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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이 낳은 아이, 대박일까? 쪽박일까?
“사랑에 빠지지 않고 그런 척 연기해선 안 된다.” <클레오파트라>(1963)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진짜’ 사랑에 빠진 리처드 버튼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각자 가정이 있던 두 주연배우는 현장에서 눈이 맞았고, 둘의 불륜(당사자에겐 로맨스!) 사실이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까 전전긍긍하던 스튜디오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테라스에서 키스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광경을 노출했다. 설상가상으로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솟구치면서, 제작비를 환수하는 미션을 달성하는 것조차 힘겨워졌고, 영화는 우려한 대로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제작사인 이십세기 폭스사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의 스캔들이 정말 흥행에 독이 되었던 것일까. 이후 수십년 동안 암묵적으로 주연배우들의 연애를 금기시했던 할리우드에 최근 들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년 만의 흉작으로 먹구름이 드리웠던 미국 극장가에 간만에 흥행의 단비가 내렸
스캔들과 흥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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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현장을 주목하는 이유 셋!
하나! 단편영화제의 스타감독
이하 감독의 단편영화 <용산탕>과 <1호선>의 주인공은 동네 목욕탕 때밀이와 ‘야메’ 운전학원 원장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다. 주변인들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응원하기 위해 일상의 작은 부분에 현미경을 들이밀고, 극적이거나 치열하지 않은 표면 밑에 은근한 무게를 담는다. 연출작의 전부인 단국대 연극영화과와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두편이 온갖 단편영화제를 휩쓸면서 기대를 모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둘! 빵점자리 시나리오의 불가해한 유혹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좀 이상하다. 하나같이 점잖은 직업을 지녔으면서 치졸한 인물들이 여럿 나오는데 정확히 주인공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여교수를 둘러싼 애매한 갈등은 황당한 사건으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상업영화로는 빵점짜리인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는 오가원 PD는 “상업영화로 쉽게 만들어질 수
신인감독 3인의 현장 [4] - 이하 감독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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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현장을 주목하는 이유 셋!
하나! 백 선생의 선택
신인감독의 스타메이커인 백윤식은 신한솔을 “장준환 더하기 최동훈”이라고 표현했다. <싸움의 기술>은 판수와 병태라는 독서실에서 만난 두 인물이 벌이는, 나이차를 넘어 주고받는 교감과 공고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왕따, 학교폭력, 가정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하드보일드한 소년담을 조합하려 한다.
둘! 파렴치한 그러나 매혹적인 상상력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은 “신한솔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1년 후배였다. 아카데미는 처음 입학하면 누구나 다섯컷짜리 영화를 찍는다. 이전까지 봉준호 감독의 다섯컷이 제일 유명했는데 16기 신한솔이 그걸 뒤집었다. 달나라에서 인형들이 섹스하는 내용의 그의 작품에 15기 전원이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졸업작품 <염소가족>이 무척 파렴치하고, 유치한데 그걸 눈 딱 감고 해치우는 이상한 매력을 가졌다”라고 말한다.
셋! 배짱은 원칙엄수에서부터
제작자가 참석
신인감독 3인의 현장 [3] - 신한솔 감독의 <싸움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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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현장을 주목하는 이유 셋!
하나! 인터넷 포르노방송
해외에서 한국으로 쏘아올리는 인터넷 포르노방송의 현장을 LA에서 재현한다. 끔찍하게 가학적인 포르노 <디즈니랜드>를 찍어 ‘화제’에 오르기도 했던 한국인 포르노 제작자들의 내부로 들어가보려는 시도다.
둘! 웨스턴 누아르
로케이션 인력의 절반을 넘는 할리우드 현지 스탭들은 <러브하우스>의 영문 스크립을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올랐다고 한다. 동양인 유학생으로서 셰익스피어의 본고장 영국에서 영국 배우들을 데리고 셰익스피어 극의 전통을 재해석한 단편 사극 <바람의 속삭임>을 만들었던 김판수 감독은 LA에서 다시 한번 당돌한 모험을 시작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부기 나이트>를 만났을 때 같은 웨스턴 누아르를 만들고 있다.”
셋! 젊은 해외파 집결
김판수 감독은 런던영화학교 재학 시절 만든 단편 <잘 자라 우리 아기>가 영국 최우수 단편영화로 선정된 바
신인감독 3인의 현장 [2] - 김판수 감독의 <러브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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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죄다 홍상수더니 또 지금은 죄다 박찬욱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리저리 쏠려다니는, 감독 지망생들의 ‘색깔’을 가리킨 우려스런 촌평인데, 틀린 건 아니지만 꼭 맞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장준환, 최동훈, 임필성 등은 그냥 자기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홍상수나 장준환처럼 사방을 놀라게 하는 또 다른 데뷔전이 손꼽아 기다려질 뿐이다.
