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이르기까지 코언 형제는 딱 12편의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블러드 심플>(1984)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이력은 1980년대 이후 미국영화가 보여준 위트와 테크닉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부터 가깝고도 먼 11편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01. 코언 형제의 위대한 출발점
블러드 심플 Blood Simple, 1984년 출연 존 게츠, 프랜시스 맥도먼드, 댄 헤다야, 에밋 월시
아마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의 총격전과 가장 비슷한 정서를 꼽으라면 <블러드 심플>에 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습격하고(왼쪽 사진), 총격으로 벽에 동그란 구멍이 생기며 빛이 새어오는 장면 등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모텔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은 <블러드 심플>의 ‘불륜녀’ 애비(프랜시스 맥도먼드)를 그녀의 남편이 고용한 사립탐정 로렌 비서(에밋 월시)가 습격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특히 간사하고 위압적인 에밋 월시는 <파고>의 피터 스토메어와 더불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비교할 만하다. 더불어 언제나 길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 언제나 등장하는 뚱보(에밋 월시), 애비 남편의 구토, 총격으로 뚫린 벽의 원 등 이후 코언 형제 영화에 서명처럼 등장하는 요소들이 모두 보여진다. 더불어 그들의 영화에서 위기에 직면한 주인공의 정서는 언제나 마치 그 모든 사건을 누군가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전지적 시점과 함께 등장한다. 영화에서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른 애비의 정부 레이(존 게츠)는 무작정 차를 끌고 벌판에 선다(오른쪽 사진). 마을 입구의 정경이나 황량한 교차로의 풍경 등 그 역시 코언 형제 영화의 정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체크포인트] 영화에서 정작 분노한 사람은 금방 죽어 사라지는데, 국내에서는 꽤 오랜 기간 <분노의 저격자>라는 비디오 제목으로 살았다.
조엘 코언의 아내, 프랜시스 맥도먼드
프렌드가 아니라 와이프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토니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가던 그녀는, 예일드라마스쿨의 절친한 동료였던 홀리 헌터가 오디션을 권한 것이 계기가 돼 <블러드 심플>의 주연을 따냈고 이후 형인 조엘과 결혼까지 이른다. 흥미롭게도 <블러드 심플>은 물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도 불륜녀로 등장했다. 하지만 누아르영화의 컨벤션과도 같은 팜므파탈과는 거리가 먼 단호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후 <미시시피 버닝>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샘 레이미의 <다크맨> 등에도 출연했지만 코언의 영화 바깥에서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출산을 2개월 앞둔 경찰로 등장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해준 <파고>는 그런 설움(?)을 날려준 작품이다.
02. 3배속으로 빛나는 코언 형제의 테크닉
아리조나 유괴사건 Raising Arizona, 1987년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홀리 헌터
전과자 남편 하이(니콜라스 케이지)와 경찰 부인 에드(홀리 헌터)가 한 이불에서 살고, 불임으로 판명되자 손씻은 남편에게 아이를 훔쳐오라고 지시하는 부인의 모습에서 코언 형제 특유의 유머감각을 읽을 수 있다. 더불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교할 때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바로 하이가 1회용 기저귀를 훔치고 달아나면서 벌이는 대수난극이다. 기저귀를 품에 안고 경찰차의 추격을 받는 그의 모습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모스가 돈가방을 들고 정체불명의 트럭의 추격을 받는 장면과 거의 똑같다. 심지어 개가 달려드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까지 같다. 하지만 모스가 얼굴 직전까지 달려든 개를 한방에 날려버렸다면, 하이를 향해 달려든 개는 묶여 있는 줄이 다 돼서 그의 얼굴 앞에서 그만 멈춰버린다. 3배속으로 옵티컬 처리한 이 장면은 초기 코언 형제 영화의 유쾌한 트릭과 테크닉이 빛난다. 강도질하러 슈퍼마켓에 들어갔다가 다시 슈퍼마켓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 짧은 시간은 <로드 러너>의 실사화라고 할 만큼 영화역사상 가장 신나는 강탈신이다.
[체크포인트] 로널드 레이건을 비웃는 듯한 장면과 대사들이 넘쳐난다. 레이건식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유쾌한 왜곡과 조소를 읽을 수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시 조지 부시의 자료화면을 쓴 <위대한 레보스키>와 비교해볼 만.
