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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 성경 나는 인천 한번도 안 가봤는데 감독이 의도적으로 인천에서 동대문까지 오는 장면을 보여줄 때 인천이라는 공간의 특색을 보여주려고 한 걸 느꼈어요.● 원 인천이라는 공간도 그렇고 내용 자체도 그렇고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틀도 그렇고 암울한 분위기가 많아요.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았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부탁하고 싶고 누가 맡아줬으면 좋겠고 그런 기분에 빠져들게 했어요.● 성경 드라마에 많이 나와서 인천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있어요. 월미도에서 회를 먹고 배타고 갔더니 배가 끊겨서 하룻밤 자고 그런 드라마 많잖아요. 놀이공원도 반짝반짝하고 이런 이미지였는데 <고양이를 부탁해>에선 바람이 세게 불고 서늘해보여서 얘들이 참 험난한 길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서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혜주가 서울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게 보이잖아요. 서
“스무살, 세상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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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는 스무살 또래들의 눈망울은 어떤 것일까? 찬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마지막 잎새처럼 오직 한 군데 극장에서 상영을 계속중인 이 영화에 대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들고 있지만 정말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영화 속 인물들과 동갑내기인 82년생 개띠 젊은이들일 것이다. 스크린을 벗어나 현실에서 만나는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는 과연 자기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영등포구청 근처에 위치한 대안교육기관인 직업체험학교 하자센터(센터장 조한혜정)에서 만난 그들은 더러 학교를 중퇴하기도 하면서 남들과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하자센터에서 매일 아침 조찬모임을 갖는 ‘우주로 통하는 골방’의 멤버들이며 ‘디지털 이미지와 디지털 텍스트’라는 영상관련 수업을 함께 듣는 그들은 “제발 작품성이 어쩌고,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 어쩌고 하는 얘기를 그만두라”고 입을 모은다. 어른들의 그런 딱딱한 주례사말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놓고
“스무살, 세상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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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은 캐스팅도 즉흥적으로 했다. TV를 잘 보지 않는데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홍국영>에 나온 김상경을 봤고, <줄리엣의 남자>에 나온 예지원을 발견했다. “둘 다 극중 캐릭터로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였는데, 그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추상미는 <강원도의 힘> 때 캐스팅 후보로 만났는데 이번 배역에 맞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불렀다. 홍 감독은 꼼꼼한 오디션이나 캐릭터 연구를 주로 술자리로 대신해 왔으며, 이번에도 그랬다.춘천과 경주를 오가며 홍 감독의 분신 노릇을 하고 있는 김상경은 홍상수라는 감독을 전혀 몰랐고 영화 출연은 처음이라 망설였는데, 홍 감독한테 인간적으로 끌려 참여하게 됐다. 김상경의 말. “매일 술 마시면서 친해지고 좋아졌는데, 요즘엔 둘이 닮았다고 그런다. 영화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홍 감독님 영화를 쭉 봤는데, 보다가 무지 웃었다. 이상하게 웃기고 재미있었다. 이번 영화가 어떻게
“배우가 삐죽이 나와 있는 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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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최종 편집이 끝날 때까지는 어떤 작품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영화는 시나리오가 반이라지만 그의 영화에서 시나리오란 대강의 줄거리일 뿐이며, 줄거리 자체도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작 <오! 수정>의 평에서 프랑스 <리베라시옹>의 장 막스 랄란은 “극 구성의 완전히 자의적인 어떤 요소가 모든 정당화 시도를 어렵게 만든다”고 썼다. 앞뒤가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그의 영화를 명료한 이야기로 요약하거나 전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자의적인 디테일들도 거의 즉흥 연출로 태어난다. 홍상수의 영화는, 차라리 편집이 반이다.작업이 진행중인 그의 신작 <생활의 발견>은 아예 시나리오가 없다. 이건 놀랍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금껏 홍 감독에게 시나리오는 그저 제출용이었을 뿐이며, 그는 제출된 시나리오에 충실한 적이 없었다. 전작들을 찍을 때도 촬영 30분 전까지 대사를 쓰는 건 흔한 일이었다. 홍 감독은 그때나 지
진심 어쩌면 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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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창궐한 벽화그리기 운동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일종의 애교어린 관제운동의 유적일 텐데, 그 그림들을 그려넣기 한 10년 전쯤만 해도 벽화운동은 아주 불온한 행동으로 간주됐다. 그 불령미술 2세대쯤 되는, ‘가는패’라는 이름의 미술패도 시골마을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주러 찾아가곤 했다. 따라가본 적은 없다. 다녀온 분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았을 뿐. 20대 젊은 ‘화백’들을 초청한 분들은 마을의 농민들이었는데, 고추가 특산물인 고장이라서 그림의 소재도 고추였다. ‘민중 속으로!’를 외치던 시대의 미술정신을 소박단순한 형식에 담아낸 그림이었다. 수성페인트가 벗겨지고 색이 날아가서 수복을 해주러 다시 찾아간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그림을 그려주러 가는 화가들. 시간적 거리를 두고 그려보는 그 화면에 어쩐지 낭만적 정취가 채색된다. 이건 그때의 치열함을 배제해버린 감상인데, 하는 미안함을 밀어내고.감독은 두드러진 메시지를 배달하지 않았지만(그는
