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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다”
라이브 카페에서 만난 <색을 보여드립니다>의 최건
육교 아래 위치한 베이징 CD 재즈 카페. 한적한 오후에 문을 열자마자 때아닌 록음악의 굉음이 쏟아진다. 평평한 무대에 원형으로 둘러서서 ‘베이징 록의 대부’ 최건과 그의 멤버들이 신나게 리허설을 하는 중이다. 장위안 감독은 “중국 록의 기억은 최건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에서 살육당한 시위대의 주제가로 쓰였던 <일무소유>(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는 최건을 천안문 세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로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그는 “음악영화이며, 한 가지 노래로 세 인물의 이야기가 묶일 것”이라고 새 영화를 전망했다. 여기서 인물이 의미하는 세 가지 색은 각각의 음악과 연결된다. “파란색은 전자음악, 빨간색은 록, 노란색은 팝”을 뜻한다. 그는 “경제 발전은 매우 빠르지만 중국의 문화나 정치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현실을 평했다.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3] - 중국감독열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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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아장커의 영화적 선배가 아니다”
<무극> 온라임게임 선보인 조어대에서 만난 첸카이거
<패왕별희>의 첸카이거 감독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조어대로 향했다. 타고 온 차량은 가까운 호텔에 세우고 주최쪽 차로 갈아타고 조어대에 들어간다. 북핵을 위한 6자회담 장소로 잘 알려진 조어대는 총리 윈자바오의 업무공간이며 청와대 영빈관과 유사한 장소이다. 오늘은 첸카이거의 신작 <무극>의 온라임게임 사업설명회가 열린다. 신작 <무극>과 관련한 사업발표가 조어대에서 열리고 구름처럼 몰려든 중국 언론의 태도만 봐도 첸카이거의 현재 위상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첸카이거는 중국 영화계의 최고 실력자 한상핑 총경비와 동석하여 기자들의 답변에 응했다. 그의 신작 <무극>은 중국 인민에게 유명한 또 한명의 감독 펑샤오강의 신작 <예앤>과 오는 12월 극장가에서 맞대결한다. 행사가 끝나고 첸카이거와 단독 인터뷰를 나눴다.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2] - 중국감독열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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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인도, 이란을 경유한 아시아영화의 네 번째 기착지는 중국이다. 이것은 인디컴시네마가 기획하는 12부작 다큐멘터리 <아시아영화기행>의 중국 1편 촬영팀과의 동행기다. <씨네21>과 부산국제영화제가 후원하고 CJ미디어가 공동제공하는 <아시아영화기행>은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12편의 각 작품을 1편으로 모아 편집한 버전을 상영하고, 10월3일부터 12일까지는 SBS에서 연속 방영할 예정이다. 이번 기획에서 한국과 더불어 중국은 유일하게 두편의 다큐멘터리로 방영된다. 100년을 맞이한 또 하나의 영화종주국, 세계 영화시장의 마지막 엘도라도, 화권 영화라는 이름으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영화사적 지위를 유지해온 아시아영화의 본가 중국을 찾아갔다. 1952년생 첸카이거부터 1971년생 루추안에 이르기까지 중국영화의 명운을 결정지을 대륙감독 12인과 베이징에서 차례로 조우했다. 세계 영화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황사는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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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내줘야 하나?
