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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영화의 주제는 뚜렷해야 한다
-초기작들에 비해 <고령가…>부터 <하나 그리고 둘>에 이르기까지 뒤로 갈수록 캐릭터나 내러티브가 훨씬 친절하고 선명해진다.
=결국 또다시 주제와의 연관이다. 어떤 작품을 구상할 때 소재와 여건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이런 것이 내가 찍고자 하는 것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때그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직구를 잘 던지는 투수가 늘 직구만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변화구도 던져야지. 초기작들이 모던한 스타일이라고 해서 계속 그렇게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면 현대영화는 이야기 중심의 서사와 더욱 친해져야 한다고 보는가 아니면 크고 작은 불가해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현실처럼 영화도 추상화에 좀더 힘을 기울여야 하나.
=추상적인 방식을 쓴다고 해도 모든 걸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프랑스에서 몬드리안 전시회를 간 적이 있는데 출구에 이런 말이 있었다. ‘추상의 의미는 모든 사물들을 사실적으로 더욱 뚜렷하
에드워드 양을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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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심은 주제에 있다. 주제에 따라 스타일이 나온다”
8월24일부터 9월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대만 뉴웨이브 필름 페스티벌’이 열린다.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등 세 감독의 주요작 19편을 상영한다. 아무래도 눈이 번쩍 뜨이는 건 에드워드 양이다. <청매죽마>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독립시대> <하나 그리고 둘> 등 20년이 넘는 영화이력에서 7편에 불과한 그의 장편 중 5편을 상영한다. 에드워드 양의 작품세계를 한곳에서 편안히 앉아 차분히 볼 수 있는 건 희귀한 기회다. 무엇보다 그는 대만 뉴웨이브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다. 시애틀에서 컴퓨터 회사를 다니며 월급쟁이로 지내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를 보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시작한 때가 30살. 한때 USC에서 영화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너무
에드워드 양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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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맥스영화는 67년 몬트리올 엑스포를 계기로 선보인 뒤, 70년 오사카 엑스포에서 완성된 형태를 내놓았다. 65mm 네거필름으로 촬영하여 70mm 필름에 프린트한 뒤 대형 스크린에 영사하는 이 방식은 개발 초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인간의 시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거대한 화면 및 좌석배치 등으로 이미지의 압도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고, 그래서 자연다큐멘터리와 과학영화가 주상영작이었다. 국내에서는 63빌딩의 아이맥스 영화관이 최초로 건립되어 85년 7월 <창공을 날아라>(To Fly)를 개봉한 이후 지금까지 수십편의 영화들을 상영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이맥스영화는 영화문화라기보다는 놀이문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놀이동산에 놀러가야만 탈 수 있는 거대한 기구 같은 것이었다. 일반 상업영화처럼 지속적으로 극장을 찾아볼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니었다. 관객 역시 주로 아이들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국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맥스영화들은 자연스럽게 하향세를
DMB vs 아이맥스 [3] - 아이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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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안의 TV”라는 광고 카피가 있다. DMB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간단하게 정의한다. 지금껏 내 손안엔 휴대폰이 있었는데, 이젠 TV도 있다. 물론 좀 비싼 DMB단말기나 DMB폰을 가지고 있을 때의 상황이다. 내 손안에 있는 건 TV뿐만 아니다. 내 손안엔 게임기도, 인터넷도, 카메라도, 사전도 있다. PMP(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나 PSP(휴대용 게임기)까지 장만했다면, 내 손은 참 무겁다. 덧붙여 MP3 플레이어도 걸고 있다면, 나는/그대는 ‘움직이는’ 극장이자 오디오이자, 게임센터다. DMB는 궁극적으로 ‘개인용 엔터테인먼트 센터’로 진화하는 모바일의 현주소이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등장하고, 진화하는 이 모바일의 세계에서 ‘영화 보기’는 더이상 스크린 앞에(극장이든, TV든, 컴퓨터든지 간에) 앉아 있는 두어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영화, ‘모바일영화’라는 말이 등장한 지 3년째. 2002년, SK텔레콤이 3세대 모바일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 ‘
DMB vs 아이맥스 [2] - D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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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문화의 변화를 종용한다. 기술의 덕으로 탄생하여 생존하는 영화의 경우 그 변화는 천명이다. 디지털 기술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는 지금 여기, 극과 극의 ‘영화보기 문화’가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비유컨대 최소의 소형 스크린과 최대의 대형 스크린이 동시에 미래 영화의 일상적 풍경으로 떠오르고 있다. DMB와 아이맥스 시스템이 그것을 공존하도록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이라는 신기술을 따라 영화는 이제 휴대하여 이동해가면서 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TU미디어 콘텐츠팀의 이종민 과장은 “한달에 홈CGV가 제공하는 70∼80편 정도의 영화를 위성 DMB로 상영하고 있다”면서, “대형 스크린에 어울리도록 만들어진 영화의 매체 속성 때문에 처음에는 고민했는데, 인지도가 높은 영화는 콘텐츠 상영시간에 상관없이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동하는 곳곳에서 우리는 DMB를
