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너, 잘하고 있는 거니?”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란, 대략 난감하다. 옆에서 아무리 “그래,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도 불안하고, 거꾸로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겉으론 태연한 척해도 속으론 섭섭해진다. 같은 질문을 <씨네21>을 향해 돌려보자. ‘우린 정말 좋은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가?’ <씨네21>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이 질문은 꼭 누군가 “너, 떨고 있니?”라고 묻는 것 같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을 받아 자꾸 주위를 둘러보지만 목적지를 알려주는 등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당장 당도할 목적지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항해 자체가 목적일지도. 빙하를 피하고 폭풍우와 맞서면서 고난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과장할 생각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적당한 불안과 긴장과 위험도 때론 힘이 된다. 그래서 어딘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 때도 대범한 척 말한다. “아싸~.”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씨네21>은 다른 영화주간지보다 비싼 가격을 받는다는 점 때문에 적지 않은 심적 부담을 갖는다. 다른 시사주간지나 경제주간지에 비해 비싸지 않지만 가격이 싼 영화주간지들과 경쟁한다는 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비싼 만큼 제 값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도 그렇지만 독자 서비스 면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거듭 다짐한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의 불만을 접할 때마다 고개가 숙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뭔가 독자들이 <씨네21>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특별한 서비스가 없을까? 오는 4월22일부터 2주간 여는 영화제는 그런 점에서 <씨네21>의 오랜 꿈이었다. 독자들이 정말 보고 싶은, 또는 우리가 독자 여러분께 정말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트는 영화제.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선물보다 값질 것이라 상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이 이루어질 찰나다. <씨네21>은 이번 영화제를 독자 여러분을 위한 자리로 마련한다. 정기구독자는 무료 입장, <씨네21> 499호와 500호를 구입하는 분들에겐 파격적인 할인권을 제공할 계획이다(일반 관객에겐 아시아영화 베스트10의 경우 5천원, 한국영화 베스트10은 1천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영화제는 평론가, 기자, 감독들이 지난 10년간 한국영화 가운데 베스트로 꼽은 작품 10편과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아시아영화 베스트 10편을 상영한다. 지난주에 밝힌 대로 한국영화 베스트 10편에 꼽힌 영화는 <춘향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빈 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넘버.3>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복수는 나의 것> <송환> <박하사탕>(무순)이다. 독자 여러분의 예상과 일치하는 결과인지 궁금하다. 나는 이 리스트가 ‘한국영화 르네상스’로 일컫어지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의 좌표를 설정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아시아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태어나기는 했지만>,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미조구치 겐지의 <잔국물어>, 나루세 미키오의 <흩어진 구름>,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 왕가위의 <아비정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 지아장커의 <플랫폼>, 샤트야지트 레이의 <길의 노래> 등 9편이 확정됐다. 남은 1편은 아직 섭외결과가 확정되지 않아 다음주에 영화제 소개기사에서 시간표와 함께 공지될 예정이다. 참, 중요한 정보 하나를 빼먹었다. 장소는 옛 허리우드극장 자리에 새로 생기는 필름포럼이다.
독자 여러분, 영화제에서 만납시다.
PS. <이주의 한국인 무엇을 이야기할까> 코너를 집필하시던 고준석님이 이번주를 끝으로 <씨네21> 지면을 떠납니다. 아, 이런 게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인생사인가요? 그래도 남은 벌써 님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