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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선과 배반을 한눈에
영화제목에 담긴 뜻을 설명하는 타이틀 시퀀스
타이틀 디자이너 솔 바스는 “<싸이코>는 워낙 많은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에 오프닝 타이틀이 제목의 의미를 분명하도록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제목이 지나치게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거나 심오하다면, 그리고 그 제목을 포기할 수 없다면, 단어를 깎고 다듬어서 관객에게 안기는 가이드 역할은 오프닝 타이틀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파이크 리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주로 작업했던 랜디 볼스마이어는 <차이니스 박스>에서 바로 그런 역할을 떠맡았다. 당시로선 드물게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한 이 오프닝 타이틀은 홍콩의 그림엽서와 염주,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 등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차이니스 박스 속으로 차곡차곡 밀어넣는다. 식민지로 보낸 백년의 시간이 뒤섞여 오래된 나뭇결 안에 봉인되는 것이다. 볼스마이어는 “나와 웨인왕 감독은 끝나지 않는 나선과도 같은 차이니스 박스가 홍콩의 반환과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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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레드커튼이 올라간다
영화의 양식미를 엿볼 수 있는 ‘예술적인 정보’로서의 타이틀 시퀀스 BEST
좋은 전채 요리가 그렇듯, 좋은 타이틀 시퀀스는 그 자체로 향기로워야 하지만 향신료가 지나쳐서 메인 요리의 풍미를 해쳐도 불합격이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은 타이틀 시퀀스가 최선의 경우, ‘예술적인 정보’가 되기를 희망한다. 오프닝 크레딧의 톤과 무드가 다음에 이어질 영화를 가장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관객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정서를 고양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뮤지컬 <물랭루즈>는 영화의 양식미를 미리 맛보게 하는 유형의 타이틀 시퀀스 중 프리마돈나로 손색이 없다. MTV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수공업적 스펙터클의 파노라마를 세기말 파리의 카바레에서 거침없이 펼치는 <물랭루즈>의 타이틀 시퀀스는 프로시니엄 아치(연극무대 위쪽 테두리를 이루는 아치)에 늘어진 붉은 커튼을 걷으며 시작한다. 무대 앞에 조그맣게 보이는 지휘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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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발견! 그래도 우아하도다
글씨체의 디자인과 크기의 배열이 낳는 스펙터클한 타이틀 시퀀스 BEST
영화 제목과 대사, 제작진의 이름을 종이카드 위에 손으로 써서 집어넣었던 초기 영화에서도, 지극히 궁한 예산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현대 독립영화에서도, 글자는 모든 프릴과 장식을 떼어낸 타이틀 시퀀스가 버릴 수 없는 마지막 기본사양이다. 그러나 오늘날 타이틀 시퀀스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더이상 글자가 정보를, 비주얼이 스타일을 분담하지 않는다. 글씨체의 디자인과 폰트의 배열만으로도 엄연히 지향하는 스타일을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패닉 룸>은 맨해튼의 거대한 빌딩 입면과 같은 앵글의 평면을 가정하고 공중의 가상 평면에 금속성의 글자들을 공중에 띄워 크레딧 하나하나가 권위있는 구조물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얻었다. 유리와 철골 구조의 건물에 크레딧을 박은 솔 바스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오프닝 시퀀스를 상기시키는 아이디어. 폴 버호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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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왔다. <영웅>과 함께. 양조위는 20년 연기인생 동안 홍콩의 장르영화와 <비정성시> <화양연화> 등 걸작들을 오가며 영화사에 남을 배우로 우뚝 섰다. 할리우드를 경유하지 않고도, 또 특정 장르에 묶이지 않고도, 세계 영화인들의 별이 된 중국권 배우는 아마 그가 처음일 것이다. 이 남자는, 그래서 특별하다.
저기, 소리없는 한 자락 비애
매니저와 영화사 관계자들에 둘러싸인 양조위는 한눈에 뜨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165cm를 안 넘기는 작은 체구에 웬만한 여배우 못지않게 소담스런 어깨, 그리고 가무잡잡한 얼굴. 1997년 10월 <해피 투게더>의 상영에 맞춰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양조위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왜소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사한 미모라기보다는 아담하고 친근한 인상에, 사춘기 소년마냥 수줍은 눈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3년 뒤 <화양연화>로 다시 부산영화제에 왔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1] - 양조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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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는 늘 난 배우가 될 거야, 스타가 될 거야, 하는 꿈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아무래도 날마다 듣다 보니 세뇌가 됐는지 나도 모르게 그래 그게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스무살 즈음의 두 친구는 TV에서 TVB 배우스쿨 모집광고를 봤고, “주성치가 가자, 가자, 하기에 아직 젊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같이 원서를 냈다. “어차피 1년 과정이니까 싫으면 끝나고 나서 더 안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그냥 한번 내 봤다는 원서는, 뜻밖에 평생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됐다.
