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27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인디다큐페스티발 2006이 열린다. 지금,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몇 가지 화두, 그러나 그 어디서고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한-미 FTA 4차 협상일로부터 4일 뒤 시작하는 올해 영화제는 NO FTA 특별전을 마련하여 <146-73=스크린쿼터+한미FTA>(이훈규)를 포함한 국내외 10편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개막 전날인 10월26일 오후 7시에는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NO FTA 문화행동’ 행사도 열린다. 이번 행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역상영운동 활동가와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직접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오픈 마켓 행사. <월마트: 싼 가격을 위한 비싼 댓가>를 포함한 두편의 해외장편 상영과 독립다큐멘터리의 국내외 배급사례를 통해 배급전략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진행된다. 한해 동안 만들어진 화제의 다큐를 소개하는 국내신작전이 준비한 14편의 작품은 노숙인(<192-399>), 개인파산(<파산의 기술記述>) 등 우리 사회의 그늘을 다룬 작품부터 야생동물 교통사고를 다룬 환경다큐멘터리(<어느 날 그 길에서>), 노조결성을 저지하는 삼성(<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 덤프노동자의 총파업(<차라리 죽여라_전국덤프노동자총파업 2005~2006>), 시그네틱 여성노동자 투쟁(<얼굴들>) 등 개별 사업장의 상황에 대한 작품까지 다양하다. 이중 6편의 추천작을 소개한다(문의: 02-362-3163, www.sidof.org).
인디다큐페스티발 상영작 소개
<우리 학교> 김명준/ 2006년/ 134분 홋카이도 유일의 조총련계 학교를 다룬 <우리 학교>는 고 조은령 감독(<스케이트> 등)의 남편 김명준 감독이 아내의 미완성작을 대신 완성한 <하나를 위하여>를 업그레이드한 결과물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 12개 학년이 가족처럼 함께하는 이 학교의 3년간을 담은 <우리 학교>는 그 어떤 중제나 자막없이 대상의 모든 것을 전달한다. 담임 발표 소식에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은 평범한 학생들의 그것이지만,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이유만으로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이들의 천진한 웃음은 그 고달픈 삶을 짐작하게 만든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꿈에 그리던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일본 우익단체의 시위를 맞닥뜨려 치마저고리를 갈아입어야 하고, 후보선수 한명 없이 참가한 전국학생체전에서는 퇴장을 염려하여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언제고 진심만을 말한다는 사실이다. 일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 하고, 차마 들을 수 없는 살벌한 협박전화 속에서 통학해야 하는 이들이 부디 행복하기를 관객은 진심으로 기원하게 된다. 촬영감독 출신 감독의 카메라는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대상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전달했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이혜란/ 2006년/ 105분 꾸준히 여성문제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온 여성영화집단의 이혜란 감독은 하루 14, 15시간씩 월차나 병가 없이 각종 산업재해를 감수하며 노동했지만, ‘산업역군’이라는 속빈 강정 같은 호칭밖에 얻은 것이 없는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27년간에 걸친 원직복직 투쟁을 다룬다. 10대 중·후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방직공장에 스스로를 던졌던 이들은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에 눈을 돌리고, 술이며 돈에 쉽게 매수되는 남성노동자들이 아닌 스스로의 손으로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온갖 탄압을 받는다. 그때와 같고도 다른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너나들이를 하고, 각각의 인터뷰이가 당시를 회상하며 서로를 정겹게 호명하는 가운데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우리의 현대사가 여전히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낸다. 해마다 개구리만 울면 속옷 차림으로 투쟁하던 자신들의 아우성이 떠올라 괴롭다는 한 여성노동자는 여전히 복직을 꿈꾼다며 울먹인다. 물론,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농담같은 이야기-저작권 제자리 찾아주기 프로젝트 1.0> 태준식/ 2006년/ 28분 “정보공유 라이선스 2.0을 붙이고 농담 같은 이야기를 시작해본다”는 언뜻 발랄하고 상냥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저작권을 둘러싼 거대 문화자본의 음모를 파헤친다. 창작욕구를 극대화한 디지털 기술은 이용자와 생산자의 경계를 허물고 저작물 유통에도 변화를 가져왔지만 100만원을 상회하는 컴퓨터와 월당 몇 만원의 초고속 인터넷 사용료를 기꺼이 지불하던 네티즌은 어느 순간 문화창작물을 공짜로 이용하는 파렴치한이 되어버린 현실. 2000년 이후 유례없는 속도로 진화하는 저작권법이 실은 저작권자, 그것도 거대 자본을 앞세운 음반사나 영화사의 이득만을 옹호해왔음이 폭로된다. “신문기사를 블로그에 인용할 수 없지만, 블로그의 글은 신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게재되는” 모순된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창작하고 투쟁하는 세팀의 독립창작자들은 한결 극대화된 저작권이 자신들의 경제력에 도움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증언한다. 법안심사위원장이 만든 법안이 발의부터 통과까지 한달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처리되는 생생한 현장은 놓쳐서는 안 될 슬픈 코미디. 이는 결국 자유로운 정보공유가 농담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현실을 향한 것이다.