데뷔전을 준비하는 수많은 감독들 가운데 무모하게 단 세곳을 골라 현장을 찾은 것도 이런 희망에서 나온 욕심 때문이다. 촬영이 끝나지도 않은 영화를, 그것도 신인의 작품을 놓고 기대작 운운하는 것은 더더욱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렇지만 도박이나 허풍은 아니다. 한국영화의 경계는 도박이나 허풍으로 넓어져온 게 아니므로. 한번 더 무모하게 이들 세 작품의 공통점을 꼽아본다. 이들은 상상력을 최대한 버리고 있다. 하늘로 치솟는 상상력 대신 땅에 바짝 엎드려 틈을 찾는 인간 군상의 투박함에 몰두하고 있다. 그게 장르로 표현되든, 썰렁
신인감독 3인의 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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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로봇’이 아니라니깐요
1926.<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6)에 등장하는 로봇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마리아의 복제인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탄생 초기에는 금속으로 구성된 몸체가 잠시 드러나지만, 곧 마리아와 똑같은 외모를 지니고 붙잡혀 있는 진짜 마리아 대신 노동자들 앞에 나타나 폭력을 부추긴다. 마리아 로봇은 지금 보아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세련된 감각의 메카닉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 이 놀라운 시각적 이미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로봇이 영화 속에서 오로지 악역만 담당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하다. 어쨌거나 할리우드에서는 1950년대가 되도록 깡통 땜질 수준의 로봇 디자인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로봇은 분명 시대를 초월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1956.<금지된 세계>의 로비
셰익스피어 희곡 <폭풍우>(Tempest)를 각
사라지는 로봇 영화, 로봇 100년 [2] - 로봇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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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가깝게 더욱 가깝게
SF 영화의 잔치상은 한번도 빈곤한 적이 없었다. 우주여행, 시간여행, 외계인, 괴수, 신무기, 미친 과학자 등등…. 그 중에서도 로봇은 언제나 인기있는 주인공이었다. <터미네이터> 등 로봇 캐릭터가 영화판을 누비고 다닌 것이 불과 10년도 안 됐는데, 어느새 스크린에서 로봇들의 모습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80년대 중반경 SF문학쪽에서부터 움트기 시작한 사이버펑크 바람이 삽시간에 SF영화의 콘텐츠를 물갈이해 버린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처음엔 CG의 발달에 힘입어 시각효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나중에는 가상현실이라는 내러티브 그 자체가 가진 무궁무진한 스토리의 가능성들로 사람들의 흥미를 계속 붙들었다. 결국 로봇이라는 고전적 SF 아이콘은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확고부동의 자리를 보전하기가 버거웠던 것이다.
이제 SF 영화는 온통 현란한 가상현실과 우주모험 시나리오로 채워지고 있으며, 최근 그 틈을 비집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사라지는 로봇 영화, 로봇 10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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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따먹기>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교실 안 아이들의 싸움을 통해 권력의 해부도를 그린다. 자그맣고 겁많은 영훈은 강산과의 지우개 따먹기에서 매번 이기지만 뚱뚱하고 힘쎈 강산이 윽박지르는 바람에 자기 지우개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럼에도 힘이 부치는 영훈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영화는 영훈의 이야기에다 경찰에 쫓기는 운동권 대학생 누나의 이야기로 정치적 함의를 부풀린다. 마르크시즘 서적을 쥐고 집을 빠져나가던 누나는 영훈에게 지우개 하나를 건네며 꼭 이기라고 웃어준다. 초등학생 만화가, 디자인 수업, 사운드그룹 활동을 하다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간 민동현은 스토리보드 작성과 리허설, 비디오 촬영 등 사전준비 작업을 철저히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영화를 찍으면서 적잖은 장애물을 헤쳐와야 했다. 전쟁과도 같았던 그의 제작 뒷얘기는 영화지망생들에게 영화만들기의 쓴맛과 단맛을 미리 맛보게 해준다.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
이스트만 단편영화 만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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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전투, 기쁨과 절망의 좌충우돌
엉뚱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단편영화는 미래의 영화”라는 앙드레 바쟁의 유명한 전언은 단편 영화의 서글픈 운명을 암시한다. 미래를 꿈꾸는 자가 현실의 궁핍함을 견뎌야하듯, 단편영화 작가는 현재의 한기(寒氣)를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 단편영화 작가들은 언제나 목이 마르다. 군소 단편영화제가 많아지고 대중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단편영화의 존재감은 전보다 훨씬 두터워졌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기획에서 유통까지, 단편영화에 짐지워진 숙제는 속시원히 풀린 게 없다. 관객과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인디스토리나 미로비전 같은 배급사의 노력으로 해외영화제 나들이가 잦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급시스템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영화만들기는 온전히 작가들의 몫이다. 아직까지는 단편영화 작가가 지원을 요청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쉽지만 우리의 현실이다.그런 풍토에서 이스트만코닥 단편영화 지원제도는 거의 파격에 가깝다. 이스트만은 35mm필름 1만자를 제공하고
이스트만 단편영화 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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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과의 30년 전 추억을 되새기며”
일본을 대표하는 네 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게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 그리고 이치가와 곤(84).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앉힌 건 ‘죽어가는 일본영화를 살리자’는 사명감. 1969년 스튜디오의 쇠락과 함께, 침체에 빠진 일본영화를 구하기 위해, 이들은 인디 영화사 ‘네 기사의 모임’을 만들었고, 함께 연출할 요량으로 <도라 헤이타>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가 <도데스카덴>의 참담한 흥행 실패로 크게 상심하자, 나머지 세 사람은 합의 하에 이 기획을 접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세상을 떠난 동지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치가와 곤은 그 영화 <도라 헤이타>를 30년 만에 완성해냈다. 74번째 작품.
