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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허우샤오시엔과 쯔위
주성철 2016-01-22

중국과 대만 사이에는 가끔 서로 다른 버전의 개봉영화가 존재했다. 유쾌한 ‘광동빵’ 뮤지컬 장면으로 유명한 <도협2: 상해탄도성>(1991)은 주성치와 공리가 주연한 영화지만, 공리가 아닌 다른 여배우가 주인공인 다른 버전의 같은 영화가 있다. 중국 본토 출신의 공리가 광둥어에 능숙하지 못하기에 거의 대사도 없다. 마찬가지로 왕가위의 <중경삼림>(1994)에 출연한 중국 본토 출신 왕정문의 대사가 별로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무튼 공리가 중국 배우이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다른 여배우가 출연한 버전의 <도협2>가 개봉한 것이다.

또 대만 내에서도 외성인(外省人)과 내성인(內省人)의 갈등이 있다. 대표적인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1985)가 자신의 외성인으로서의 소년 시절을 회상한 영화라면, <연연풍진>(1986)은 시나리오를 쓴 우니엔진의 내성인으로서의 소년 시절 이야기다. 내성인이란 청조 이후 오래전부터 대만으로 이주해온 토박이들을 일컫고, 외성인이란 1949년 중국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가 대만으로 건너올 때 이주해온 본토 중국인들을 가리킨다.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내성인은 이번에 다시 정권을 잡은 차이잉원의 민주진보당을 주로 지지하며 일본보다 중국을 싫어할 정도다. 반면 외성인은 인구 비중은 내성인보다 훨씬 적지만 주로 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다.

<열혈남아>(1987)에서 장학우는 에어컨을 사서 고향 동네에 가지만,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어머니는 아들인 그가 나타나는 걸 싫어해 만나주지도 않는다. 유덕화와 장학우는 홍콩 구룡반도 동쪽 끝 티우겡렝에서 온 ‘촌놈들’이라는 설정인데, 조직 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맨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왜 다들 유덕화와 장학우를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티우겡렝은 미처 바다 건너 대만으로 가지 못하고 홍콩에 눌러앉아 살게 된 국민당 일파 주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그래서 티우겡렝 주민들은 붉은 바탕에 자형화가 그려진 홍콩 국기가 아닌, 이번에 쯔위가 흔들어서 문제가 됐던 대만의 청천백일기를 집집마다 걸어놓았었다. 대만으로 넘어가지 못하면서 그들은 홍콩의 주변인이 됐다.

다시,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서 외성인과 내성인, 더 나아가 친중과 친일이라는 대만 특유의 복합적 정서는 혼재돼 있다. <펑쿠이에서 온 소년>(1983)에서 열심히 일본어를 배우는 소년과 <남국재견>(1996)에서 상하이에 가서 도박장을 여는 것이 꿈인 양아치(잭 카오), <밀레니엄 맘보>(2001)에서 일본 유바리의 눈 덮인 정경으로부터 마음의 평안을 찾는 비키(서기)와 <동년왕사>에서 고향인 본토로 돌아가겠다며 툭하면 집을 나가버리는 치매 걸린 외성인 1세대 할머니는, 허우샤오시엔의 거대한 세계를 이루는 하나같이 소중한 결들이다. 심지어 상하이를 배경으로 삼은 <해상화>(1998)에서는 홍콩, 대만, 중국, 그리고 일본 배우 모두 캐스팅하여 중국표준어 만다린이나 광둥어도 아닌 상하이 방언을 썼다.

이처럼 ‘영화’로만 접근하자면 어떤 조화로운 상상인들 못하겠냐만, 대만 출신의 서기와 장첸, 그리고 펑위옌이 중국, 홍콩, 대만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요즘, 이런 ‘쯔위 사태’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는 그렇게나 크다. 다만 또 다른 대만 감독 차이밍량의 <청소년 나타>(1992)처럼, 쯔위와 그 친구들이 부모 세대를 증오하며 방황하는 ‘나타’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