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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이 홍콩, 태국,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등 아시아 5개국에서 오는 8월 15일 동시 개봉한다. 대개 동남아 국가에 수입된 아시아 외화들의 개봉은 본국 개봉 이후 1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는 것이 관례이지만, 본국에서 개봉한 지 2달 만에 다른 나라에서 동시 개봉하는 것은 <장화,홍련>이 최초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장화,홍련>(감독 김지운)은 두 자매(임수정, 문근영)가 새엄마(염정아), 아버지(김갑수)와 함께 귀신들린 외딴 집에 살면서 겪는 일들과, 서서히 벗겨지는 가족의 비밀을 그린 가족괴담으로 개봉 3주만인 지난 7일 관객 300만명을 돌파했다.
인터넷 컨텐츠팀 cine21@new.hani.co.kr
<장화, 홍련> 동남아 동시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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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조재현 주연의 무협서사극 <청풍명월>(김의석 감독 / 제작_화이트 리 엔터테인먼트)이 오는 11일부터 열흘간 삼성동 메가박스 KT홍보관에서 소품, 의상, 아트 특별전시회를 갖는다. 전시회는 <청풍명월> 대규모 전투씬인 '반정' 씬과 '한강주교(배다리)' 씬의 두 가지 컨셉으로 구성되며, 전시회 기간 중인 12일에는 전시회 현장에서 주연배우 조재현의 특별사인회도 마련될 예정이다.
2년에 걸쳐 만든 <청풍명월>의 소품은 400년전 서울을 재현하기 위해 영화경력 45년의 베테랑 소품전문가 이예호 선생의 노하우와 실력을 통해 가장 심도있게 준비된 분야로, 어연(왕의 가마)의 경우 제작비 5,000만원을 들여 4개월에 걸쳐 제작되었다.
인조반정이라는 혼돈의 시대를 겪어야 했던 두 검객의 우정과 엇갈린 운명을 그린 <청풍명월>은 오는 7월 16일 극장 개봉 예정이다. 인터넷 컨텐츠팀 cine21@new.hani.co.kr
<청풍명월> 소품, 의상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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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전라북도 전주시 외곽도로에서 권상우, 이정진 주연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크랭크인 했다.첫 촬영은 70년대 북새통을 이뤘던 등교버스 장면으로 교복을 입은 남녀학생들과 학생들을 닥달하는 버스안내양 등을 담으며 시작됐다. 촬영에 투입된 버스는 당시 실제 말죽거리에 운행됐던 78번 버스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으로 78년의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장을 달리게 된다.유하 감독은 남학생들 교복모자를 일일이 체크하며, "모자는 조금이라도 크거나 작으면 어색해서 안된다"며 바늘과 실을 손수 들고 꿰매어 첫 촬영에 대한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70년대말 말죽거리를 재현하기 위해 대부분 전주일대에서 촬영될 <말죽거리 잔혹사>는 범생이 고등학생으로 컴백한 권상우와 열혈 70년대 키드 유하감독이 보여주는 복고풍 리얼학교스토리로 절대영웅 이소룡을 꿈꾸는 평범한 모범생 현수(권상우)가 유진(한가인), 우식(이정진)등과 겪는 사랑과 우정을 담아낼 예정이다. 인터
<말죽거리 잔혹사> 촬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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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감독 임상수, 주연 문소리ㆍ황정민)의 제작사 명필름은 다음달 14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원금의 70%를 보장하는 인터넷 펀드를 모집한다. 가장 큰 특징은 원금 회수율이 70% 미만일 경우 투자자에게 원금의 70%를 돌려주는 원금보장성 펀드라는 것. 원금보장성 영화 펀드는 2000년 <해피엔드> 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개인당 투자 금액은 최소 1구좌 100만원. 10구좌 1천만원까지 투자를 받아 모두 5억원의 펀드를 모집할 계획이다.명필름은 "전국 관객수 90만 명을 손익분기점으로 산정해 수익을 배분해 추가비용상승에 따른 투자자 리스크가 없다는 점에서 기존 네티즌 영화펀드와 차별된다"고 설명했다.<바람난 가족>은 '바람'을 통해 우리시대 중산층 가정의 실체와 개인의 솔직한 삶을 '뻔뻔하고 섹시하게' 그린 영화. 명필름은 2000년 영화 <해피엔드>의 인터넷 펀드를 모집해 45%의 수익률을 올린 바 있다.<바람난 가족
영화 <바람난 가족> 인터넷펀드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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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인 빌리 봅 손튼(47)과 이혼한 할리우드 슈퍼스타 안젤리나 졸리(27)는 "다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졸리는 11일 방영될 ABC-TV와 가진 인터뷰에서 20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손튼과의 2년 남짓한 가정생활과 어머니로서의 삶 등에 대해 솔직히 털어놨다.
