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동안 전세계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아시아의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는 제2회 CJ아시아인디영화제가 오는 11월3일부터 9일까지 용산CGV 3개관에서 열린다. 한·중·일을 비롯하여 이란, 싱가포르, 타이, 이라크, 스리랑카, 인도에서 만들어진 낯설고도 친숙한 영화 60여편 중,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CJ컬렉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엄선된 다섯편의 장편영화들로, <내 곁에 있어줘>(에릭 쿠), <쓰레기 시인>(모하마드 아마디), <택시 운전수의 사랑>(콩데이 자투라사미), <몽골리언 핑퐁>(닝하오), <씨티즌 독>(위시트 사사타니앙) 등이 포함되어 있다. ‘CJ 컬렉션에는 속하지 않지만 <흔들리는 구름>(차이밍량), <섹스와 철학>(모흐센 마흐말바프), <물>(디파 메흐타) 등 아시아권 거장의 영화들 역시 올해 부산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이다. 이 밖에도 <워터보이즈>의 여고밴드 버전인 <스윙 걸스>(시노부 야구치), 올해 칸 경쟁부문 상영작인 <킬로미터 제로>(하이너 살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일본 리메이크작 등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화제작들이다.
한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독립영화의 개발과 후반작업을 지원하는 CCC(CJ Challenge Community) 공모에서 선정된 세편의 장편영화 중 두편이 관객을 만난다. <8월의 일요일들>(이진우)과 <브레인 웨이브>(신태라)가 그 주인공. CJ-CGV 디지털 장편 제작지원작인 다큐멘터리 <택시 블루스>(최하동하)를 비롯해서 올해 부산과 전주에서 상영된 <다섯은 너무 많아>(안슬기), 이미 극장에서 개봉된 <목두기 비디오>(윤준형), <거칠마루>(김진성)까지 다양한 국내 독립장편영화가 상영된다. 독립영화의 출발지점과도 같은 단편 역시 푸짐하긴 마찬가지다. 올해는 성장영화, 멜로영화, 반전이 인상적인 영화, 판타지영화, 스타가 출연한 영화 등으로 작품을 나누었는데, ‘부쩍 커버린 아이’, ‘트루 로맨스’, ‘범인은 절름발이’, ‘엽기 혹은 상상력’, ‘스타 in 인디’ 등의 섹션명이 인상적이다. 지난해와 올해 동안 국내외의 주요 단편영화제에서 인기를 모았던 수작들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해외단편, 국내외의 애니메이션에서 선정한 아시아애니메이션 섹션 또한 흥미롭다.
다양한 아시아 독립영화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상영작과 함께, 부대행사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촬영에서 상영까지, 디지털영화의 모든 것을 시연하는 ‘디지털 시네마의 체험’, 올해 상영작 중 2, 3편을 통해 영화와 미술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영화와 미술의 만남’ 등 두개의 세미나와 <ASIAN Street 테마사진전> <나난의 윈도 페인팅 전시회> 등이 상영관 곳곳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추천 상영작
<다섯개의 시선> 다운증후군 소녀의 진심어린 우정(<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박경희), 남자다움에 대한 강박과 편견에서 비롯된 외로움(<남자니까 아시잖아요?> 류승완), 탈북청소년의 암울한 현재와 안타까운 미래(<배낭을 멘 소년> 정지우),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의 애환(<고마운 사람> 장진), 서울 한복판에서 얼어죽은 중국 동포의 비극(<종로, 겨울> 김동원) 등을 다룬 다섯편의 단편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감독들의 장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장장 15분 동안 이어지는 남자다운 존재의 일장 연설을 단 두컷에 담아낸 류승완 감독의 뚝심, 쓸쓸하게 진동하는 흑백화면 속에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한 아이들의 연기를 담은 정지우 감독의 섬세한 연출, 운동권 학생과 그를 고문하는 수사관의 관계를 비틀어 씁쓸한 웃음과 깨달음을 선사하는 장진 감독의 신랄하고도 따뜻한 유머, 모두의 무관심에 살해당한 동포의 흔적을 좇아 중국까지 카메라를 들이댄 김동원 감독의 묵직한 시선 등이 돋보인다. 첫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 이후 2년. 우리 사회 곳곳에 팽배한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향한 비판의 시선은 한결 예리해졌고, 이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영화적 화법은 한결 다양하고 세련되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눈부신 하루> 광복 이후 60년. 