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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무대 위에 한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사물흉내 개그의 서남용입니다.” 어설프고 어정쩡하기 그지없는 이 남자가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느닷없이 ‘미역’이란다. 웬 미역 남자는 물살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미역을 온몸으로 표현하더니, 관객이 웃을 새도 없이 다음 주제어를 이야기한다. ‘도토리묵’. 심각하고 진지한 그의 태도에 관객의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매주 금요일 자정 무렵에 방송되는 <폭소클럽>에 출연해 화장실 변기 속의 휴지,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전구, 심지어 ‘발 냄새’처럼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몸으로 표현하는 서남용은 방송사 공채 개그맨이 아니다. 위성채널인 KBS코리아에서 방송하는 <한반도 유머 총집합>에 출연해 자신의 특기를 선보인 것이 계기가 되어 <폭소클럽>에서 고정 꼭지를 맡게 된 것. 제작팀이 전업 개그맨 뺨치는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던
KBS2 <폭소클럽>을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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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드라마 <빈궁귀공자>는 말 그대로 ‘빈궁’한 ‘귀공자’ 이야기다. 너무너무 잘 빠지고 공부도 잘하는데다 생긴 것까지 멋진 타이랑. 모두 타이랑이 부잣집 도련님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사실 타이랑에게는 집나간 아버지, 돈을 모으기는커녕 쓸 줄만 아는 어머니, 그리고 줄줄이 동생이 여섯이나 달려 있다. 타이랑은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0.01초만에 반응하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장학금 타기, 쉰 음식 소화하기, 돈냄새 100리 밖에서 맡기 등 온갖 초감각 재능을 키우고 이를 활용해 집식구들을 먹여살리고 있었으니…!<빈궁귀공자>는 일본 만화 <타로 이야기>의 각색작품이다. 만화를 충실히 따르자는 모토 아래, 만화 <타로 이야기>가 지닌 엽기발랄함을 그대로 드라마 안에 표현해낸다. <빈궁귀공자>를 이야기하려면 워낙에 원작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타로 이야기>의
<타로 이야기> 각색한 대만 드라마 <빈궁귀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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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단편영화가 상당히 다양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매우 자주 선택되는 소재들이 있다. 친구와의 갈등을 다루거나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연애 이야기가 그렇다. 가족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독립영화관(KBS2TV 1월24일(금) 밤 12시50분)에서 방송되는 유성희 감독의 <주차금지>(16mm/ 2002년)는 아버지와 딸의 갈등을 드러낸다. 딸은 자신들의 고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너무 밉다. 다른 사람들이 주차하지 못하도록 집 앞에 드럼통을 갖다놓는 아버지의 행동도 못마땅하다. 이들은 서로 다툴 때를 제외하고는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딸은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하기보다는 더 큰 갈등을 막기 위해 아버지의 말을 따른다. 섣불리 화해를 보여주기보다 그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요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노현수 감독의 <들>(16mm/ 2000년)은 마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국어시간에 시를 써서 선생님에게
가족 이야기,<들> <주차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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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a Thousand Faces1957년, 감독 조셉 페브니출연 제임스 캐그니 EBS 1월26일(일) 낮 2시
전설적인 배우 론 체이니의 일생을 영화화한 작품. 론 체이니는 극장에서 연기자로 일하다가 클레바를 만나 그녀를 조수로 채용한다. 둘은 결혼하지만 론 체이니는 자신의 양친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클레바는 경악하고 아이를 낳지만 아이가 장애인일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론 체이니는 할리우드로 진출한 뒤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조셉 페브니 감독은 SF시리즈물 <스타트랙>을 연출한 경력이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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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La Pucelle: Les Prisons1994년, 감독 자크 리베트 출연 상드린 보네르 EBS 1월25일(토) 밤 10시자크 리베트 감독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일원이면서 접근하기 까다로운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상영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며 실험적 색채가 짙기로도 악명이 높다. 자크 리베트의 영화로는 드물게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미치광이 같은 사랑>의 오리지널 버전은 무려 4시간을 상회한다. 2부작으로 제작한 <잔다르크> 역시 두편을 합치면 4시간짜리 대작이다. <잔다르크: 감옥편>은 잔다르크가 대군을 이끌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 맞이하게 되었던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다. 여기서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로 추앙받았던 잔다르크는 서서히 몰락의 징조를 띤다.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1962)에서 볼 수 있었던 극도의 금욕적 스타일과 비교할 만하다.프랑스 왕위에 오른 샤를은 측근의 영향으로 영국과 협정을 맺고 파