졸리와 손튼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증표로 몸에 상대방 이름을 문신하고 각자의 피를 담은 병 모양의 목거리를 하고 다녀 할리우드의 '잉꼬부부'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었다. 졸리는 두번째 남편이었던 손튼에 대해 "옛날에는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느낌은 그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변했고, 매우 다른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혼후 손톤이 자신의 피가 담긴 병 목거리를 태웠다고 들었다면서 섭섭한 감정을 드러낸 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 아이에게 아빠를 만들어 주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졸리는 이혼전 캄보디아 출신의 두살배기를 양자로 삼았다.
안젤리나 졸리,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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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이란 것이 있고 <새마을노래>라는 것이 새벽잠을 깨우며 온 나라에 매일처럼 울려퍼지던 시절이 있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지긋지긋한 가난을 타파하고자 했던 몸부림으로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노래에 맞춰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별 보기 운동은 북한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리 어버이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죽자살자 악을 쓰고 기를 쓰고 돈을 벌었다. 불과 엊그제 같은 일이다. 그 엊그제와 오늘 사이의 그 짧은 순간에 달라진 대한민국을 보자하니 과연 우리는 팔자를 고치는 데 성공한 듯도 하다. 보릿고개 배고픔의 고통은 비만과 다이어트 문제로 변했다. 외국인들이 일하러 들어오려고 안간힘이니 돈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름하여 코리안드림. 그래, 우리도 이제 좀 먹고산다.그런데 뭘 먹고 어떻게 뭘 하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스몰 타임 크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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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다.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가던 시절이었다. 일종의 위문공연이랄까.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온 다음날, 교실은 비비안 리의 가는 허리와 클라크 게이블의 콧수염의 매력을 상기하는 아이들로 여느 때보다 부쩍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영화평론가를 꿈꾸던 나는, 아이들의 반응이 그리 마뜩찮았다. 결국 클라크 게이블의 열렬한 팬이던 한 친구와 논쟁이 벌어졌다.
별로 대단치 않은 영화에 뭐 그리 수선이냐는 나와, 그 정도면 대단하지 뭘 더 바라느냐는 친구의 입씨름은, 마침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착되었다.(아, 용감한 청춘들이여!) 영화가 뭐냐? 친구 왈, 영화는 오락이다. 나 왈, 영화는 교훈이다. 그렇다. 열다섯살에 친구와 나는 영화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워터프론트>와 <젊은 사자들>과 <분노의 포도>를 통해
위로가 필요해,<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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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아비인 걸 모른 채 때려죽이고, 그에 따라 어미를 어미인 줄 모르고 함께 자버린 오이디푸스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자 스스로의 눈을 찔러버린다. 왜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이오카스테처럼 목을 매 죽지 않고 눈을 찔렀을까. 사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스스로 눈을 찔러서 장님이 되는 것은 산송장이 되는 행위였던 것이다. 눈으로 본다는 것을 그만큼 중시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운 조각을 제작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지의 시대가 구현되고 있었다고나 할까.성서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가 신의 말을 어기고 따먹은 열매는 선과 악을 알게 해준다는 선악과였다. 그런데 그 열매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선생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무화과 나무로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 이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먹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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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즉 서술의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사람들은 유럽의 ‘고전 소설’을 보고 그 구조가 서술의 전형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서술은 문법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고전 소설은 ‘문법적이고 논리적’이지만 그것은 고전 소설이 태어난 ‘근대’라는 시대의 특징에 불과하다. 그러면 서술의 구조는, 다시, 어떻게 형성되는가.
