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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

悲情城市 A City of Sadness

1989 대만 15세이상관람가

드라마 상영시간 : 158분

개봉일 : 1990-01-26 누적관객 : 2,992명

감독 : 허우 샤오시엔

출연 : 양조위 진송용 more

  • 네티즌8.84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대만 지우펀의 ‘임아록’의 가족에게 새 식구가 태어난다.

장사를 하는 첫째 ‘문웅’, 일본에 징집되어 소식이 끊긴 ‘문상’,
일본에서 고초를 겪고 돌아와 회복 중인 셋째 ‘문량’ 그리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진사 막내아들 ‘문청’까지,
임씨 가족은 새로운 대만과 가문의 앞날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는 곧 잔혹한 현실로 바뀌고,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의 고압적인 통치와 부패 속
임씨 가족은 비극 앞에 놓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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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1947년 2월27일, 국민당의 전매국 소속 사복 감시반과 경찰이 타이베이 시내에서 불법으로 담배를 밀매했다는 죄목으로 한 여인을 구타한다.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경찰이 옆에서 그 광경을 보다가 항의하던 대만인들을 총으로 사살하면서 사태는 일거에 확대되기 시작했다. 28일에는 타이베이시 전역에서 파업과 철시 및 데모대의 시위가 시가지를 휩쓸었고, 국민당의 병영과 비행기장, 시정부 및 국민당 당 지부들이 공격당하자 당은 본토의 국민당 군대를 급거 파견해 피비린내나는 탄압을 자행했다. 같은 해 3월8일부터 개시된 대토벌 작전에서 도합 2만여명의 본성인, 즉 대만의 토착민들이 학살됐다.
<비정성시>는 이같은 피비린내나는 대만 역사와 그 그늘에 묻힌 슬픈 도시, 처연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인 것이다. 역사와 가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서도 집은 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또한 매우 이상하게도 두 감독 모두는 공간을 잡아낼 때 딥포커스가 영화미학의 핵심이 되고 그 공간에서 문과 창은 공간을 나누는 분기점이 아니라 공간을 늘리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허우 샤오시엔의 모든 역사의식과 시선은 집 ‘내부’에서 나온다. <비정성시>에는 다른 영화감독들이 빈번하게 잡아내는 외부에서 집을 바라보는 방식의 시선이 없다. 즉 타르코프스키가 늘 집에 ‘다시 돌아간다’는 무의식의 지점에서 영화를 사색한다면, 대만 감독인 허우샤오시엔은 결코 그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자가 가족과 역사와 영화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허우샤오시엔이 바라보는 역사는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 그곳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허우샤오시엔의 롱테이크와 롱숏의 미학을 관조의 미학으로 부르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관조라기보다 그곳에 머물기로 결심한 자의 미동없는 결기, 관조를 넘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 땅을 이 집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자가 보여주는 ‘부동의 자세’ 같은 것이다. <비정성시>에서 허우사오시엔의 카메라는 그 어느 곳을 잡던 늘 고정된 장소에서 고정된 각도로 고정된 지점에서 동일한 공간을 잡아낸다. 장면이 여러 개 바뀐 뒤 다시 그 공간으로 되돌아와도, 술집을 잡을 때도, 술집의 골목을 잡을 때도, 병원의 복도를 잡을 때도, 문웅의 거실을 잡을 때도, 귀머거리 아들인 문청의 방을 잡을 때도 카메라는 어느새 같은 장소에 돌아와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각도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카메라는 남아 있다. 그래서 <비정성시>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역사의 순환성이 가족의 순환성과 맞물리는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되는 것이다. 다시 1947년 2월27일의 그 피비린나는 역사가 되풀이되어도, 남자들은 죽고 여자들은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고통을 받아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삶은 이어진다. 출산, 장례식, 결혼식, 다시 출산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탄생-죽음-탄생으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동심원의 세계를 빠져나갈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는 진리를 묵묵히 증언한다.
그러므로 진정 <비정성시>에서는 컷과 컷이 어떻게 갈라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컷과 컷이 어떻게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막간 자막으로 삽입된 종이의 글귀나 술집 안에 있던 한 무리의 청년들의 노랫소리는 한컷과 다음 컷을 이어주는 접착제 노릇을 한다. 청년들의 노랫소리는 다음 컷에서도 이어져서 술집 밖으로까지 울려퍼진다. 아니 이어져나간다. 그것이 바로 공간의 안에 있어도 공간 밖, 혹은 세상과 역사라는 자기 인식의 밖을 포괄하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미학의 핵심이다. 그것은 서구영화와의 속도전이나 행동을 기점으로 컷을 가르는 서구영화의 편집구조를 완전히 거절한 한 시네아스트의 자기 완결적인 영화미학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후 어떤 영화에서도 이렇게 자기 성찰적인 방식으로 한 나라의 비애와 한 인간의 고민과 영화미학이 함께 근접조우를 한 사건을 본 일이 없다. <비정성시>. 그것은 대만 영화역사의 시작이었으며, 허우사오시엔 영화역사의 시작. 비로소 전세계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영화속도의 사색가는 자신의 책갈피에 접힌 슬픈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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