<도라 헤이타>는 마약과 매춘과 강도의 도시 호리소토에 급파된 치안감사 사무라이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고헤이타라는 이름을 두고 ‘도라 헤이타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7] - 이치가와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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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라는 마법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우연일지 몰라도, 올 베를린에서 프랑스 감독들은 그다지 환대받지 못했다. 파스빈더의 희곡을 영화화한 <타는 바위에 떨어지는 물>의 프랑수아 오종이 “평가절하됐다”는 것은, 독일 언론의 자백이기도 하다. <작은 도둑> <귀여운 반항아>의 클로드 밀러(58) 역시 신작 <마법사의 방>(La Chambre Des Magiciennes)으로 “새로움이 없다”는 매질만 당하다가, 국제예술영화평론가협회(FIPRESCI)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마법사의 방>은 그러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메시지와 디지털 카메라 촬영 등의 신기술이 결합한, 주목할 만한 영화다. 그간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온 클로드 밀러 감독은, 이번에도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류학자 클레어는 논문을 준비하다 까닭 모를 구토와 설사,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6] - 클로드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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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이 혁명이었을까”
영화는 15살 소년 미치오가 아버지를 여의고, 미션 스쿨 독립학원으로 전학오는 데서 시작한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말더듬 증세가 심해진 미치오는 따돌림을 당하지만, 중성적인 외모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합창반 소프라노 야스오가 그의 곁에 선다. 친구가 된 두 소년은 합창반 지도 교사를 믿고 따르는데, 사토미라는 여인의 방문으로, 그가 과거 학생운동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탄 테러를 벌이고 도움을 청하러 온 사토미가 경찰에 쫓기다 그들 앞에서 자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방학 동안 목소리를 잃고 학교로 돌아온 야스오는 합창대회에 나가 혁명가를 부르자며 학생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미치오는 그런 야스오의 목소리가 돼준다.
<놀라운 20세기>라는 TV 다큐시리즈를 만들던 93년부터 오가타 아키라 감독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렇듯 잔인한 역사가 개인의 정신에 그리고 행동에 대체 얼마만한 영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5] - 오가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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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이라는 비판만은 못참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폴커 슐뢴도르프는 새 영화 <리타의 전설>(Die Stille Nach Dem Schuss)에서 ‘무너진 장벽, 그뒤’를 이야기하고 있다. 서독 적군파의 테러리스트 출신인 리타는, 동지들이 제3국으로 떠날 때 동독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테러금지협정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리타를 공개적으로 보호할 수 없는 비밀경찰은 그녀에게 새 이름과 새 삶을 제공한다. 동독으로 건너간 리타는 서독을 동경하는 타티아나와 친구가 되지만, 새로운 신분도 그녀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리타의 전설>은 ‘테러리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그 흔한 로맨스와 스릴도 없이, 줄곧 건조하고 냉정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고 있다. 독일 현지에서 호평과 혹평을 오가며,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모은 작품. 장벽이 무너진 이후의 독일사회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 없었던 만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4] - 폴커 슐뢴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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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센세이션이 아니라 캐릭터다”
‘미식축구’는 오래도록 정치와 전쟁을 이야기해 온 올리버 스톤에게 구미 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필드에서 뛰고 뒹구는 선수들의 모습은, 사생결단으로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모습이며, 구단주의 권력과 돈, 언론의 스피커가 뒤엉킨 거대 스포츠산업은 정치판에 흡사하니 말이다. 개인기 과시나 지나친 승부욕을 경계하고 팀 스피리트를 강조하는 코치, 가업으로 물려받은 구단을 어떻게 굴리면 돈이 될지가 유일한 관심사인 구단주의 만남은, 처음부터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팀이 연패의 늪에 빠지고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실려가자, 구단주는 오만한 신참을 쿼터백 자리에 앉히고 완치되지 않은 선수들을 필드로 불러내는 등 독단으로 새 진용을 짠다. 코치와 구단주가 사사건건 부딪치고, 팀닥터까지 구단주편에 서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간다.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는 맹수가 우글거리는 거칠고 삭막한 ‘정글’의 이미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3] - 올리버 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