<타워크레인노동자> 이승훈/ 2006년/ 16분30초 무릇 현장에서 몸을 부딪혀 일하는 이들의 직접 증언처럼 묵직하고 아픈 것은 없다. 타워크레인 노동자 10년차인 이승훈 감독은 극단적인 투쟁의 도구이자 건설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인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현실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눈비 오는 궂은날엔 목숨을 걸고 일터로 향하고,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오후 7시까지 근무하는 에누리없는 일과를 지속하며, 주 6일 10시간씩 근무한 15년 경력자의 최고임금이 250만원이고, 자재를 달면 2m씩 위아래로 흔들거리는 한평 남짓한 공간에서 일하느라 떨어지는 놀이기구는 탈 수도 없게 되어버린 이들의 인터뷰 대부분은 실제 그들의 작업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타워가 넘어갈 때, 죽었다는 생각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크레인 사고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에서 이어지는 실제 사고 노동자의 인터뷰는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증언한다. 가장 아이로니컬한 것은 막다른 투쟁의 방법으로 여겨지는 고공 크레인 농성의 섬뜩한 순간을 이들은 그야말로 일삼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 영화 역시 그러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해 일상적인 인터뷰와 격렬한 투쟁장면을 교차편집하여 보여준다.
<동백아가씨> 박정숙/ 2006년/ 86분 소록도에 사는 이행심 할머니. 광대뼈가 하관까지 흘러내린 얼굴이지만 정신은 초록 같다. 1934년에 소록도에 온 할머니는 잘못된 진단 체계, 부모에 대한 그리움, 무리한 강제노역으로 인해 나병(한센병)에 걸린다. 열네살부터 소녀가장으로 살아야 했고, 평생을 강제노역과 노동으로 바친 그가 마흔네살에 결혼해 겨우 얻은 아들을 남의 손에 키워야 했던 사연은 안쓰럽고 눈물겹다. 이것은 1916년부터 시작된 소록도와 한센인의 비극적인 역사의 축소판이다. “한센병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유전된다는 것”이라는 채규태 한센병 연구소장의 말처럼 한센인에 대한 차별은 역사적 침탈, 격리 수용, 사회적 편견이 맞물려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동백아가씨>를 즐겨부르는 이행심 할머니의 구술에서 출발한 <동백아가씨>는 한국의 잘못된 한센병에 대한 정책과 역사를 낱낱이 짚어낸다. 도쿄지방재판소의 한센인 보상청구소송이 시작되고 <동백아가씨>의 이야기 전개는 긴장감을 더해간다. 대만과 한국의 한센인을 위한 보상청구소송결과의 극적인 발표 장면, 소록도와 도쿄를 오가는 소록도 사람들과 일본 변호인단의 우정이 담긴 후반부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신다.
<택시블루스> 최하동하/ 2005년/ 105분 <택시블루스>는 혹독한 <체험, 삶의 현장>이다. 다큐집단 빨간눈사람의 최하동하 감독이 만든 <택시블루스>는 사적 다큐멘터리, 재연극, 실제 상황이 매끄럽게 섞여 있다. 감독은 매일 12시간씩 도시의 밤거리를 떠다니며 승객을 태운다. 대부분 취객인 그들은 두서없이 자기고백을 늘어놓는다. 생일파티하는 아이들, 화장을 고치는 여자, 여자를 때리는 남자, 택시비 대신 그림을 건네는 화가가 차에 오르내린다. 인터뷰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최하 감독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필요한 말만 하면서 손님들이 사연을 털어놓도록 유도한다. ‘인터뷰’와 ‘극장상영’을 근거로 연락처를 받아내고 초상권 문제도 말끔히 해결하지만 생계와 영화제작을 병행하는 감독의 고통은 <택시블루스>의 화면 곳곳에 드러난다. 참혹한 급여명세서, 일차(교대자 없이 혼자서 하루 종일 택시를 모는 일)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범칙금 가불, 택시운전사의 여섯 가지 수칙에는 택시기사가 겪는 생활의 고통이 그대로 묻어 있다. 1평도 안 되는 뒷좌석에서 출발한 <택시블루스>는 결국에는 서울 자체를 바라본다. 주인공이 매춘과 폭력을 용인하는 장면은 이 도시의 어둠이 가진 강력한 전염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