한국영화 점유율 40% 육박
12월22일 현재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36.7%. 문화부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이 잠정 집계한 수치다. 한국영화는 지금 “이러다간 ‘우리 스스로 스크린쿼터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그냥 웃어넘겨버릴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동안 정부는 물론 영화인들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올해 점유율이 4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4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적인 성장임은 분명하다. 지난 9월 말 35.3%에 비해서도 1.4% 늘었다.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 오차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최종 점유율은 35∼39% 정도로 추정된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점유율이 93년 15.9%에서 94년 20.5%, 95년 20.9%, 96년 23.1%, 97년 25.5%로 꾸준히 늘었으며
1999년 한국영화 결산 [4] - 99년 한국영화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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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뉴웨이브
장선우, 박광수, 이명세
이장호-배창호의 시대가 막을 내릴 무렵인 88년, 세 젊은 감독의 등장이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예고했다. 장선우, 박광수는 그때까지 한국영화사에 등재되지 않았던 사회적 리얼리즘의 깃발을 들었다. 전통적 영화어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도, 이들은 데뷔작에서부터 영화를 당대 현실 깊숙이 끌고 들어갔다. 장선우는 <성공시대>로 한국 자본주의의 폐부를 건드렸고, 박광수는 <칠수와 만수>로 도시빈민, 장기수 같은 예민한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뤘다. 90년에 나온 두 사람의 두 번째 작품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과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은 지금도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각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작. 한국 뉴웨이브로 불리게 된 이들과 다소 떨어진 자리에서 제3의 인물 이명세가 <개그맨>으로 외롭게 데뷔했다. 영화가 개인적 상상력의 산물임을 굳게 믿는 이 영화광은 영화 형식을 본격적으로
1999년 한국영화 결산 [3] - 90년대 한국영화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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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영화 베스트 - 감독·프로듀서·배우 부문
감독/ 이명세
99년은 80년대 말 한국영화의 수평선에 새 물결을 일으켰던 세 기수 박광수, 이명세, 장선우가 ‘여행’에서 돌아온 해였다. 그리고 셋 중 가장 행복한 귀환의 주인공은 스타일리스트 이명세였다. 복귀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그는 장르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명세 상’을 부수는 전략을 통해 더욱 철저히 이명세다워지는 길을 택했다. 전작들에서 동화의 나라를 외로이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카메라는 짐승처럼 쫓고 쫓기는 거친 사내들의 세계에서 뜻밖의 안착지를 찾았다. 하나의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미지는 단 하나라고 믿는 순결주의자의 집요한 시선은, 추적자와 도망자의 타오르는 집념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관객도 ‘광장’으로 나온 그의 장인정신에 따뜻하게 화답했다. 이명세 감독이 세기 끄트머리에서 맞이한 ‘쨍하고 해뜰 날’은 99년 한국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1999년 한국영화 결산 [2] - 올해의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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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제작편수 50편, 관객 점유율 36.7%(12월22일 현재). 한 세기가 저물어가는 1999년 세밑의 한국영화 결산표의 차변과 대변이다. 지난해보다 제작편수는 불과 3편 늘었지만 점유율은 무려 95% 이상 성장했다. 이런 수치에는 <쉬리>의 폭발적인 흥행 등으로 약간의 거품과 허수가 묻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와 영화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새 천년으로 질주하는 한국영화의 내일에 기대를 가져도 될 법 하다.
1999-2000 네 번째 특집은 ‘한국영화 폭발’이다. 90년대 한국영화계 10대 사건과 올해 한국영화계 10대 사건을 짚어보고 올해의 영화·영화인을 뽑았다.
올해의 영화·영화인 선정위원은 <씨네21> 20자평 필자·영화전문 필자, <씨네21> 객원기자와 기자로 구성했다. 선정부문은 ‘올해의 영화 베스트5’와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촬영, 남자배우, 여자배우 ‘올해의 영화인’ 6개 부문을 나눠 뽑았다. 선정위원들에게 제
1999년 한국영화 결산 [1] - 올해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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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 찌르는 코미디의 제왕 우디 앨런이 <할리우드 엔딩>이라는 신작을 들고왔다. ‘독설가’ 우디 앨런이 할리우드식 결말을 가져와 자기 스타일로 요리했는데 역시 좀 다른 맛이 난다.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들엔 어떤 특징들이 있지않던가. 가족들은 모여앉고, 남녀는 맺어지고, 영웅은 지구를 구한다. 비극으로 끝나는 할리우드영화는 보러 가고 싶지도 않겠지만, ‘이렇게 끝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건 자유다. 올해 할리우드영화 중 인상깊은, 혹은 어이없는 엔딩을 보여준 영화들도 3개씩 뽑아봤다. 영화의 결말에 관한 기사이니만큼 스포일러가 가득. 알아서들 조심해주세용~.
1.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할리우드란 곳은 가족 빼면 별 남는 게 없는 동네다. 그거 빼고 영화 만들어보라면 이러지 않을까. “팥 없이 호빵을 어떻게 만들어?? 버럭!” 왜 아니람.
