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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인터넷영화 사이버극장 우후죽순, 충무로와 따로 또 같이
12월26일 두대의 카메라가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입구를 봉쇄했다. 입구 측면은 소니 VX9000이, 정면은 VX1000이 맡았다. 행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엉거주춤한 동선을 피한 끝에 감독의 OK사인이 떨어지자, 무리들은 여느 촬영현장과 달리 다음 신을 촬영할 장소로 신속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날 보충 촬영을 끝낸 <밀레니엄 살인 행진곡>은 2000년 1월1일 인터넷으로 네티즌들에게 선보였다. 촬영현장에서 2대의 DV(디지털 비디오)가 유감없이 보여준 기동성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영화제작에서 기동성, 작동용이성, 경제성 등 디지털 작업의 매력은 그간 충무로와 독립영화계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고, 2000년 열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디지털 삼인삼색’이라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박광수 감독과 김용태 감독, 신작 <눈물>을 준비중인 임상수 감독처럼 전면에 디지털 카메라를 배치하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4] - 디지털과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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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를 여는 첨병 POP.com
지난해 연말, 타임 온라인을 비롯한 수많은 웹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투표를 통해 20세기를 규정짓는 단어를 결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자동차, 전쟁을 비롯한 다양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른 단어는 인터넷 혹은 컴퓨터. 1983년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인간의 생활을 급속도로 바꾸어놓기 시작한 컴퓨터가 90년대 초부터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20세기 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컴퓨터로 시작해 인터넷으로 불붙기 시작한 이런 변화의 물결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파장을 미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런 변화를 대표할 만한 사건이 바로 본격적인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지향하면서 지난 99년 10월25일에 오픈한 POP.com의 설립. 어쩌면 그저 한 홈페이지의 개설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이 사건이 그토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3] - P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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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보스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인 토드 버로는 셀룰로이드의 죽음을 선언했다. 최근에 진행되는 영화계의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는 영화제작과 배급에서 35mm 아날로그 필름이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그 선언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건은 98년 10월에 있은 스티븐 아발로스와 랜스 웨일러가 만든 <라스트 브로드캐스트>(The Last Broadcast)라는 영화의 개봉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소니 VX-1000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DV(디지털 비디오 6mm)카메라를 가지고 저예산으로 촬영됐고 편집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편집으로 완성됐다. 획기적인 것은 극장상영까지도 디지털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완성된 DV영화를 키네코작업을 거쳐 35mm 필름으로 옮기는 대신 이 영화는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위성을 통해 송출했다. 이것을 수신한 미국 내 다섯개 도시의 극장들은 고화질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터를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2] - 디지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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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5년 디지달씨의 하루, "20세기 인간들은 불편했겠어…"
“아니, 영화 하나 만드는 데 정말로 이런 것들이 필요했다는 거야?”
디지달씨는 ‘영화의 역사’ 과목 첫 시간에 인터넷II 영화학교가 실시간으로 전송해준 이른바 ‘필름’이라는 것의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며 눈앞의 모니터를 향해 이렇게 내뱉었다. 20세기에는 전화를 쓰기 위해서 전화선 설치공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했던 바보 같은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의 직업상 알고 있었지만, 불과 95년 전인 2000년까지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름의 모양이라는 것도 일단 이상해 보이는 데다가, 그걸로 영화를 찍기 위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촬영을 한 후, 다시 현상이라는 것을 해 자르고 이어붙여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20세기의 인간들이란 정말 불쌍했구나’라는 생각마저 떠올랐다.
남들로부터 최고의 직업이라고 인정받는 이동통신 전자상거래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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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직설법을 좀 써보고 싶었다”
-<외출>은 시작과 결말이라는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을 화면 밖 전화벨 사운드로 처리했다. 어떤 의도였나.
=원래 찍을 때는 그냥 이미지만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후반작업을 하면서 소리를 넣는 편이 이해를 쉽게 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말은 첫 구상대로인가.
=그렇다. 예전 영화들이 두 남녀가 헤어지는 느낌으로 끝났기에 <외출>은 그것이 해피 엔딩인지는 몰라도 둘을 만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 김형경씨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외출>이 나왔다. 중견 문인이 정색하고 써내려간 영화소설이라니 독특하다. 마치 영화를 미리 보고 쓴 듯한 세부묘사가 있더라.
=조성우 음악감독의 회사 M&F에서 기획한 책이니까 편집본을 보셨을 수도 있다. 촬영현장에서 만났을 때 이런저런 의견도 들었다. 서영이 좀더 강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욕을 하는 건 어떨까 등등.