코언 형제의 첫 번째 촬영감독, 배리 소넨필드
뉴욕대 영화학과에서 코언 형제와 조우한 배리 소넨필드는 곧 그들의 단골 촬영감독이 된다. 데뷔작부터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까지 3편을 함께 작업했다. 화려한 카메라 기교가 그의 특징이었는데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 아이의 시점에서 흔들리는 화면, 슈퍼마켓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추격극, 그리고 <밀러스 크로싱>에서 신비롭게 날아가는 중절모 장면 모두 그의 솜씨다. 그와 작업하고자 줄을 섰던 감독들로서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후 <아담스 패밀리>(1991)로 오랜 감독의 꿈을 이루게 된다. 블랙코미디적인 감각에서 코언 형제와 교감을 형성했다 할 수 있는 그는 이후 <겟 쇼티>(1995)를 비롯해 <맨 인 블랙> 시리즈를 통해 변함없는 감각을 보여줬다.
03. 저 멀리 날아가 사라지는 모자
밀러스 크로싱 Miller’s Crossing, 1990년 출연 가브리엘 번, 마샤 게이 하든, 존 터투로, 존 폴리토, 앨버트 피니
밀러스 크로싱 숲에서 모자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톰(가브리엘 번)의 꿈은 <밀러스 크로싱>을 말할 때 언제나 언급되는 장면이다.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기에 평론가 시절의 박찬욱 감독이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비디오드롬>(최근 <박찬욱의 오마주>로 재출간)에 썼던 글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가장 아름답게 촬영된 이 크레딧 시퀀스는 이 영화에서 모자 상징이 차지하는 비중을 웅변하고 있다. 모자가 벗겨지는 일은 톰에게 최악의 상황이어서, 이 두려움은 조바심이 되어 꿈에 나타난다. 그는 실내에서도 탈모의 예의를 차리는 법이 없고, 매조차도 모자를 쓴 채 맞으려 할 뿐 아니라, 만취해서 잠들었다가도 깨자마자 모자부터 찾는다. 또한 자니(존 폴리토)의 심복 데인이 톰을 죽이려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톰의 모자를 벗겨 던지는 행동이다. 이는 밀러스 크로싱의 꿈이 현실화한 것으로써, 수직 앙각 시점숏으로 보이는 나무와 하늘의 고결한 순수 자연 이미지 안에서 도덕적인 고뇌와 공포에 직면하는 한 냉혈한의 초상이다.”
[체크포인트]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갱단의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백기를 들고 나오는 조직원을 쏴버리고 어설프게 웃던 단역 형사가 바로 샘 레이미 감독이다. 그는 쌍권총 실력을 자랑하기도 잠시 춤을 추듯 기관총으로 벌집이 된 채 쓰러지고 만다.
코언 형제의 첫 번째 페르소나, 존 터투로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논외로 하자면 존 터투로는 코언 형제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 가운데 하나이며, <바톤 핑크>를 통해 그들의 첫 번째 페르소나가 되는 영광을 안은 배우이기도 하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홀리 헌터와 마찬가지로 예일대 드라마스쿨 출신인 그는 <겅호>(1986), <컬러 오브 머니>(1986) 등으로 얼굴을 알린 뒤 <밀러스 크로싱>의 ‘찌질한’ 갱 버니 역할로 코언 형제와 조우했다. <바톤 핑크>에서 지옥과도 같은 호텔 속에 내던져진 작가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각인시켰다. 이후 <위대한 레보스키>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에도 출연하면서 우정을 과시했다. 역시 압권은 <위대한 레보스키>의 볼링장에서 슬로 모션으로 멋들어진 춤을 추는 모습이다. 더불어 그는 배리 소넨필드와 더불어 코언 형제의 친구들 중 두 번째로 감독 데뷔를 했는데, 데뷔작 <맥>(1992)으로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04. 코언 형제의 <해변의 여인>
바톤 핑크 Barton Fink, 1991년 출연 존 터투로, 존 굿맨, 주디 데이비스
할리우드의 초청을 받은 젊은 극작가 바톤 핑크(존 터투로)의 이야기다. 그가 머무는 기괴한 호텔은 거의 지옥의 입구처럼 보인다. 코언 형제는 <바톤 핑크>가 바로 세입자가 새로 이사간 건물에서 겪는 초현실적 체험을 그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넌트>(1976)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적 있다. 바톤 핑크 역시도 하룻밤을 함께 보낸 여인이 그 다음날 시체가 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웃으로 여긴 찰리(존 굿맨)가 미치광이인 것을 알게 되면서 창작의 고통 그 이상의 초현실적 공포에 직면한다. 그 속에서 방 안에 걸려 있는 해변의 여인의 그림은 마지막에 이르러 실제의 풍경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호텔이라는 그 지옥도 안에서 그 그림은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달하고자 꿈꿨던 어떤 목표였다. 그리고 바톤 핑크는 실제로 그 뒷모습의 여인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허구를 창조하는 예술가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고뇌와 허무를 마술 혹은 구원의 경지로 승화시킨 명장면이다.
