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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푸둥공항에서 차로 달리기를 네댓 시간. 4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헐벗은 남자들이 우글대는 도시 무석의 세트장에 다다랐다. 고궁처럼 생긴 입구를 지나니, 지도 없이는 다닐 엄두가 안 나는 너른 세트장이 펼쳐져 있다. 이 세트장에선 장나라가 출연하는 중국 드라마를 비롯해 서너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동시에 촬영되고 있다고 한다. 세트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호수에 인접한 낡고 허름한 가옥들의 거리가 나타난다. 바로 여기서 김영준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무영검>의 막바지 촬영이 7월4일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다. 102회차 촬영이 있던 7월5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는 발해의 마지막 왕자 대정현(이서진)과 그를 지키는 무사 연소하(윤소이)가 거란족의 침탈로 폐허가 된 발해 마을을 지나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말쑥한 복장에 움직임이 거의 없는 이날의 장면은 무협물인 <무영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정적인 촬영이었다.
그러나 쉬운 촬영은 없는 법이다. 비
<무영검> 중국 촬영현장을 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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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 가운데 특히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시나리오 데뷔작으로 택한 이유는? <레볼루션 No.3>도 가능했을 텐데.
=<플라이…>는 먼저 시나리오 초고를 쓰고 그걸 바탕으로 소설화했던 작품이다. 가장 영화적이지 않나 싶었다. 영화를 한다면, 어렸을 때 좋아하던 성룡의 <취권>이나 이소룡의 작품 같은 액션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하고 싶었다. <플라이…>는 판타지적인 분위기도 있지만 출발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일본 영화계엔 요즘 절대 없는 작품이다. 출발 자체가 비현실적인 SF영화 같은 거야 있지만. 내가 다른 분야(소설계)에서 온 사람이기에 나름대로 힘있게 이런 기획을 밀어붙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기획을 냈으면 대번에 뭉개졌을 거다. 남자들만 나오는 얘기야? 연애 이야기는 어디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사실 <레볼루션…>에 대해선 한국을 포함해 수많은 영화화, 드라마화 제안이 있었지만
가네시로 가즈키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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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Go)>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재일동포 3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지난 7월9일 일본에서 개봉했다. 또 최근 <레볼루션 No.3>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 이은 ‘좀비스’ 삼부작 <스피드>를 출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영화화된 그의 작품이 벌써 <Go> <꽃> <연애소설> 3편에 달한 데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은 언제나 ‘영상적’이란 말을 들어왔다. 작품마다 옛날 영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가네시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꿈꿔왔다고 한다. 영화 개봉을 핑계로 지난 7월1일 도쿄의 도에이 영화사에서 가네시로를 만났다. 영화와 문학, 정치가 비슷한 비율로 뒤섞인 인터뷰였지만 그의 희망대로 정치 이야기는 많이 자제한 결과다.
가네시로 가즈키(37)의 이야기는 <Go>에서 출발한다. 가네시로 자신이 가장 닮았다고 꼽는
가네시로 가즈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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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살아 있다고 설정하면 어떨까”
미스터리 심리썰렁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아파트>는 사람 잡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다. 청년 ‘고혁’은 맞은편 동에서 밤 9시56분만 되면 여러 집의 불이 동시에 꺼지는 현상을 목격한다. 불가사의한 암전현상과 연속적으로 발생한 의문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발견한 고혁은, 항상 외로이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여인을 구해내기 위해 죽음의 아파트로 뛰어든다. 2004년 5월19일부터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 연재되었던 <아파트>는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며 감상하는 인터넷 만화의 독창적인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새로운 회가 업데이트되는 날이면 다음(Daum)의 서버가 느려질 만큼 많은 독자들이 몰려들었고, 일본에 판권도 두둑하게 팔았으며, ‘공포영화 전문감독’ 안병기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의 시점으로 옮겨가며 진행되는 <아파트>의 각색이 쉬울 리가 없다. “지금 시나리오
원작자와 감독이 만났을 때 [5] - <아파트>의 강풀+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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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하기만한 역사는 가짜 같다”
엘리베이터와 달라서 비행기는 종종 완벽한 타인을 향해 말문을 트게 만든다. 1996년 즈음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재한 감독(<컷 런스 딥> <내 머리 속의 지우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재한 감독의 우연한 대화 상대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한국 혈통의 승객이었고, 이민사의 아마추어 연구자였던 그는 감독에게 20세기 초 멕시코에 계약노예로 팔려간 조선인들이 밀림에 세운 이상한 소국 ‘신대한’의 설화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몇해 뒤 이재한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을 같이한 김영하 작가의 품에 소설의 씨앗을 심었고, 2003년 여름 장편 <검은 꽃>이 출간됐다. 김영하가 민족과 국가가 초래한 운명적 비극의 대하서사를 썼다는 사실에 그의 오랜 독자 대부분은 약간 놀랐다. 그리고는 그중 대부분은 책장을 덮은 뒤 납득했다.