허진호의 <외출> [2] - 허진호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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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드라마 장르를 통해 생의 고요한 이면을 사려 깊게 들추었던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스크린에 안착한 직후 아시아에 불어닥친 한류 열풍으로 독보적 지위를 점한 배우 배용준. 여러 편의 사랑영화에서 착실한 실적을 쌓으며 이미지와 연기력을 연마해온 배우 손예진. 제작에 연루된 이름만으로도 떠들썩했던 영화 <외출>이 9월8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 8월23일 1천명에 가까운 취재진이 몰려든 시사회에서 공개됐다. <봄날은 간다>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나선 허진호 작품 3번 <외출>은, 느린 걸음을 떼는 사랑영화라는 점에서는 전작 두편과 유전자가 같다. 그러나 ‘선정적인’ 소재와 직설화법을 선택해 출발부터 전작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었던 이 영화는 도착지도 적잖이 낯설다. <외출>의 면면을 살피고 그 와중에 떠오른 질문들을 허진호 감독에게 던졌다.
(이 기사
허진호의 <외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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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 “니가 그렇게 썼잖아, 일기장에.” 1987년 4월
공포에 질린 운동권 피의자 박명식과 능숙한 고문형사 김영호가 마주한 고문실. 그리고 전혀 엉뚱한 질문. 가학적이고 악랄한 형사, 평범한 서민 가장의 두 얼굴 사이에 김영호는 첫사랑에의 그리움을 아주 짧지만 진하게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리를 전다.
=나는 관객이 여기 와선 김영호에게 동화되기를 바랐다. 최소한 연민은 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가장 악랄하기도 해야 한다. 이때부터 내가 너무 힘들어졌다. <초록물고기> 때는 나는 이야기를 빠져나와서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빨려들어가 있었다. 특히 4번째 장에선 괴롭고 힘들었다.
-김영호가 박명식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그냥 징그럽고 끔찍하다. 왜 그렇게 찍었나.
=그 장면 찍기 전날 잠을 못 이루고 내내 악몽만 꿨다. 힘들었지만 그날은 특히 그랬다. 나는 이 장면은 이야기의 맥락보다 고통의
이창동을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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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느리다. 말도 느리고, 동작도 느리다. 정신도 느린 것 같다. 1980년대 중반에 소설가 생활을 시작했는데, 아직 90년대에도 도착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동료들이 왕창 빠져나간 지 오랜인데도 이창동은 어쩐지 80년대를 서성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의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심지어 거꾸로 간다. 김영호라는 사내의 20년사를 일곱 토막 내어,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했다. 맨 마지막 장면은 1979년, 그의 나이 스무살 시절의 어떤 하루다. 속도의 계율을 아예 걷어차내는 짓인데도, 이창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다고 태연스럽게 말한다.
누군들 첫사랑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젖지 않으랴. 하지만, <박하사탕>을 통해서 그곳에 이르는 건 심란함을 각오해야 한다. 본래 맑고 착했던 청년이 완전히 부서지는 과정을, 그것도 역순으로 목격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가슴아픈 일이다. 더구나 이 여정에는 한국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면
이창동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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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무서운 것은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지난 6월18일 드림웍스 스튜디오에서 웨스 크레이븐을 만났다. <나이트메어>와 <스크림>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공포영화 감독인 그는 지적이고 차분한 말투의 노신사였다. 영화 트레일러만을 본 뒤, 소수의 국제부 기자들과 함께 작은 회의실에 앉아 오붓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한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고 쉬었다.
=한 2년은 쉰 것 같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 리메이크를 디멘션 영화사와 만들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진행이 어려웠다. 사실 100일 이상 촬영을 했는데 스튜디오와 마찰이 좀 있었다. 운이 없었나보다. 그리고 심장측관이식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에 1년을 더 쉬어야만 했다.
-<나이트 플라이트>는 호러영화가 아니다. 이제 호러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나.
=그런 건 아니다. 단지 지금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에 관심이 더 많을 뿐이다. 당장 호러물을 만들고 싶지
<나이트 플라이트>와 웨스 크레이븐 [2] -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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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크레이븐의 신작 <나이트 플라이트>가 순조로운 비행을 시작했다. 첫 주말 개봉성적 1650만달러. 미국 박스오피스 2위. 장거리 순항을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3500만달러를 첫 주말에 벌어들였던 <스크림2>와 <스크림3>의 성공이 <스크림>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의 속편들이었고, 올해 초 개봉한 <커스드>가 비참할 정도의 흥행성적을 거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나이트 플라이트>의 비상은 웨스 크레이븐이 맛보는 오랜만의 성공이라 할 만하다.