[체크포인트] <바톤 핑크>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공교롭게도 그해의 심사위원장이 바로 <테넌트>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었다. 심사위원 중 하나였던 앨런 파커는 <바톤 핑크>의 수상이 만장일치의 결과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좀더 성숙해진 코언 형제의 카메라, 로저 디킨스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은 <바톤 핑크>부터 지금까지 계속 코언 형제와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배리 소넨필드보다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코언 형제의 영화가 초기 3부작의 재치 넘치는 장르 뒤틀기로부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좀더 성숙한 차원으로 나아간 데에는 그의 영향이 무관하지 않다. 영국 국립영화학교 출신인 그는 알렉스 콕스 감독의 <시드와 낸시>(1986)를 통해 할리우드의 관심을 끌게 됐다. 크레인숏이나 조명을 최소화하고, 다큐멘터리적인 실감을 중시하는 그의 촬영 스타일은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던 코언 형제의 욕구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들의 영화 외에도 <데드 맨 워킹> <쿤둔> <빌리지> <자헤드> 등의 촬영을 맡기도 했다. 코언 형제의 영화 중에서 그의 베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파고>.
05. 훌라후프와 같은 세상
허드서커 대리인 The Hudsucker Proxy, 1994년 출연 팀 로빈스, 폴 뉴먼, 제니퍼 제이슨 리
허드서커가 우편실에서 일하는 노빌 반즈(팀 로빈스)는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될 꿈을 가지고 있다. 이 꿈은 악한 시드니 머스버거(폴 뉴먼)의 음모로 뜻하지 않게 성사된다. 졸지에 허드서커사의 사장이 된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생각을 한다. 프랭크 카프라적인 소시민의 이상주의, 그리고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매력적인 인물들의 몽상이 <허드서커 대리인>에서 하나로 만난다. 팀 로빈스가 테스트를 위해 사무실에서 계속 훌라후프를 돌리는 장면은 코언 형제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원의 이미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출시된 훌라후프는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어떤 꼬마의 발 아래 떨어진 훌라후프를 그 꼬마가 신들린 듯 돌리기 시작하면서 대성공을 거둔다. 운명론 혹은 악몽으로 가득 찬 닫힌 세계라는 그의 오랜 주제는 바로 원으로 드러난다. 반즈는 아무리 기를 써도 머스버거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코언 형제의 영화가 결코 미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반대로 무언가 궤도를 벗어나더라도 다시 곧 원처럼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란 순수한 믿음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체크포인트] <바톤 핑크> 이후 기대가 부풀려지고 거물 제작자 조엘 실버가 참여했기 때문일까. <허드서커 대리인>은 <참을 수 없는 사랑>과 더불어 비평적으로 가장 쓴소리를 많이 들었던 영화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존 하크니스가 말하길 “카프라의 위대한 작품들은 주인공들의 꿈에 악몽이 섞여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언 형제의 장점은 바로 지칠 줄 모르는 우울한 유머에 있다. 그들의 해피엔딩도 장르를 반어적으로 꼬집기 위한 도구일 뿐 사실 그들의 세계는 오로지 악몽으로만 구성돼 있다.”
