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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는 했지만

生まれてはみたけれど I Was Born But...

1932 일본

코미디 상영시간 : 100분

누적관객 : 184명

감독 : 오즈 야스지로

출연 : 사이토 타츠오 아오키 토미오 more

  • 네티즌8.88
이 영화는 오히려 오즈의 중·후기작을 통해 그의 영화세계를 부분적이고 강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관객이 더 보아야만 하는 영화다. 요컨대 유작 <꽁치의 맛>에서처럼 딸을 시집보내고 외롭게 앉은 홀아비의 처진 어깨나 감정을 담고 홀로 끓고 있는 주전자만이 오즈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삶에 대한 소시민적 애환과 넘치는 웃음과 형식적 고찰이 전부 자리잡고 있는 작품이 바로 <태어나기는 했지만>이다. “가난해도 대단한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고, 때로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 건 오즈의 영화에서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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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오즈 야스지로는 1903년 12월12일 태어났다. 그리고는 1963년 12월12일 60살 되던 생일날 세상을 등졌다. 습관처럼 오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나면, 우연이든 운명이든 시작과 끝을 일치시켜 삶을 살다간 그의 윤회 과정에 언제나 소름이 돋는다. 2003년 겨울, 도쿄 외곽 사원에 있는 그의 묘지를 찾았을 때 그는 다른 이웃들과 거기 그렇게 조용히 묻혀 있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이라는 제목을 중얼거리는 순간 그 묘지의 차갑고도 평온한 풍경이 떠오른다. 태어남과 죽음이 같은 의미로 공존하는 오즈의 영화이어야만 가능한 연상일 것이라고 믿는다.
오즈가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것은 친구 야마나카 사다오를 경쟁자로 삼아 형식을 고민하고, 미국영화를 무척이나 즐기면서 보냈던 그 전전 초창기 시절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적인 것은 대부분 전후 영화를 기초로 한 그의 영화형식을 가리킬 때가 많다(거기에는 물론 오해도 많다). 자기 세계의 완숙함에 들어선 오즈는 한때 요시다 요시시게 같은 쇼치쿠 누벨바그 세대들에게 넘어야 할 구세대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시다조차 오즈의 영화에는 전대미문의 반복과 불일치가 있다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고백적인 감회를 던진다. 그리고 이웃 나라 대만의 허우샤오시엔은 오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카페 뤼미에르>라는 헌정영화를 만들어, 오즈의 영화에서 배운 건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었다는 평소 주장을 남김없이 이 한편으로 입증했다. 오즈는 일본영화의 스승일 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의 스승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은 오즈가 첫 유성영화 <외아들>을 만들기 전에, 그의 중·후반기 영화들의 초석이라 해도 무방할 <만춘>을 만들기 훨씬 전에 완성한 무성영화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오즈의 중· 후기작을 통해 그의 영화세계를 부분적이고 강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관객이 더 보아야만 하는 영화다. 요컨대 유작 <꽁치의 맛>에서처럼 딸을 시집보내고 외롭게 앉은 홀아비의 처진 어깨나 감정을 담고 홀로 끓고 있는 주전자만이 오즈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사물의 인공적이고 고정된 자리 및 형상을 통해 삶 전체의 냉엄한 정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오즈 영화의 기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불변의 종류는 아니었다.
종종 착각하는 것과 달리 오즈의 영화에는 침묵이 거의 없다. 그의 영화는 말이 많다. 게다가 이 시기의 오즈는 과묵하지 않을뿐더러 웃길 줄을 안다. 말하자면, 여기서의 침묵과 말이란 비단 언어의 차원이 아니라 영화적인 말걸기의 차원을 의미한다. 초창기 무성영화 <일본식 싸움친구>나 <즐겁게 걸어라> <낙제는 했지만>(<졸업은 했지만…>도 있다)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에 관한 묘사는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으로 탈바꿈되면서 그렇게 코믹한 상황을 자아낸다. 오즈가 아이 같은 어른들을 배제하거나, 그들에게서 웃음을 거둔 것은 전적으로 전후의 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일 것이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삶에 대한 소시민적 애환과 넘치는 웃음과 형식적 고찰이 전부 자리잡고 있는 작품이 바로 <태어나기는 했지만>이다. 이를테면 두 아들은 화가 난다. 친구의 아버지인 사장에게 우리 아버지가 바보짓을 하면서까지 환심을 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왜 아버지는 사장이 아니라 직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난해도 대단한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고, 때로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 건 오즈의 영화에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언제나 극단의 형식과 함께하는 오즈식 홈드라마의 메시지라면 메시지다. 오즈는 훗날 이 작품을 몇 되지 않는 컬러영화 중 하나인 <안녕하세요>로 다시 만들어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형식적인 특징들, 즉 무성영화 시절에 영화를 시작한 감독만이 고수할 수 있는 배우들에 관한 일괄적인 자세연출의 강박, 필로숏이라 불리며 화면 리듬을 조율해내는 기차와 빨래의 인서트 컷, 인물과 함께 일정한 거리로 이동하는 카메라 구도에의 집착, 장소를 건너뛰면서 시간의 나선형을 만드는 불가해한 편집기법, 화해와 긍정의 자세로서의 나란히 앉기 등등의 전조를 모두 이 한편의 영화에서 ‘이미’ 볼 수 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은 오즈 세계의 전반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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