1년간의 연기 수업이 끝나고도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새로운 소통 방식에 매료된 탓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힘들거나 열받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꾹꾹 눌렀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고, 사람들 앞에서 폭발시키지 못했는데 연기를 하면서 아 이런 방법이 있구나 했다. 그동안 꾹 눌러왔던 정서들을 연기를 통해서 하나씩 표출할 수 있었다. 나처럼 자폐증이라고 생각해온 사람한테는 아주 좋은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2] - 양조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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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옥이 왔다. <영웅>과 함께, 좁다란 홍콩의 골목에서 빠져나와 중국의 산하를 비상하며 ‘날으는 눈’(飛雪)이 되어. 1984년 데뷔한 뒤 20년간 스쳐간 수많은 영화 속 편린에 비쳐진 장만옥에 대하여, 뜨거운 완탕국수를, 기름묻은 닭고기를, 파인애플이 끼워진 소시지 꼬치를, 무언가를 오물거리며 먹을 때 가장 사랑스럽던 그녀의 입술에 대하여. 그 치명적인 매혹에 대한 보고서.
순수의 수동, 거부할 수 없는 몸짓
주성치가 한 영화에서 “내 소원이 장만옥의 가슴을 보는 것”이라고 농담을 했을 만큼, 영화 속의 장만옥은 늘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존재다. 마른 편이지만 나약해 보이지도 여성적인 선을 잃지도 않는 그녀의 육체는 주물처럼 부어넣은 듯 온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라텍스 의상을 입고 파리의 지붕 위를 달리는 <장만옥의 이마베프>에서 그 ‘고혹한 보석’(慢玉)의 진가를 발휘하지만 좀처럼 검은 코스튬은 그녀의 살갗을 떠나지 않는다. <영웅>에서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3] - 장만옥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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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프랑스 감독이 <동방삼협>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장만옥을 캐스팅해 뱀파이어영화를 리메이크하려고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만다는 해프닝을 통해 프랑스 영화판을 풍자한 ‘영화에 대한 영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장만옥의 이마베프>에서 ‘한때는 휼륭했지만 더이상 휼륭하지 않은’ 극중 감독 르네 비달에 대해 장만옥은 그를 부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끝까지 감독을 옹호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과 관련된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이긴 하지만 내가 그 영화를 선택한 이상 결국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의 의도를 최대한 가깝게 표현해내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상영될 때, ‘내가 저렇게 하자고 해서 저런 식으로 표현된 게 좋았어’라고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감독이 ‘연기를 참 잘했어’ 하고 인정해주는 편이 훨씬 좋다는 거죠.” 그렇게 장만옥은 철저히 감독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려는 배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4] - 장만옥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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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평양 김일성 광장, 거대한 인민군의 물결속에서 행진하는 림병호(한석규) 소좌. 숨가쁜 추격을 따돌리며 그가 동베를린을 통해 위장귀순을 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악랄한 고문 앞에서도 ‘자유를 찾아 내려왔다’고 주장하던 림병호는, 일단 이용해보자는 ‘윗쪽’의 판단에 따라 백승철(천호진) 단장의 감시 아래 안기부에 기용된다. 몇년간 매일밤 윤수미(고소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던 림병호는 마침내 기다리던 암호지령을 받는다. ‘콘탁트 데제’(디제이와 접선하라). 림병호는 북으로 건너간 아버지로 인해 고정간첩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수미를 통해 청천강(송재호)으로부터 지령을 받으며 남쪽 안기부의 대북작전을 수포로 만들게도 하지만, 점차 위험에 처하게 된다.<이중간첩>은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그리고 그 우직함 만큼,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를 숨기지 않는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우선 귀순자를 이용하고 버리는 과정이나, 유학생을 끌어들여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는 것
남과 북에 이용당한 비극적인 삶 <이중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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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감독- 마크 포스터/자막- 한국어, 영어/화면비- 아나몰픽 2.35:1/오디오- 돌비디지털 5.1, 2.0/지역 코드- 3/출시사- 스펙트럼영화를 보는 이유 중에는 검증된 배우의 뛰어난 연기를 보는 재미가 포함된다. 최근에는 그런 재미를 충족시켜주는 세 편의 디브이디 타이틀이 출시되어 화제다. 그 첫번째는 알 파치노와 로빈 윌리암스가 대립 구도로 등장하는 <인썸니아>. 강력계 형사로 분한 알 파치노의 섬세하면서도 선이 굵은 연기와, 지금까지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자기 중심적인 악한을 연기하는 로빈 윌리암스의 변신으로 개봉 당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두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디브이디의 2.35:1의 와이드 스크린을 통해 살아나는 알래스카의 자연경관이 매력적이다.두번째 타이틀은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 휴 그랜트의 최신작 <어바웃 어 보이>다. 모든 인간 관계를 귀찮아하다가 엉뚱하고 고집스러운 12살 소년과 얽히면서 진정한 인생에 발을 들여놓
핼리 베리 연기 다시볼만 <몬스터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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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2차 국제문화전문가단체회의(CCD 총회)에서 한국의 스크린쿼터 정책이 문화다양성을 지키는 ‘모범’사례로 발표된다. 30개국 100개 문화전문단체가 참가하는 이번 회의에는 프랑스 자크 시락 대통령과 프랑스 문화부·외무부 장관 등이 직접 참석한다.스크린쿼터문화연대·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영화진흥위원회 등 16개 단체로 구성된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KCCD)는 지난 21일 대표단 파견에 앞서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간담회(사진)를 열었다. 이들은 “한국정부는 그동안 문화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세계의 흐름을 왜곡해 왔다”며 “이번 회의에 시락 대통령 등이 참석하는 데 보듯이 캐나다·유럽 국가들은 정부가 문화주권 수호에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는 문화시장 일괄개방 뒤 어려움을 겪은 칠레, 뉴질랜드의 사례도 발표된다.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문화단체들이 문화교류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공산품에 적용될 잣대
‘스크린쿼터’ 문화지키기 모범사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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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공백 끝에 묵직한 영화 <이중간첩>을 들고 한석규가 돌아왔다. 그가 없는 시기,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자리를 잡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한석규라는 배우가 수많은 영화에서 빚어낸 색깔을 그리워하고, 그만큼 궁금해했다. 남과 북의 권력에 버림받는 운명의 림병호의 건조한 듯 슬픈 얼굴은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만일 배우의 스타일을 배우의 이름을 잊게 만드는 사람과, 배우의 개인적 체취가 드러나는 사람으로 가른다면 한석규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 단점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배우가 자신의 ‘아우라’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그가 정했다는 고즈넉한 삼청동 길 작은 카페에서 지난 21일 만났다.
