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신물 나는 미스터리 로맨스
여행길에 일어난 교통사고, 그리고 한 권의 책호상은 아내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가던 중 도로에서 차량 전복사고를 당한다. 호상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지만, 아내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아내의 중상에 괴로워하던 호상은 아내가 읽던 책에서 한 남자의 이름을 발견하고 질투심을 느낀다. 주치의인 시내는 복도에서 흐느끼는 호상을 보고 묘한 매력을 느끼며, 호상이 들고 다니는 책에 관심을 보인다.
우연처럼 얽히는 세 남녀
시내는 그 책을 찾다가 헌책방 주인 소국과 연락이 닿고, 소국은 죽은 선배가 남기고 간 책을 떠올린다. 아내의 남자를 찾던 호상은 여행의 목적지였던 지리산 산장까지 다녀오지만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고, 술에 취해 아내의 병실을 방문했다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끌려 나온다. 시내는 지하 주차장에 만취해 쓰러져 있던 호상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고, 만취한 호상은 시내와 섹스를 한다.
노년의 연애, 바람난 엄마의 사랑
소국은 노모가 죽은 아버지의 친구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운해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노모와 애인이 밀월 여행을 떠나기로 한 후 소국은 헌책방으로 찾아온 시내와 처음으로 만나고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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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어긋나고 고백은 쪽 팔리며 의심이 난무하는…more
신기한 로맨스 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의 등장인물들은 연애를 한다. 그런데 그 연애가 심상치 않다.
호상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걱정하면서도 아내의 주치의인 시내와 하룻밤을 보낸다. 시내는 동료 의사인 태진과의 불륜 관계에 환멸을 느끼면서 호상과 관계를 갖지만, 자신에게 관심 있냐는 호상의 질문에 ‘반칙하지 말라’고 답한다. 호상과 시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지만 외로운 사람들끼리의 섹스도 위안이 되지 못함을 깨닫는다.
소국은 나이 드신 노모가 세상을 뜬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와 연애하고 있는 게 영 못마땅하다. 노년의 커플은 젊은 연인들처럼 기찻길 옆 고깃집에서 사이 좋게 고기를 구워 먹고 노래방에서 커플 송을 부르고 쌈짓돈을 모아 여행을 떠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친구분을 봐 왔던 소국은 두 분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여행에 보태시라고 돈을 드린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있지만, 마음 고쳐 먹고 노모의 행복을 기원할 수 밖에 없다.
우연히 만나 서로 엮이면서도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 희한한 만남들. <팔월의 일요일들>은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 또한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때로는 신랄하게, 때로는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립영화의 대표배우들이 뭉쳤다!
- 임형국, 양은용, 오정세, 정우혁 등
<팔월의 일요일들>에는 오늘날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있다.
호상 역을 맡은 임형국은 현재 ‘KBS 독립영화관’의 진행자로도 활약 중인데, <열애기>,등 수많은 화제의 단편에 출연, 각기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며 보는 사람마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야?”라는 감탄을 자아냈던 배우이다. 가냘프면서도 날카로운 표정에서 뿜어 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은 <팔월의 일요일들>에서 맡은 호상 역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며 영화 전반에 걸쳐 대단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1997년 SBS 공채로 데뷔했지만, 폭넓은 연기 세계를 위해 매니지먼트 사와 결별까지 한 배우가 바로 양은용이다. 이미 <양아치어조>, <내 청춘에게 고함>, <내부순환선> 등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통해 얼굴을 알린 그녀는, <양아치어조>의 출연을 놓고 고민하던 당시 반대하던 매니지먼트 사와 결별하고 당당하게 홀로 서기를 선언했다. <팔월의 일요일들>에서는 의사인 시내 역을 맡아 정체 모를 애정 행각을 벌이며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헌책방 주인 소국 역을 맡은 오정세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이다. <거울속으로>에서는 실수 투성이의 형사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는 귀엽고 덜렁대는 전지현의 상대 경찰 역할로, <오! 브라더스>에서는 선생님으로, <달려라 장미>에서는 감독 지망생에게 발바닥까지 핥게 하는 비열한 영화사 사장 역할로 출연했다.
소국의 선배 역할로 출연하는 정우혁 역시 단편영화의 스타 배우로 <장마>, <어떤 여행의 기록>, <용산탕>, <복서>, <1호선> 등 다수의 굵직한 단편과 <박하사탕>, <양아치 어조>에서 무게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최면적 오프닝
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이 시작하면 관객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것과도 같은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얼터너티브 락밴드 칼렉시코(Calexico)의 곡 “Stinging Nettle”이 몽환적으로 깔리면서 무려 3분 40초에 걸친 롱테이크가 등장하는데, 끝도 없을 것 같은 고속도로의 수평선이 느린 속도로 300도 가까이 회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격렬하게 전복되는 자동차. 이 오프닝 장면은 나른한 일상을 뒤흔드는, 등장 인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사건의 시작을 예고한다.
그 책을 보면…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파트릭 모디아노의 ‘팔월의 일요일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은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파트릭 모디아노의 1986년 작이다. 사진가와 사랑에 빠진 여인이 남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쳐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추락하고, 7년 후 우연히 사진가와 남편이 만나 과거를 회상한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통속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소설은 ‘실종’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기억’의 상대성을 얘기하고 있다. 그 여인은 생사를 알 수 없지만 실종된 상태이고,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진가 역시 그 기억이 진실인지 아니면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에서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의 소지품 속에서 바로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책을 선물한 한 남자의 이름이 발견된다. 그 남자의 생사 여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남편은 어딘가에 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병실의 아내를 놔 두고 그를 찾아 헤맨다. 아내의 담당 의사 역시 헌책방과 인터넷을 뒤지며 그 책을 찾아 나선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과 일상 속의 우연,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믿고 싶은 기억이란 것의 불안정성. ‘팔월의 일요일들’은 비록 영화 속에서 표지로만 등장하지만, 영화의 전편을 감도는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