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들어진 일본 장르영화들을 즐길 수 있는 영화제가 열린다. 일본영화를 전문적으로 수입, 상영해온 CQN명동에서 8월24일부터 9월2일까지 열리는 ‘버라이어티 나인 J-무비 페스티벌’은 이름에 걸맞게 다채로운 영화들을 준비하고 있다. 9편의 상영작은 멜로, 액션, 스릴러, 호러, 스포츠, 청춘 등 각종 장르를 망라해 알짜배기로만 구성되었다. 기왕의 일본영화 마니아에겐 반가운 소식이고 일본영화 초심자라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좋은 기회이다. 이번 상영작 리스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들은 <블랙 키스> <이웃 13호> <김 미 헤븐> <러브 고스트> 등 스릴러와 호러영화들이다. 이런 영화들은 장르문학이 발달된 일본 대중문화의 저력을 확인시켜준다. <이웃 13호>는 이노우에 산타의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고등학생 시절 왕따를 당했던 무라사키 주조(오구리 슌)가 성인이 되어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주조의 몸속에는 잔인무도한 다른 인격 13호가 공존하고 있어서, 13호의 위력이 커질수록 주조는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초호화 캐스팅이 눈에 띄는 <블랙 키스>에서 살인에 대해 편집증을 갖고 있는 미모의 아스카는 다른 세명의 인물들과 함께 음습한 사건의 미궁으로 빠져든다. 주술, 좀비,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와 그로테스크한 영상이 돋보인다. <이웃 13호>와 <블랙 키스>는 각각 2005년과 2006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었다.
<김 미 헤븐>은 ‘공감각’을 소유한 인물 주변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자살과 살인사건들을 다룬다. 공감각자들은 맛에서 모양을 느끼고 숫자에서 색깔을 찾아낸다. 입양될 때마다 양부모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는 신비한 소녀 마리(미야자키 아오이)를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스릴러물이다. 사생활을 중계하는 카메라와 환각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컴퓨터 게임 등 흥미로운 소재는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긴다.
이토 준지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러브 고스트>는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서서히 조여드는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미도리는 어려서부터 같은 꿈을 꾼다. 한 소녀가 사당 근처에 서 있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검붉은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꿈이다. 미도리는 전학한 첫날 학교 앞에서 꿈에서와 똑같은 사당을 발견하고 소스라친다. 학교에서 미도리는 어린 시절 남자친구 류스케(마쓰다 류헤이)와 재회하고 잃어버린 그녀의 과거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여고괴담>처럼 고등학교를 떠도는 기담과 미신들이 공포의 소재가 된다.
<백댄서즈>와 <캐치 어 웨이브>는 위의 영화들과는 180도 다른 경쾌한 청춘물이다. <워터 보이즈>로 잘 알려진 다카하시 노부유키 감독의 신작 <캐치 어 웨이브>의 소년들이 이번에 도전하는 스포츠는 서핑이다. <폭풍 속으로>에 나오는 멋진 근육질 서퍼가 아니라 이웃집 소년들이 도전하는 서핑은 훨씬 친근한 스포츠로 다가온다. 멋진 바다 경치도 늦더위를 씻어줄 만한 장면들이다. 아이돌 스타의 백댄서들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는 무엇일까? <백댄서즈>의 이야기는 바로 그 위기에서 출발한다. 바로 아이돌 스타가 은퇴해버린 것이다. 그 뒤 20대 초반의 여성 댄서 4명은 뜻하지 않게 아저씨 록밴드의 백댄서가 된다. 일본 청춘들의 춤과 음악 세계에 빠져볼 수 있는 영화이다.
<천사의 알>은 나오키상 수상 작가 무라야마 유카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것으로 멜로물이다. 아유타는 대학 신입생 나츠키(사와지리 에리카)와 가까워지고 호감을 갖게 되는데 어느 날 전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인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린다. 이후 또 한번의 우연으로 아유타는 그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나츠키의 언니였다. 마지막 남은 두편, <인투 어 드림>과 <데스 트랜스>는 다소 독특한 취향의 영화들이다. <인투 어 드림>의 감독 시온 소노는 <자살클럽> <노리코의 식탁> 등을 연출했다. 도쿄 지하철에 집단 투신자살하는 여고생 클럽이라든지 가족 렌털 사업 등 그의 영화 세계는 그로테스크한 묘한 매력이 있다. 국내 팬이 많은 오다기리 조가 주연을 맡고 있다. <데스 트랜스>는 키치적 유희로 가득 찬 무협액션영화로 <버수스> <지옥갑자원> 등의 영화 계보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