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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2001-10-10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kr

최근 <씨네21> 칼럼에 ‘박수 쳤다 치고 떠난다’고 고별사를 날렸던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은 알다시피 우리 영화사가 제작했다. 코미디와 호러를 뒤섞어 장르영화에 반칙을 날린 이 영화로 그는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올랐고, 명필름은 개성있는 크레디트를 얻었다. 하여튼 가상한 성공작이었다(라고 자부한다). 그와 당연히 두 번째 영화를 만들 줄 알았으나, 김 감독은 봄영화사로 돌연 날아가버렸다. 그 건으로 오정완 대표와 밤늦게 통화를 하면서, 나는 생각없는 싸움닭처럼 허리에 손을 얹고 꽥꽥거리는 목소리로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얼마 뒤 봄영화사와 김지운 감독은 <반칙왕>을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시사회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웃었고, 과장되게 박수쳤고, 80만명은 볼 거라고 떠벌렸다. 떠나버린 감독이 얄미운 만큼이나 재기발랄한 스타일과 슬픈 정서를 유머로 슬쩍 돌려 이야기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2000년대의 중요한 한국영화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고 예단(?)하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반칙왕>을 보며 매혹당한 감정의 그 밑에는 사실 강렬한 ‘질투심’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나는 금세 깨달았다. 그 질투가 바로 우리 회사도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력한 자극으로 치환되었던 것이다. 그렇듯 나와 우리 회사와 무관한 영화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질투심을 느낄 때가 있다. 꼽아본다면, <결혼 이야기> <은행나무침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넘버.3> <파란대문> <미술관 옆 동물원> <오! 수정> <플란다스의 개> <반칙왕> 같은 영화들. 90년대 이후 제작자란 직함의 명함을 내밀고난 뒤 시점부터의 목록들이기도 하다. 질투가 났던 이유는, 그 영화들에서 과감한 도전, 새로운 실험, 작가주의의 깊이, 영화적 완성도 등의 중요하고도 빛나는 ‘미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미덕을 포용한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다소의 존경과 부러움, 거기에 그 질투심이 결국엔 굉장한 자극으로 돌아온다.

얼마 전, 모 영화잡지에 영화프로듀서 김익상씨가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집에 돌아와 샘이 나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샘이 났다는 그의 심정이, 그 어떤 상찬보다 기분좋았다. 그야말로 짜릿했다.

그렇게 영화인들끼리 서로 자극하고, 자극받으면서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깊이를 더해가는 것 아닐까. <구미호>에서 처음 시도한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이후 한국영화기획에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주고,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처음으로 김석원이란 탁월한 사운드 디자이너와 손을 잡은 이래, 그의 역량이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솜씨좋게 발휘되어 한국영화의 사운드가 진일보하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제작방식이 여러 사람을 흥분시키고, 가공할 생산력으로 쏟아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에 새삼새삼 놀라면서….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과감한 도전을 샘내며 따라가고, 리노베이션하려는 의욕들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를 때, 한국영화는 생기와 윤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다른, 당신과 다른 영화인들과 영화들에서 느끼는 진정한 ‘질투’가 충무로를, 한국영화를 업그레이드시킨다고 확신한다.

참, <질투는 나의 힘>이란 영화가 박찬욱 아닌 박찬옥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다며? 또 한명의 여성감독의 출정에 건투를! 얘기가 결국 삼천포로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