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는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 거라고 했어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을 찾아간다.
그는 그녀에게 이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기며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결국 ‘수리진’은 ‘아비’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길 원하지만, 구속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비’는 그녀와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
‘수리진’은 결혼을 거절하는 냉정한 그를 떠난다.
그녀와 헤어진 ‘아비’는 댄서인 ‘루루’와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도 역시 오래 가지는 못한다.
‘루루’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아비’는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게 된다.
한편, 그와의 1분을 잊지 못한 ‘수리진’은 ‘아비’를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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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만난 그 사람의 영화에 관한 취향을 알아보고 싶다면 간단한 질문이 있다. 그냥 왕가위 영화 중에서 어느 영화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라고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오우삼은 <열혈남아>가 심금을 울린다고 대답했다. 지아장커는 <아비정전>에서 새로운 중화어권 영화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장이모는 그냥 <동사서독>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고 대답했다. 서극은 홍콩영화에 <중경삼림> ‘이전과 이후’가 있다고 대답했다. 리앙은 <타락천사>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대답했다. 차이밍량은 한참을 망설인 다음 <해피 투게더>라고 대답했다. 허우샤오시엔은 망설이지 않고 <화양연화>라고 대답했다(이 대답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다른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건 취향의 문제다.more
왕가위는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시네아스트이다. 그는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항상 그의 영화는 거기까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 경계까지 밀고 나간다. 그러나 그 다음 영화는 그걸 가볍게 점핑한다. 그는 우리를 탄식하게 한다. 나는 그렇게 <2046>까지 이끌려왔다. 그런 다음 우연하게도 다시 <아비정전>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왕가위의 <아비정전>은 그 ‘이후’의 그의 모든 영화의 강박증과 히스테리 사이에서 오가는 그 어떤 불만족이다. 그는 이 영화를 미완성으로 끝냈다. 나는 그 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물어보았다. 그는 <아비정전> 속편을 찍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나쁜 놈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왕가위에게서 생겼다. 그 이후의 그의 모든 영화는 미완성이다. 왕가위는 의도적으로 이 발없는 새의 이야기를 피하려들거나, 그 반대로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를 반복한다. 단 한명의 사람도 볼 수 없는 한밤중의 텅 빈 거리에서 오직 등장인물들만이 존재하는 그 이상한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 외로운 영화가 사실상 여섯명이 함께 꾸는 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깨어나지 않는 꿈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채워넣고 혹은 빼앗아간다. 그들의 꿈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채관계이다. 왕가위는 그 채무 속에서 대차대조표를 써나간다. 그러므로 왕가위의 대답은 그들을 깨울 생각이 없다고 읽혀야 한다. 혹은 그 매듭은 풀어서 안 된다. 왜냐하면 왕가위의 모든 영화는 사실상 단 하나의 시나리오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시나리오를 쓸 이유가 없다. 그것이 촬영현장에서조차 혹은 편집실에서 거듭해서 이야기를 고쳐가면서 영화를 만드는 왕가위의 비밀이다. 그는 미루고 미루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그러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불만족스러운 <아비정전>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국영은 호텔에서 뛰어내렸고, 그 자리는 비어진 채 내버려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유령의 채무관계이며, 영원히 미루어진 부채이다. 불만족스럽게 미루어둔 것이 불가능한 행위가 되었을 때 그 모든 시도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모르고 있다고 가정된 환상의 무아지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장국영의 자살 이후에 필연적으로 <2046>이 나왔다고 믿는다. 그것은 도착증의 왕국이다. 도대체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비정전>을 다시 반복하겠는가? 수리첸은 영원히 사랑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사막에서 떠돌거나, 아니면 동방호텔에서 불륜의 상대와 아슬아슬한 감정의 게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아비의 형은 사막의 주막을 지키거나, 경찰복을 입고 중경 근처를 어슬렁거리거나, 그도 아니면 동방호텔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삼류 무협소설을 계속 써야 할 것이다. 아비의 친구는 계속해서 그 열차를 타고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여행을 계속 할 것이다. 수리첸의 자리는 홍콩(의 장만옥)에서 중국 본토(의 공리)로, 그런 다음에는 할리우드(의 니콜 키드먼으)로 자꾸만 옮겨간다. <아비정전>은 일종의 저주이다. 왕가위는 홍콩을 떠나서 상하이에 가고 싶어한다(택동영화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왕가위의 다음 영화 제목은 <상하이에서 온 여인>(Lady from Shanghai)이다). 어쩌면 왕가위의 다음 영화는 그의 두 번째 데뷔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냥 내 생각이다. 아, 참 나는 <화양연화>를 가장 좋아한다. 물론 취향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