자크 리베트 감독의 <잔다르크: 감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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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조엘 코언과 에단 코언, <매트릭스>의 앤디 워쇼스키와 래리 워쇼스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바비 패럴리와 피터 패럴리, <어바웃 어 보이>의 폴 웨이츠와 크리스 웨이츠. 장르의 장인으로 대성해 가문의 영광을 쌓은 미국 영화계의 막강 형제 클럽의 신입 회원으로 클리블랜드 출신의 앤서니 루소(32)와 조 루소(31)가 명함을 내밀었다. 범죄계의 무능력자들이 가망없는 금고털이를 도모하는 루소 형제의 코미디 <웰컴 투 콜린우드>는 얼핏 지칠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치고 받으며 내러티브 퍼즐을 즐기는 또 한편의 ‘선댄스표’ 영화처럼 보이지만 이 신예 감독들의 시트콤식 유머 너머에는, 애정을 갖고 인물을 지그시 지켜보는 고전 할리우드 드라마의 미덕과 공업도시 클리블랜드 토박이의 몸으로 체득한 미국 자본주의의 가혹한 풍경이 깔려 있다. 형제를 발탁한 것은 영화사 섹
<웰컴 투 콜린우드>의 형제 감독 앤서니 루소,조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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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을 표현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말들이 필요하다. ‘똑 부러진, 당당한, 도도한, 자신있는, 거침없는, 영리한’ 등등. 대신 ‘갇힌, 매여 있는, 순종적인, 다소곳한, 어두운, 무거운’ 같은 표현은 그녀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때때로 ‘되바라진, 건방진, 성마른, 이기적인’ 등의 비난기 짙은 표현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이처럼 뚜렷한 성격은 고소영을 90년대 초반 이후 ‘신세대’의 또렷한 표상으로 자리잡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녀의 열성팬 중 여성의 비중이 훨씬 높은 것도 이런 이미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팬들에게 고소영은 단지 스타가 아니라, 스스로가 소망하는 모습을 대리 체험케 해주는 일종의 역할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중간첩>의 윤수미 역은 그닥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윤수미는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의 생존을 위해 남한에서 숨죽이며 활동하는 고정간첩. 위장귀순한 이중간첩 림병호(한석규)를 돕다가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되고, 남과 북 양
세상을 할퀸 시간, 그녀를 비껴가다, <이중간첩>의 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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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게이 아니라잖아!” 톰 크루즈가 게이 포르노배우 채드 슬레이터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했다. 크루즈는 지난 2001년 5월 “나와 크루즈는 가까운 사이이며, 그 때문에 크루즈 부부가 이혼했다”고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게이 포르노 배우 채드 슬레이터를 상대로 1억달러의 피해보상소송을 제기했으나 슬레이터가 막대한 피해보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며 개인 파산을 신청할 움직임을 보이자 지난해 요구액을 1천만달러로 낮추었던 것. 하지만 톰 크루즈가 ‘게이설’에 휘말린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미 1998년, 할리우드 게이 역사에 관한 데이비드 에렌스테인의 저서 <공개된 비밀: 게이 할리우드 1928~1998>에서 톰 크루즈를 게이로 지목하는 일이 발생했고 크루즈의 변호사는 즉시 출판사에 문서를 보내 “그같은 소문은 사실무근이며 이 저서를 그대로 출판한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01년에 마이클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톰 크루즈,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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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무계한 상상력을 지닌 문진영(28)의 이번 졸업 작품은 꽤 기대된다. ‘돛대’(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이르는 속어)를 두고 싸우던 두 친구가 결국엔 광선검으로 대결을 벌이는 최근작 <no smoking>(2002)에서, 인정이 메마른 사회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익히지 못한 어린아이가 살인 행렬에 뛰어든다는 초기작 <naughty by nature>(1995)에 이르는 6개의 필모가 일관되게 보여준 엽기성 사회비판이 새로운 단편 <딱정벌레>(가제)에 더 업그레이드된 화두로 담길 예정이기 때문이다. <쎄븐>에서 등장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고, <매트릭스>의 허구적 세계관이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등장하는 한 마리 벌레의 삶을 타고 전해질 <딱정벌레>는 과연 어떤 내용인가.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판타지에 기반을 둔 것임을 잊지 말고 들어보자. “두 다리를 잃은 주인공이 어느 날 창 밖을 걷는 예쁜 두 다리를