그의 손, 그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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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주무대가 될 부산시 중구 남포동 피프(PIFF)광장에서 다채로운 전야제 행사가 열린다.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6시 피프광장에서 오거돈 부산시 행정부시장과 김동호 집행위원장, 영화배우 명계남씨, 이인준 중구청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제 전야제 행사인 `피프광장 여는 마당'이 개최된다.행사의 첫순서로 지난해 영화제에 참가한 빔 벤더스 독일감독(56.대표작 `파리'. `텍사스')과 크쥐시토프 자누쉬 폴란드감독(62.대표작 `성적으로 치명적인 삶'), 모흐센 마흐말바프 이란감독(44.대표작 `가베'.`고요') 등 3명의 핸드프린팅이 개봉된다.피프광장의 핸드프린팅은 지난 97년 제2회 영화제부터 설치되기 시작됐다.현재 제레미 아이언스 영국영화배우와 웨인왕 미국감독, 유현목 한국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일본감독 등 세계 유명 영화인 12명의 손자국과 사인을 담은 핸드프린팅은 이번에 15개로 늘어나게 된다.제6회 영화제의 핸드프린팅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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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Blu> Blu CantrellR&B의 명가 아리스타에서 발굴한 여성가수 블루 칸트렐의 데뷔음반. 어머니가 재즈 싱어임에도 불구하고 가난 때문에 제대로 음악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퍼프 대디와 페이스 에반스 등의 음반에서 백 보컬을 하며 음반사의 관심을 끌었다.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는 <I’ll Find A Way>, 감각적인 피아노가 돋보이는 <Till I’m Gone> 등 블루 칸트렐의 강하면서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인상적인 음반이다. 남자에 대한 복수심을 노래한 첫 싱글 <Hit ’Em Up Style!>은 빌보드 싱글 2위까지 올랐다.<Easy For You> Isao Sasaki스톰프 뮤직지난 3월17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가진 일본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의 4번째 음반. 99년 발표한 <Missing You>를 비롯한 전작이 국내에 발매되었고, <봄날은 간다>의 O.S.T에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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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70년대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독일작가 페터 빅셀의 단편집이 새로 나왔다. 이번 번역본은 페터 빅셀이 당시 발표한 3권의 단편집 중 한권인 <아이들 이야기>를 완역했고, 제목인 <책상은 책상이다>는 그중의 한 단편이다. 69년 발표된 페터 빅셀의 글은 소설로 규정하기 힘든 짧은 산문과 시적 내용이 결합되어, 모더니즘의 언어 위기와 결부되며 새로운 장르로 구분되기도 했다. 완결된 체계에 대한 회의와 부정의 결과로 평범한 삶에 실패한, 조금은 별나고 우스꽝스러운 아웃사이더들의 일화가 담긴 7편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클라시커 50 영화>니콜라우스 슈뢰더 지음/ 해냄/ 1만5천원<국가의 탄생> <노스페라투> 등 영화 초창기의 무성영화부터 <블레이드 러너> 등 현대의 SF영화까지 영화사에 남을 명작 50편을 소개하는 책. ‘읽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이란 모토로 문학, 미술, 역사,
책... <책상은 책상이다>, <클라시커 5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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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극단 크레도의 `외투`>불가리아의 극단 크레도가 서울공연예술제에 초청돼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 고골리의 <외투>를 공연한다. <외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관청의 가난한 공무원이 힘겹게 마련한 외투를 도둑맞고 얼어죽은 뒤, 사람들의 외투를 벗겨 훔쳐가는 유령이 된 이야기. 극단 크레도는 고골리의 단편소설 <외투>를 유럽과 미국 전역의 150개 축제에서 상연했고, 1997년에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최고 작품상도 수상했다. 광대놀이와 즉흥연기로 최대한 상상력을 살린, 매력적인 작품.<오이리트메움 슈투트가르트 내한공연>호암아트홀/ 11월16, 17일 7시30분/ 슈타이너 인지학 연구센터/ 1588-7890독일에서 개발된 신개념의 몸동작 기법 ‘오이리트미’(Eurythmie)가 국내 무용계에 처음 소개된다. 오이리트미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리듬’이라는 뜻. 독일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1912년 발표했다. 몸의 움직임을
공연... <불가리아 극단 크레도의 `외투`>, <오이리트메움 슈투트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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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가 ‘한바람’이라 그런지 임옥상은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니, 아무리 그를 좋아한단들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내가 망하는 첩경이다. 오만 가지 일들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벌리고 뜻있는 모임을 만들어내고 그 와중으로써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틈틈이 개인전도 하는데 그 많은 운동과 작업을 하면서도, 내가 왕년(이라기는 나보다 나이 많은 그분께 좀 죄송하지만)에 그랬던 것과 달리 작품이 상투화하기는커녕 현장과 생짜로 부딪치는 육체의 팽팽한 근육이 어느새 저항정신과 해학, 그리고 조형미를 원숙하게 조화시킨 당대의 명품으로 전화되어 있는 것이다.그는 손품뿐 아니라 아예 발품도 넓혔는지 휴전선에 무슨 국제기념물을 세우더니 곧장 부산에서 개인전(코리아아트 갤러리 2001.7.30∼8.8)을 열었는데,나는 당연히 두곳 다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내처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서 습지 환경 보존을 위한 ‘목 긴 청개구리전’을 목하 주도하고 있는 바, 거기도 나는 못 갈 것이다. 어쨌거나 부