할리우드표 가족영화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말할 수도 없지만, 대표적인 결말이란 이런 식이다. 1. 혼자 사는 할아버지
할리우드에 딴죽걸기 -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엔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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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사랑을 하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한다. 누가 맞는 걸까. 신기하게도, 둘 다 맞다. 사랑은 둘 다 될 수 있으니까. 이와 유사한 일이 또 있다.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대사가 주는 느낌은 듣는 사람의 연애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사랑의 쓴맛을 보지 못한, 사랑의 영원함과 진실함을 (아직도) 믿는 사람이라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연애의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은, 사랑이 변한다는 걸 이미 ‘알고’있다. 사랑의 반대말이 이별이건 무관심이건 그게 뭐가 중요한가. 사랑은 결국 사랑이 아닌 그 무엇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쯤 되면 이 감정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문제는 사랑이 결국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가 더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가, 실은 우리가 서로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사람
멜로영화엔 “이런 것 꼭 있다” - 눈물 쏙 빼는 멜로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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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고소영을 ‘여신처럼’ 숭배한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 할지라도 기꺼이 순정을 바치고(<구미호>), 어두운 청춘을 밝히는 유일한 빛으로 삼기도(<비트>)한다. 그러나 고소영은 평범하고 순진한 남자들의 맘을 송두리째 채가고 그렇게 그들의 인생을 뒤흔들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랑에 목매지 않는다는 듯 아주 무심하고 냉정한 모습일 때가 많다. 그가 평범한 남자와 맺어지는 설정은 그래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는 토를 달고서야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벽화 속에서 걸어나와, 살아 숨쉬며 현실의 사랑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 TV드라마 <추억>과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으로 ‘배우’임을 입증한 뒤, 고소영은 <연풍연가>에서 다시 제주도 토박이 관광가이드로 거듭났다. 사랑에 설레고 망설이는, 소탈하고 순수한 보통 사람으로의 변신은 배우 고소영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99 여배우 트로이카 [4] - 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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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에게 대단히 실례되는 말이지만, 전도연(26)은 미모가 대단히 뛰어난 배우는 아니다. 이마는 적당히 나와 짱구로 불리고, 모델 같은 늘씬한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다.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강하지 않고, 10대 청소년들이 숭배할 만한 메리트도 약하다. 그런데 왜 충무로의 제작자들은 캐스팅 0순위 그룹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걸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접속>에 전도연을 캐스팅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명필름의 심재명 이사는 “발군의 미모가 아닌 것은 전도연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배우로서 배역의 선택 폭이 넓고, 다양한 캐릭터 개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외모의 영화적 이미지도 좋고 감수성이 뛰어나다. 시나리오를 논리적·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해석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배우로서의 자질은 높이 살 만하다는 말이다.
‘전도연은 이제 시집만 잘가면 되겠네’하며 TV
`99 여배우 트로이카 [3] -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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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4일 <8월의 크리스마스>로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안았을 때 심은하(27)는 “고 유영길 감독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작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의 당연한 예의기도 하지만, 그냥 예의는 아니었다. “그분은 훌륭한 촬영감독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간이라는 걸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영화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가도 그분을 통해 배웠다”고 심은하는 말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배운 건 태도뿐이 아니다.
심은하는 <8월의…> 촬영 초반에 마음고생을 했다. 첫 촬영의 오케이 사인은 14번만에 떨어졌다. 게다가 허진호 감독은 뭐가 못마땅한지 설명하지 않았고 뭘 어떻게 바꾸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느낌이 아닌데…”라고만 할 뿐이었다. 심은하는 “솔직히 말해 짜증이 좀 났었다”고 말한다. 그전까지는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5번 이상 간 기억이 별로 없었다.
`99 여배우 트로이카 [2] - 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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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의 딸들, 충무로를 흔들다
충무로에 여배우시대가 오는 걸까. 남자배우가 정해져야 여배우뿐만 아니라 투자와 배급까지 결정되던 90년대 충무로 풍경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빅3으로 통하던 한석규·박중훈·최민수의 삼각체제에서 최민수가 이탈하고 박중훈이 주춤하면서 97년 후반부터는 한석규가 독주해온 형국이었다. 한때 충무로 제작자들의 집중공략 대상이던 배용준·송승헌은 무성한 소문만 남긴 채 아직 스크린과 만나지 못했고, 박신양·정우성·이정재가 선전했지만 신빅3를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 틈새를 뚫고 여배우들이 뻗어올랐다. 심혜진·최진실·김혜수 등 베테랑들의 뒤를 이어, 심은하·고소영·전도연·신은경·김희선·최지우 등 브라운관의 스타들이 어느새 충무로 중심부에 진입했다. 아직 역전은 아니라도 이 가운데 몇몇은 남자스타 못지 않은 각광을 받으며 흥행의 일정 수준까지 담보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2, 3년간의 성적만
`99 여배우 트로이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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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없으면 셰익스피어도 없다
아주 오래 전에, 비평적으로 막 재평가받기 시작하던 60년대 초에 앨프리드 히치콕은 <무비>의 빅터 퍼킨스와 나눈 대담에서 비평가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수십번 고민한 끝에 장면을 만든다. 그러나 평론가는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기초해 영화의 좋고 나쁨을 일필휘지로 판단한다. 시사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밤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평을 휘갈기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바로 평론가라는 것이다. 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에도 잘난 체하는 평론가를 야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시나리오 작가의 입을 빌려 평론가들의 경솔하고 천박한 20자평에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영화감독들에게도 평론가들에 대해 20자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라는 심정이 드는 것이다.
다른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평론가도 독자에게 정보와 해설을 제공하고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