DMB vs 아이맥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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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강 감독의 <천년여우, 여우비>나 충무로 메이저 제작사의 지원을 받는 <럭키 서울>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외한다면 여기에 언급한 많은 작품들이 투자자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 영진위와 콘텐츠 진흥원의 ‘작은’ 지원을 받고 제작한 파일럿을 오래전에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던 기대작들.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
<천년여우, 여우비> 선우엔터테인먼트, 옐로우 필름
<마리 이야기>의 수채화 같은 감수성으로 돌아오는 이성강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열살짜리 구미호가 한 소년을 사랑하면서 겪는 모험과 갈등을 다루는 작품. 2002년부터 기획이 시작되었고, 올 7월에 본격적인 프로덕션에 돌입했다. “<마리 이야기>처럼 정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매우 액티브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이라는 것이 이성강 감독의 이야기. 총제작비는 30여억원
2005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기상도 [4] - 기대작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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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10대들은 모를 수 있어도 7년 전에 10대였던 지금의 20대들은 안다.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이 만화 격주간지 <윙크>에 연재되는 동안 단행본 100만부를 팔아치우면서 누렸던 인기를 말이다. 황보래용, 류미끼, 장달봉, 국철 등 이름은 괴짜 같은 반면 얼굴은 멀쩡함을 넘어서서 아름다운 네명의 천재 음악소년들의 이야기인 <오디션>은 (지금은 그 시장이 거의 죽었지만) 당시 번성하던 만화잡지들의 주수요층인 10대들의 감성을 정확히 잡아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만화다.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가졌지만 세상과는 편히 어울릴 수 없었던 미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행복해지는 이야기. 방송국과 음반사를 거느리던 송송그룹의 회장은 오래전 우연히 마주쳤던 어린 그들과의 기억을 일기장에 기록해두고, 죽으면서 “이들을 꼭 찾아 오디션에 우승시켜라, 그러면 유산을 상속해주마”라고 외동딸 송명자에게 유서를 남겼다. 국철 무리와 비슷한 또래인 송명자는 아버지가 쌓아둔
2005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기상도 [3] -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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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질주하며 양‘아치와 씨팍’새가 온다. 도발적인 장편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튜브엔터테인먼트)이 오랜 산고 끝에 개봉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씨네21>의 한국영화 제작진행표에서 개봉시기를 1년 또 1년 연장해가며 기거해왔던 장편애니메이션이 프로덕션 작업을 대부분 끝내며 마지막 광내기에 접어든 것이다. 기획이 시작된 지 7년. 인터넷 플래시애니메이션으로 선보여 열혈 마니아층을 낳은 지 딱 5년 만의 일이다. 장편애니메이션으로서는 그리 오랜 제작기간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7년이라는 세월은 탯줄을 부여잡은 아이 하나가 인터넷 앞에서 마우스를 쥐기까지의 시간이다.
드디어 제작진행표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된 <아치와 씨팍>은 국적불명 혹은 국적불문의 ‘퐝’당한 애니메이션이다. OO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미래의 어느 미성년자 거주곤란 도시. 인간이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이 에너지원을 증가시키기 위해 정부는 ‘하드’(막대기 아이스케키)를 시민에게 나눠
2005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기상도 [2] - <아치와 씨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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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번 넘어져도 일어난다. <원더풀 데이즈>와 <엘리시움> 등 블록버스터급 애니메이션의 흥행 실패로 꽁꽁 얼어붙었던 장편애니메이션 시장이 움츠린 어깨를 펴기 시작했다. 부족하나마 정부의 새로운 정책 지원이 이어지고, 충무로 메이저 제작사들이 애니메이션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나선 덕이다. 음지에서 투자의 광명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따스한 양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2005년 하반기의 기대작 <아치와 씨팍>과 새롭게 제작이 재개되는 <오디션>의 지난했던 프로덕션 과정을 살펴보고, 주목할 만한 차기 프로젝트들을 통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향후 기상도를 살펴본다.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은 어디까지 왔나, 라고 물어본다면 숫자와 숫자로 만들어진 시장의 논리를 되새김질 아니할 수 없다. 어디 한번 책을 꺼내들어보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05년 애니메이션산업 백서>에 따르면 200
2005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기상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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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자동차 추격신 그리고 폭팔
결말부터 보여주며 호기심을 유발한 <범죄의 재구성>(2004)