오랜시간 간직했던 주제, 이중간첩
“이인모씨의 책을 몇해전 읽었어요. 전 서울, 강북토박이이고 가족 중 북에 연고가 있는 사람도 전혀 없어 그런 문제는 고민해본 적도 없었어요. 근데 그 책을 읽고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구나, 충격같은 걸 받
‘이중간첩’ 되어 돌아온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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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중국을 통일하여 최초의 황제가 될 영정의 궁궐, 까마득한 계단에서 내관이 무사 무명(리롄제)을 맞이하려고 종종걸음을 치며 내려온다. 세트의 규모부터 시야를 압도한다. 규모, 이것이 <영웅>의 기초다. 무명은 단신 영정의 앞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한 개의 창과 두 개의 검을 바치게된 경위를 말한다. 7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 승승장구하는 진나라의 왕 영정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들이 출몰했는데 무명은 그 중 가장 위협적인 세 검객을 처치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바로 그 무용담에서 출발한다. 첫째 대목, 장천이란 고수를 어떻게 쓰러뜨렸나. 눈먼 악사의 탄주하는 현악기의 음악이 배경에 깔리며, 무명과 장천의 대결장면이 펼쳐진다. 이건, 서극의 와이어액션이나 <와호장룡>의 검술장면보다 더한 과장이다. 리롄제의 고공체류 시간은 현실적 감각을 아예 벗어나 버린다. 극도의 과장, 이것이 <영웅>의 화법이다. 파검(량챠오웨이)과 비설(장만위)이라는 두 고수가 영
과장·색채 뒤덮은 탐미주의…그 화려한 실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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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의 눈빛이 달라졌다. <장군의 아들>의 하야시,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 <비천무>의 자하랑 등 그동안 비극적 운명을 가진 강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그가 <블루>에서는 눈에 힘을 뺀 것.해양 액션영화 <블루>의 시사회가 열린 22일 오후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현준은 황장군이나 하야시보다는 영화 속의 김준과 더 닮아있었다.세계 최강의 잠수부대 SSU를 다룬 <블루>에서 김준 대위는 군인 특유의 카리스마보다는 자유로움으로 가득 찬 인물.이정국 감독이나 공형진 등 동료배우들에 따르면 욕쟁이며 장난기 많은 김준이 신현준의 실재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입에 욕을 붙이는 게 힘들었다”며 너스레다.아버지가 해병대 출신이어서 해군의 지원을 받는 이 영화의 촬영 도중에도 군인들로부터 유난히 따뜻한 관심을 받았다는 그는 실제로는 군대를 ‘못 갔다‘고.“독자인 데다 시력이 너무 안 좋아서 군대를 못 갔어
강렬한 눈빛, <블루>의 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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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로 2월 10∼14일 마련되는 교육 프로그램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Berlinale Talent Campus)>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사례가 소개된다.
정태성 부산프로모션플랜(PPP) 수석운영위원은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의 두번째 과정인 프리 프로덕션 강좌에 강사로 나서 PPP의 운영성과와 비전을 설명할 예정이다.
올해 처음으로 개설된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는 철학(10일), 프리 프로덕션(11일), 프로덕션(12일), 포스트 프로덕션(13일), 프로모션(14일) 순서로 진행되며 전세계 61개국에서 500여명의 젊은 영화인과 영화학도가 참가할 예정이다.
프리 프로덕션 강좌에는 정태성씨와 함께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IFP 뉴욕의 마켓 디렉터가 강사로 초빙됐다.
(서울=연합뉴스)
베를린영화제서 부산영화제 성공사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