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일본 장르영화 걸작선’이 8월7일(화)부터 26일(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다. 장르적 요소의 활용과 변주를 통해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동시대 일본 영화감독 미이케 다카시, 구로사와 기요시, 최양일, 사카모토 준지, 시미즈 다카시, 사사키 히로히사, 시라이시 고지 등 7인의 영화 15편을 상영한다.
이미 장르영화의 대가 자리에 오른 미이케 다카시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초·중반 작품이 다수 상영되는 것이 눈에 띈다.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미이케 다카시의 경우 <신주쿠 흑사회> <극도 흑사회> <일본 흑사회> <데드 오어 얼라이브1> <데드 오어 얼라이브2> <공포대극장 우두> 등이 상영되는데, 특히 <신주쿠 흑사회>는 ‘V시네마’라 불리던 비디오 출시 전용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활동하던 미이케 다카시가 그 계통을 벗어나 만든 첫 번째 극장용 영화다. 미이케 다카시 영화의 발칙하면서도 도취적인 요소와 도발적인 흐름이 중국과 일본의 혼혈계 형제가 겪는 폭력의 세계라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 이미 엿보인다. 이후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만들어진 두편의 영화 <극도 흑사회>와 <일본 흑사회> 역시 미이케 다카시의 극장용 영화 초창기 시절의 경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미이케 다카시가 뜨겁다면 구로사와 기요시는 차갑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이번 상영작 <뱀의 길> <복수: 지워지지 않는 상흔> <복수: 운명의 방문자>는 하드보일드 장르에 구로사와 기요시의 음험한 세계관이 접목되어 탄생한 작품들이다. 아이를 잃거나, 아들을 잃거나, 아내를 잃은 자들이 오로지 복수라는 목표를 세우고 조용히 질주하는 영화들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 영화들을 통해 각종 복수라는 모티브에 조용한 피의 철학을 덧입힌다. 반면 <큐어>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공포 장르 안으로 한발 더 들어간 영화다. 일본 내부에 쌓여 있는 사회적 우울증을 공포영화의 장르 안에서 표현한 구로사와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로사와는 “나의 관심은 늘 시스템과 개인에 대한 것이다. 개인이 시스템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죽는 것, 범죄자가 되는 것, 그리고 미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시기 그의 영화들은 하드보일드와 공포영화를 오가며 그걸 해낸다.
그 밖에 사카모토 준지, 최양일, 시미즈 다카시, 시라이시 고지, 사사키 히로히사 등의 대표 작품도 한편씩 상영된다. <토가레프>는 남성의 육체와 정신이 어떻게 폭력적 세계에 물들어가는지 관심을 가졌던 사카모토 준지의 초기작에 속한다. 평범한 가장이자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사인 주인공이 어린 아들의 유괴와 살해 사건을 겪으면서 복수의 화신이 되는 이야기다. 폭력의 세계에 물든 남성성을 역사의 퀼트로 짜낸 것은 최양일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최양일의 이번 상영작 <막스의 산>은 일본식 하드보일드 장르의 장인인 최양일의 영화 중에서도 단연 최고작이라 부를 만하다. 70년대 후반 격동의 일본사회 안에서 다섯 대학생에 의해 우연히 살인이 벌어지고, 20여년 뒤 한 살인사건이 다시 이 은폐되었던 과거의 사건을 소환하게 된다. 최양일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을 유지하되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서로 이으며 일본 현대사를 꿰뚫는 노련함을 보인다.
시미즈 다카시의 <마레비토>와 시라이시 고지의 <노로이>는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주류가 된 신종 공포영화 장르의 한 예를 보여준다. <주온>과 ‘일본 호러’의 일원으로 잘 알려진 시미즈 다카시의 2004년작 <마레비토>는 카메라에 극단적 공포를 담기를 원하는 한 카메라맨이 우연히 도쿄 지하에서 의문의 소녀를 구해낸 뒤 겪는 기이한 괴담이다. 그리고 시라이시 고지의 <노로이>는 주인공인 괴담 작가의 실종 뒤 그의 행적을 쫓는 내용으로, 미국의 <블레어 윗치> 혹은 한국의 <목두기 비디오>와 비교가 가능한 페이크다큐멘터리다. 반면 전문적인 공포영화보다 B급영화의 감수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원한다면 호러에서 코미디, 유사SF까지 오가며 각종 장르를 모두 취합해내는 사사키 히로히사의 <발광하는 입술>을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