간단하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극적인 삶의 구조’가 내러티브다. <미녀 삼총사2>는, 그 내러티브가, 다시 말해 지금의 미국 사람들이 겪는 극적인 삶의 구조가, <미녀 삼총사1>에서처럼, ‘TV 채널돌리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뭔 얘기냐. 첫째, 채널돌리기보다 극적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 TV 채널을 돌릴 때의 비합리성, 비논리 연쇄성, 즉 격투기를 봤다가 만화를 봤다가 오토바이 경주를 봤다가 브래지어 광고 화면을 봤다가 올드 무비를 보는, 그 채널돌리기의 비논리적이고 우발적인 연쇄성이
다시 한번 채널돌리기,<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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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히긴스 트리오 <Dear Old Stockholm>에디 히긴스 쿼텟 <My Foolish Heart>눅진하게 들러붙는 장마철 밤 공기를 위한 처방전. 1) 샤워를 하고 깨끗한 면옷으로 갈아입는다. 2) 서늘한 음악을 틀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눕는다. 이 글은 바로 그 서늘한 음악을 고르는 하나의 가이드이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쉽게 즐길 수 있는.주로 일본의 비너스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해온,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Dear Old Stockholm>과 에디 히긴스 쿼텟(리드 피아니스트인 에디 히긴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가 모두 다르다)의 <My Foolish Heart>가 강앤뮤직에서 발매되었다. 피아니스트이자 트리오와 쿼텟을 리드하는 에디 히긴스는 1932년생 할아버지로, 오래 71살이 되었다. 에디 히긴스는 50∼60년대의 런던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당시 ‘런던 하우스’에서 하우스 트리오를 1
스탠더드가 주는 감동,에디 히긴스 트리오·에디 히긴스 쿼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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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예고되던’ 1980년대 후반, 어두운 오락실 한편에 지금까지의 슈팅 게임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다른 게임 하나가 자리잡았다. 그 게임의 이름은 <R TYPE>다. 흔하디 흔한 종스크롤 슈팅 게임이지만 게이머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난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낯섦을 일단 극복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미친 듯 불타오른다.<R TYPE>의 적은 남달랐다. 다른 슈팅 게임에서는 적이 미친 듯이 총알을 난사해 도망갈 길을 봉쇄하거나 아니면 화면을 반 이상 가리는 덩치로 게이머를 위압한다. 이 게임은 압도적인 무력을 내세워 정면 승부를 걸어오지 않는다. ‘다관절 보스’라고 불리던 보스는 유연함으로 게이머를 위협했다. 적의 관절은 계속 조금씩 늘어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꺾여 들어와 앞에서, 혹은 뒤에서, 때로는 옆에서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 한 방향에서, 한 가지 작전으로 공격해서는 이길 수 없다. 적의 유연함에 맞서 이쪽도 수시로 공략 방법을 바
난 타협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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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판 바지를 입은 사나이에 대한 추억‘세상에서 가장 질긴 바지는?’이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바로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의 바지’다. 화가 나면 녹색의 괴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웃옷은 모두 다 갈기갈기 찢겨나가는데, 유독 바지만은 무릎 아래만 뜯어지고 멀쩡하게 남는 데서 나온 80년대 우스개다. 그 연장선상에서 당시 어떤 이들은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를 ‘스판 바지를 입은 남자’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비록 나 <소머즈> <원더우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두 얼굴의 사나이>가 방영 당시 인기를 누렸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TV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가 최첨단 특수효과와 리안이라는 특출난 감독의 조합을 통해 <헐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이런저런 언론매체에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기사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그렇게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
TV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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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벌써 ‘왕언니’가 됐나요? 어휴, 진짜 그런가봐요.”유진희(36) 감독이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1996년 <골목 밖에서> 이래 햇수로 8년. 이제 ‘중견’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런 말 정도는 들을 수 있게 작업 활동을 해왔다.그녀는 홍익대 서양학과를 나왔다. 졸업하고 미술학원도 해보고, 한때는 걸개그림 등 민중미술 운동에도 정열을 바쳤다. 이성강 감독과 한팀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게 뜨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20대 후반 어느 날, 문득 캔버스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았다.“그림은 넓은 전시장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컴퓨터는 종이도, 물감도, 그런 것들을 놓아둘 공간도 필요없더라고요. 모니터라는 공간 속에서는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그래서 모니터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마침 개설된 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전공 1
내 길은 내가 연다,젊은 애니를 껴안다 ⑥ - 유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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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에 침을 뱉으마<나인>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여자만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사, 평론, 패션화보에 폭넓은 스타일의 만화까지를 보여주었던 그야말로 ‘잡지’였다. 젊고 새로운 시도는 빛이 났었다. 상업적 만화의 독법에서 벗어난 만화들도 대거 소개했다. 그런데 이 잡지가 너무 빨리 시장에 나왔었을까, 독자들이 점차 잡지를 외면했다. 결국 <나인>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폐간되고 말았다. 좋은 친구를 잃는 기분. 한달의 즐거움을 빼앗기는 기분. 그보다 더 큰 앞으로의 희망을 차압당하는 기분이었다.하나의 잡지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낯익은 연재작들에 대한 기대가 사리지고, 완결을 보지 못하는 서운함과 이 잡지를 통해 ‘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많은 작가들의 앞날에 대한 당혹감이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체리듬을 떨어뜨린다. 그깟 잡지쯤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타박을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잡지는 다양한 만화가
<영점프> 종간과 한국 만화시장 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