우리에게 일본은, 일본인은 어떤 존재일까.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세편의 단편영화로 이루어진 <눈부신 하루>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묻기 위해 제작된 옴니버스영화다. 할아버지의 유품을 찾아 친구와 함께 제주도에 도착한 일본인 미에의 하루를 그린 <보물섬>(김성호)은 일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이중적인 시선, 그리고 재일동포의 아픔을 다룬다. 하룻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두 일본 소녀는, 모두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이 밝혀진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김종관 감독은 일본을 향한 우리의 애증어린 감정을 다루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 엄마를 찾으러 가기 위해 노트북 사기판매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종환은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일본에 도착한다. 그는 과연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원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공항남녀>(민동현). 한국 출장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 남자와 공항 서점에서 일하는 한국 여자,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두 남녀의 우연한 하룻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 인천공항 버전 <비포 선라이즈>를 연상시키는 이 에피소드에는 이소연이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
<히미코의 집> 게이 할아버지 버전의 <바그다드 카페> 혹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을 연상시킨다. 한때 잘나가는 게이바를 운영하던 히미코는, 이제는 늙어버린 그러나 여전히 개성만점인 게이들과 함께 아담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하늘 아래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해변에 자리한 이층집에, 어느 날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 찾아온다. 죽어가는 아버지 히미코와 그의 기이한 친구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는 사오리는, 평생 혐오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는 젊은 연인 사이에서 늘 알고 지내던 세상의 이면을 발견한다. 평생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듯 마냥 유쾌하기만 하던 이들에게도 아픈 과거는 앙금처럼 남아 있고, 노쇠한 이들의 육체는 욕망을 위해 외면했던 관계들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게 마련. 영화는 선택한 대신 포기한 것을 돌아봐선 안 된다고 말한다. 비극적인 주제를 씩씩하게 설파하는 감독의 목소리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그것과 연결된다. 주인공의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상마다 의외의 유머를 심어놓았던 독특한 감성 역시 여전하다. <요술공주 밍키>의 변신장면을 따라하고, 나이트클럽에서 깜찍한 군무를 연출하는 이들의 엉뚱한 모습이 일품이다.
<샹그릴라에서 온 신부> 샹그릴라에서 온 것처럼 언제나 밝고 명랑하여 주변을 즐겁게 하는 소녀, 펑메이. 전설의 주인공처럼 갓난아이일 때 바구니 속에서 발견된 펑메이는 중국의 전통춤인 용춤의 리더, 아총과 결혼한다. 남에게 지지 않는 당찬 기질 덕분에 결혼 첫날 쫓겨난 펑메이는, 시집에서 인정받기 위해 아총 밑에서 용춤을 익힌다. 등장인물 모두가 전통의상을 입고, 간간이 등장하는 마을의 배경 역시 지극히 평화로운 전원이어서 시대적 배경이 헷갈릴 법도 하지만, 혼수로 받은 29인치 컬러TV 앞에서 온 가족이 <톰과 제리>를 감상하는 등 영화는 엄연히 현재를 배경으로 한다. 서로 사랑하는 어린 연인의 투닥거림이 그저 귀여운 이 영화는 결국,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전통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한몸이 되어 용맹한 용의 움직임을 재연해야 하는 용춤을 수려한 중국의 산수 속에서 감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눈이 즐겁다. 깜찍한 여주인공 장칭추는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칠검>을 통해 얼굴을 알린 중국의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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