15만년의 심오한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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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피부를 가지고 싶어하는 흑인,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새 앨범 <Invincible>을 발표했다. <History>를 발매한 지 6년 만. 이 앨범은 모음 앨범이었고 정규 앨범으로는 <Dangerous> 이후 9년 만. 그런데 앨범 발매와 거의 동시에 아니, 그보다 약간 빠르게 그의 은퇴소식이 먼저 들려왔다. 이번 앨범을 발표하고 2002년 월드컵 기념 앨범에 참여하는 것을 끝으로 가수 생활을 그만둔다는 소식. 백반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거나 43살인 그가 이젠 춤추기 힘겨워한다는 소문, 앞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자선사업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러나 마이클 조던이 복귀한 것처럼 그 역시 앞으로 얼마든지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소문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어쩌면 이번 은퇴 소식은 새 앨범에 더 주목해 달라는 상업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다. 브라운 아이즈인가 하는 우리 가수들과 세계평화를 주제로 채팅을 한다더니, 그
피터팬의 목소리는 `정복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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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소녀 5명이 세상의 문턱에 발을 디디는 순간의 아픔을 정서적 슬로비디오로 붙든 <고양이를 부탁해>는 조용하면서도 대담한 영화이다. 겉으로는 말도 없고 담담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삶을 향해 도발적으로 몸을 던지고 있는 스무살의 그들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서울 언저리 인천이라는 항구의 막막함을 살아내는, 삶의 언저리에서 막 삶의 늪으로 상륙하고 있는 여자아이들의 현재 진행형을 보여주려 한다. 삶은 그들을 끌어들여 결국은 그들을 다치게 하지만, 아직은 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다.<고양이를 부탁해>의 음악은 국내 최초의 영화음악 전문 프로덕션 ‘M&F’가 디렉팅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플란다스의 개> <킬리만자로> <순애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선물> 등 여러 영화에서 섬세한 음악을 선보였던 조성우를 비롯, 김준석, 박기헌, 김상헌 등의 작곡가 그룹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이 프
명멸하는 별빛처럼, 떨리는 영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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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달을 보았다. 달은 가장 커다랗게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걸쳐 있었다. 인간이 달을 바라볼 때부터, 달은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우리는 달을 보며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에너지를 떠올렸고, 우주의 스펙터클을 디자인했다. 만월이 뜨면 나타나는 괴물이나 달에 세워진 식민지나 달에서 온 괴물이라는 소재는 판타지와 SF에 친숙하게 사용되던 것이다. <러브머신>과 <요동의 뱀파이어>를 통해 섹슈얼리티와 폭력이라는 두개의 키워드를 SF와 판타지의 상상력에 유려하게 실어낸 이유정은 <아시안> <가물치전>을 통해 SF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안타깝게도 데뷔 초기에 보여준 기대에 비해 후속작에서는 상업적 성공이나 비평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이유정의 <MOON>은 달에서 시작된다. 달의 미개척지 탐사선에 근무하던 미나는 범죄자들에게 폭행당하고 살해당한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미나의 배를 가르고 아이를 구해낸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나 자란 지
소녀, 달의 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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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 우연히 TV를 켰다가 놀랐다.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던 늦은 시간에 반가운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투박한 캐릭터와 정지하다시피 한 배경, 극도로 적은 움직임. 그러나 분명 애니메이션이었다. 내레이션 중심으로 진행됐던 5분 남짓한 영상이 그런데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았다. 따스하고 정겨운 느낌. 그렇게 압축된 감동을 전해오는 옴니버스 시리즈가 KBS2TV에서 방영중인 <TV 동화 행복한 세상>이다.때는 이른 아침. 어느 순댓국집을 아침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주인은 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애가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들어왔다. 너절한 행색과 쾌쾌한 냄새로 주인은 한눈에 그들이 걸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저,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주인이 말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 대꾸없이 어른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거저먹으려는 게 아니라는 듯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와 동전을 꺼내놓
햇살 담은 수프 한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