난 플래시백을 조합해 단숨에 풀어헤치는 솜씨는 소박하지가 않다.
영화는 폭설 때문에 길이 끊긴 산장에서 진행된다. 고등학교 동창 영미와 지혜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떠나려고 하지만, 옆방 남자가 위험하다며 말려서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무심코 현관을 열어본 지혜는 죽은 애인과 똑같이 생긴 알몸의 남자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그를 방 안에 들
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4] - <책을 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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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뻥쟁이들의 영화
늦은 밤 집으로 들어온 엄마가 배가 고프다며 뭔가를 먹고 있다. 입에 국수 자락을 문 채로 고개를 돌리는 엄마의 얼굴이 공포영화의 괴물처럼 기괴하다. 순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아들, 그뒤를 플래시맨처럼 달려 쫓아가는 엄마. 다행이다. 꿈이었다. <다섯은 너무 많아>의 첫 장면은 소년 동규의 꿈에서 시작된다. 그에게 엄마는 낯설고 공포스런 존재다. 피를 나눴다는 이유로 무조건 희생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가족의 굴레가 그에겐 답답하다. 뛰쳐나왔지만, 아직 홀로 설 수 없는 그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다섯은 너무 많아>는 가출 청소년, 불법 체류자, 파산한 자영업자, 처녀 가장 등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이 대안가족을 이루는 이야기다. 가출한 동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 업소를 단속하는 ‘환파라치’가 되기로 한다. 인근 도시락집을 타깃으로 정한 그는 점원 시내와 승강이를 벌이다 그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다
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3] - <다섯은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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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무술 영화
<거칠마루>는 이상한 무술 영화다. 무술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복수의 테마도 없고 유혈낭자한 폭력도 없다. 그저 “도복을 입고 있을 때 최고이고 싶다”는 무술인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과정의 이야기일 뿐이다. 무림 최고의 고수 거칠마루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혹은 겨루고 싶어서 모여든 무술인들은 그나마도 승부에 연연하는 모습이 아니다. 대련을 피해 도망다니는 이가 있는가 하면, 탈락한 이들끼리 번외 경기를 펼치기도 한다. “우물을 파는 데 이기고 지는 건 없다”면서. 그러니까 <거칠마루>는 ‘무술’보다는 ‘무술인’ 그리고 ‘무도’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그저 ‘강해지고 싶어서’ 몸을 단련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이다. 생활인으로서 약자이고 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애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술을 놓지 못하는 열정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이 영화는 ‘무술영화의 탈을 쓴 휴먼드라마’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2] - <거칠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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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의 폭풍의 눈은 뜻밖에도 한국영화들이었다. 디지털 삼인삼색을 비롯해 인권영화 프로젝트 <다섯개의 시선> <별별 이야기>가 매진 사례를 기록한 것은 감독들의 지명도가 있으니 그럴 법한 일이었지만, 한국영화의 흐름에 소개된 낯선 이름들의 디지털 장편영화들에 관객이 몰려든 것은 주최쪽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지난해 <마이 제너레이션>이 펼쳐 보였던 디지털 독립 장편영화의 가능성은, 올해 장르적 재미와 야무진 만듦새를 겸비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층 넓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만든 무술 영화 <거칠마루>의 열정과 결기,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사회드라마 <다섯은 너무 많아>의 훈훈한 인간미, 호러 요소가 출몰하는 스릴러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의 비범한 스토리텔링, 음모론에 기반한 SF액션드라마 <브레인 웨이브>의 치열한 제작과정에 주목하지 않을
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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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4일 아침 9시, 전주국제영화제 프레스센터에서 영화평론가 홍성남과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이 만났다. 떡진 머리에 반쯤 감은 눈으로 나타난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자유로운 몽상가이자 조숙한 영재소년처럼 사람과 시간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느리게,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매우 이른 아침의 ‘역류’(Undertow) 같은 대담을 여기에 싣는다.
홍성남 | <언더토우>는 테렌스 맬릭 감독이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데뷔작인 <조지 워싱턴>을 본 테렌스 맬릭이 <언더토우>의 각본을 가지고 찾아왔었다. 그의 영화들은 언제나 나에게 대안을 제시한 작품들이었고, 그를 만나는 순간 온몸이 덜덜 떨릴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그가 가져온 각본의 영화화를 수락했다.
홍성남 | <언더토우>는 장르를 나눌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보통의 스릴러하고 다른 점이라면 절대로 서두르
전주영화제의 발견1: 데이비드 고든 그린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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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제2의 테렌스 맬릭이 나왔다!
시골 마을의 한 집안에 불쑥 ‘침입’해온 삼촌이란 자가 아버지를 살해하자 삼촌의 표적인 돈 주머니를 쥔 어린 두 소년은 그 악마 같은 남자를 피해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게 된다. 금방 떠올리게 되는, 찰스 로튼 감독의 <사냥꾼의 밤>(1955)은 이와 유사한 상황이 펼쳐진 뒤로 영화의 주조를 비정한 가족스릴러에서 몽환적인 모험담으로, 그리고는 이상한 동화로 바꿔나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같은 비약적인 진로 전환 때문에 당혹스러워했다. 로튼 영화의 현대적 번안이랄 수 있는 <언더토우>(2004)에서도 스토리상의 그 중요한 분기점이 지나가자 무언가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영화가 옮겨가는 발걸음이 다소 예기치 않은 것이라 이걸 지켜보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영화를 봐온 경험에 따르면 이제 영화는 스피드를 높여가며 관객의 정서를 강하게 몰고 가야 한다. 하지만 <
전주영화제의 발견1: 데이비드 고든 그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