<검은 꽃>은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05년 제물포항에서 일포드
원작자와 감독이 만났을 때 [4] - <검은 꽃>의 김영하+이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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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는 화투장을 든 사무라이”
<비트> <사랑해> <타짜> <식객>의 창조자 허영만은 1947년생, 일명 해방둥이 세대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한국형 사기꾼 영화의 탄생을 알린 최동훈 감독. 그의 아버지도 1947년생이다. <비트> 이후 오랜만에 <타짜(타짜꾼의 준말,노름판에서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로 싸이더스와 재회하는 원작자 허영만과 이 작품을 연출할 최 감독은 이날 처음 만났다. <오자병법> 치병편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자주 되뇌던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幸生則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필사즉생의 ‘각오’, 행생즉사의 ‘방심’은 만화 <타짜>라는 우주를 꿰는 씨줄과 날줄이다. 지리산 두메산골에서 태어났고, 우연히 화투판에 뛰어들어 한순간에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주인공 곤. 그는 숨은 타짜 평경장을 찾아
원작자와 감독이 만났을 때 [3] - <타짜>의 허영만+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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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황구라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정원>의 원작자인 황석영 작가와 각색자이자 연출가인 임상수 감독과의 대화는 일대일의 공정한 대담이 되기 어려웠다. 오후 4시에 만나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황석영 작가는 쉬지 않고 말했다. 본인 레퍼토리만 200가지라고 한다. 임상수 감독은 황석영 작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3대 구라에 대해 얘기했다. “누군가 황 선생님한테 선생님이 망명 기간 동안 그리고 감옥을 다녀 오는 동안 새로운 구라들이 떴습니다, 했더니 황 선생이 이랬대요. ‘걔네들은 교육방송 수준이야. 내가 라디오지.’” 황석영 작가의 라디오는 쉬지 않고 연애, 감옥생활, 신자유주의, 노동의 이동, 비정규직, 한국 문학의 위기, 한국영화의 위기, <한겨레>의 발전 프로젝트 등 주제를 옮겨다니며 능청스럽고 활달하게 유쾌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래된 정원>은 군부독재 반대 운동으로 18년간 장기복역하고
원작자와 감독이 만났을 때 [2] - <오래된 정원>의 황석영+임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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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소설 <DMZ>), <살인의 추억>(연극 <날 보러 와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소설 <위험한 관계>), <올드보이>(동명 만화). 최근 충무로가 거둔 가장 큰 수확들이 각색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영화가 모든 예술의 부문을 끌어안을 수 있는 강한 친화력과 잡식성의 예술이라는 뜻도 될 것이고, 21세기 예술의 총아가 영화라는 뜻도 될 것이며, 한편으로 일급의 시나리오 작가가 많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위기설이 도는 충무로에 주목할 만한 원작 각색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군사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18년간의 애끓는 그리움과 좌절을 담은 곡진한 사랑 이야기인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을 임상수 감독이, 1905년 멕시코에 팔려간 한국인 1033명의 운명을 다룬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을 이재한 감독이, 도박판의 세계를 긴장감 넘치게 구
원작자와 감독이 만났을 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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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님, 누가 CF 모델 아니랄까봐
1. 멋지다. 생각하는 감독 박찬욱. 병원장면을 찍는 도중 감독님의 멋진 순간을 발견해 한컷을 망원으로 찍으려는데, 노출이 안 맞고 이것저것 세팅이 안 된다. 행여 자리를 뜨기라도 할까봐 허둥지둥 서둘러 겨우 몇컷 찍는 데 성공했다. 어, 이상하다. 내딴에는 몰래 찍는다고 했는데 카메라를 치우자마자 감독님은 이쪽을 쓱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건 연출인가, 우연인가. 감독님은 스탭들의 카메라 렌즈가 자신을 향하면 피하지 않고 오히려 포즈를 취해주는 타입이었다. 누가 CF 모델 아니랄까봐.
2. 헤이리 아트벨리에 자리한 감독님 댁으로 구경도 할겸 차도 마실 겸 찾아갔다. 아무리 이사를 앞두고 있다 해도 부모님이 이미 자리를 잡으셨는데도 우리보다도 더 집 내부구조를 낯설어했다. 하긴, 그렇게 낯설어하는 감독님의 표정이 더 낯설어서 한컷.
3. 감독님 댁에 간 날, 한창 만들어지고 있던 붉은색 분위기의 세트 내부에 감독님과 조화
<친절한 금자씨> 엿보기 [5] - 현장 사진첩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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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씨만 보지 말고 우리도 봐주세요
1. 조명부 강헌씨가 천장에 조명기를 매단 뒤… ‘아랫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명 스탭뿐 아니라 우리 촬영팀 또한 부감숏을 찍기 위해 좁은 나무 바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일하곤 한다. 이렇게 아래를 보면 문득 ‘아랫마을’이 되게 부유하게 느껴진다. 모니터 주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먹을 것도 많고…. 다른 사람들도 뒤쪽과 함께 가끔 위도 쳐다봐줬으면.