<마들렌> 현장편집 문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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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태양 아래>(1987)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1987년 칸영화제에서 있었던 일은 아마도 모리스 피알라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시상식에서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이 안겨지자 관중은 이건 말도 안 되는 결과라는 듯 야유를 퍼부었다. 피알라는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말하며 관중의 반응을 되받아쳤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게 쏟아진 야유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피알라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가 절대 타협을 거부하는 고집쟁이라고 한다면 이 에피소드는 그것을 잘 드러내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하겠다(피알라를 정의하는 또 다른 이미지들로 성가신 불평꾼, 지독한 염세주의자, 같이하기가 까다로운 영화감독 등이 있다). 단언하자면 피알라라는 이는 여기서 보여주는 태도, 즉 영화를 보는 이들이 구하고자 하는 만족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듯 거의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당연히 불친절하
타계한 <사탄의 태양 아래>의 감독 모리스 피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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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경북 청송 주성지에서 찍고 있는 새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배우 5명이 지난 1월13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첫 모습을 드러냈다. 동자승 역의 김종호, 소년승 역의 서재경, 청년승 역의 김영민, 노승 역의 오영수, 그리고 소녀 역의 하여진. <수취인불명>에서 지흠을 연기했던 김영민과 연극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오영수를 제외하면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이다. 아역배우인 김종호는 LJ필름이 계절별로 실시한 오디션에서 발탁된 꼬마배우.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첫 영화다. 서재경은 김유진 감독의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1993)에서 조연으로, 임선 감독의 <스트라이커>(1999)에서 주연인 영화광 기철 역으로 분하는 등 꽤 오래 전부터 연기활동을 해왔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은 배우로, “이 영화를 찍으며 아역 이미지에서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는 데 많은
제작발표회 가진 김기덕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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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없는 전쟁>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골목까지 몰린 자들이 폭력을 선택한다. 그들의 폭력은 처절하고 슬프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치졸하게 배신당하고, 한순간에 내동댕이쳐지면서도 타협하지 않는다. 그들은 <배틀 로얄>에서도 그렇게 싸운다. 어쩔 수 없는 싸움을 강요받으면서도, 결코 무릎꿇지 않는다. 후카사쿠 긴지의 마지막 싸움도 그랬을 것이다.‘폭력의 달인’ 후카사쿠 긴지가 지난 1월12일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후카사쿠 긴지는 지난해 가을 <배틀 로얄2>의 제작발표회에서 암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고, 암과 싸우면서 ‘더욱 불타오르며’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12월 <배틀 로얄2>의 크랭크인 얼마 뒤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배틀 로얄2>의 감독은 제작을 맡았던 장남 후카사쿠 겐타가 맡을 예정이다.1930년에 태어난 후카사쿠 긴지는 일본영화의 산 증인이다. 후카사쿠 긴지는 40년, 조감독 생활까지
타계한 <배틀 로얄> 감독 후카사쿠 긴지(深作欣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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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를 보던 어머니의 뱃속에서 발길질을 해대어 그 위대한 예술가의 이름을 선사받은 사연은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6살 때 이미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 이름에 걸맞은 진정한 배우로서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란 배우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기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994년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장애 소년 애니 역을 놀랄 만큼 소화해내면서 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출연작에서 그는 미소년, 혹은 십대의 우상 바깥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퀵 앤 데드>의 철없는 서부 ‘키드’, <바스켓볼 다이어리>에서의 마약으로 무너져가는 십대, <토탈 이클립스>에서의 매끈한 랭보, <로미오와 줄리엣>의 신세대 로미오, <마빈스 룸>의 반항아 행크. 그가 숀 펜이나 조니 뎁을 따
나는 위대한 배우를 연기하고 있는 것,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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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작가 감독들의 작품들과 미개봉 화제작 등을 무료로 상영된다. 오는 24일부터 사흘간 김포공항내 멀티플렉스 엠파크9가 <씨네21>, 일본국제교류기금과 공동주최하는 개관기념 무비페스티벌에서다.이마무라 쇼헤이의 <돼지와 군함>(사진)<작은 오빠><일본곤충기>와 스즈키 세이준의 <동경방랑자><육체의 문><겡카 엘리지>, 후카사쿠 긴지의 <의리없는 전쟁> 등은 시네마테크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라 반갑다. 허우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 홍콩 누아르의 새로운 경향 <무간도>, 조니 뎁·페넬로페 크루즈의 <블로우>, 오드리 토투의 <히 러브즈 미>, 인도영화 <까삐꾸시 까삐깜> 등 미개봉작 5편도 놓칠 수 없는 기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롯한 화제작 다시보기를 포함해 모두 53편이 상영된다. 홈페이지( www.cine21.c
일본영화 등 53편 무료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