<나이트 플라이트>는 ‘호러영화의 대가’ 웨스 크레이븐의 이름을 찬찬히 음미하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사상 가장 기분 나쁜 영화 중 하나로 회자되는 <왼편 마지막 집>(1972) 이후, 웨스 크레이븐은 <나이트 메어> 시리즈로 현대 슬래셔영화를 정의내렸고, <뉴 나이트메어>와 <스크림> 시리즈를
<나이트 플라이트>와 웨스 크레이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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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도 영화의 일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란에 와서 키아로스타미를 제외하고 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던 터였다. 기다리게 한 선물이었을까? 방문을 허락했을 때 그는 흥분되는 이야기 하나를 덧붙였다. 엘 샤드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체리향기>에서 자살하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테헤란 시내를 헤매다니던 그 중년의 주인공 남자를 기억하는지? 그가 바로 엘 샤드다. 도착한 그의 집. 작은 마당을 건너 안으로 들어서니 1층 거실에는 의자와 거울 등 가구들이 즐비하고, 2층에는 작은 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아마도 손님은 아래층에서 맞이하고, 작업은 위층에서 하는 모양이다. 뭔가 구획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지럽지도 않은 그의 영화구조 같은 집에서 키아로스타미가 반갑게 맞는다. 여기서 그 신기한 이미지들이 구상되었나보다.
-알리 악바르 사데기가 38년 전 사진 한장을 보
아시아 영화 기행: 이란 [4]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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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벽과 제작 현황
파흐란 메흐란파르와 바흐람 베이자이를 만난다는 것은 이란 내 소수민족의 문제와 검열의 문제를 만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쿠르드족 출신의 감독 메흐란파르는 <종이 비행기> <생명의 나무> <사랑의 전설>로 유명하다. 만난 감독들 중 가장 선한 인상을 보여준 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쿠르드족, 혹은 이웃하고 있는 탈레쉬족에 이르기까지 소수 민족의 언어와 풍습과 전통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시학과 다큐멘터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스스로는 “드라마적인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다. 서로를 키워주는 것이다. 키워주는 것은 사랑의 징표이다. 키워주지 않는 것은 증오의 증표이다.” 외우는 시 한편을 들려달라고 하니, 서슴없이 즉석에서 몰러너(외국에는 ‘루미’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고 한다)의 시를 한수 들려줄 만큼 낭만파다. 그러나 상당한 유명세를 갖고 있는 해외의 상황과 달리 메흐란파
아시아 영화 기행: 이란 [3] - 검열·제작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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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영화, 마지드 마지디를 만나다
어린이 영화(Children Cinema)는 이란영화를 세계에 알린 사절단이나 마찬가지다.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에게는 관심이 없다던 팔레스틴극장 앞 관객조차 이구동성으로 꼽은 최고의 감독은 <천국의 아이들>의 마지드 마지디였다. 현지에서는 마지드 마지디의 인기가 최고라고 한다(이번 파지르영화제에서도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아마도 키아로스타미 등에 비해 그의 영화 속 아이들이 좀더 서사에 바탕한 친절한 형식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찾아간 곳은 설립된 지 40년이나 됐다는 영화제작소 필름 사즈였다. 건물 외부나 내부나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고, 장비들 중에는 그 흔한 아비드 한대가 없다. 거기서 마지드 마지디는 파지르영화제에 출품할 <버드나무 사랑>의 마지막 믹싱작업을 위해 초를 다투고 있었다. 그를 만난 건 영화제 상영 직전이었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지드 마지디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바쁘게 옮겨다니
아시아 영화 기행: 이란 [2] - 어린이영화·여성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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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인도에 이어 아시아영화를 찾아 떠나는 세 번째 여행지는 이란이다. 인디컴시네마가 기획하는 12부작 다큐멘터리 <아시아영화기행>의 이란편 촬영팀과의 동행기다. <씨네21>과 부산국제영화제가 후원하고 CJ미디어가 공동제공하는 <아시아영화기행>은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12편의 각 작품을 1편으로 모아 편집한 버전을 상영하고, 10월3일부터 12일까지는 SBS에서 연속 방영할 예정이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없는 곳,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무의미한 곳, 시와 카펫 그리고 영화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곳, 이란. 아시아 영화예술의 메카 이란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마지드 마지디 등 거장들을 차례로 만나고, 또 그들의 집과 현장을 직접 방문한다. 이란영화의 천일야화가 지금부터 시작이다. 살람! 이란!
늦은 밤 테헤란공항에 내린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고 아늑하다. 현지 안내인을 만나 한숨 돌리며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막 오르려는 때, 일행 한명
아시아 영화 기행: 이란 [1] - 이란문화·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