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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터뷰] 강우석, 강제규

힘찬 ‘태극기’ 할리우드랑 붙어볼 만. 강우석이 강우석을 말한다

60년생, 성균관대 영문과, 93년 강우석 프로덕션 설립, 같은 해 시네마서비스 대표 취임.

감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 <투캅스>(93), <마누라 죽이기>(94), <투캅스2>(96),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98), <공공의 적>(2001) 등.

제작 <미스터 맘마>(92), <초록물고기>(96), <투캅스3>(98), <킬러들의 수다>(2001) 등 다수.

출발

할리우드 키드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 졸업 뒤 무작정 충무로에 들어와서 고생은 험하게 하고 수입은 제로인 조감독 생활을 7년 넘게 했다. 데뷔 안하고 버티다가 안정된 제작사를 만나서 데뷔한 강제규 감독과 달리 나는 여러 영화사를 전전하다가 작은 영화사에서 첫작품 <달콤한 신부들>로 88년 데뷔했다.

터닝포인트

감독으로 터닝포인트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 이후 밥벌어 먹기 위해서 계속 찍다가 제작자로 나서게 된 작품이 <미스터 맘마>(1992), 내 회사를 차리고 내 작품을 찍게 된 영화는 <투캅스>(93)부터였다. 가장 큰 터닝포인트는 외자유치를 하면서 시네마서비스의 몸집이 부쩍 커진 2000년도 일 것이다.

고민

지금은 큰 고민 없지만 시네마서비스가 두세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영화를 관둘까 하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다. 한두편의 영화가 잘 돼도 모이는 게 없고 번 돈은 순식간에 날아가는 일을 수차례 겪으면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고민은 내가 감독 일에 치중했을 때, 제작하는 영화 편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내가 보는 강제규

남들은 엄두도 못내는 걸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다. 규모 뿐 아니라 드라마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쫙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저 상황에서 왜 저 대사를 쓰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어느 새 영화 안에 들어가있는 걸 느끼게 한다. 성격을 보면 이십대 때부터 별명이 애늙은이였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어려워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느긋해 보인다. 그런 성격이 남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영화를 찍게 하는 힘인 것같다. 또 그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단점일 수도 있다.

흔들림없는 ‘실미도’ 편안한 감동. 강제규가 강제규를 말한다

61년생, 중앙대 연극영화과, 98년 강제규 필름 설립.

감독 <은행나무 침대>(96), <쉬리>(99)

제작 <단적비연수>(2000), <베사메무초>(2001), <몽정기>(2002)

출발

어릴 적 친구네 집이 극장을 하는 덕에 헐리우드 키드로 컸지만 영화를 한다는 건 시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아버지가 카메라를 사서 사진찍는 것을 보고 나도 사진을 배우면서 영화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 때부터 선배들의 ‘찍사’ 노릇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나 역시 조감독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의 악몽 때문에 설렁탕을 4년 동안, 자장면을 3년 동안 입에도 안 댔던 기억이 난다.

터닝포인트

대학 졸업 뒤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하다가 96년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했다. <쉬리>부터 내 작품을 내가 직접 제작하게 된 건 조감독할 때부터 주변에서 어떤 의지나 기대가 자꾸 좌절되는 것을 봐서였다. 나 역시 <은행나무 침대> 때 신씨네 이외에는 모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기투합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직접 제작에 나서게 됐다.

고민

영화 찍을 때는 어렵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쉬리> 찍고 3년 동안 바깥일 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비즈니스를 하다보니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업무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정체성이 뭔가 하는 고민도 들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으면서 고민에서 자유로워졌고 내 작품에 충실하는 게 나 자신과 우리 영화에도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보는 강우석

얼마전 일생을 분, 초 단위로 나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살았다는 어떤 물리학자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보며 강우석 형을 떠올렸다. 영화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게으른데 형은 한시간도 다른 데 소모하지 않고 영화에만 매진해 왔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꺾이지 않는 독자성을 가지게 된 데는 그런 형의 에너지가 큰 역할을 해온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담배라도 끊었는데 형은 술 담배 다 한다.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60, 70대까지 현장에서 뛰며 후배들의 귀감이 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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