코언 형제의 스승이자 동료, 샘 레이미
샘 레이미의 놀라운 데뷔작 <이블 데드>는 촬영 도중 필름을 들고 다니며 2차 제작비를 모은 끝에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필름을 들고 편집실을 찾았던 그는 그 편집실의 편집조수였던 조엘 코언을 우연히 만나게 됐고, <이블 데드>에 ‘꽂힌’ 조엘과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이후 코언 형제의 본격적인 첫 번째 영화계 일은 <크라임웨이브>(1985)의 시나리오를 그와 함께 쓰는 것이었다. <이블 데드>를 통해 유명해진 이른바 ‘레이미 캠’(낮은 위치에서 희생자를 향해 빠르게 달려드는 스테디캠숏) 장면을 <블러드 심플>과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후 샘 레이미는 <허드서커 대리인>의 각본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 이후 에단 코언의 아내가 되는 트리시아 쿡 외에 제3자가 이들 형제의 작업에 끼어든 것은 샘 레이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하지만 이후 샘 레이미는 코언 형제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의 재기작이었던 <심플 플랜>(1998)의 눈 풍경은 바로 <파고>의 조언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
06. 눈 위로 흩뿌려진 붉은 피
파고 Fargo, 1996년 출연 프랜시스 맥도먼드, 윌리엄 H. 메이시, 스티브 부세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그렇지만 코언 형제는 치밀하지 못한 계획이 뜻밖의 끔찍하고 아이러니한 방향으로 전개돼 나가는 플롯의 귀재다. 하지만 <파고>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달리 직관과 추리력,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보는 경찰 마지(프랜시스 맥도먼드)를 등장시킨다. <바톤 핑크>와 <허드서커 대리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이전까지 코언 형제 영화의 공간들은 하나같이 양식화되고 함축적이었다. 그들 스스로도 말하듯 ‘연극적 사건’들이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중요한 사건들은 다 실내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파고>는 철저하게 그들의 고향이기도 한 미네소타 지역의 눈덮인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러기에 피터 스토메어가 스티브 부세미를 나무 분쇄기에 마구 쑤셔넣어 ‘갈아 죽이는’ 장면은 공포와 유머가 뒤섞인 기괴한 신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온통 백색의 세계, 아무 일도,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가장 이상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들의 감춰진 욕망과 불안도 그렇게 눈 위로 흩뿌려지는 붉은색 피처럼 조용히 퍼져 나간다. 더불어 카메라가 스토리의 철저한 관찰자가 되길 바랐다는 코언 형제의 의도도 로저 디킨스에 의해 십분 발휘되고 있다.
[체크포인트] 코언 형제 특유의 지역적 개그가 빛을 발한다. <블러드 심플>의 텍사스 억양, <아리조나 유괴사건>의 애리조나 특유의 징징 엉겨붙는 말투, <밀러스 크로싱>의 아일랜드 억양, <바톤 핑크>의 유대계 말투에 이어 <파고>의 ‘∼오, ∼야’ 하는 스칸디나비아식 악센트가 특유의 낯선 일상성을 보여준다.
코언 영화 속 가장 코믹한 악역, 스티브 부세미
스티브 부세미와 피터 스토메어는 코언 형제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이고 코믹한 악당들이다. 특히나 스티브 부세미는 그들의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뚱보’만큼이나 인상적인 캐릭터로 자리해왔다. 그런 점에서 <바톤 핑크>만한 주연을 맡지 못했을 뿐 존 터투로만큼 코언 형제 영화에서 다양성을 드러낸 배우다. <위대한 레보스키>처럼 친구로 나올 때도 있었고, 옴니버스영화 <사랑해, 파리>에서는 주인공으로도 등장했다. 게다가 <파고>에서는 단단히 수모를 당했는데 그와 잠자리를 함께한 여자의 증언에 따르자면 ‘두명 중에서 웃기게 생긴 사람’이고 ‘포경수술을 아직 안 한 사람’이다. <밀러스 크로싱>의 수다쟁이 역할로 처음 코언 형제와 조우한 그는 존 터투로와 함께 두 번째로 감독 데뷔를 선언한 그들의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수지의 개들>(1992)을 시작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와 더 친해졌다고 보는 게 맞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