2. 파주세트장에서 부감숏을 찍기 위해 천장에 매달린 나무 바 위에 올라서 찍은 사진. 감독님 주변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긴 나 혼자다. 사실, 집중력을 요하는 현장에서는 감독급 스탭밖에 눈에 안 들어올 때가 많다. 그러다가 이렇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 뒤에 얼마나 많은 스탭들이 일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올라와보면 바쁘더라도 가끔 뒤를 돌아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들은 누가 막을 수 있소이까
1. 송종희 분장팀장은 항상
<친절한 금자씨> 엿보기 [4] - 현장 사진첩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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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 킬러 역(카메오)
“박 감독 담배를 끊어서 그런지 보양식을 즐기던데”
-어떤 역할인가.
=영화의 중·후반쯤 등장하는데 백 사장(최민식)이 고용해 금자씨를 노리는 킬러다. 코믹하다든지 비장하다든지 그런 킬러가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금자를 납치하려다가 당하기도 하고 그런 장면 등 몇 부분에 나온다. 더이상은 말할 수 없다. 티내는 카메오가 아니라 그야말로 캐릭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예전부터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이 영화를 ‘복수 삼부작’이란 개념에서 완성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리즈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느낌의 영화인 만큼 작은 역이라도 맡을 계획이었다. 박 감독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 복수 시리즈 1부인 <복수는 나의 것>에 나왔던 사람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금자씨>, 어떤 영화인가.
=이야기 구성이나 풀어가는 방식이 <올드보이>나 <복수는
<친절한 금자씨> 엿보기 [3] - 카메오·스탭 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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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선 / 우소영 역
“내 얘기다, 나도 15년 만에 복수를 시작했거든”
-어떤 역할인가.
=수술비가 없어 은행강도를 했다가 감옥에 들어온 여성 역할이다. 감방에서 만난 금자로부터 생명을 얻는다.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 금자가 출소한 뒤에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철공소에서 사제총을 만들어준다. 입은 걸지만 의리있고 센 여자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배우 생활 20년 동안 감독에게 영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박찬욱 감독이 새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꼭 한번 같이 일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때 박찬욱 감독은 ‘고민해보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내가 내정된 상황이었더라.
-감회가 어떤가.
=예고편을 봤는데 그렇게 서럽더라. 그게 내 얘기다. 나도 15년 만에 우리 아이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시작했거든. 그동안 나는 아이 호적에 양어머니로 올라 있었는데, 엄삼익 변호사의 도움으로 호적도 옮겨왔고 양육비도 받게 됐다. 이제 위자
<친절한 금자씨> 엿보기 [2] - 조연 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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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보다 어마어마한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는 <친절한 금자씨>가 드디어 개봉했다. <올드보이> 이후 박찬욱 감독이 내놓는 신작 장편영화라는 점이나 이영애의 대변신, 다양한 조연과 카메오의 출연 등 이 영화가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쯤이면 대략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혀야 할 텐데 아직까지도 ‘어린 날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금자씨가 13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친 뒤, 자신을 죄 짓게 한 남자에게 복수한다’는 정도의 개략적인 줄거리밖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열성적인 팬이라면 두편의 예고편과 홈페이지를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얻었겠지만 그것 또한 위의 줄거리를 조금 보충하는 정도에 불과하니 이 영화의 정체, 참으로 수상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영화에는 박찬욱 감독과 이미 한번 이상 작업을 했던 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를 연기했던 최민식은 금자의 복수 대상인 백
<친절한 금자씨> 엿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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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함께 찾아온 시원한 바람에 반가워하고 있을 때, “티쉬나!”라는 낯선 외침이 들린다. 일순 웅성거림이 잦아드는 걸 보면 러시아말로 ‘조용하라’는 뜻인가보다. 쉬잇. <나의 결혼원정기>의 27회차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7월2일 밤의 이곳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7시간 거리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의 아불 카심이라는 사원 안마당. 꽃과 음식과 술을 그득하게 차려놓고 떠들썩한 결혼식 장면을 막 찍을 참이다. 감독이 “슛!”을 외치자 이내 “시윰까!”라는 러시아말이 뒤따른다. ‘찍는다’는 뜻이란다. “하나”-“아진”(1), “둘”-“드바”(2), “액션!”-“나찰리!”(시작)라는 말에 하객들은 일제히 “고리까”(러시아어로 ‘맵다’는 뜻이지만 우즈벡에서는 ‘키스하라’는 의미도 갖는다. 키스가 그만큼 짜릿하단 얘기일까)를 연호하고 가운데 테이블에 앉은 신랑과 신부가 인사를 한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현지 엑스트라 70여명 사이로는 정재영, 수애, 유준상의 모습도
<나의 결혼원정기> 촬영장을 찾아 떠난 우즈베키스탄 원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