검은 스크린 위로 무전을 닫으라고 질타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면이 밝아지면 “oh, shit”이라는 대사를 내뱉으며 차를 몰고 거리로 내달리는 주인공 최창혁(박신양)이 등장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격렬한 자동차 추격장면에 주요 인물의 그래픽과 형형색색의 크레딧이 화면을 가르며 삽입된다. 터널을 통과한 자동차는 허공을 가르고 추락하며 폭파된다. 불길에 휩싸인 차량 앞에서 뉴스를 전하는 리포터가 보인다. 추격장면에 걸맞은 강렬한 음악도 차분한 톤으로 바뀐다. 폭파된 차량을 페인트칠하듯이 뒤덮으며 제목 ‘범죄의 재구성’이 갑자기 나타난다. <범죄의 재구성>의 타이틀 시퀀스는 사건의 결말을 도발하듯 영화의 첫머리에 내세운다. 이는 ‘리얼 사기극’을 표방한 영화의 시간적 구성이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숨은그림찾기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최동훈 감독은 “이것은
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5] - <범죄의 재구성> <아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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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칼놀림에 압도당하다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인상적인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노년의 도인들이 세상에 대한 푸념을 마치면, 대나무 두루마리(죽간)가 빠르게 화면에 펼쳐진다. 검과 도를 쥔 두 남자 캐릭터가 주연들의 이름을 요란한 굉음과 함께 죽간이라는 화폭에 써내려간다. 죽간이 감기고 새로운 죽간이 깔릴 때마다 창, 쌍도, 봉, 쌍검 등 제각기 다른 병장기들이 무사들의 손에 쥐어지고, 모자를 비롯한 의상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겨난다. 순서상으로는 죽간이 스르륵 펼쳐지면 배역이나 역할이 빨간색 인장으로 미리 찍혀 있다. 그리고는 화면 전체에 펼쳐진 죽간 위에 무사들이 현란한 몸놀림으로 인장 아래 이름을 적어넣는다. 칼놀림에 글이 적혀나갈 때마다 글자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칼에서는 빛이 번득인다. 타이틀 시퀀스의 말미에 제목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적는 무사의 몸짓은 그러한 디테일을 실감하게 한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이 작품의 특수효과
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4] - <아라한장풍대작전> <그때 그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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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라인을 타고 하늘을 날다
스포츠 및 성장영화의 특성을 살린 <태풍태양>(2005)
푸른색 배경에 검은색 인간이 등장한다. 그림자처럼 새까만 캐릭터는 출발선에서 자세를 잡고 스케이터처럼 서 있다. 드디어 파스텔로 그린 듯한 거리 위를 교통표지판에 그려진 아이콘 같은 모습의 캐릭터가 달려나간다. 강한 비트의 음악에 보폭을 맞추듯이 빠른 속도로 집들과 거리를 누비는 검은 인간. 인라인을 타고 도시를 누비는 그의 몸동작은 댄서 같다. 빌딩숲 사이를 뛰어다니며 하프파이프(반원 모양의 스케이트를 타는 기구)를 오르내리는 그에게 봄볕이 내리쬔다. 땅 위의 질주만으로는 부족했던 그는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하얀 구름에 새겨지는 빨간색 제목 <태풍태양>. 양일석 팀장과 함께 이 오프닝을 만든 DTI 임배근 팀장은 “경쾌하게 시작되는 초반부를 만드는 동시에, 영화성격에 맞게 화려한 액션보다는 자아를 찾아가는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경이 계속 바뀌고 액션이 많아서
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3] - <태풍태양> <귀신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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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과 복수의 시간을 예고하는 시곗바늘
용이 감독이 타이틀 시퀀스를 따로 연출한 <올드보이>(2003)
공중전화 박스에서 술에 취한 채 전화를 거는 오대수(최민식). 화면 하단으로 오프닝 크레딧이 흘러간다. 디지털 시계의 숫자와 아날로그 시계의 바늘이 퍼즐처럼 맞물리며 각각의 크레딧을 형성한다. 크레딧의 문자 하나하나가 제각기 시곗바늘처럼 움직이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경찰서에서 오대수를 데리고 온 친구 주환(지대한)이 통화하는 동안 오대수도 자취를 감춘다. 쏟아지는 빗속에 그가 딸에게 선물하려 했던 하얀 날개만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화면이 바뀌고 나타나는 일렁거리는 시계의 이미지는 15년간의 감금이 빚어낸 시간의 공백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를 암시한다.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겹쳐지고 흩어지는 시계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벌어질 오대수의 추적과 복수의 시간을 예고한다. 시계의 모양이 알파벳 Y로 변하고, 다른 문자들이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며 제목 <올드보이>를 만
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2] - <올드보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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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타이틀 시퀀스가 변신중이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 국내 최초로 별도의 연출자를 기용하며 타이틀 시퀀스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할리우드 타이틀 디자이너 가슨 유가 만든 박감독의 신작 <친절한 금자씨>의 타이틀 시퀀스는 영화 자체만큼 화제를 모으고 있다. CG의 역할이 나날이 확대되는 한국영화의 제작환경을 고려하면 이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영화의 타이틀 시퀀스의 제작사는 어느 수준이며, 전문가는 몇명이나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쉽게도 한국영화 타이틀 시퀀스는 아직 미완성의 영역이다. 현재 충무로에는 타이틀 시퀀스 전문 제작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타이틀 디자인만으로 밥벌이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보통 CG 스튜디오와 감독의 부수적인 작업으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한국영화에서 타이틀 시퀀스에 공을 들이는 일은 영화제작의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조금이라도 길다고 느껴지면 제작자와 투자자들의 눈길은 어김없이 타
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1] - <친절한 금자씨> <웰컴 투 동막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